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73
#772화
선동이자, 연설이며, 선언이 끝났다.
그러나 거대한 함성은 끝나지 않고 하염없이 이어졌다.
현장의 취재진들의 카메라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고, 마이크에는 반쯤 쉰 목소리로 내지르는 환호가 뒤섞였다.
사방이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불과 며칠 전 재앙이 내려앉았던 도시는 이제 알 수 없는 희망과 기쁨으로 넘쳐났고, 그러한 감정들은 한데 고여 이내 한 사람을 향해 흘러 들어갔다.
“미카엘! 미카엘!”
그들은 한 사람의 이름을 외치며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아주 오랫동안. 힘차게.
세계 헌터 연맹이라는 막강한 권력에 대한 일말의 사심(私心)도 없이, 자신들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선 진정한 영웅을 향한 감사함과 경의를 담아서.
그리고 단상 위에 선 그들의 영웅은 벅차오르는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다, 이내 눈물을 참지 못하고 돌아서서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언제나 강해 보였던 영웅의 뒷모습은 이토록 아름다웠다.
뒷모습은.
“오셨습니까.”
단상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후긴이 묵례와 함께 손짓하자, 오딘 길드의 헌터들이 황급히 따라붙던 취재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물러나십시오.”
“잠깐. 잠깐이면 되는데…….”
“죄송합니다만, 오늘은 곤란합니다.”
나아가는 걸음을 따라 환한 조명도, 사람들의 환호도 서서히 멀어진다.
눈가에 맺힌 물기를 닦아 낸 미카엘 실베르트가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반응이 좋군. 생각 이상이야.”
“저들에게는 그만큼 희망이 필요했으니까요. 게다가 마지막 눈물까지. 아주 훌륭하셨습니다.”
“연기라고 생각했나?”
예상치 못한 반문에 후긴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진심……이셨습니까?”
“진심이었네. 단, 저들과 같은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하다.
기쁨, 슬픔, 분노, 혹은 본인조차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흘러나오니까.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보자면 그가 흘린 눈물은, 마지막 의미에 가장 가까웠다.
‘그건 뭐였을까.’
마침내 원대한 목표에 다다랐다는 환희?
아니면……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몇 조각의 감정?
미카엘 실베르트는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는 눈물의 이유에 대해 생각했지만, 이내 내심 고개를 내저었다.
항상 정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가 지금껏 살아오며 맞닥트린 모든 문제에서 올바른 정답을 찾으려 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테니까.
아니, 이미 죽었을 것이다.
수십 년 전 그날에.
“길드장님?”
상념을 깨트리는 목소리에 미카엘 실베르트가 짤막하게 대꾸했다.
“말하게.”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앞서 연설을 시작하시기 직전에…….”
“시 외곽에서 작은 소란이 벌어진 것 말인가?”
“이미 보고를 받으셨습니까?”
“아니, 어렴풋이 느껴지더군.”
뒤따라오던 후긴이 멈칫하자, 미카엘 실베르트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왜, 뜻밖인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랬겠지.”
상당한 소란이 있었다고는 해도, 어림잡아 수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던 거리.
미카엘 실베르트는 순간 엄습해 오던 그 감각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나로서도 놀라운 경험이었네. 갑작스럽게 저 멀리서 전해지던 열기에 전신이 곤두설 것 같았지. 아주 잠깐 동안, 이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어.”
“……길드장님, 혹시?”
“자네가 뭘 생각하는지는 알겠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걸세. 그 정도의 감각을 느꼈던 것은 그때 한순간뿐이었으니까.”
미카엘 실베르트가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아마도 수련이 과했던 거겠지.”
“당분간은 수련을 멈추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제하고 있네. 확실히 최근 일 년 사이에는 무리했어. 나도 모르게 조급해졌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조급함의 원인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연설을 시작하기 직전, 저 멀리에서 갑작스럽게 느껴졌던 강렬한 열기의 정체도 함께.
“진태경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긴급 상황이었다면 자네가 연설 도중에라도 끼어들었을 테니 그리 큰일은 아닐 테고.”
“감시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스톤 킹이 먼저 호텔을 빠져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이 뒤흔들렸다고 합니다.”
“진원지는 놈들이 머무르고 있던 최상층이겠군.”
“예. 그 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잠해졌습니다.”
“몬스터가 먼저 나갔다라, 그 밖에는?”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여 각종 마법을 시도해 봤으나, 내부의 광경은 물론이고 소리까지 차단된 상태라…….”
“됐네. 그 정도야 당연하겠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미카엘 실베르트가 문득 중얼거렸다.
“내부에 분란이 생긴 모양이군.”
“분란 말입니까?”
“의견이 엇갈린 것이 분명하네. 그리고 진태경이 지금껏 보여 준 모습을 돌이켜보면, 생각 이상으로 무모한 짓을 벌일 수도 있어.”
“그 정도로 무모한 짓이라면 설마…….”
“뭐가 있겠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놈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아.”
“……!”
눈을 부릅뜬 후긴을 향해, 미카엘 실베르트가 말을 이었다.
“발족식이 열릴 때까지 경호를 늘리고 감시망을 강화하게. 특히 그 몬스터에게서는 한순간도 눈을 떼서는 안 돼. 놈은 이번 일에 빠져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열쇠일세.”
“알겠습니다.”
굳은 얼굴로 대답한 후긴이 곧장 물었다.
“차라리 이 틈을 타 몬스터를 생포해 두는 건 어떻겠습니까?”
“생포?”
“예. 놈들이 몬스터를 숨기거나, 저희보다 앞서 몬스터의 정체를 밝히고 희생시키는 선택을 한다면…….”
