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62
#761화
아무리 강력한 몬스터라 하더라도, 트롤 이상의 재생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 한 목이나 심장을 관통당하면 죽기 마련이다.
바로 지금처럼.
쉭!
황급히 젖혀지는 목. 그러나 거침없이 나아가는 창날을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아니, 놈을 놓치기에는 내 일격이 너무나도 빠르고, 정교했다.
퍼걱!
목젖을 파고든 창날이 그 안의 살과 뼈를 베어 가르며 튀어나온다.
고통으로 부릅뜬 두 눈. 살짝 벌어진 입안에서는 피가래 끓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륵. 크르륵…….
참으로 질긴 생명력이다.
그것도 이제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지만.
“잘 가라.”
퍼엉!
창날에 실린 화염이 폭발한다. 나무처럼 두꺼운 목이 단숨에 끊어져 허공으로 솟구쳤다.
띠링.
– [Lv.140 미노타우로스 로드]를 처치했습니다!
– 대량의 경험치와 명성을 획득했습니다!
– 레벨 업!
귓가에 울려 퍼지는 시스템 알림과 함께, 나는 천천히 돌아섰다.
어느덧 고요해진 전장. 조금 전만 하더라도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모든 인간과 몬스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물어지듯 쓰러진 괴물의 사체 앞에 선 나를.
누군가에겐 희망이요, 누군가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한 나를.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멈춰선 그들을 향해, 나는 땅을 나뒹굴던 미노타우로스 로드의 대가리를 걷어찼다.
쉬이이익, 텅!
하늘 높이 솟구친 수급이 전장의 중심으로 떨어진다.
이 전투의 후반전. 아니, 마지막 연장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킥 오프(Kick Off).
하지만 넋이 나간 선수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심판의 한 마디가 필요하다.
“뭐 해. 싹 다 쓸어 버려.”
“……!”
– ……!
전혀 다른 두 종족의 눈이 동시에 크게 뜨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달랐다.
인간은 환희를.
몬스터는 두려움을.
그리고 각기 다른 감정을 품은 무수한 시선들이 나를 떠나 서로를 향해 맞닿은 그 순간.
와아아아아!
귀가 먹먹해지는 거대한 함성과 함께, 승리를 확신한 인(人)의 파도가 몬스터들을 덮쳤다.
쐐애애액! 퍼걱!
“다 덤벼라! 이 개 같은 몬스터 놈들아!”
“…….”
그런데 왜 저 새끼가 항상 선두인 걸까.
‘몬스터계의 이완용, 뭐 그런 건가.’
할버드를 들고 닥치는 대로 몬스터를 썰어 대는 스켈레톤 킹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나는, 이미 반쯤 허물어진 몬스터들의 전열을 향해 달려들었다.
쉬쉬쉬쉭, 서걱!
맞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살육만이 남았을 뿐이다.
* * *
해 질 무렵 시작된 살육은 깊은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우두머리를 잃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미노타우로스 군단은 한순간에 와해되어 사방으로 흩어졌고, 어느새 현장 지휘관이 되어 버린 나는 간단명료한 한 마디로 놈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쫓아. 도시를 싹 다 뒤엎어서라도.”
그 후로는 그야말로 사냥의 시간이었다.
헌터(Hunter)라는 명칭처럼 사냥꾼이 된 그들은 이미 박살 나 버린 미노타우로스 군단을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이 개자식들!”
“요나스의 복수다. 싸그리 죽여!”
후우웅! 콰직!
– 끄어어어어!
원래 재수 없으면 골로 가는 것이 헌터의 삶이라지만, 그렇다고 동료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들이 오늘 수없이 느꼈던 슬픔은 엄청난 분노가 되었고, 승리의 다른 말은 보복이었다.
“미노타우로스 무리 발견! 국제공항 쪽으로 이동 중!”
“어떻게 할까요?”
“예?”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
살짝 당황했다.
후위를 맡은 군 사령관은 둘째치고 각자 팀장도 있는 마당에 그걸 왜 외부인인 나한테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한 대답 정도야 쉬웠다.
“뭐 하세요. 이런 거 물어볼 시간에 가서 죽여야지.”
“감사합니다! 3팀 따라와!”
“으아아아!”
“위버멘쉬께서 몬스터 놈들을 싸그리 도륙하라 하셨다!”
“위버멘쉬를 따라 놈들의 뼈와 살을 부수고, 피를 삼키자!”
“위버멘쉬! 위버멘쉬!”
“살과 뼈! 뼈와 살!”
“…….”
뭐여, 시벌. 무서워.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외침만 들어보면 독일이 아니라 최소 아즈텍 제국이다.
물론 인간이 아니라 침략자인 몬스터를 사냥한다는 점에서 아주 큰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피는 안 마시는 게 좋을 텐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아무것도.”
나를 희한한 눈빛으로 바라본 최 팀장이 얼굴에 묻은 핏물을 닦아 내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대부분 정리된 듯싶습니다. 독일 연방군 측에서 남겨 두었던 후위대를 투입했고, 섬멸 직전이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꽤 많이 도망쳤던데.”
“드론을 띄워 모두 파악 중이니 도망칠 수 없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사상자는요?”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천오백 명 남짓입니다. 그중 사망이 천명에 달하고, 남은 이들은 중상을 입긴 했으나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닙니다.”
과학과 마법이 융합된 세상이다.
어지간한 상처는 외과 수술로 낫고, 치료 마법과 포션까지 더해진다면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한 달이면 거동에 문제없을 정도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사망자들의 숫자였다.
“천 명…….”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최대한 신속하게 도착했음에도, 최선을 다해 싸웠음에도 그들의 죽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진태경 씨.”
