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87
#786화
“이 몸의 이름은 스톤 킹이다, 이 끔찍한 괴물아.”
그 한 마디를 씹어뱉듯이 토해 낸 순간, 스켈레톤 킹은 비로소 깨달았다.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의 답을 찾아냈음을.
모두가 잠든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홀로 죽어 있던 나날들.
그리고 몸과 마음을 사슬처럼 옭아맨 한 가지 고민.
나는 누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되지 않았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스켈레톤 킹 자신에게 있었다.
‘그래, 그랬구나.’
스켈레톤 킹은 마음속으로 뇌까렸다.
한 사람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새카만 눈동자에, 그의 황금빛 왕관이 토해 내는 광휘가 비치고 있었다.
“너는, 도대체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이냐.”
툭 던진 그 물음에 미카엘 실베르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스켈레톤 킹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한때는 미치도록 궁금했다.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찾으려 애썼고, 현재의 나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였다.
어느 날 만난 한 인간을 따라 죽음과 어둠만이 가득했던 숲을 빠져나와, 낯선 세상으로 발을 내디딘 것은.
“너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바퀴 달린 거대한 쇳덩이가 굴러가고, 나무보다도 거대한 건물이 빼곡히 늘어선 그곳에조차 그가 찾던 답은 없었다.
결국 답을 찾기 위해 숲을 떠난 스켈레톤 킹에게 있어,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 역시 또 다른 숲이었다.
“숨을 쉴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다른 인간들이 말하는 시원한 바람과 식사의 맛도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는 아주 작고 희미한 고통마저도.”
처음 알았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떤 종류의 고통은, 진실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몬스터(Monster).
그것이 스켈레톤 킹이 스마트폰을 받게 된 날, 처음으로 인터넷에 검색해 본 단어였다. 인간들의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들어 본 말 중 하나이자, 자신과 같은 존재를 지칭하는 단어.
그렇게 그는 의문을 넘어,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건 괴로움이었다.
본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괴물로 깨어났다는 것에 대한 괴로움.
처음으로 대화와 감정을 나누고 가까워지기 시작한 이들에게 있어, 자신은 그저 괴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만큼은 아닐 거라 부정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너희와 함께,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 믿었으니까.”
그 믿음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스스로를 희생할 생각 역시 품지 않았을 것이다.
스켈레톤 킹은 자신이 아끼는 인간들이, 이 세상보다 먼저 무너지길 원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한 생명체들이었다. 몬스터처럼, 혹은 몬스터보다도 더한 끔찍한 분노와 살의(殺意)를 품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동시에 절제와 사랑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의지에 따라 생각하고 움직였다.
사소한 분쟁으로 수많은 생명이 죽거나 다치고, 핏덩이에 불과한 어린아이가 길거리에 버려지는 일이 생겨도 그들을 보듬어 안는 것 역시 인간이었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스켈레톤 킹이 그들과 같은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은.
괴물이 아닌 한 사람의 이웃으로. 친구로서 한 울타리 안에 받아들여지고 싶었던 것은.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했던 것은.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스켈레톤 킹은 담담하게 뇌까리며 자신의 손등을 꿰뚫은 뿔을 그러쥐었다.
콰득.
이미 앞서 처참히 꺾이고 부서졌음에도, 서서히 회복해 나가던 누군가의 손아귀가 뿔과 함께 붙잡힌다.
미카엘 실베르트의 악문 잇새로 끓어오르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 이런다고, 이런다고 한낱 몬스터에 불과한 네놈이 인간이 될 거라 생각……!
“상관없다.”
– 뭐?
“알고 있다. 나는 몬스터이기에 인간이라 불릴 수 없고, 인간들과 함께하기에 몬스터라 부를 없는 존재.”
스켈레톤 킹은 희미하게 웃었다.
“한데, 무엇이 문제란 말이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 ……!
“끔찍하고도 가엾은 괴물아. 다시 한번 이 몸을 소개하마.”
