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83
#82화
총원 열다섯. 그중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B급 헌터다 보니 게이트 등급을 감안해도 호화스러운 레이드 팀이 꾸려졌다.
“원래 B급 헌터가 이렇게 흔했나?”
나도 임꺽정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게요.”
전에는 찾으려고 해도 옷깃이나 보일까 말까 했던 사람들이다. 나나 임꺽정과는 애초에 노는 물부터가 달랐으니까.
“근데 태경이 넌 별 감흥이 없나 보다?”
“저요?”
“응. 아까 보니까 저쪽 팀장이랑도 얘기 잘하던데.”
“그럴 수도 있죠. 그냥 잡담 좀 한 건데.”
“그럴 수 있긴. 얼마 전만 해도 말 한번 붙여 보려면 고개 들다가 목 부러졌을 텐데.”
그 정도였나? 문득 생각해 보니 임꺽정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단지 내가 달라졌을 뿐이다.
‘서 있는 곳이 변하면 풍경도 변한다더니.’
B급 헌터.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던 산등성이들이 눈앞에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풍경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저 정도면 초일류? 아니, 일류 무인쯤 되려나.’
기감으로 확인한 레벨도, 저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크기도 딱 그 정도다. 시스템의 사기성으로 무장한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동 레벨의 무인과 비교해서도 한 수 아래일 것이다.
‘그게 무인과 헌터의 차이지.’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맨몸으로 맞붙는다면 헌터의 필패다.
무인들은 신체 내부의 기운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내공심법을 익혔고 그걸 무공을 통해 극대화시켰다.
‘헌터가 장비를 맞추고 마법까지 사용해야 해볼 만하겠지.’
결론은 간단하다. 개인 역량은 무인이, 집단으로서의 전투와 전술로는 헌터가 앞선다는 것.
그리고…….
‘나 완전 사기 캐릭터네.’
나는 헌터이면서 무인, 무인이면서 헌터다. 같으면서 다른 두 가지 직업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다.
더 무서운 건 지금도 시스템을 통해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거 살짝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인데.’
나중에 나이 먹고 은퇴하면 자서전이나 써 볼까.
로그인 무림. 뭐 그런 제목으로.
다른 사람이 보면 판타지 소설이 따로 없을 거다.
“자, 집합! 지금부터 호명하는 포메이션으로 이동해 주세요.”
들려오는 외침에 임꺽정이 심호흡했다.
“이제 시작이구나.”
임꺽정의 포지션은 탱커. 선두에서 팀을 지켜야 한다.
B급 게이트가 주는 압박감일까, 언제나 웃음 짓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할 수 있어요.”
빈말이 아니다. 지금 내 눈앞에 떠 있는 시스템창이 그 증거다.
아이템창
[투우사의 전신 갑옷]종류 : 갑옷
등급 : 절정
설명 : 투우사의, 투우사에 의한, 투우사를 위한 갑옷.
효과 : 근력, 체력, 맷집 +10
소(牛)형 몬스터 상대 시 능력치 모든 스탯 +20
아이템창
종류 : 방패
등급 : 절정
설명 : 투우사의, 투우사에 의한, 투우사를 위한 방패. 소의 피로 붉게 물든 방패는 보기만 해도 섬뜩해진다.
효과 : 근력, 체력, 맷집 +10
소(牛)형 몬스터 상대 시 일정 확률로 [도발] 발동
소(牛)형 몬스터 상대 시 일정 확률로 [환각] 발동
‘솔직히 처음에는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안심이다. 적어도 이곳, 미노타우로스의 미로에서만큼은 훌륭한 탱커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임 헌터님.”
조용히 다가온 물주, 아니 최 팀장도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심히 입으세요. 제가 아끼는 컬렉션입니다.”
“…….”
“…….”
거 되게 좋은 말 해 주네.
* * *
탱커인 임꺽정이 선두. 마법사인 김 집사와 힐러인 송이 씨가 후방으로 빠지자 내 곁에는 최 팀장밖에 남지 않았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왜긴. 송이 씨랑 포지션을 좀 바꿨으면 해서 보는 거지.
