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800
#799화
흑인의 발작 버튼이 ‘N-word’라면 조센징이라는 단어는 한국인 한정 스폐셜 에디션이다.
각종 매체를 통해 일뽕을 과도 섭취한 국내 씹덕들이 조센징 운운하는 것도 기분이 더럽지만, 그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일본놈한테 직접 들었을 때다.
그러니까, 바로 지금처럼.
“조센징?”
그 마법의 단어가 귓가를 파고든 순간.
아주 먼 옛날, 단군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된 홍익인간의 의지와 조선 팔도의 정기가 몸속 깊숙한 곳에서 끓어올랐다.
그리고 저 구구절절하고 긴 문장을 네 글자로 압축시키면, 전혀 상관없는 열양지기(熱陽地氣)가 된다.
사실 열받은 김에 아무 말이나 씨부려 봤다.
화아아악.
“어어. 어어어.”
“안 됩니다! 진태경 씨!”
갑작스럽게 발산된 열기에 스켈레톤 킹은 나오지도 않는 침을 꿀꺽 삼켰고, 최 팀장은 미식축구 선수처럼 몸을 날려 나를 붙잡았다.
“아직 때리면 안 됩니다! 환자예요!”
“그렇죠. 최 팀장님 말씀이 맞아요.”
“네, 네. 그러니까…….”
“근데 그게 뭐요.”
“예?”
“놔 봐요. 저 새끼가 꼴 받게 하잖아.”
나는 허리를 단단히 붙잡은 최 팀장의 팔을 떼어 내며 중얼거렸다.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안창호, 김원봉…….”
“헉.”
“무타구치 렌야, 리틀 보이, 팻 맨…….”
“도와주십시오! 저 혼자서는 못 막습니다!”
최 팀장의 지원 요청에 스켈레톤 킹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둘이어도 못 막는다.”
“증언은 들어야 할 것 아닙니까!”
“들어야지. 그런데 저놈 막다가 박살 날지도 모르는 이 몸의 아름다운 두개골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존슨! 미스터 존슨! 도와주십시오!”
쾅!
“누가 감히 나의 최를 괴롭히…… Oh.”
문을 박차고 백기사처럼 나타난 매직 존슨이 눈을 깜빡거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음. 간악한 인간이 원숭이 인간을 죽이려 하고 있다.”
“왓 더 퍽? 왜?”
“간악한 인간에게 조센징이라고 했거든.”
“초우쎈치?”
아직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해하는 매직 존슨에게, 스켈레톤 킹이 친절한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이 몸이 아는 바에 의하면, 니거랑 비슷한 뜻이다.”
“머더 퍼커 잽스! 이 빌어먹을 해변의 아들! 진! 당장 놈을 죽여 버려!”
2m가 훌쩍 넘는 거구의 대마도사까지 길길이 날뛰기 시작하자, 최 팀장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시팔, 진짜 못 해 먹겠네…….”
“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뭐 이런 도련님이 다 있나 했었는데, 가끔 가다가 한 번씩 튀어나오는 욕설도 이제는 네이티브가 다 됐다.
제자의 성장을 확인한 스승의 마음이 이런 걸까.
나는 대견한 눈빛으로 최 팀장을 바라보았다.
“많이 느셨네.”
“헛지랄하지 말고 하려던 거나 끝내십시오.”
“진짜 때린다?”
“어차피 막아도 할 거면서 뭘 확인합니까. 그 대신 딱 한 대. 힘 조절해서.”
“오케이.”
최 팀장과의 합의를 끝내고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한껏 공손해진 야마모토 겐지가 있었다.
“미안합니다. 조금 전에는 경황이 없어서 그만.”
“그래, 나도 미리 미안하다.”
“진 상.”
“아냐, 그냥 조센징이라고 불러. 그래야 나도 마음이 편하지.”
“진 사마!”
프리저 뺨치는 3단 변신을 거친 호칭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야마모토 겐지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너 무슨 도게자 학원 다녔냐?”
실로 완벽하고도 모범적인 도게자 자세.
이 정도면 일본 S급 헌터 검증 테스트에 도게자가 포함되어 있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은 나는 야마모토 겐지의 뒤통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젠장.
어쨌거나 내 뜻에 따라 머나먼 중동까지 온 자다.
철수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잠시 미적거리다가 끝내 팀원들을 전부 잃고 말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책임은 통수권자인 내게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야마모토 겐지가 무능한 패장(敗將)이라면, 나는 그런 놈에게 수백 명의 목숨을 맡긴 한심한 지휘관인 셈이니까.
“일어나.”
“…….”
“일어나라고.”
“하, 하잇.”
눈치를 살피던 야마모토 겐지가 정좌를 취했다.
몸이야 포션으로 샤워를 한 덕분에 상처 하나 없었고, 부릅뜬 눈을 보아하니 정신도 멀쩡히 돌아온 모양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해. 하나부터 열까지 싹 다.”
머뭇거리던 야마모토 겐지가 바싹 말라붙던 입술을 핥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무인 수송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에 그놈이 나타났습니다.”
“선지자?”
“……예.”
선지자. 그 단어에 몸을 부르르 떤 야마모토 겐지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차량이 멈추더니, 알 수 없는 기운에 전신이 오싹해지더군요.”
겁쟁이에 얼빠진 놈이지만, 명색이 S급 헌터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런데…….
“차량이 멈췄다고? 저절로?”
“예, 예.”
나와 시선이 마주친 매직 존슨이 입을 열었다.
“마법이야. 마나 간섭으로 무인 수송 차량의 마정석을 정지시킨 게 분명해.”
“아티팩트일 확률은요?”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J1팀에 배정된 차량은 열 대로 알고 있는데, 맞나?”