미카엘 실베르트의 부릅뜬 눈을 바라보며, 스켈레톤 킹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검은 숲은 주인이자 모든 언데드의 군주요, 너희 인간을 위해 싸운 이 세상의 영웅이다. 스켈레톤 킹이라 불러도 좋고, 스톤 킹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어떤 이름으로 이 몸을 지칭한다 한들, 그 또한 내 존재의 의미니까. 다만…….”
툭.
문득 들어 올려진 스켈레톤 킹의 손이, 한 사람의 어깨를 짚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얻은 이름은, 네놈에게 알려 주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건 오직 친구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니까.
“그렇지 않으냐, 진태경. 이 간악한 인간아.”
* *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저놈에게 웃을까. 화를 낼까. 아니면 평소처럼 있는 힘껏 뒤통수를 후려쳐 줄까.
나는 마치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짧지만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골골아, 이 병신 새끼야.”
골골이.
어느 날 마주친 검은 숲의 언데드에게 붙여 준 첫 번째 이름.
평소였으면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지랄발광을 떨었을 텐데, 오늘만큼은 고분고분한 대답이 돌아왔다.
“인정하마. 이 몸이 병신이었다.”
“…….”
“두 번 다시 의심하지 않으마.”
빌어먹을.
말문이 막혔다.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답답함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냥…… 시원했다.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던 바위가 사라진 것처럼. 이제야 마지막까지 좁혀지지 않던 녀석과 나 사이의 거리가 사라진 것처럼.
그래, 그거면 된 거다.
나는 후련한 마음을 느끼며 주먹을 뻗었다.
뻑!
내게 머리채를 휘어 잡힌 채,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서 있던 미카엘 실베르트의 면상이 뒤로 젖혀진다.
하지만 나는 놈이 쓰러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뻑, 뻑. 우직.
높은 콧대가 주저앉고, 너덜너덜한 입술 사이로 이빨이 우수수 쏟아졌다.
실핏줄이 터져 나간 놈의 눈동자에서 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뺨을 타고 흘러내릴 때까지.
파르르 경련하던 사지가 힘을 잃고 축 늘어질 때까지.
콰직. 우드득.
쉼 없이 때리고, 부수고, 짓이겼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발과 주먹이 놈을 후려칠 때마다 채 가시지 않은 일섬(一殲)의 여파와 함께 엄청난 격통이 전신을 휩쓸었지만 상관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손목을 붙잡지 않았더라면, 나는 미카엘 실베르트를 그 자리에서 패 죽였을지도 몰랐다.
덥석.
“그만하십시오, 진태경 씨. 아직은 아닙니다.”
피로에 젖은 익숙한 목소리.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린 나는 눈을 깜빡였다. 핏물을 전신에 뒤집어쓴 최 팀장이 그곳에 서 있었다.
아니, 모두가.
“진, 다 끝났어. 드디어…… 다 끝났다고.”
척 헤이글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온 매직 존슨은 힘없이 웃고 있었지만, 운명을 건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기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때 전우였던 이들을 죽여야 했던 영웅의 미소는 어둡고 씁쓸했다.
어느덧 내려앉은 적막 속, 내 주위를 에워싼 모든 이들처럼.
“아.”
탄성인지, 신음인지 모를 목소리가 입술 밖으로 흘러나온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 나는 앞서 들었던 말들이 모두 사실임을 깨달았다.
솨아아아.
진한 혈향을 머금은 바람이 불었다.
시선에 닿는 곳마다 주인을 잃은 무기와 시체가 가득했다.
바닥에 고인 피 웅덩이는 신발을 적셨고, 한때 영웅들의 상징이자 세계를 구원했던 거대한 원탁은 산산이 부서져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 끝났다.
인류의 운명을 건 첫 전투가.
사명(使命)과 사욕(私慾)의 전투가. 인간과 괴물들의 전투가 끝내 막을 내렸다.
이 안에서도.
그리고,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피가 흘렀을 저 밖에서도.
끼이이익. 쿵.
이미 반쯤 부서져 있던 출입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뒤이어 지친 발걸음들이 쓰러진 문을 타 넘었다.