오순도순 옆에서 걸으면서 게이트 산책하면 얼마나 좋아. 몬스터 나오면 서로 구해 주기도 하고.
‘하늘이 돕지 않는구나.’
한탄하며 고개를 들어 봐도 축축한 동굴 천장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F급 게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높이였다.
“확실히 엄청 크네요.”
“B급 게이트니까요.”
등급이 높은 게이트일수록 내부 공간이 넓고 출현하는 몬스터가 강력하다. 물론 나야 D급 게이트가 고작이라 더 높은 등급은 처음이지만 사람들이 그렇다더라.
“어떤 경우에는 설산도 타야 합니다. 2년 전에 한 번 가 봤는데 끔찍했죠.”
“아, 혹시 무슨 사고라도……?”
“아뇨. 신고 간 부츠가 방수 마법이 안 걸려 있었어요.”
“…….”
“제가 수족냉증이 있어서.”
“…….”
“아, 둘 다 농담입니다.”
당연히 농담이겠지. 60레벨이 넘는 인간이 수족냉증이라는 게 말이 되나. 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최 팀장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드득.
“어?”
“왜 그러십니까?”
“잠시, 잠시만요.”
단순한 착각? 아니다.
동굴 바닥을 통해 감지되는 미세한 진동.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느꼈다.
드드득.
두 번째 진동은 보다 분명하고, 노골적이었다.
몇몇은 이미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전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임창수도 그중 하나였다.
“전투 준비!”
짤막한 외침은 신속하고 침착했다. 팀원 중 절반이 B급 헌터인 데다 훌륭한 장비까지 갖췄으니 그로서는 당황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한 가지 문제는…….
“구멍 주시해!”
여기가 미로라는 거다. 당장 뻥 뚫려 있는 구멍만 다섯 개.
단순히 땅의 진동만으로는 놈들이 오는 정확한 방향을 찾기 힘들다.
“어디냐!”
“…….”
임창수 쟤는 누구한테 물어보는 걸까. 저런다고 미노타우로스가 대답해 줄 것 같진 않은데.
– 음모오오!
“저기다! 맨 왼쪽 구멍!”
“……실화냐.”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다.
나는 혀를 차며 창을 움켜쥐었다. [장인의 검은 가시 창]. 높은 확률로 적을 출혈 상태에 빠트릴 수 있는 흉악한 놈이다.
“그립감이 참 좋죠? 마감제를 꼼꼼히 발라서…….”
여기 흉악한 놈이 하나 더 있네. 만약 최 팀장이 죽는다면 발설지옥에 떨어지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 순간.
쿵쿵쿵.
– 음모오오오오!
놈들이 어둠 속에서 불쑥 솟구쳤다. 인간을 닮은 몸, 그러나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체격과 잔뜩 부풀어 오른 근육들.
먼지와 누군가의 피로 얼룩진 두 개의 뿔 위에 직사각형의 레벨창이 두둥실 떠다녔다.
[Lv.58 미노타우로스 전사]– 모오오오!
영상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박진감 넘치는 외관이긴 한데…….
“에게.”
“한 마리밖에 안 돼?”
말 그대로 달랑 한 마리뿐이다. 알고 보면 저 미노타우로스도 미로에서 길을 잃은 게 아닐까.
“저 정도면 원거리 지원 없이 처리해도 되겠는데요?”
“혜린아, 오빠 잠깐 다녀올게.”
상동 길드원들이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다. 탱커 둘에 딜러 둘. 모두 B급 헌터들이다. 여자들 앞에서 가오 좀 세워 보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어이고, 병신들.’
저런 놈들이 꼭 까불다가 골로 가더라. 물론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할 거면 빨리 처리해.”
임창수의 허락을 받은 네 사람이 무기를 빼 들고 몬스터를 향해 다가가던 그때였다.
쿵. 쿵.
“응?”
– 음모오.
다섯 개의 구멍 중 두 번째 구멍에서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가 쏙 빠져나왔다.
“오, 두 마리 됐다.”
