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818
#817화
도플갱어의 새로운 얼굴은 진태경에게 있어 더없이 익숙했다.
직접 마주한 것은 미라처럼 말라붙은 모습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미카엘 실베르트를 조사하는 도중 사진을 통해서 지긋지긋하게 봐 왔던 바로 그 얼굴이었으니까.
게다가…….
스아아아.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은 저 거대한 마력까지.
굳이 레벨 창을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정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지크프리트 바스만?”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진태경의 목소리에, 도플갱어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파직.
새하얀 섬광이 번뜩인다.
손가락을 타고 흘러나온 미세한 전류가 수십 줄기의 벼락으로 화하여 쏟아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했다.
츠팟!
눈부신 섬광으로 가득 찬 시야.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은 진태경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방을 둘러싼 암반, 공기, 땅. 그 모든 것을 통해 전해지는 엄청난 전류를.
쾅!
단단한 바위와 흙으로 이루어진 지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진다.
땅을 박차고 솟구친 진태경이 일장(一掌)을 뻗었다. 화염신장의 열기가 벼락을 불사르며 쏘아졌다.
꽈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협곡이 뒤흔들린다.
하지만 진태경은 안력(眼力)을 끌어 올려 아주 짧은 순간 벌어진 모든 상황을 시야에 담았다.
솟구치는 불길과 매캐한 연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터져 나오기 직전, 유령처럼 사라져 버린 도플갱어의 모습까지도.
‘블링크(Blink).’
텔레포트와 워프가 장거리 공간 이동 마법이라면, 블링크는 뜻 그대로 찰나의 깜빡임처럼 사라지는 단거리 순간 이동.
그만큼 이동 범위도 짧았고, 진태경의 감각과 시야는 협곡 전체를 뒤덮을 만큼 넓었다.
‘저곳이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느껴진다.
진태경은 호흡을 삼켰다. 그는 자신의 오감과 능력을 믿었다.
공력을 실은 발끝으로 텅 빈 허공을 밟으며, 흩날리는 불씨와 매캐한 연기 너머에 있을 도플갱어를 향해 쏘아져 갔다.
후욱, 펑!
신형에 실린 속도를 이기지 못한 공기가 터져 나간다. 연기와 불씨가 폭발하듯 흩어지고 시야가 선명해졌다.
그렇게 한 줄기 불꽃이 되어 도달한 그 끝에, 자신을 도와줄 추종자들을 향해 도망치고 있는 도플갱어가 있었다.
“……!”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감각에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본 도플갱어는 눈을 부릅떴다.
느려진 세상 속, 어느새 코앞까지 들이닥친 진태경의 모습이 그의 눈동자에 가득 찼다.
‘도대체 어떻게?’
분명 1초도 되지 않았던 짧은 시간.
그러나 진태경은 그 찰나의 순간 블링크 마법의 이동 위치를 파악한 것으로도 모자라, 십여 미터의 거리마저 뛰어넘어 자신을 따라잡았다.
‘이런 미친……!’
도플갱어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을 삼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욕을 내뱉을 시간조차 없었다.
그랬다가는 지금껏 수없이 버려 온 다른 생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대마도사의 힘을 영영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
슈확!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창날이 바람을 찢었다. 그와는 상반되는 서늘한 살기(殺氣)에 몸이 얼어붙는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도플갱어의 몸에 깃든 마나와 능력은 전 세계에서 단 셋뿐인 대마도사의 것이었다.
‘블링……크!’
화륵, 퍼엉!
창날을 타고 폭발한 화염이 허공을 살라 먹었다.
동시에 십여 미터 밖에서 나타난 도플갱어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겨서?
아니다.
정확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한 쌍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진태경.’
단지 시선이 마주쳤을 뿐인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수백 년이 넘는 투쟁의 세월 동안 가다듬어진 본능이 속삭였다.
도망치라고.