철컥. 철컥.
피에 흠뻑 젖은 갑옷과 무기들.
혈인(血人)이나 다름없는 몰골을 한 이들이 줄지어 들어오는 모습에 살아남은 헌터 중 상당수가 무기에 손을 가져갔지만, 때맞춰 입을 연 최 팀장의 한 마디에 움직임을 멈췄다.
“어떻게 됐습니까?”
선두에 선 두 사람 중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청년이 군인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모두 죽이거나 생포했습니다. 후긴이라는 자 때문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피해가 컸지만…… 평화 및 아레스 길드와 힘을 합쳐 제압한 뒤 주위의 환영 마법을 해제하고 조금 전 한국 정부에 알렸습니다. 아, 여기 계신 슈 선생님께서도 크게 활약하셨고요.”
“두 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저희를 믿고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어려운 싸움이 되었을 겁니다.”
진심이 담긴 최 팀장의 말에, 앞서 청년에게 ‘슈 선생’으로 불린 30대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난 그저 위버멘쉬(Übermensch)의 판단과 선택을 믿었을 뿐입니다. 그날 뮌헨에서 본 그의 모습은…… 거짓 없는 초인 그 자체였으니까.”
이쪽을 향하는 사내의 시선에,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까딱여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그 옆에서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청년에게도.
‘조엘 슈마허. 샤오 쉔.’
두 사람은 내게 빚이 있었고, 오늘 그 보답을 이자까지 쳐서 돌려주었다.
아마 다른 이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뮌헨에서의 부상을 핑계로 발족식 참석을 정중히 거절한 조엘 슈마허가 극비리에 한국으로 입국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그와 공안 무력부의 헌터들을 이끌고 온 샤오 쉔이,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평화 및 아레스 길드의 최정예와 합류했다는 사실도.
나는 문득 며칠 전 최 팀장에게 들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어느 철두철미한 사람이 있습니다. 진태경 씨는 그의 가장 큰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이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답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지켜보았고, 나 스스로도 그와 같은 실수를 범한 적이 있으니까.
‘모든 것이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때.’
정답이었다.
어쩌면 미카엘 실베르트는 만약의 상황을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던 것 같다.
평소의 그였다면 서울 대신 본진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혹은 지지 기반이 확실한 다른 곳을 발족식의 개최지로 택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작은 방심이, 이 역사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이름을 덧칠하고 싶다는 그 알량한 욕심이 놈의 거대한 야망을 무너트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고요해진 공기를 타고 울려 퍼지는 최 팀장의 한 마디와 함께, 산산조각 나듯 허물어지는 누군가의 추악한 야망을.
더불어 내게 남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래.’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이 시작된 출발선을 지워야 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앞서 다가올 거대한 전쟁에 수많은 걸림돌이 되었을 배신자들을 처단했듯이.
근원이 되는 뿌리를 뽑아야 새로운 잡초가, 이 가시나무의 곁가지들이 자라나지 않을 테니까.
‘미카엘 실베르트.’
우드득.
발치에 쓰러진 놈의 가슴을 짓밟자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울컥, 솟구친 핏물을 토해 내며 정신을 차린 미카엘 실베르트가 흐릿한 눈빛으로 주위를 훑었다.
– 결국…… 그렇게 됐나.
꺼질 듯한 목소리와는 달리 침착한 어조.
아마도 주위를 확인한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했을 것이다.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후긴과 그가 긴 세월 공들여 양성한 친위대는 이곳에 영영 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 모두 죽였나?
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살았지.”
– 후긴은 후자겠군. 알아낼 것이 많은 친구니까.
“잘 알고 있네.”
– 그럼 부탁 하나 하지.
부탁이라.
별것도 아닌 그 단어에, 불현듯 기분이 더러워진 나는 놈의 얼굴을 걷어찼다.
퍽.
홱 돌아가는 고개와 함께 흩뿌려지는 핏줄기.