야마모토 겐지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모두 동시에 멈췄어요.”
“아티팩트를 이용한 마법은 한계가 분명하지. 놈은 틀림없이 마법사야.”
“마, 맞아요. 맞습니다.”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경련하듯 고개를 끄덕인 야마모토 겐지가 말을 이었다.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그 섬광, 핏물, 한 번의 손짓에 쓰러지는 사람들……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어요. 주위의 모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었습니다. 그건 분명히 마법이었어요.”
그때의 공포를 떠올린 듯, 어느새 그의 손발이 덜덜 떨렸다.
나는 그런 야마모토 겐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
“넌?”
“에?”
“넌,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그, 그게…….”
간신히 초점을 되찾았던 동공이 흔들린다.
순간 반사적으로 시선을 회피하는 놈의 모습에서, 동료를 잃었다는 슬픔이나 스스로에 대한 분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두려움.
지금 야마모토 겐지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선지자에 대한 두려움과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뿐이었다.
“도망쳤군. 아니, 도망치려다 실패했나?”
“……!”
이런 개새끼가.
정곡을 찔린 듯 움찔하는 놈의 모습을 보자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솟구친다.
아마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증언이고 뭐고 저 겁쟁이 같은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씁쓸함과 분노를 삭이기 위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야마모토 겐지를 말없이 노려보던 내가 재차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됐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깔만 뒤룩뒤룩 굴리고 있던 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원 병력이 도착하는 소리를 듣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S급 헌터인 당신을 두고 떠날 만큼 상황이 급했습니까? 분명 선지자도 당신을 살려 두면 걸림돌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요.”
“그, 그건.”
최 팀장이 던진 날카로운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야마모토 겐지가 입을 열었다.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을 겁니다.”
“다른 이유라면…….”
“앞서 죽은 우리 팀원들……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빨아들였습니다.”
“뭐?”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나를 비롯한 모두가 눈을 크게 뜬 그때, 야마모토 겐지가 다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 정말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사방에 고여 있던 핏물도 빨아들이고, 죽은 사람들의 몸속에서 희끄무레한 안개 같은 것을 끄집어내 삼켰어요. 그러자 시체가 미라처럼 말라 붙었…….”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뒤이어 이어진 목소리는 흐릿하게만 들렸다.
그리고 이러한 충격을 느낀 것은 비단 나 혼자뿐만이 아니었다.
“아냐. 이건, 그런 건 마법이 아니라고.”
신음처럼 중얼거린 매직 존슨이 이마를 문질렀다. 조명 아래에 비친 그의 이마는 어느새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빌어먹을. 도대체 뭐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인간에게 허락된 마법 중에 그런 끔찍한 건…….”
감정을 따라 격하게 흘러나오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린다.
말을 멈춘 채 석상처럼 굳어 있던 매직 존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응시했다.
아니, 우리 모두가.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 한 존재가 있었다.
‘스켈레톤 킹.’
친구이자 등을 맡길 수 있는 전우.
하지만 우리가 본능적으로 녀석을 바라본 이유는, 그의 존재 자체에 선지자에 대한 해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마법을 사용하는 자.
대마도사를 단신으로 제거할 실력을 지녔음에도, 단 한 번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강자.
미카엘 실베르트가 자신의 오른팔인 후긴에게조차 숨겼던 또 하나의 비밀.
‘몬스터(Monster).’
그래.
그것이 바로 선지자의 정체였다.
“노, 놈이 남긴 말이 있습니다.”
선지자라는 이름의 괴물은, 나를 향해 미끼를 던지고 있었다.
* * *
동산처럼 솟아 있는 높은 언덕 위, 터번을 쓴 노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뿌옇게 솟아오르는 모래 안개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모래 사이로 보이는 수십여 대의 차량을.
“제거할까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들려오는 수하의 목소리에, 노인은 담담하게 되물었다.
“전부 몇이냐.”
“오백여 명 이상으로 예상됩니다.”
“그중 S급 헌터는?”
“저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없습니다. 만약 있다 하더라도 제가 나선다면 충분히 전멸시킬 수 있고요.”
노인은 억센 수염을 쓰다듬었다.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입을 연 것은 잠시 후였다.
“놔두어라.”
“하지만 거리가…….”
“하미드, 내 말을 듣지 못했느냐?”
갑작스러운 호명에 잠시 침묵하던 수하가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아미르. 제가 그만 결례를 범했습니다.”
“혈기를 억누르고 곧 다가올 때를 기다려라. 선지자께서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더냐. 모든 것이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노인은 손을 뻗어 허공을 더듬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들을 이교도들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
우주에 떠 있는 인공위성으로도, 불과 수 킬로미터 남짓한 거리까지 다가왔음에도 그들을 발견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아니, 설령 코앞까지 다가온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스스로 이 장막을 걷고 나가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보고 느낄 수 없으며, 만약 그때가 온다면 그건 침입자가 살아 숨 쉬는 마지막 순간이다.
신의 보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 신비로운 힘.
그들의 신은 당신을 대신하여 선지자를 지상으로 내려보냈고, 선지자는 그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향할 것이다.
악랄한 이교도를 벌하고, 모든 땅과 바다에 신의 뜻을 바로 세울 터였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선지자께서 함께하시는 한, 이 위대한 성전(聖戰)에서 승리하는 것은 우리다.”
“한데 선지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신지…….”
“곧 스스로 임하실 것이니 의심하지 말지어다.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펼쳐 놓으신 그물로, 저 이교도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들어 올려 신의 곁으로 보내실 것이다.”
“……!”
“인샬라.”
노인은 차오르는 경외심을 느끼며 다시 한번 뇌까렸다.
인샬라.
신의 뜻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