최 팀장의 나직한 부름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무슨 말씀하실지 알아요.”
객관적인 시선에서 본다면 오늘의 전투는 분명한 대승이다.
1만에 가까운 미노타우로스 군단을 분쇄했고, 놈들을 이끌던 S급 몬스터를 처치했으며 아군의 피해도 최소화했다.
그러나 비교적 작은 상처를 입었다고 하여 그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진맥진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위해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들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분명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동시에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전쟁은 그런 것이다.
실상은 이렇다 할 승자도 패자도 없는, 누구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는가로 결과가 결정되는 고통의 쳇바퀴.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의무였다.
드러나지 않은 어둠 속에서 은밀히 손을 뻗어, 잠시나마 멈춰 있던 쳇바퀴를 가파르게 돌리기 시작한 누군가를 막아서는 것 역시도.
– 놈은, 미카엘 실베르트는요?
내 전음(傳音)을 들은 최 팀장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입술을 달싹였다.
– 남아공에서의 일을 마무리한 뒤 뮌헨으로 오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 이번에는 한발 늦었군요.
– 처음부터 계획에 없었던 상황이니까요.
오딘 길드의 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당연히 전 세계 각국에 지부를 둔 만큼 빠른 대응을 할 수 있었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전공을 쌓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선지자를 도구로 사용해 일으킨 이번 사태.
다른 이들의 눈에는 미친 광신도의 무차별 테러로 보이겠지만,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한 미카엘 실베르트는 테러가 언제, 어디에서 벌어지는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고 있었다.
‘아마 남아공 몬스터 웨이브도 그중 하나였겠지.’
하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나는 미카엘 실베르트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뮌헨 몬스터 웨이브에 개입했고, 놈보다 한발 앞서 재앙을 막았다.
아니, 동시에 놈의 앞길을 가로막을 힘을 얻었다.
다시 돌아온 대중들의 지지. 그리고 그들의 신뢰를.
“…….”
“왜 그러십니까?”
“……아니에요. 아무것도.”
짤막하게 대답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너진 도시. 거리마다 가득한 시신과 피 웅덩이.
문득 기분이 더러워졌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수단으로 이용한 것 같아서.
어느샌가 나 역시 미카엘 실베르트나 선지자와 다름없는 괴물이 된 것 같아서.
그러나…….
나는 분명 최선을 다했다. 자위라고 해도 좋고, 정신 승리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이를 악물며 싸웠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 세상에서 미카엘 실베르트를 막아설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거대한 장애물이 되었다.
‘퀘스트 창 오픈.’
띠링.
낯익은 종소리와 함께 홀로그램 창이 펼쳐진다.
처음 봤던 그때와 단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바로 그 메인 퀘스트가.
‘격변(激變).’
나는 두 눈동자에 틀어박힌 그 두 글자를 마음속으로 뇌까렸다.
이번 몬스터 웨이브의 가장 큰 원인인 미노타우로스 로드를 죽이고, 자그마치 1만에 달하는 몬스터들을 섬멸했음에도 시스템은 묵묵부답이었다.
마치 아직 멀었다는 것처럼.
미카엘 실베르트의 모든 계획을 산산조각 내어 완전히 몰락시키거나, 그 숨을 끊어 내야만 내게 주어진 임무를 끝내 주겠다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허공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을 말없이 응시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후우우웅.
“……!”
나는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사람의 시선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저 멀리, 어둠에 잠긴 하늘에서 희미한 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의문. 짐작. 그리고 확신.
복잡하게 뒤엉킨 머릿속이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쳐 답을 도출한다.
나보다 한발 늦게 낌새를 알아차린 최 팀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착했군요.”
“네.”
까득.
창대를 쥔 손아귀가 하얗게 물든다. 나는 빠르게 가까워지는 빛을 바라보며 뇌까렸다.
“놈이 왔습니다.”
* * *
10년 차 경력에 접어든 기자, 시몬은 엄청난 흥분과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건 특종이다. 특종.’
그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는 이미 몇 시간 전부터 입력해 둔 온갖 메모와 임시 헤드라이트로 가득했다.
S급 몬스터 미노타우로스 로드가 이끄는 몬스터 군단.
추정 숫자 1만. 엄청난 대병력.
뮌헨 중심지. 시가전 발발.
인류에게 불리하게 흐르는 전황.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진태경.
위기에 빠진 S급 헌터 조엘 슈마허, 그를 구원한 진정한 초월자. 진태경은 위버멘쉬?
대승리! 특종! 보고 있냐 보도 국장. 이 돼지 후장보다 못한 놈아. 다니엘 다이스케 때문에 집회 취소된 걸 왜 나한테 지ㄹ
톡. 토토톡.
바쁘게 화면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춘 시몬은 마지막 메모를 지웠다.
반나절 전쯤 진태경 반대 집회 취소 건으로 보도 국장에게 샤우팅을 듣긴 했지만,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사람 역시 그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요새 위에서 하도 쪼아 대니까.’
상사의 허울을 감싸 주는 것 역시 부하 직원의 도리. 고개를 끄덕인 시몬은 새로운 메모를 입력했다.
두 영웅의 만남.
진태경과 미카엘 실베르트. 뮌헨에서 다시금 조우하다!
그리고 시몬이 마지막 느낌표를 찍었을 때, 세찬 바람이 그를 비롯한 수많은 취재진을 향해 불어닥쳤다.
쉬우우웅.
“왔다!”
“오딘 길드 맞아?”
“확실해! 길드장 전용기야!”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 가까운 공터에 서서히 하강하는 거대한 항공기를 감탄하며 바라보던 시몬은, 파도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취재진을 따라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