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71
#770화
“스켈레톤 킹은, 그는 몬스터니까요.”
힘없이 사그라지는 그 목소리를 끝으로 찾아온 고요.
그러나 최민우의 마지막 한마디는, 누군가의 귓가에 마치 메아리치듯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몬스터…… 몬스터라.’
마음속으로 뇌까린 스켈레톤 킹은 씁쓸한 진실을 곱씹었다.
맞다. 그는 몬스터다.
인류 역사상 최대(最大)이자 최악(最惡)의 적.
그것이 바로 몬스터고, 자신은 그중에서도 저주받은 죽음의 힘을 다루는 존재였다.
비록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전신을 감싼 이 마법이 걷히면 드러나는 것은 필멸(必滅)의 운명을 거스른 망자의 해골뿐.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그래, 이것뿐이겠지.’
인간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두 손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스켈레톤 킹은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얼굴, 그러나 동시에 낯설게 느껴질 만큼 일그러진 표정을 한 젊은 인간이 보인다.
자신이 본 존재 중 가장 강하고, 한편으로는 멍청하며, 그렇기에 눈앞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
그러나 단 하나뿐인 돌파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진실을 받아들이고 이용해야 했다.
“저 인간의 말이 옳다. 모두 사실이야.”
“……너.”
억눌린 목소리에 담긴 수많은 감정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느끼지 못했던 그 감정의 이름을, 이제는 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진태경을 향해 스켈레톤 킹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네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 방법뿐이다.”
“……!”
“이 몸은 몬스터다. 어떤 이유로도 우리가 함께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어.”
물론 누군가는 진실이 밝혀져도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 진태경을 믿고, 스켈레톤 킹이 자신들이 알던 몬스터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들 중 몇이나 이 진실을 받아들이겠느냐.”
스켈레톤 킹은 닫혀 있는 창문을 가리켰다.
저 밖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렇기에 몬스터를 뼛속 깊이 증오할 수밖에 없다.
가족을, 친구를, 혹은 사랑하는 연인을 몬스터에 의해 잃었으니까.
몬스터는 인간을, 인간 역시 몬스터를 죽인다.
마왕 아스모데우스의 강림과 동시에 채워진 이 사슬은 그 누구도 풀 수 없을 만큼 두껍고 견고했다.
설령 모두에게 사랑받는 젊은 영웅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모든 것이 밝혀진다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영웅으로 남을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너희를 비난할 테고, 미카엘 실베르트가 모든 것을 얻겠지. 그러니…….”
서서히 흐려지는 말꼬리. 진태경을 뒤로하고 돌아선 스켈레톤 킹은, 문고리에 손을 얹으며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이 몸을 소멸시켜라.”
탁.
등 뒤에서 닫히는 문.
말없이 복도를 가로지르는 내내 스켈레톤 킹은 돌아보지 않았다. 머리 위로 밝혀진 조명은 환했으나, 그의 앞에 놓인 길은 어두웠다.
짙은 안개와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했던 그곳처럼.
처음 눈을 뜬 그 순간부터 떠날 수 없게 되어 버린,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어느 날 한 인간에 의해 떠나게 되었던 그 게이트처럼.
‘나는 도대체 뭐지? 이름은? 과거는? 고향은?’
그리고 언젠가부터 찾아온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자신은 몬스터였다.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잔인하고 흉포한 몬스터.
순수한 악(惡)으로부터 비롯된, 결코 인간과 함께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이 진실이다. 아니, 진실이어야 한다.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한 스켈레톤 킹은 실소를 흘렸다.
‘젠장. 이제 클럽은 영영 못 가겠군.’
그런데 어째서일까. 가슴 한구석이 후련했다.
자신은 심장은커녕, 평범한 감정조차 품지 못할 몬스터인데.
분명 그래야 하는데.
* * *
굳이 어디선가 그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선택이라고 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자그마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이대로 일어날까, 말까. 일어난다면 샤워를 할까. 아니면 세수와 머리만 감고 나갈까.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예상보다 일찍 눈을 떴다면 조금 더 잘 수도 있고, 지각이 염려된다면 샤워를 건너뛰어도 상관없다.
다만 선택하기 전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선택이 불러올 결과다.
자신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결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느 것 하나 감당하기 힘든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이…… 미친 새끼.”
간신히 쥐어 짜낸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것은 이미 자리를 떠난 누군가를 향한 욕설이었고, 남아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겨냥한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진태경 씨.”
실타래처럼 얽힌 머릿속이 지끈거린다. 귓가를 파고드는 나직한 부름에 나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선택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송곳이 뇌리를 관통하는 듯했다.
한 마디, 한 마디 이어지는 말에 두통이 더욱더 심해졌다.
“그는 이미 길을 정했습니다. 오직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었던 희생을…….”
와락, 쿵!
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언제 눈을 뜬 건지, 그리고 어째서 내가 최 팀장의 멱살을 붙잡고 있는지.
찌직.
구겨진 명품 셔츠의 옷깃이 힘을 이기지 못해 찢겨 나간다. 하얗게 물든 손아귀의 위로, 묵묵히 나를 바라보는 한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내키는 대로 하십시오. 저를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패도 좋고, 사지를 부러트리거나 설령 죽인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파르르 떨리는 숨결, 그리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후에는 선택하셔야 합니다. 반드시.”
“……!”
“아시지 않습니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 말에, 그 눈빛에 맥이 탁 풀렸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전신에 들끓던 기운도, 한껏 힘이 들어간 손아귀도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는 잠시 뭔가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처럼 뒷걸음질 쳤다.