저 맹수에게 목덜미를 물어뜯기기 싫다면, 조금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다음 순간, 쉴 틈도 없이 재차 블링크 마법을 발동시킨 도플갱어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본능이 정확했다는 것을.
쏴악! 서걱!
새로운 공간에서 눈을 뜬 도플갱어는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이미 본래의 형태와 용도를 일찌감치 잃어버린 갑옷의 뒷면은, 찰나에 스쳐 지나간 열기에 의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베였다. 놈의 속도가 블링크 마법을 따라잡고 있어.’
그야말로 간발의 차.
소름이 끼쳤다. 지금까지 흡수했던, 혹은 스치듯 마주했던 모든 인간들을 떠올려 봐도 저런 괴물은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두려워했고, 그랬기에 일부러 피해 왔던 한 사람을 제외한다면.
‘천태민.’
인류의 구세주.
나약한 인간의 몸과 정신으로, 마왕 아스모데우스와 맞선 유일한 대적자이자 신인(神人).
도플갱어는 천태민을 향한 자신의 두려움을 부정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상대는 ‘한낱 인간’이라 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수년 전, 지크프리트 바스만을 흡수하여 천태민의 상태를 알게 된 후에도 감히 그를 넘보지 못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도플갱어조차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천태민이 아닌 다른 인간에게, 자신이 이 정도의 두려움을 품게 되리라고는.
‘블링크, 블링크, 블링크!’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간 영원한 소멸을 맞이할 수도 있다.
다급해진 도플갱어는 연달아 공간을 뛰어넘었다.
그의 신형이 지우개로 지워 낸 것처럼 사라질 때마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는 협곡의 출구가 가까워졌다.
숨 가쁘게 도망치는 사냥감의 뒤를 쫓는 사냥꾼과의 거리도.
쐐액!
날카로운 파공성이 공간을 가른다.
섬광처럼 들이닥친 십여 개의 비수가 도플갱어의 전신을 노렸다. 블링크 마법을 발현시킬 틈조차 없는, 철저히 예측된 공격.
선택지가 없음을 깨달은 도플갱어가 이를 악물며 두 손을 펼쳤다.
우우웅, 콰직!
마나로 이루어진 보호막이 완성되기도 전에 박살 났다. 반발력에 의해 튕겨 나간 비수들이 양옆의 절벽과 지면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비수를 막아 내느라 소모한 그 짧은 시간 동안, 진태경의 신형은 어느덧 도플갱어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잡았다.”
“……!”
콰득!
반응할 새도 없었다.
도플갱어는 손목을 통해 전해지는 엄청난 고통에 입을 딱 벌렸다.
생전의 지크프리트 바스만은 위대한 대마도사였지만, 진태경의 무시무시한 힘은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떤 마법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뿌드드득!
“크아아악!”
끔찍한 통증을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터져 나온 비명.
단지 강하게 손을 쥔 것만으로도 살과 근육이 짓이겨지고 뼈가 바스라진다.
순간 새하얗게 물든 도플갱어의 시야에, 하늘과 땅이 기울어지는 것이 보였다.
‘뒤집힌다. 아니, 죽는다.’
도플갱어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공포스러운 부유감(浮游感) 뒤에, 지면과 부딪쳐 전신이 으스러지는 죽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안 돼!’
지크프리트 바스만은 그가 흡수한 생명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것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S급 헌터를 사냥하는 것 자체도 매우 까다롭지만, 활용성이 좋은 마법이라는 능력을 부여해 주는 대마도사는 특히나 귀중한 자원이었으니까.
‘마법을 잃어버리면 정말 끝장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공포가 불러온 의식의 흐름은 빛살처럼 빨랐고, 결심은 단호했다.
후우웅!
거센 파공음과 함께 지면으로 처박히던 그 순간. 도플갱어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마나를 끌어 올렸다.
‘블링크!’
파앗.
세상이 느려졌다.
마나에 의해 일그러진 공간이 도플갱어의 전신을 빨아들이듯 집어삼켰다. 그러나 조금 전과는 달리 마나의 양도, 안정감도 달랐다.
