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68
#767화
지이잉.
갑작스럽게 울려 퍼진 진동음에 최 팀장이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하나도 아니고, 무려 다섯 개나 되는 기기 중 하나를 확인한 그는 나를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 진태경 씨.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이유는 불 보듯 뻔하다. 나는 신속하게 공력을 끌어 올려 주위로 퍼트렸다.
솨아아아.
보이지 않는 기의 막이 스위트룸 내부를 물샐 틈 없이 감싼 그 순간.
지잉.
테이블 위에 놓인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푸른 빛이 뿜어졌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 형태로 모여든 홀로그램 속에서,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늦어서 미안해. 지금 막 연락을 확인했…… 그런데 저 친구는 왜 저래? 설마 벌써 전투라도 벌어진 거야?
매직 존슨.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진 스켈레톤 킹을 보며 눈을 깜빡이는 거구의 대마도사를 향해,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말하자면 길어요.”
* * *
스켈레톤 킹이나 최 팀장과 달리, 매직 존슨의 반응은 짧고 명확했다.
– Fuck.
물론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아들과 해변이라든지, 평소에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없게 숨겨 둔 제3의 구멍에 대해서도 쉴 새 없이 중얼거리던 매직 존슨은 모근 하나 없이 매끈한 정수리를 문질렀다.
– 이건…… 정말이지 최악이군.
그제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만약 스켈레톤 킹의 존재가 밝혀질 경우,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것은 나와 최 팀장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죄송합니다. 더 주의했어야 했는데.”
– 사과할 필요 없어, 진. 난 그저 스스로의 판단으로 너희를 도운 거였으니까.
내 뒤늦은 사과에 손사래를 친 매직 존슨이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 그런데 놈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거지? 분명 내 환영 마법은 완벽했을 텐데.
세계에서 단 셋. 아니, 이제는 둘밖에 남지 않는 대마도사인 매직 존슨이 공들여 각인한 환영 마법인 만큼, 그 효과와 은밀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때문에 지금 매직 존슨의 표정은 여러 감정으로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 지크프리트가 죽은 이상 내 환영 마법의 실체를 간파할 수 있는 수준의 마법사는 이제 한 사람뿐인데…… 장담하지만, 제아무리 미카엘이라고 해도 그녀를 움직일 수는 없어.
매직 존슨이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또 다른 대마도사에 관한 이야기는 나 역시 익히 들어 보았고, 수십여 년의 시간을 거쳐 그중 대부분이 소문이 아닌 사실로 밝혀졌으니까.
그러나 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이미 짚이는 구석은 충분했고, 순간 그에 관련된 생각을 떠올린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일본.”
“레비아탄.”
두 개의 목소리가 겹친다.
비록 단어는 다르지만 같은 의미로 나와 동시에 입을 연 최 팀장이 모두의 시선 속에서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모두 아시다시피, 일본에서의 일은 단순한 테러나 몬스터 웨이브가 아니었습니다.”
– 그에 관해서는 나도 최의 연락을 받았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미카엘 실베르트의 소행이 유력해.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그의 목적입니다.”
– 목적?
“미카엘 실베르트가 무엇을 위해 심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레비아탄을 깨웠는지. 그리고…….”
“왜 그 많은 나라 중, 레비아탄을 굳이 일본으로 유인했는지.”
최 팀장의 말을 이어받은 나는 생각했다.
이 지구에서 다섯 개의 대양이 차지하는 면적은 무려 71%에 달하고, 바다와 인접한 나라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 어째서 놈은 레비아탄이 날뛸 전장으로 일본을 선택한 것일까.
‘게다가 같은 날 전 세계 곳곳을 강타한 2차 테러까지.’
그리고 의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다음 순간 흘러나온 최 팀장의 한 마디처럼.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산했던 겁니다. 당시 일본의 상황 및 모든 것을 고려해서.”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매직 존슨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 그럼 2차 테러를 비롯한 그 모든 일이, 너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예. 분명합니다.”
– 하지만 왜 하필 일본이지? 그게 목적이었다면, 차라리 한국으로 유인하는 것이 더 간단했을 텐데.
