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8
#7화
나는 꿈을 꾸고 있다.
어떻게 꿈인 줄 알았느냐 묻는다면, 글쎄.
‘내가 나를 보고 있으니까?’
말 그대로다. 나는 나를 구경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현실의 내가 아닌 게임 속의 진태경을 보는 중이다.
“헉, 허억.”
진태경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옷은 찢어졌고, 얼굴과 몸 곳곳이 멍들고 부어오른 모습이다.
반면에.
‘저 새낀 멀쩡하네.’
혁무진은 쌩쌩했다. 상대를 비웃어 줄 여유까지 있었다.
“생각보다 제법이긴 한데…… 그렇게 무식하게 싸워서야 쓰나. 무인이라면 응당 무공을 써야지.”
아오, 저 얄미운 새끼. 당장이라도 달려가 놈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었지만 꿈이라 그런지 몸을 움직일 수도, 소리 내어 말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보니까 더 열받네.’
맞다. 이 꿈은 앞서 혁무진과의 싸움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나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이런 개애새끼가아!”
진태경이 악을 쓰며 달려들었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내가 해 봐서 안다.
‘저땐 이미 지쳐 있었지.’
팔다리는 무겁고 숨은 가쁘다. 동작이 커지니 빈틈도 많다.
아니나 다를까, 간단히 주먹을 피해 낸 혁무진은 진태경의 다리를 걷어차 중심을 무너트렸다.
물 흐르듯 매끄럽고 날렵한 동작이다. 놈과의 싸움은 그런 장면의 반복이었다.
‘새끼, 잘 싸우긴 하네.’
인정해야 한다. 혁무진은 나보다 강하다. 공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했고 매번 알 수 없는 무공으로 나를 무력화시켰다.
한마디로 놈은 ‘무림인’이었다.
‘충격이었지.’
천력부를 해치운 직후라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먹힐 거란 막연한 기대감. 거기에 헌터로서 쌓은 전투 경험과 시스템의 힘이 합쳐지면 로그아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죽기 딱 좋은 생각이었어.’
천력부와 그 산적들은 튜토리얼 몬스터에 불과한 존재다.
초보자 사냥터의 1레벨 토끼를 잡아 놓고 희희낙락했던 거다. 7년 차 헌터? 경력이 우스울 정도로 얄팍한 생각이었다.
‘무공을 익혀야 해.’
이건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내 목숨이 걸려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 한다. 레벨 업, 무공. 뭐든 익히고 발버둥 칠 각오가 되어 있다.
F급 헌터가 아닌 무림인이 될 각오.
퍽. 퍽. 퍽.
“시발. 맷집만 더럽게 좋아 가지고. 놔! 안 놔!”
“크아아악!”
쓰러져도, 넘어져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진태경. 아니, 내 모습이 보였다.
‘결국 마지막에 한 방 먹였지.’
빡!
그래, 저렇게 하는 거다. 지난 7년처럼.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런데 혁무진 저놈은 레벨이 몇이야?’
그 순간, 누가 대답이라도 하듯 혁무진의 머리 위로 시스템창이 솟아올랐다.
[Lv.20 혁무진]……닥치고 레벨부터 올려야 되나?
* * *
– 수면 모드가 종료되었습니다.
시스템 음성과 함께 눈을 떴다. 아주 잠깐, 고시원 내 방에서 깨어나는 상상을 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흰옷을 걸친 남자의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깨끗하게 정돈된 방 안에는 희한한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내 의문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남자가 대답했다.
“약왕당입니다. 공자께서는 혼절하신 지 반 시진 만에 깨어나셨고요.”
한의원이었군. 이 NPC는 의원이고.
‘반 시진이면…… 한 시간이나 기절해 있었다고?’
혁무진 그 자식, 야무지게도 때렸다.
“타박상 때문에 상당히 아프실 겁니다. 움직이지 마시고 잠시만 누워 계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의원이 방을 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상태창 오픈.”
띠링.
상태창
[Lv.11 진태경]직업 : 이류 무인
명성 : 10
칭호 : 명가의 자제 / 가문의 수치 (칭호 효과 적용 중)
근력 : 40체력 : 40
민첩 : 50 지력 : 10
매력 : 10 공력 : 10년
잔여 포인트 : 10
– 잔여 포인트를 분배하십시오.
천력부를 잡으면서 얻은 10포인트가 그대로 남아 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포인트 분배를 미뤘었는데, 혁무진과 싸우게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얻어터질 줄도 몰랐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10포인트를 모두 체력에 투자했다.
혁무진과의 싸움에서 지쳐 헐떡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포인트를 미리 분배해 뒀으면 승산이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겠지.’
어른과 아이의 싸움. 혁무진과 나 사이에는 그 정도로 큰 격차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레벨과 스탯의 문제가 아니라 무공의 유무로 벌어진 격차였다.
‘어떻게 그런 대응이, 움직임이 가능하지?’
현실에서도 무공이란 게 존재하긴 한다. 권투, 크라브마가, 주짓수 등등. 현대에 들어 실전 무술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무공은 차원이 다르다.
동작 하나하나가 실전적이면서도 정교하다. 공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톱니바퀴를 연상시킨다.
‘무공을 익혀야 해.’
튜토리얼에서 마주친 게 천력부가 아니라 혁무진이었다면?
패배,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무공을 익혀야 한다. 익혀야 살아남을 수 있다.
“씨이발…….”
폐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쌍욕을 내뱉었을 때였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 방입니다.”
“고맙네.”
드르륵.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열린 문. 그리고 그곳에…….
“가관이로구나.”
싸늘한 눈빛을 쏟아내는 한 중년인이 있었다.
* * *
“상태는 어떤가?”
