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7
#76화
띠링.
– 길드, [평화]에 가입했습니다!
– 업적, [길드 가입]을 완료했습니다!
– 업적 달성 보상으로 1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것도 업적이야?’
지금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뜰 때마다 뭔가 영웅이 된 것 같다. 업적 달성이라니. 돈 벌려고 길드 가입한 것치고는 제법 거창한 포장이다.
‘뭐, 나야 좋지만.’
10포인트만 해도 짭짤한 보상인데, 뒤를 이은 최 팀장의 말을 들은 후에는 자꾸만 솟구치는 입꼬리를 억눌러야 했다.
“계약금은 오늘 안에 처리될 겁니다. 그밖에 거주지 문제나 다른 사안들은…….”
계약금 5억, 월 5천만 원의 고정 급여와 7할의 정산 비율.
길드에서 제공하는 집과 차, 여타 수십 가지 사항들까지.
이미 계약서로 몇 번씩 확인한 내용이지만 이렇게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나, 용 됐구나.’
불과 세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인생이 이렇게 풀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무림에서는 산서잠룡, 현실에서는 억대 연봉을 우습게 벌어들이는 헌터가 되다니.
“팀장님.”
“장비 대여 같은 경우는 제 컬렉션을 제외하고 얼마든지…… 예?”
“저 뺨 한 대만 때려 주세요. 꿈이면 빨리 깨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앞이 번쩍했다.
퍽!
‘짝!’이 아니라 퍽?
나는 얼얼한 턱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진짜 사양 않고 때리시네.”
“부탁을 거절 못 하는 성격이라.”
“주먹 쓰라는 말은 안 한 것 같은데.”
“안 쓰라는 말도 안 하셔서.”
“…….”
새로 생긴 [맷집] 능력치가 아니었으면 볼썽사납게 나동그라질 뻔했다.
‘맞다. 이 인간 B급 헌터였지.’
준비 자세도 없이 뻗어 낸 주먹이 턱에 정확히 꽂혔다. 힘과 타격점. 완벽하다.
“그래도 보통은 따귀 아닙니까?”
“예외도 있죠. 어때요, 정신은 좀 드십니까?”
“……아주 확 드네요.”
“그거 잘됐네요. 기왕이면 맨정신일 때 만나는 게 첫인상에 좋지 않겠습니까?”
최 팀장의 뜬금없는 말에 내가 되물었다.
“첫인상? 누구 만나러 가요?”
“누구겠습니까.”
최 팀장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길드원들이죠.”
“아.”
그제야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길드를 창설하기 위해서는 최소 세 명의 인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럼 슬슬 출발할까요.”
최 팀장이 창밖을 가리켰다. 카페 앞 주차장으로 매끈하게 빠진 검은색 리무진이 미끄러져 들어오는 중이었다.
* * *
“축하드립니다.”
커피 CF에 등장할 법한 중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 집사였다. 무더운 여름에도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능숙한 솜씨로 리무진을 운전하는 중이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이 사람 앞에서는 말이 쉽게 나오질 않는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집사라는 이미지 탓일까?
‘아니지. 그렇게 따지면 최 팀장이 더한데.’
잠시 생각하던 나는 김 집사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 거라고 결론지었다. 어쩌면 난생처음 타 보는 리무진의 생소함이 한몫했을지도 모르겠다.
‘리무진이라니.’
내부는 넓었고 온갖 물품이 비치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지금 최 팀장이 막 손을 댄 소형 냉장고라든가.
“목 좀 축이시겠습니까?”
“저야 좋죠.”
마침 목이 마르던 차였다.
“물? 술?”
“술도 있어요?”
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원하시는 거면 뭐든지.”
“아, 그럼 저는 소맥이요. 반반.”
“……물 드릴게요.”
최 팀장이 건네준 생수병엔 그 흔한 상표 하나 없었다.
히말라야 어디서 공수해 왔다는 최 팀장의 말에 나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더럽게 비싸겠네.’
돈지랄도 이런 돈지랄이 없다. 그래도 한 모금 마셔 보니 시원하긴 하다.
꿀꺽.
띠링.
