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806
#805화
맹수.
지금 이 순간, 모두의 눈에 비친 진태경은 그야말로 맹수 같았다. 굶주린 호랑이처럼 사납고, 사자처럼 위엄 있으며, 표범처럼 날렵한.
콰아아아!
모래과 흙이 사방을 휘감으며 솟구친다. 제자리에서 일렁거리듯 사라진 진태경의 신형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졌다.
염화일로(炎火一路).
한 줄기의 화염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저 거칠게 들이닥칠 뿐이었던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동시에 절제된 움직임.
화왕(火王)과 살성(殺星)이라 불리는 두 거인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깨달음을, 이제 진태경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눈앞의 적들을 어떻게 쓰러트려야 하는지도.
[Lv.130 라이칸스로프 챔피언] [Lv.140 데스나이트 군단장] [Lv.148 만티코어 로드]짙어진 마력 농도에 따라 더욱 높은 레벨을 지니게 된 S급 몬스터들.
그러나 레벨은 상대의 강함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다.
레벨이 낮아도 더 거대한 기운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고, 레벨이 높아도 육체적인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상대의 수준이 최상위권에 접어들었다면, 그때부터는 결국 타이밍과 상성의 문제라는 뜻이다.
진태경이 조금 전의 기습으로 140레벨이나 되는 스콜피온 킹을 통구이로 만들어 버렸던 것처럼.
그리고 그 상대의 힘과 상성을 가장 빠르게 파악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보는 것.
쉭.
수십여 미터의 거리가 단숨에 지워진 그 순간.
낮게 중심을 유지한 채 정면으로 달려든 진태경을 향해 세 줄기의 섬광이 떨어져 내렸다.
쏴아아악!
데스 나이트의 검과 라이칸스로프의 도끼. 마지막으로 만티코어의 발톱까지.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검붉은 마력이 진태경의 몸뚱어리를 관통했다.
아니, 적어도 세 마리의 S급 몬스터는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콰앙!
굉음과 함께 땅거죽이 뒤집힌 그때, 머리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전까지는.
– ……!
머릿속 경고등과 함께 타고난 본능이 깨어난다.
단순한 괴물이라 치부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지능을 갖춘 S급 몬스터들은 곧장 상황을 깨달았고, 한편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한없이 작고 나약한 저 인간의 몸뚱어리에, 그들을 뛰어넘는 힘과 기운이 들끓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순간.
‘천격(天格).’
지면을 향해 내리꽂히는 진태경의 신형과 함께, 백염의 창날을 타고 쏟아진 청백색의 겁화가 사방을 휩쓸었다.
화륵, 콰아아아아!
대마도사가 펼치는 파이어 월(Fire Wall) 마법만큼이나 광범위하고, 그보다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초고온의 화염이 몬스터 군단의 선두를 집어삼켰다.
보는 이로 하여금 몸서리칠 정도로 탐욕스럽고, 그 어떤 맹수보다 광포하게.
– 끄아아아아아!
– 끼이잇!
띠링. 띠링. 띠링.
생애 마지막으로 내지르는 단말마와 시스템 알림이 뒤섞인다.
그러나 까맣게 물든 잿더미의 중심에서 몸을 일으키는 진태경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 네. 놈. 이. 감. 히!
라이칸스로프 챔피언.
영원한 달의 저주에 갇혀 버린 최강의 반인반수(半人半獸)가 포효와 함께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후우웅!
휘몰아치는 검붉은 마력이 공간을 가르고, 바람을 지웠다,
그리고 눈앞의 인간을 단숨에 반으로 쪼개 버리려던 그때. 화염을 머금은 백염의 창날이 섬광처럼 솟구쳤다.
쩌엉!
날카로운 울림. 동시에 단단하기 그지없는 도끼날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콰득, 퍼엉!
산산이 부서진 도끼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수백 개가 넘는 무수한 파편이 자신들의 지휘관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던 몬스터들을 덮쳤다.
푸푸푸푹!
– 크아아악!
비명과 핏물이 솟구치고, 시체 위에 또 다른 시체가 쌓인다.
샛노란 눈동자를 부릅뜬 채 굳어 버린 라이칸스로프 챔피언을 향해, 진태경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창날을 내리그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 순간 양옆에서 들이닥친 파공성이 아니었다면.
쉬이이익!
진태경은 벼락처럼 허리를 뒤로 젖혔다. 머리카락이 땅에 닿았고, 두 줄기의 맹렬한 바람이 얼굴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피핏!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나간 살갗에서 따끔한 통증이 전해졌지만, 이 정도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것이 공격을 피하는 대가라고 생각한다면 터무니없는 헐값이니까.
‘받은 것 이상으로 되갚아 주면 그만이지.’
