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63
#762화
‘이런.’
후긴은 작게 혀를 찼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끔 특수처리 된 창문 밖으로, 서서히 가까워지는 지상과 족히 엄청난 숫자의 취재진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많이도 몰려왔군.’
물론 드문 일은 아니었다.
평상시에도 미카엘 실베르트라는 이름은 기자들에게 있어 항상 취재의 대상이었고, 테러 사태가 시작된 이후에는 길드장 전용기만 보여도 혈안이 되어 달려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후긴이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근 몇 년을 통틀어 오늘만큼 많은 취재진이 몰렸던 적은 없었다.
‘문제는…… 저 카메라의 초점이 우리가 아닌 다른 쪽을 향해 맞춰져 있다는 거지.’
미디어의 힘은 강력하다.
쉽게 선동당하는 대중들은 카메라를 자신들의 눈으로, 스피커를 귀처럼 여긴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자리에서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진태경 쪽을 향한다면?
‘곤란하지. 곤란해.’
내심 중얼거린 후긴이 스마트폰을 품에서 꺼낸 그때였다.
“놔두게.”
“……!”
찰나의 순간, 돌연 귓가를 파고든 누군가의 음성에 후긴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떻게?’
오랜 시간을 섬겨 온 만큼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후긴이 놀란 이유는 불과 몇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는 그곳에서 미세한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극히 뛰어난 실력을 지닌 S급 헌터임에도.
“……오셨습니까.”
애써 억누른 충복의 목소리에서 완전히 숨기지 못한 동요를 읽어낸 미카엘 실베르트가 불쑥 물었다.
“그렇게 뜻밖이었나?”
잠시 생각하던 후긴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놀란 것처럼 보였는데.”
“처음 한순간은 분명 그랬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어째서?”
“길드장님이시니까요.”
“역시 자네는 타고난 아첨꾼이야.”
“진심입니다. 제 목을 걸지요.”
“귀한 목숨을 그리 쉽게 걸어서야 쓰나.”
“괜찮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길드장님께 바친 목숨이니.”
후긴의 막힘없는 대답에 실소를 흘린 미카엘이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깥이 제법 소란스럽군.”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해산시키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럴 것 같았네. 자네라면.”
뒤이어 짤막한 한 마디가 덧붙여졌다.
“그래도 놔두게.”
후긴은 손에 쥔 스마트폰을 매만졌다. 당장 전화 한 통이면 밖에 모인 기자들을 모두 돌려보낼 수 있다.
설령 그 과정에서 강압적인 방법을 쓴다 하더라도 신문에는 기사 한 줄 나지 않을 것이다.
오딘 길드는, 이 세상은 그런 곳이니까.
하지만 후긴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이 목숨 바쳐 모시는 상관의 뜻이었다.
다만 그런 그조차 이번만큼은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유?”
“예. 아무런 득도 얻지 못할 뮌헨까지 오신 이유. 굳이 저 많은 기자들 앞에서 진태경과 만나시려는 이유 말입니다.”
그것은 후긴이 남아공을 떠날 때부터 줄곧 품고 있던 의문이었다.
뮌헨에서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는 미처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었고, 전용기를 띄울 때쯤에는 그들보다 몇 걸음이나 빨리 움직인 진태경에 의해 이미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오늘 마련된 이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진태경이었다.
“최근 진태경을 향한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레비아탄 사태 직후 전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던 반대 집회도 줄줄이 해산되었고, 저희와 손잡은 언론들조차 몸을 사리는 것이 현재의 상황 아닙니까.”
“그래서?”
“적어도 오늘 이 자리에서만큼은 진태경이 길드장님보다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그와 만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나 역시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진태경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 조명 같은 것 말이야.”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말을 끝마친 후긴은 고개를 숙였다.
충성심에서 비롯된 말이라고는 하나, 곧 상관이 드러낼 분노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이미 흐름이 바뀌었다.
미카엘이 이끄는 오딘 길드는 이번 테러 사태에서 열 번이 넘는 몬스터 웨이브를 진압함으로써 혁혁한 전공을 쌓았으나, 진태경 역시 단 두 번 만에 나날이 추락해 가던 명성을 회복했다.
대격변 당시 바다를 지배하다시피 했던 레비아탄의 악명.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로 발생한 뮌헨 몬스터 웨이브를 대승리로 장식한 이유도 있겠지만, 후긴은 이토록 쉽게 급변하는 여론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진태경.’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이들은 경외 이전에 질투와 시기를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진태경은 사람들에게 있어 누구보다 친숙하고, 헌신적인 영웅이었다.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가정 형편. 각성과 동시에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며 쉬는 날도 없이 게이트를 전전하고, 불과 일 년 전만 하더라도 다섯 평 남짓한 허름한 고시원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생활하던 청년.
그렇기에 전 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젊고 가난한 최하급 헌터가 엄청난 부와 명성을 손에 움켜쥔 이후에도,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 시절의 진태경이 각인되어 있다.
복수를 위해 무작정 단신으로 거대 길드로 쳐들어가도.
이루고자 하는 뜻을 위해 사막을 피로 물들여도.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법과 절차를 어겼어도 단순한 비난에서 끝날 수 있던 것은 그 때문이라고 후긴은 확신했다.
‘이 세상은…… 대중들은 진태경을 사랑한다.’
미디어를 이용한 공세에도 진태경의 지지층은 확고하게 제자리를 지켰고, 테러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난하던 이들은 고작 한두 번의 활약으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럼 그렇지. 역시 진태경이지. 하고 그를 인정하며.