“타박상이 있지만 그리 심한 정도는 아닙니다.”
“아쉽군. 다리라도 부러졌어야 했는데.”
“…….”
중년인이 흉흉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나는 잠자코 눈을 내리깔았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아니 NPC였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Lv.???]물음표 세 개. [기감]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고레벨이다.
‘최소 30레벨 이상.’
혁무진이 귀여워 보일 정도다. 무엇보다 의원의 태도나 나에게 하는 언행으로 보건대 결코 보통 NPC가 아니다.
최소한 태원진가 삼공자의 아구창을 시원하게 날려 버릴 정도의 권한은 있을 것 같다.
‘저걸로 한 대 맞으면…….’
꿀꺽.
솥뚜껑만 한 손바닥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레벨이고 자시고, 전체적으로 그냥 위험하게 생겼다.
2m에 가까운 거구, 온몸을 감싼 근육은 방탄조끼 같았고 차가운 눈빛은 사람을 얼어붙게 만든다.
취미도 살인, 특기도 살인일 것 같은 이 중년인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낯익은 얼굴이란 말이야.’
이 아저씨를 어디서 봤더라.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진태경?’
중년인은 진태경을 닮았다. 아니, 진태경이 그를 닮았다고 해야 맞다.
까마득히 높은 레벨에 태원진가 삼공자를 깔아뭉개는 언행.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
결론은 하나다. 바로 진태경의…….
“아버지?”
나도 모르게 내뱉은 그 말에 중년인이 눈을 부릅떴다.
“아, 아버지이?”
주먹까지 파르르 떨린다. 누가 보면 내가 엄마 욕이라도 한 줄 알겠다. 나는 그의 주먹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말했다.
“저, 저기. 잠깐만 진정하시고…….”
“진정? 네놈 입에서 그딴 소리가 나와? 이 상황에서도 장난질을 쳐!”
“아니라면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했어요.”
“입 다물어.”
서늘한 눈빛으로 내 입을 틀어막더니 아직도 대기 중인 의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안내해 줘서 고맙네. 이만 나가 보게.”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의원은 잽싸게 돌아섰다.
‘아니, 시바…… 의사가 환자를 외면해?’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지옥문 입장 소리처럼 들린다.
단둘이 남게 된 방 안. 그가 솥뚜껑만 한 손바닥을 치켜들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망나니 짓거리도 정도가 있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테냐!”
어느새 나는 벌떡 일어나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는 중이었다.
타박상? 고통? 그런 건 이미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더 이상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몸이 될지도 모른다.
“저, 저한테 딱 십 분만. 아니, 일 다경만 주시면 제가 잘 설명해 드릴 수 있거든요. 뭐 때문에 화가 나신 건데요. 네? 아버지라고 부른 것 때문에 그러세요? 혹시 어머니세요?”
“이노옴!”
쩌렁쩌렁한 음성에 순간 몸이 굳는다. 등이 벽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 당신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3초간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런 개 같은 경우를 봤나…….
‘끝났구나.’
27년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정자 시절 치열했던 착상 레이스까지 떠오른다. 그때 참 힘들었지.
‘엄마, 아빠, 하연아…….’
가족들을 생각하며 스르륵 눈을 감은 그 순간이었다.
“틈만 나면 계집질이나 하고!”
쓰담쓰담.
“도박장이나 들락거리고!”
만지작만지작.
“네놈이 이따위로 행동하니 가문에서 멸시받는 것이다!”
문질문질.
……이 아저씨 지금 뭐 하는 거야?
입으로는 분노와 질책 어린 말들을 쏟아 내면서, 손은 부드럽게 내 몸 곳곳을 어루만진다. 등골이 오싹했다.
‘설마 이거.’
띠링.
– 당신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5초간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너는 가문의 수치다, 수치!”
극도의 수치심을 느끼고 있긴 하다. 인공지능에게, 그것도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한 NPC에게 성추행을 당하다니.
‘엄마…….’
모든 게 내 오해라는 걸 깨달은 것은 잠시 후였다.
손은 바쁘게 움직인다. 그런데 그게 꼭 환자를 살피는 의사의 그것 같다.
눈꺼풀도 뒤집고, 맥도 한 번 짚어 보고, 타박상 부위도 세심하게 살핀다. 그의 손이 스쳐 갈 때마다 안마를 받는 것처럼 시원해지고 고통이 사라졌다.
“너 이 녀석! 계속 이따위로 행동하면, 어? 어! 아주 경을 칠 것이다. 알겠느냐?”
“…….”
마침내 손을 멈춘 그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생각보다 경미해서 다행이다. 그러게 왜 싸웠느냐. 평소에 무공 수련도 안 하던 녀석이.”
나는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여러 가지가 함축된 한마디였다.
“누구세요?”
다음 순간, 엄격. 근엄. 진지. 세 가지가 모두 담겨 있던 얼굴이 돌연 상처받은 아기 사슴으로 변했다.
“갑자기 왜 존댓말을 쓰고 그러느냐. 아까 가문의 수치라고 한 건 그냥 사람들 들으라고 한 소린데…… 혹시 섭섭했던 거냐?”
“예?”
“형은 슬프구나. 너 어릴 때 내가 매일 똥 기저귀도 갈고, 울면 업어 주고, 달래서 재우고.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지 알면서.”
“예? 형이요?”
순간 침묵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아니라 형이었어?’
나는 이 나이 든 아저씨가 형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아이고, 우리 막내가 머리를 다쳤나 보네. 이보게. 의원! 의원!”
중년인은 의원을 부르짖으며 뛰쳐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퍼즐 하나가 맞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태경이 개판으로 자란 이유를 알겠네.’
잘못된 가정교육의 훌륭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