생각보다 앞서 몸이 움직인다. 신형을 바로 세운 진태경은 창대를 놓으며 쌍장(雙掌)을 뻗었다.
후웅, 콰앙!
지면을 뒤흔드는 충격과 굉음.
그러나 막대한 마력에 휩싸인 검과 발톱이 화염신장(火焰神掌)의 여파를 상쇄시켰다.
아니,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갔다.
쏴악!
데스나이트 군단장이 빛살처럼 내리그은 일격이 공간을 가르고.
– 크허어어엉!
포효와 함께 쇄도하는 라이칸스로프의 옆으로, 만티코어 로드의 강철 같은 가시가 돋아난 꼬리가 채찍처럼 휘둘려졌다.
‘합공? 서로 종족도 다른 몬스터가?’
진태경은 세 갈래로 나뉘어 날아드는 공격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 잠깐의 머뭇거림이, 아주 약간의 빈틈을 만들었다.
쐐애애액! 꽈앙!
자그마치 세 마리나 되는 S급 몬스터다.
하나로 합쳐진 파괴력은 폭발적으로 끌어올린 열양지기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고, 그중에서도 만티코어 로드의 교활함과 힘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쉭, 서걱!
뜨겁다. 불에 지지는 것처럼.
그러나 허벅지로부터 전해지는 고통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잇따라 터져 나온 세 개의 섬광이 눈앞을 물들였다.
쾅!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뒤로 쏘아지는 신형.
허공에서 몸을 틀어 중심을 되찾은 진태경은 착지하는 동시에 일권(一拳)을 내질렀다.
퍼엉!
주먹을 타고 터져 나온 멸염신권(滅炎神拳)의 열기가 전방을 휩쓸었다.
불길 속에서 괴성을 내지르며 타들어 가는 몬스터들의 사이로 검붉은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화아악.
사방을 짓누르는 압력과 함께 삽시간에 잦아드는 불길.
몸부림치는 부하들마저 망설임 없이 베어 낸 세 마리의 S급 몬스터가 진태경을 향해 재차 쏘아지려던 그때, 불현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좋아. 거기까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마계어(魔界語)에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런 S급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씩 웃은 스켈레톤 킹이 진태경을 향해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미친놈.”
곱지 않은 눈초리에 진태경이 담담하게 되물었다.
“왜.”
“그렇게 혼자서 튀어 나가면 뭐 어쩌란 말이냐? 조금 전에는 한 마리씩 맡자며?”
“이것저것 간 좀 봤다. 어느 놈이 제일 강하고, 어떤 놈이 제일 약한지.”
스켈레톤 킹의 시선이 문득 아래를 향했다. 무언가에 의해 뜯겨 나간 듯한 진태경의 허벅지는 이미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상반신을 감싼 화룡갑(火龍鉀)을 염두에 둔 듯한 일격. 만티코어 로드는 강한 것만큼이나 영리했다.
“간을 본 게 아니라 피를 본 것 같은데.”
“생각 이상으로 강해. 그중에서도 특히 한 놈은 S급 중에서도 네임드 수준이고.”
“저놈들 중에? 누구?”
“가운데에 있는 저놈.”
“만티코어? 확실히 척 보기에도 특출난 놈이군.”
굳은 얼굴로 만티코어 로드를 노려보던 스켈레톤 킹이 스산하게 뇌까렸다.
“그래, 네놈에게 부상을 입힌 게 저놈이란 말이지.”
“어차피 그렇게 심한 부상도 아냐. 내가 만티코어를 상대하는 편이 훨씬…….”
“좋아. 이 몸이 데스 나이트를 상대하겠다.”
“……?”
“뭐지. 그 기분 나쁜 눈빛은?”
“아니 그, 보통 이럴 때는 친구의 복수라고 해야 하나. 뭐 그런 맥락으로 흘러가지 않냐?”
진태경의 말을 들은 스켈레톤 킹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제일 센 놈끼리 붙어야 훨씬 승산이 있지.”
“…….”
“어쨌든 그렇게 결정한 거다. 네놈이 만티코어. 이 몸이 데스 나이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기 저 라이칸스로프는…….”
문득 말꼬리를 흐린 스켈레톤 킹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눈을 깜빡였다.
“왜 우리 둘뿐이지?”
허벅지를 지혈한 진태경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한 새끼는 이미 도망쳤으니까.”
“어?”
“그나마 양심은 있었는지, 아예 도망치진 않고 저기 뒤로 빠져 있네. 선두 대열.”
저 멀리, 은근슬쩍 최민우의 옆으로 다가가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야마모토 겐지의 모습을 발견한 스켈레톤 킹이 중얼거렸다.