오히려 잠시나마 흔들렸던 자신들을 탓하며.
‘이건 일종의 면죄부다. 대중들이 진태경에게 준, 보이지 않는 면죄부.’
천태민 이외에는 누구도 가지지 못했던, 미카엘이 그토록 얻고자 애썼던 바로 그 면죄부를 진태경은 이미 갖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이 이상으로 놈을 돋보이게 만들 수는 없다.’
후긴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던 바로 그때. 약간의 진동과 함께 전용기 내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파일럿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 착륙 성공. 잠시 후 문이 열릴 테니, 준비를 끝마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직이다. 문 열지 말고 대기하…….”
“열게.”
“……!”
후긴이 황급히 고개를 쳐들었다.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한 수하의 표정을 본 미카엘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후긴, 이 조심성 많은 친구야.”
“길드장님!”
“걱정하지 말게. 나 역시 누군가의 조명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그게 무슨…….”
– 문을 열겠습니다. 잠시 출입구에서 물러나 주십시오.
푸쉬익.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 후긴의 목소리는, 문이 열림과 동시에 둑이 무너지듯 터져 나온 소음에 의해 파묻혔다.
찰칵, 파파팡!
“미카엘! 미카엘! 여기 한 번만 봐 주십시오!”
“TBC 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으로 알고 있는데, 미스터 진과는 평소 어떤 친분이 있습니까?”
“거의 모든 위기 상황이 마무리되었는데, 굳이 뮌헨에 방문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스터 진의 활약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독일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뮌헨 몬스터 웨이브의 규모는 케이프타운에서의 열 배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진압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와 기자들이 고함치듯 쏟아내는 질문들에, 후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상대로다.
지금 들려오는 대부분의 질문들은 진태경을 중심으로 흐르고 있었고, 그것을 넘어 비교까지 하는 간 큰 기자까지 있었다.
“……길드장님께서 생각하신 바가 있다 하더라도, 우선 인터뷰는 뒤로 미루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후긴이 건넨 말에, 담담히 고개를 저은 미카엘은 출입구를 향해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이 상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한 마디와 함께.
“자네가 일본에서 구해 온 영상은 잘 봤네. 매우 흥미롭더군.”
“네?”
“이만 가세.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않나.”
저벅.
거침없는 걸음으로 전용기의 계단을 내려간 미카엘 실베르트는 수많은 카메라와 플래시 앞에 우뚝 섰다.
그리고 특종을 얻기 위해 아우성치는 기자들과 그들을 막아선 독일 연방군 병사들의 어깨너머로 다가오는 한 사람을 보며 활짝 웃었다.
“마침내 젊은 영웅이 오셨군.”
파파팡!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플래시가 밤을 밝혔다.
탄성과 함께 황급히 길을 튼 수많은 취재진 사이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 두 영웅이 마침내 서로를 마주했다.
“이렇게 다시 만나는군, 진.”
슥.
반가운 어조로 건넨 인사와 함께 불쑥 내민 손. 웃음기 가득한 적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하던 진태경이 악수를 받았다.
낮게 잠긴,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미카엘 실베르트.”
으득.
힘주어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 * *
누구나 각자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애꿎은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그러나 미카엘 실베르트가 쓴 가면은, 지금껏 내가 겪은 어떤 사람보다 단단하고 두터웠다.
저 가면 안에 어떤 것이 숨어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만큼.
으득.
맞잡은 두 손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놈의 손아귀를 통해 전해져 오는 힘을 느낀 나는 눈을 부릅떴다.
‘이게 도대체……!’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악력.
물론 나 역시 주위의 이목이 있어 전력을 다하진 않았지만, 예상했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놈의 힘에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어떻게?’
시스템을 이용하여 성장한 내 신체 능력은 말 그대로 초인(超人)이다.
그렇기에 어떤 초절정 고수나 S급 헌터도 순수한 신체 능력으로는 누구도 내게 범접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거라 생각했다.
놈의 손을 맞잡기 전까지는.
– 이만하면 인사는 충분한 것 같은데. 안 그런가?
“……!”
– 카메라 앞이야. 좀 더 조심하는 게 서로에게 좋겠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써 수십 초 가까이 손만 잡고 있자, 몇몇 기자들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 친구. 내가 많이 반가운 모양이군. 나 역시 마찬가지일세.”
툭툭.
웃는 얼굴로 친근하게 내 어깨를 두드리는 미카엘의 모습에 기자들이 슬쩍 미소짓는다.
그러나 놈과 나 사이에서는, 그들의 카메라와 마이크로도 담지 못하는 은밀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 무슨 개수작이냐.
– 글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군. 젊은 후배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온 것도 개수작인가?
–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이 개새끼야.
– 도무지 믿어 주질 않는군.
– 미안하지만 내가 그 정도 병신은 아니라서. 당신은 이미 한발 늦었고.
피식 웃은 미카엘 실베르트가 입술을 달싹였다.
– 사실 자네 말이 맞아. 아주 중대한 발표를 하기 위해서 여기 왔지.
– 중대 발표?
– 그래, 이 세상을 송두리째 뒤바꿀 발표지.
– ……뭐?
이놈이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예상치 못한 말에 멍하니 놈을 바라본 그 순간.
불현듯 입가에 띤 미소를 지운 미카엘 실베르트가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이 자리의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폭탄을 세상에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