– [히말라야의 정수]를 섭취하셨습니다.
– 한 시간 동안 지력이 1 상승합니다.
……이래서 돈지랄하는구나. 하긴 이래야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거지. 음.
내가 몇 개 챙겨 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 리무진이 멈췄다. 김 집사가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입이 딱 벌어진다.
높게 솟은 고층 빌딩. 외벽은 마법적인 처리라도 했는지 햇빛을 받지 않아도 반짝거리고, 입구에는 정복을 차려입은 수위들이 대기 중이었다.
“우와. 우와아.”
연신 탄성을 토해 내는 내게 최 팀장이 다가왔다.
“멋지죠? 이곳에 전국 100대 길드의 지부가 전부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태경 씨가 이름만 들으면 아는 해외 거대 길드 지사도 있어요.”
나는 빌딩에서 눈을 떼지 못한 상태로 대답했다.
“땅값이 어마어마하겠네요.”
“그렇죠. 부천 인근 게이트의 중심지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과거의 강남처럼?”
“태경 씨나 저나 그 시절을 살진 않았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겁니다.”
땅의 가치가 뒤바뀐 지 오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지만, 대격변 이전의 시대를 살았던 중년 헌터들은 가끔 추억에 젖어 그 시절의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했다.
‘옛날에는 강남에 집 한 채 있으면 금수저 소리 들었지.’
‘우스갯소리로 천당 위에 분당 있다고들 했어, 그만큼 거기가 금싸라기 땅이었다고.’
‘그 정도로 비쌌어요?’
‘토 나올 정도로 비쌌지. 몬스터들이 쳐들어오기 전까지는.’
그 이후는 나도 아는 이야기다. 대격변 초기, 잘 발달된 대도시와 인구 밀집 지역은 몬스터 군단의 첫 표적이었고 인류는 속수무책이었다.
현재의 강남과 분당은 이미 한 번 파괴되었다가 재건된 도시다. 대격변 이후 진짜 금싸라기 땅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안전 구역, 그리고 게이트 밀집 지역.’
안전 구역은 게이트 발생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일반인 최고의 거주지라 할 수 있고 게이트 밀집 지역은 헌터 길드가 자리 잡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춘 곳이다.
‘이를 테면 초등학교 앞 분식집이랄까.’
부천에 존재하는 게이트만 백여 개다. 그중 상당수가 하급 게이트지만 숫자로만 따지면 대한민국을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밀집 지역이다.
‘여기가 그 중심지고.’
주위에 가득한 고층 빌딩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어지간한 중소 길드는 발도 들일 수 없는 동네라는 사실을.
‘이런 재력이라니.’
내가 경외 어린 눈빛으로 최 팀장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우리도 열심히 해서 저런 곳으로 이사 갑시다.”
“충성을 바치겠…… 예?”
“네?”
“아니, 예?”
“왜 그러십니까?”
시바, 왜 그러긴. 몰라서 물어?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간신히 삼킨 후에야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 도착했다면서요?”
“네, 도착했죠.”
김 집사를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김 집사님. 여기 맞아요?”
“맞습니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 김 집사가 덧붙였다.
“하지만 헌터님께서 보시는 방향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방향?”
“네. 그 위치에서 우측으로 좀 고개를 틀어 보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그의 말대로 고개를 돌린 나는 잠깐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뭡니까, 저 무너져 가는 건물은?”
호화로운 고층 빌딩 사이, 홀로 우두커니 자리한 그 건물은 유난히 작고 낡아 보였다.
김 집사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정확히는 슈퍼마켓이죠.”
“더 정확히는 구멍가게 같은데요.”
눈을 가늘게 뜨고 무너져 가는 구멍가게를 노려봤다. 때가 누렇게 낀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순이네 수퍼]“순이는 누굽니까? 이름도 촌스럽네.”
“할머니십니다. 여기서 70년 동안 사신.”
“생각해 보니까 참 세련됐네요. 만수무강하실 것 같은 성함.”
“두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
나한테 왜 이러냐.