힘없는 사과와 함께.
“……미안합니다.”
나도 안다. 최 팀장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것을.
그가 말한 것은 모두 진실이었고,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었을 뿐이다.
스켈레톤 킹이 스스로 희생하려는 뜻을 밝히지 않았다면 최 팀장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냉철한 판단력을 통해 유일한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다른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니까.
누군가는 그런 그를 두고 위선자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내가 그렇듯, 최 팀장에게 있어서도 스켈레톤 킹은 그저 죽여 없애야 하는 몬스터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설령 자신이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라 해도, 누구보다 먼저 그것을 해결책으로 내놓았겠지.’
나와 달리 그는 타고난 리더다.
만약 내가 아닌 그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그는 회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홀로 괴로워할지언정 비겁하게 진실을 외면하지는 않았을 테다.
‘빌어먹을.’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최 팀장의 그 말을 떠올리자 저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세상이 눈앞을 스쳤다.
무림(武林).
만약 메인 퀘스트로 인해 로그인 기능이 막히지 않았더라면, 그곳에서 훨씬 긴 시간 동안 고민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니,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비로소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결과를, 나는 감수할 수 있나.’
지금껏 나는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렀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고,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놓인 두 갈래 길의 끝에는 고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스켈레톤 킹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미카엘 실베르트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이대로 녀석을 희생시킨다면…… 나 스스로가 도무지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그래,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스켈레톤 킹은 내 친구였다.
함께 싸운 전우이자 친구.
단순히 대의(大意)라는 두 글자를 위해 희생시킬 수 없는 존재.
‘그런 녀석을 소멸시켜야 한다.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직접.’
인벤토리를 이용하여 소멸을 위장하는 같잖은 속임수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미카엘 실베르트는 그 정도로 허술한 위인이 아니니까.
내가 스켈레톤 킹을 완전히 통제한다는 것을 증명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류에게 있어 몬스터는 건드려서는 안 될 역린(逆鱗)과도 같다.
이미 수십여 년간의 실험을 통해 몬스터는 결코 길들일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증명되지 않았나.
스켈레톤 킹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존재였고, 어떠한 종류의 진실은 알려짐과 동시에 배척받는다.
‘결국…… 답은 하나뿐이야.’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섬광처럼 뇌리를 스치는 수많은 고민 끝에, 불현듯 입을 열었다.
“최 팀장님.”
말없이 내 결정을 기다리던 그가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혹시 세계 헌터 연맹의 재설립 승인이 취소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갑자기 그건 왜…….”
“대답만.”
단호한 말과 함께 감았던 눈을 떴다.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던 최 팀장이 입을 열었다.
“승인이 취소될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확실해요?”
“네.”
“이유는?”
“이제 세계 헌터 연맹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입니다. 나날이 마력 수치가 증가하는 현재의 상황과, 한 번 당겨진 불씨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만약, 이 상황에서 저나 그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
거세게 흔들리는 눈동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말의 의미를 깨달은 최 팀장이 버럭 소리쳤다.
“진태경 씨!”
하지만 나는 이미 선택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아닌 세 번째 길을. 어두컴컴하고 가시밭길로 가득한 그 길을.
그래.
이 모든 것의 중심, 미카엘 실베르트를 죽인다.
“안 됩니다!”
“안 되는 건 없어요. 어려울 뿐이지.”
담담하게 대답한 나는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제가 하려는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그때는 최 팀장님이 움직여야 합니다. 매직 존슨이라면 온 힘을 다해 도와줄 거예요.”
“그만! 그만하십시오!”
“척 헤이글, 파이 첸, 펠릭스 왕자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좋은 인연을 쌓은 S급 헌터들과 우호적인 국가들의 지지를 얻어서 재설립되는 세계 헌터 연맹을 장악하세요.”
“듣기 싫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어떻게……!”
“최 팀장님의 외조부께서 걸어오셨던 길입니다. 천태민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다면 충분히 노려 볼 수 있어요. 무리라고 생각되면 매직 존슨을 밀어 주는 것도 방법 중 하나고.”
나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뭐, 팀장님이야 워낙 똑똑하니까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
“그래도 노파심에 하나만 더 당부할게. 미카엘 실베르트라는 머리가 날아가도 몸통은 남아 있습니다. 그놈들부터 색출해서 없애는 편이…….”
스릉.
문득 울려 퍼진 서늘한 소음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앞을 가로막은 한 자루의 검.
어느새 [영웅의 검]을 뽑아든 최 팀장이 굳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못 갑니다.”
“음. 안 되실 텐데.”
“안 되는 건 없습니다. 어려울 뿐이지.”
앞서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 최 팀장을 향해, 나는 걸음을 뻗었다.
“그래요. 어차피 한 번 손봐 주려고 했는데, 잘됐네.”
“그게 무슨…….”
“우리 친한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반쯤 곤죽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야 그나마 의심을 덜 받지.”
“……!”
“……!”
으득. 츠츠츠!
이를 악문 최 팀장이 눈부신 오러를 피워올렸다. 검신을 타고 넘실거리는 강대한 힘의 집약체가,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드득. 콰아아아.
건물 전체로 퍼져나가는 떨림. 그리고 어느덧 돌풍으로 화한 거센 바람.
“확실히 재능이 있어. 많이 느셨네.”
그리고 담담하게 웃어 보인 내가 걸음을 떼려던 그 순간.
지이잉.
어디선가 울려퍼진 미약한 진동이, 우리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