고개를 저은 최 팀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카엘 실베르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한국 헌터의 수준이 월등히 높다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우리 정부는 석고준이 인위적으로 벌인 두 번의 몬스터 웨이브 이후부터는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력 수치가 갑작스럽게 급상승한다면 금세 알아차렸겠죠.”
– 마정석……!
“맞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1차 테러의 타겟이 되었던 일본. 정확히는 도쿄 인근은 여러모로 적합한 장소로 여겨졌을 겁니다.”
그냥 마정석도 아닌, 정제되지 않은 S급 마정석.
그것이 흩뿌리는 마력의 양과 농도는 저 멀리 바다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레비아탄이 깨어날 만큼 엄청났다.
하지만 이미 1차 테러로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로 마력 수치가 미쳐 날뛰는 수준이었던 도쿄 인근에서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레비아탄에 의해 파괴된 도쿄만 인근에는 경계할 만한 게이트 자체가 없었으니까.
– 그래, 그랬군.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
“처음부터 이를 바탕으로 밑그림을 그린 뒤 2차 테러로 색을 입힌 겁니다. 헌터 강대국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일본이니, 내부 전력으로는 레이바아탄이라는 네임드 몬스터를 쉽게 막지 못할 것이란 예측도 어렵지 않았겠죠.”
무림의 초절정 고수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현대의 S급 헌터들도 그 수준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S급 헌터, 야마모토 겐지는 힘의 법칙으로 세워진 이 피라미드에서 아래층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 네티즌과 일뽕들이 열심히 빨아 재끼는 그 실력이 사실이라면, 왜 하루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레비아탄이 쓰러진 후에야 느지막이 도착했겠나.
‘뻔하지.’
모르긴 몰라도 일본 정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존심을 굽혀서라도 도움의 손길을 구해야 했다.
전 세계를 휩쓴 두 번의 테러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나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헌터 강대국이자, 가장 빠르게 자신들을 구원해 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인접국.
그것이 한국이었고, 한국에는 바로 내가 있었다.
아니, ‘우리’가.
“……!”
서늘한 한기가 등골을 타고 흘렀다. 지금 막 잠에서 깬 사람처럼 불현듯 고개를 치켜든 나는 스켈레톤 킹을 응시했다.
탈구된 뼈를 끼워 맞추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대화를 듣고 있던 녀석이 내 시선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나, 난 가만히 있었다.”
“…….”
“너무 심각한 것 같아서 한 농담이었다니까! 분위기 전환이라는 것도 모르나!”
“그게 아냐.”
“그, 그럼 왜?”
빌어먹을.
나도 모르게 악물어진 잇새 사이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였어.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 몸이었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그리고 스켈레톤 킹이 눈살을 찌푸린 그때. 최 팀장이 깊게 가라앉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카엘 실베르트가 처음부터 노렸던 목표는 진태경 씨가 아닌 바로 당신입니다.”
“……뭐?”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2차 테러도, 레비아탄도. 모든 것이 당신을 노리고 벌인 일이었습니다.”
“……!”
스켈레톤 킹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굳게 입을 다문 채 무언가를 생각하던 매직 존슨이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 이미 이전부터 의심하고 있었다는 뜻이군.
“그 의심을 확신으로 뒤바꿀 증거가 필요했을 테고요.”
– 이 정도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감수할 만큼?
“아직도 그를 모르십니까? 설령 수백, 수천만이 죽는다고 해도 미카엘 실베르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겁니다.”
깊게 가라앉은 최 팀장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평소와는 다른, 쇳가루처럼 거친 목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자신의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확신을 얻을 증거만 있다면 당장 이 모든 걸 끝낼 수 있을 테니까요.”
“……!”
맞다.
놈이 원한 것은 단지 그뿐이었다. 나와의 전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가져다줄 결정적인 약점.
그렇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무대를 꾸몄고, 타국의 지원군이 끼어들 여지를 제거하여 스켈레톤 킹이 나설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약점을 틀어쥐었지.’
뿐만이 아니다. 놈이 이토록 과감히 2차 테러를 감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계 헌터 연맹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피해가 크면 클수록, 연맹의 재설립 가능성도 높아질 테니까.’
도대체 놈은, 미카엘 실베르트의 계산은 어디까지 끝나 있던 것일까.