“엄청난 쇠고집이셔서 밀집 지역 재개발 당시에 어떤 거액을 제시해도 응하지 않으셨죠. 나중에는 다른 길드들도 이미 자리를 잡은 뒤였고…… 결국 유족분들 통해서 저희가 매입했습니다.”
“그럼 저 순이네 수퍼가 우리 길드 하우스라는 말이네요?”
“정확합니다.”
나는 착잡한 눈빛으로 반쯤 무너진 순이네 수퍼를 바라봤다.
길드 하우스는 길드의 얼굴이요, 간판이다. 아무리 동네 땅값이 비싸도 그렇지 저런 곳을…….
‘아니지. 신생 길드가 이 정도면 대단한 거지.’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뿐이다. 온갖 사기가 판치는 이 바닥에서, 최 팀장이 내게 보여 준 정성만 해도 충분히 믿고 따라갈 만하다.
“최 팀장님.”
“네, 태경 씨.”
나는 최 팀장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저, 진짜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길드 하우스가 순이네 수퍼건 순이네 빌딩이건 상관없어요.”
최 팀장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 말도 있잖습니까.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지금도 창대한 편인데요. 김 집사님, 저 가게 부지 매입하는데 얼마 들었죠?”
김 집사가 대답했다.
“평당 20억이 약간 넘습니다.”
“……평당 20억이요?”
“예.”
잠깐의 침묵 끝에 내가 입을 열었다.
“시작은 창대하나 그 끝은 더욱 창대할 거라 믿습니다.”
“…….”
“…….”
최 팀장과 김 집사의 시선이 화살처럼 꽂힌다. 두 사람이 뭐 이런 새끼가 있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던 그 순간이었다.
끼이이익. 쿵!
[순이네 수퍼]한컴 바탕체로 또박또박 적힌 수십 년 역사의 간판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리모델링하면 괜찮아질 겁니다.”
최 팀장이 모기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 슈퍼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고, 이거 또 떨어졌네.”
투덜거리며 쓰러진 간판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는 괴력의 사내.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나는 입을 딱 벌렸다.
“꺽정 아저씨?”
사람 좋은 중년의 E급 헌터, 임꺽정이 우리를 발견하고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 태경아!”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벙쪄 있는 사이 다가온 임꺽정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자식. 잘 지냈냐? 너 C급 됐다며?”
“아니, 아저씨가 왜 여기 있어요?”
“으하하! 왜 있기는. 길드원이 길드 하우스에 있는 게 잘못이야?”
호쾌한 웃음을 터트린 그가 말을 이었다.
“병원에 꼼짝 없이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저기 최 팀장이 찾아와서 그러더라고. 길드 들어올 생각 없냐고. 두말할 것 없이 오케이 했지.”
간판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최 팀장이 한마디 보탰다.
“믿을 만한 분인 것 같아서요.”
“젊은 사람이 의리가 있어. 저기 김 씨도 과묵해서 그렇지 사람이 참 괜찮더라고. 송 양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니, 잠깐. 잠깐만요.”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냐.
나는 최대한 침착한 어투로 물었다.
“얼마 전에 가입하셨다고요?”
“응.”
최 팀장이 다시 끼어들었다.
“믿을 만한 분인 것 같아서요.”
“젊은 사람이 의리가 있어. 저기 김 씨도 과묵해서 그렇지…….”
돌겠네.
“그건 아까 들었고요. 그럼 다른 분들은요?”
“응?”
“다른 길드원들은 어디 있어요? 설마 여기 있는 네 명이 전부인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딱 잘라 대답한 임꺽정이 덧붙였다.
“송 양은 장 보러 갔어. 너 환영 파티 해 준다고.”
“송 양? 설마 그분이 끝?”
“응. 송 양까지 해서 다섯 명이지. 한 시간도 전에 나갔으니 이제 슬슬 돌아올 때가 됐는데.”
이어지는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다섯 명이라니.’
이거 꿈인가?
멍한 얼굴로 무너져 가는 순이네 수퍼를 바라보던 나를 깨운 건 임꺽정의 우렁찬 외침이었다.
“어, 저기 오네. 송 양! 여기야, 여기! 신참 왔어!”
나는 임꺽정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초미니 길드의 마지막 길드원이자 창립 멤버.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