“후긴.”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끊은 그가,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말했었던 적이 있었지. 진태경은 누구보다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고. 기억하고 있나?”
“감정……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그것이 바로 놈이 몬스터를 끝까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이유일세.”
“그 말씀은…….”
“맞네. 진태경은, 어느샌가부터 몬스터를 친구로 여기기 시작했던 거야.”
“……!”
“웃긴 일이지. 그렇지 않나?”
미카엘 실베르트는 참지 못하고 실소를 흘렸다.
대격변의 영웅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었어도 그를 가로막는 벽은 많았다.
그 시절의 그는 압도적인 강자가 아니었고, 오딘 길드 역시 거대 길드라 칭하기에는 손색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강해져야 했다. 앞을 가로막은 벽들을, 경쟁자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쓰러트렸다.
하지만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이제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무력과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지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장애물이 지금껏 상대해 왔던 모든 경쟁자를 통틀어 가장 물러터진 놈이라니.
‘멍청한 놈.’
미카엘 실베르트는 헛웃음을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그의 주위는 예리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경호팀, 아니 친위대가 물샐틈없이 에워싸고 있었다.
저벅저벅.
수십 명의 걸음이 하나가 되어 울려 퍼진다.
임시로 머무르는 건물에 다다르자 호위하던 헌터들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사방을 에워쌌다.
그 누구도 돌파할 수 없을 만큼 철통같은 경계.
그들의 선두에서 묵례를 취하고 있는 후긴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미카엘 실베르트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공간으로 발을 내디뎠다.
달칵. 후우웅.
그가 방에 들어서자 잠금장치와 함께 수십 개의 방어, 보안 마법이 잇따라 발동한다.
불과 몇 초 전만 해도 저 멀리에서 흐릿하게 들려오던 사람들의 환호가 뚝 끊겼다.
마침내 찾아온 완벽한 정적.
하지만 미카엘 실베르트는 소파에 등을 기대는 대신, 넓게 깔린 카펫을 가로질러 검은 천으로 뒤덮인 커다란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천을 걷어 내며, 투명한 거울을 향해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잘게 울려 퍼지는 공명음. 동시에 흠집 하나 없이 매끄러운 거울 표면이 출렁이더니 그 안에 담겨 있던 모든 것이 일그러졌다.
슈와아악.
넓은 방 안의 풍경도, 군데군데 놓인 각종 가구와 집기도. 마지막으로 사람도 변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뒤바뀐 그곳에는 온통 캄캄한 어둠과 두터운 로브(Robe)를 뒤집어쓴 이가 미카엘 실베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 아주 감동적인 연설이더군.
나이와 성별을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
로브 아래로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선지자의 모습에, 미카엘 실베르트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 * *
겨울의 밤은 길다.
그러나 그날의 밤이 유독 길었던 이유는, 전 세계 대부분의 이들이 잠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세계 헌터 연맹이, 인류를 지킬 것입니다!
미카엘 실베르트.
수십여 년에 걸쳐 자신을 입증한 영웅의 선언은, 사흘 전과 같이 다시 한번 대중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와 함성을 내질렀다. 도시 곳곳에서 화려한 폭죽이 솟구쳤고, 수많은 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그저 작은 희망이었다.
누군가가 저 괴물로부터 자신들을,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 주리라는 희망. 과거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인류가 승리하리라는 바람.
그리고 미카엘 실베르트의 선언은, 지난 사흘간 공포로 물들었던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 내리고 전 세계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나이지리아 내전 종결! “우리는 원하는 답을 얻고 싶었을 뿐이다.”] [콩고, 대통령 궁을 향해 몰려가던 시위대가 발걸음을 멈추다.] [프랑스 대통령, “시위대가 해산되었다. 지금의 평화는 UN에게 해답을 준 영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미카엘 실베르트의 한 마디로 시작된 사태였으나, 그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달랐다.
미카엘이 모든 걸 해냈어. 그야말로 진정한 영웅이야.
└ 맞는 말이지. 만약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세계 헌터 연맹이 언제쯤 재설립되었을까. 못해도 한 달은 걸렸을걸.
└ Fuck. 한 달? UN놈들이라면 일 년은 질질 끌었을 거야. 그리고 그때쯤이면 나와 내 가족들도 이미 죽고 없었겠지.
└ 도대체 다른 헌터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왜 미카엘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한 거지?
└ CF 출연.
└ 다들 진정해. 다른 헌터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미카엘을 칭찬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까지 비난하지는 마.
└ 꼭 우리 어머니처럼 말하네. 혹시 이름이 마사야?
└ 나는 솔직히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약간 실망했어. 특히 스카이와 진에게 말이야.
└ 흠. 나도 동의.
└ 도대체 두 사람은 이 상황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 모두가 그들을 사랑하지만…… 이해하기 힘들었어. 특히 진은 사흘 전 미카엘에게 욕까지 하더군.
└ 기사를 보니 진은 PTSD 증상을 보이고 있다던데. 거기까진 이해해 줘야지.
└ 좋아. 이해해. 그럼 스카이는?
└ 그건 미국 대통령도 궁금해할걸. 이미 너무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잖아.
└ 난 그에 대해서 한 가지는 알아. 내 부모님을 구해 줬다는 거지.
└ 그래, 그건 우리 모두가 다 알지. 그런데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냐고.
└ 곧 알게 될 테니까 그만 아가리 닥쳐. 이제 발족식이 내일인데, 그 하루도 못 기다리고 애새끼처럼 징징거리는 거냐?
희망. 기쁨. 의문. 기대감.
섞이고 합쳐진 그 수많은 감정 속에서 세계 헌터 연맹의 발족식은 시시각각 가까워졌고, 전 세계 각국의 유력 헌터들과 길드장들은 한국행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