“저놈. 반드시 죽여 버릴 거다.”
“그래, 그전에 이 지긋지긋한 싸움부터 빠르게 끝내자고.”
진태경이 피가래를 탁 뱉으며 창을 늘어트렸다.
이미 등 뒤에서는 비행 몬스터들이 내지르는 괴성과 폭발음이 터져 나오는 중이었다.
‘매직 존슨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그저 믿을 뿐이다. 그가, 저들이 자신을 믿어 주었듯이.
저벅. 쿵.
세 마리의 S급 몬스터가 걸음을 내딛자 군단 전체가 움직인다.
아무리 죽이고 또 죽여도, 도무지 줄어들 것 같지 않은 몬스터의 파도.
반면 사방이 탁 트인 사막은 인간들에게 있어 최악의 전장이었다.
“빌어먹을. 이 몸이 몬스터가 된 이후로 가장 후회하는 일이 뭔 줄 아느냐?”
진태경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알지. 클럽 못 간 거.”
“틀렸어. 바로 네놈과 얽혔다는 거다.”
“그래? 나랑 정반대네.”
“뭐?”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것 중 하나가, 널 그 게이트에서 꺼내 온 거거든.”
“……제기랄. 나만 쓰레기냐?”
“알면서 뭘 물어.”
피식 웃은 스켈레톤 킹이 깊게 심호흡했다. 숨 대신 흘러나온 죽음의 기운이 주위에 널브러진 몬스터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 숫자가 도합 일천.
전투과 통솔을 동시에 치른다는 가정하에 유지할 수 있는 최대치였지만, 서서히 속력을 높여 다가오는 저 대군세를 막아 내기에는 초라한 병력이다.
“저것들을…… 전부 막을 수 있을까?”
아니.
진태경은 혀끝에서 맴도는 그 대답을 삼키며 생각했다.
‘누군가는 죽게 되어 있다. 반드시.’
그것이 전투고, 그렇기에 전쟁이다.
모두를 살릴 방법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가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살아 나갈 수 있다는 공허한 약속이 아닌 복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중 몇 명이 죽건…….”
스릉.
길게 늘어지는 말꼬리와 함께, 번뜩이는 창날이 몬스터들을 겨누었다.
“저놈들은 전부 내 손에 뒈진다.”
스켈레톤 킹의 눈이 크게 뜨인 그 순간.
콰드드드득!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몬스터의 파도가, 그들을 덮쳤다.
* * *
……!
……!!
귓가가 먹먹하다. 일만이 넘는 몬스터 대군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지축이 뒤흔들리고, 놈들이 내지르는 괴성은 땅끝과 하늘 위까지 닿을 듯했다.
그리고 그 선두이자 중심에, 바로 놈들이 있었다.
화륵, 서걱!
화룡일미(火龍一尾).
창날을 따라 그려 낸 화염의 선이 허공을 가른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그 궤적에 걸려든 수십여 개의 목이 지면으로 굴러떨어진다.
푸화아악!
뒤늦게 터진 핏물이 사방을 적신다. 그러나 흉포한 괴성과 함께 달려들어야 했을 몬스터들은 나와 스켈레톤 킹을 피해 뿔뿔이 흩어졌다.
내가 보인 무위와 [위압] 때문에?
아니다. 나를 피해 헌터들에게 돌격하는 놈들에게서 보이는 건 두려움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대한 복종이었다.
마치 훈련받은 정예군만이 보일 수 있는 복종.
“이런 개 같은……!”
퍼걱!
오우거의 머리통을 터트린 스켈레톤 킹이 분노 어린 외침을 토해 냈다.
그와 나, 그리고 언데드 군단이 있었지만 적들 모두의 앞길을 막아서는 것은 무리였다.
열을 죽이면 백이. 백을 죽이면 천 마리의 몬스터가 빠져나간다.
우리가 펼친 그물은 촘촘했지만 너무나도 작았고, 그것이 바로 놈들이 의도했던 바였다.
– 그래, 너로구나. 그분께서 말씀하셨던 인간이.
머릿속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
마치 귀족이 말하는 것처럼 매끄럽고 침착한 어조는 높은 지능을 증명하고, 그 말에 담긴 의미는 내 짐작과 일치한다.
“선지자. 지금 어디 있어?”
호랑이의 얼굴과 몸뚱어리. 맷돼지의 송곳니와 황소의 뿔을 지닌 신화 속 괴물.
만티코어 로드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으시지.
“저게 무슨 개소리냐?”
스켈레톤 킹의 물음에, 나는 대답했다.
“존나게 처맞으면 말해 주겠다는 뜻이지.”
그리고 놈을. 아니, ‘놈들’을 향해 창날을 내리그었다.
슈확!
바람이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