하지만 이제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지, 신음 하나 없이 입안에 가득 찬 핏물을 뱉어 낸 미카엘 실베르트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 후긴에게 전해 주게. 지금까지 고마웠고, 더 이상은 충성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네가 이 부탁을 들어준다면 피차 편해질 걸세. 적어도 너저분하고 지루한 고문과 심문쯤은 생략할 수 있을 테니까.
“그건 평생 충성한 수하를 위한 배려냐, 아니면 마지막 유언(遺言)이냐?”
– 둘 다가 되겠지. 지금 자네 눈빛을 보아하니, 잠시 후면 이 자리가 내 무덤이 될 것 같거든.
나는 소리 없이 웃고 있는 미카엘 실베르트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놈을 처단하는 것에 있어, 단 한 줌의 여지조차 남겨선 안 된다는 것을.
법? 재판?
그 제도들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괴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괴물은 괴물답게 죽어야 한다.
더는 발버둥 칠 수조차 없도록. 놈이 지난 수십 년간 이 땅에 심어 놓은 종양들이 저 괴물을 구명할 아주 자그마한 가능성조차 사라지도록.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적법한 심판(審判)이다.
모든 진실을 지켜보고, 피 흘리며 싸운 이 자리의 모두가 증인이자 배심원이요, 검사이자 판사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그들과 나는 비로소 ‘우리’가 된다.
인종. 성별. 나이와 국경.
심지어 종족마저 초월하여 하나의 깃발 아래에 설 것이다.
세계 헌터 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미카엘 실베르트.”
문득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가 적막을 깨트린다. 공력을 싣지 않았음에도 목소리는 공간을 메우며 퍼져나갔다.
넓고 또렷하게, 계속해서.
“지금 이 순간을 기하여, 세계 헌터 연맹은 네게 주어진 모든 자격을 박탈하고 배신자를 즉결처분한다. 누구든 이의가 있다면 앞으로 나서라.”
그 순간, 최 팀장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뒤이어 매직 존슨이 대답했다.
“모든 것은 규율대로.”
필릭스 왕자는 대답 대신 기품 있게 고개를 숙였고, 파이 첸과 척 헤이글은 손에 들고 있던 각자의 무기를 부딪쳤다.
카앙!
처참한 폐허 너머로 깊은 울림이 뻗어 나간다.
흐르는 시간 속. 어느덧 하나에서 수십, 수십에서 수백으로 불어난 병장기가 시퍼런 불똥을 토해 냈다.
어떤 이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갑옷을 두드렸고, 백발 성성한 원로는 피 묻은 지팡이로 지면을 찍었다.
쿵. 쿵. 쿵쿵쿵.
세상이 뒤흔들렸다. 고여 있던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모두가 동의했다.
세계 헌터 연맹의 첫 번째 결의안에.
인간으로 태어나 괴물이 되어 버린 배신자의 죽음에.
그리고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깊은 울림 속, 나는 미카엘 실베르트를 응시하며 물었다.
“이의 있나?”
잠시 침묵하던 놈이 대답했다.
– 없네. 처음에는 살기 위해, 그 후에는 갖기 위해 있는 힘껏 발버둥 쳤을 뿐이야.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 이제 자네 차례야. 어디 한 번 있는 힘껏 발버둥 쳐 보게. 나는 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테니.
비웃음 섞인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창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수백 쌍의 눈동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힘차게 창날을 내리꽂았다.
푸욱!
정확히 목젖을 가르며 파고든 창날.
크륵,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한 신음과 함께 미카엘 실베르트의 전신이 덜컥 굳었다.
나는 빠르게 생명이 빠져나가는 괴물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잠시 미뤄 두었던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넸다.
“당신 말대로 똑똑히 지켜봐. 위가 아니라, 저 발아래 밑바닥에서.”
– ……!
마지막 순간 부릅뜬 눈동자는 분노 때문일까. 아니면 더는 막을 수 없는 죽음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였을 것이다.
띠링. 띠링. 띠링.
무수한 종소리와 광휘가 내 안에서 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