“쟤는 덩치가 좀 더 작네. 약할 것 같으니까 네가 맡아.”
“뭐래, 제일 약골인 새끼가.”
쿵. 쿵.
– 음모오.
세 번째 구멍.
“오, 세 마리. 이 정도면 나름 재밌게 싸울 것 같은데?”
“상처 하나라도 입는 놈이 오늘 술 사기. 어때?”
“콜.”
“콜. 이런 건 꼭 하자고 한 놈이 걸리더라.”
쿵. 쿵.
– 음모오.
“아니, 시바. 뭐야, 이거.”
“네 마리는 좀.”
“그냥 우리끼리 포메이션 짜서 한 놈씩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도.”
상황을 지켜보던 최 팀장이 목을 긁적였다.
“좀 더 기다렸다가 작전을 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네?”
“구멍이요. 왠지 더 나올 것 같지 않습니까?”
“설마요. 무슨 올림픽 선수 소개도 아니고.”
쿵쿵쿵쿵!
진짜 왔네.
5번 레인, 아니 다섯 번째 구멍에서도 소식이 왔다.
한 가지 예상치 못한 부분이 있다면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 음모오오오!
친구도 많은 놈인지 자그마치 네 마리나 우르르 몰려왔다. 앞서 나온 놈들까지 모두 합하면 총 여덟 마리. B급 헌터 넷으로는 어림없는 숫자다. 최 팀장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 힘들지 않을까요.”
힘들긴 무슨, 뒈지기 싫으면 탱커 뒤에 있어야지.
그나마 듣는 귀가 있어서 순화시킨 거다.
“태경 씨라면 어떻겠습니까?”
“저 말입니까?”
“네. 태경 씨요.”
“음.”
B급 몬스터인 미노타우로스의 레벨은 50대 중후반.
무인이라면 초일류에 가까운 레벨이지만 놈들과 싸운다면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해 붙어 봐야 안다는 거지.
“잘 모르겠네요.”
“잘 모르겠다…… 그거 아세요?”
최 팀장이 묘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보통 C급 헌터는 그렇게 대답 안 합니다. 방금 같은 질문에 고민하지도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아요.”
나도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뜨끔 했다. 힘을 숨길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동네방네 자랑할 마음도 없었다.
그저 아직은 주목을 피해 나만의 비밀로 남겨 두고 싶을 뿐이었다. 남들보다 약간 더 뛰어난 헌터. 딱 그 정도로.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참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진태경 씨는.”
“아니 저기, 팀장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내가 막 입을 연 그 순간이었다.
“하하, 그러게요. 듣다 보니 나까지 흥미롭네.”
불쑥 끼어든 임창수의 시선이 나와 최 팀장을 훑었다.
“워낙 재미있는 얘기들을 하고 계셔서 좀 들었습니다. 괜찮으시죠?”
너희가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라고 들리는 건 착각일까?
“쥐뿔도 없는 C급 주제에 미노타우로스를 어쩌고저쩌고. 아주 소설을 쓰시던데.”
아, 착각이 아니구나.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임창수를 바라봤다.
‘어울리네.’
사람마다 맞는 옷이 있다. 웃음도, 태도도.
지금 내 눈에 비친 임창수가 그랬다. 한껏 올라간 입꼬리에 맺힌 비웃음이 아주 그냥, 찰떡이다.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최 팀장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과 말투에 임창수가 피식 웃었다.
“상하고 말고 할 게 있나 사실인데, 뭘. 쟤들 실력 존나 구려요. 사람들이 B급, B급 해 주니까 있어 보이지, B급 중에서 보면 완전히 폐급이야. 그런데…….”
임창수가 나를 턱짓했다.
“C급보다는 낫지. 안 그래, 장태경 씨?”
나는 아까부터 참고 있던 말을 꺼냈다.
“진태경인데요.”
“진태경이든 장태경이든. 당신 성이 뭐든 내 알 바 아니지.”
“그럼 씹창수라고 불러 드려요?”
“뭐?”
“임창수든 씹창수든. 그쪽 성이 뭐든 내 알 바 아니잖아요.”
임창수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