도플갱어의 시선은 블링크 마법의 이동 한계를 아득히 벗어난, 수백 미터 밖의 전장에 향해 있었다.
‘해내야 한다.’
공간 마법의 한계를 벗어난 금기(禁忌).
그러나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저곳에는 그를 신처럼 받들어 모시는 광신도들이, 지난 수십여 년간 공들여 양성해 낸 추종자들이 있었으니까.
우드드득!
공간과 함께 뼈와 살이 뒤틀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쥐어 터트리려 하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진태경.
당장 이 괴물 같은 인간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대로 추종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도망쳐,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계획을 이룰 수 있다면.
‘잘 있어라. 다음에 보자.’
도플갱어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에 젖은 이빨을 드러내고 웃은 그 순간.
드득, 화아아악!
폭풍우처럼 거칠게 휘몰아친 마나와 일그러진 공간이 그를 집어삼켰다.
동시에 암전(暗轉)된 시야 속에서 새로운 빛과 소음. 그리고 얼굴들이 파도처럼 그를 감쌌다.
쾅! 콰아아아앙!
쉬쉭! 카가가각!
“커헉!”
“신의 전사들이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좆 까, 이 미친 광신도 새끼들아!”
굉음과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온다. 양측에서 울려 퍼진 고함이 찢어진 고막을 후려친다.
하지만 도플갱어에게 중요한 것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 보이는 얼굴들이, 바로 자신의 추종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자, 잠깐!”
“선지자시여!”
터번을 눌러쓴 광신도들이 그를 발견하고 에워쌌다. 내장 조각이 뒤섞인 핏물을 토해 낸 도플갱어가 소리 내어 웃었다.
“쿨럭. 푸흐흐…….”
고통?
괜찮다. 금방 회복할 수 있을 테니.
뼈마디 곳곳이 으스러졌고, 진태경에게 붙잡혔던 왼손은 어깨부터 뜯겨 나가 있었지만, 한계를 벗어난 블링크 마법이 성공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틀림없이 죽었겠지.’
운이 좋았다.
지크프리트 바스만이 대마도사였기에 성공했고, 도플갱어였기에 이런 부상을 입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스륵. 뿌드득.
뜯겨 나간 팔의 단면에서 어린아이처럼 뽀얀 살이 조금씩 차오른다. 끊어졌던 근육이 이어지고 새하얀 뼈가 자라났다.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느려진 회복 속도에, 도플갱어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빌어먹을.’
지금껏 그가 흡수해 왔던 무수한 생명도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도 이 자리를 완전히 벗어날 때쯤이면, 정말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의 생명만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관없다. 날 위해 목숨 바쳐 싸워 줄 것들이 있으니.’
사방을 가득 메운 광신도의 물결.
내심 미소를 흘린 도플갱어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협곡의 출구를 둘러싸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그가 블링크로 도망쳐 온 후방은 평온했고 수많은 병력들이 남아 있었다.
도플갱어가 제법 공들여 키워 낸 핵심 전력도 함께.
“아미르.”
낮게 깔린 도플갱어의 목소리에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광신도들이 길을 비켜 주었다.
아미르라 불린 지팡이를 쥔 노인이 다가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시여.”
경이(驚異)로 가득한 표정과 목소리.
도플갱어는 선지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위엄 어린 태도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신께서 나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사, 먼저 이곳을 떠나야겠다. 그대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진태경을 비롯한 이교도들을 막아라.”
신. 그리고 선지자라는 이름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아미르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진태경을, 말입니까?”
“왜, 그가 두려운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선지자께서 놈을 제압하신 게 아닌지요?”
도플갱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대는 보지도 못했을 터인데.”
“예. 그러나 선지자께오서 친히 놈을 제압하여 데려오시지 않았습니까.”
“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도플갱어가 눈을 깜빡인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죽은 듯이 엎드려 있던 진태경이 부스스 눈을 떴다.
“어, 시벌. 여긴 또 어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