문득 떠오른 의문에 숨이 막혔다.
보이지 않는 끈이 목을 조여 오는 듯한 착각에, 깊게 심호흡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최 팀장, 매직 존슨. 마지막으로 스켈레톤 킹까지.
어느샌가 대화를 멈춘 그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기다리고 있었다.
굳게 다물어진 내 입이 열리기를,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결정을.
그리고 순간 뇌리를 스치는 수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나는 긴 침묵을 깨트리며 말문을 열었다.
“나는…….”
* * *
사흘이 지났다.
그러나 한바탕 재앙이 스쳐 지나간 며칠 전의 그날 밤, 오딘 길드장의 전용기가 내려앉았던 뮌헨 외곽의 공터에서 울려 퍼진 거대한 굉음에 관해서는 모두가 잠잠했다.
물론 그보다 앞서 쫓겨나다시피 현장을 떠났던 취재진들은 멀리서나마 희미하게 들었던 그 굉음의 정체를 알고 싶어 했으나, 뮌헨 일대를 통제하는 독일 연방군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첫째. 쓸데없는 질문 및 접근 거부.
둘째. 만약 이에 불응할 시, 즉각 국외 추방.
첫 번째 조항에서 발끈하던 열혈 기자들조차 두 번째 조항에 이르러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세계 헌터 연맹의 재설립이라는 엄청난 화두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지금, 괜한 긁어 부스럼으로 추방당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현재 뮌헨에는 이 논의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인물이 둘이나 남아 있었으니까.
한 사람은 어젯밤 카메라 앞에서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취했던 진태경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이 화약고에 불을 붙인 장본인인 미카엘 실베르트였다.
“저기, 미안한데 그 두 사람 동향 파악된 거 있어요?”
“없소.”
“그 대답은 정말 없어서 하는 말입니까, 아니면 있는데도 없다고 하는 겁니까?”
“흠. 둘 다?”
“이런 상황에서는 동업자끼리 좀 돕고 삽시다. 저 농담도 모르는 독일 놈들이 어지간히 깐깐하게 굴어야 말이지. 그런데 이름이 뭡니까?”
“프란츠 마이어.”
“……혹시 독일 사람은 아니겠죠?”
“맞을 거요. 농담도 모르는 주제에 깐깐하고 성격까지 더러운 독일 놈이 바로 나지.”
“성격 더럽다는 말은 안 했는…… 젠장. 미안합니다. 본심은 아니었어요.”
“본심이어도 상관없소. 다만 정 미안하면 괜찮은 소스라도 하나 던져주든지.”
“괜찮은 소스라. 그럼 UN 총회 긴급 소집은 어때요?”
턱수염을 기른 독일 기자가 피식 웃었다.
“장난하시오?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벌써 회의 시작한 지 한참 지났잖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대격변 이후 새롭게 개편된 UN은 뮌헨 사태가 있었던 사흘 전 자정을 기점으로 총회를 긴급 소집했고, 여섯 개의 상임이사국을 중심으로 한 185개국의 정상들이 화상회의를 통해 치열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하나.
세계 헌터 연맹의 재설립 안건이었다.
이번 긴급 총회는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이례적으로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그러나 말은 어디에서나 새어 나가는 법이었고 영향력 있는 언론들은 이미 정보를 입수한 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을 괜찮은 소스랍시고 내놓다니. 보기보다 유머 감각이 형편없군. 당신도 독일인 운운할 처지가 아니야.”
“음, 그래요? 곧 표결이 시작된다는 것도?”
멈칫.
돌아서려던 독일 기자가 까슬까슬한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이건 좀 재미있군.”
“재밌다니 다행이지만, 농담은 아니에요.”
“그 정보, 확실한 거요?”
“이 세상에 확실한 게 어디 있겠어요. 굳이 확률을 말하자면 99.9% 정도지만.”
99.9%.
완전에 가까운 그 숫자를 작게 중얼거린 독일 기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는 건…….”
“예. 맞아요. 곧 UN에서 공표할 겁니다.”
눈앞의 독일 기자보다 십 년은 어려 보이는 기자, 시몬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세계 헌터 연맹. 전 세계를 아우르는 그 거대한 단체의 탄생에 관한 표결 결과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