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853
#852화
무림인이 정보를 얻는 방법을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우선 첫 번째로 가장 만만한 것은 바로 객잔과 기루다.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인간군상들이 가득 차 있다 보니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단점이 있다면 그중에 정작 중요한 정보는 없고, 대부분이 확인되지 않은 헛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장식품이 아니고, 칼밥 좀 먹었다 싶은 무림인들은 정보 상인들을 찾아간다.
전문적으로 정보를 사고파는 그들은 각 지역마다 존재하며, 상당한 금액을 부르는 만큼 정보의 신빙성도 높다.
문제는 그들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자리 잡은 지역에 한해서는 질 높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결국 딱 거기까지다.
그렇기에 돈 많고, 적당히 괜찮은 문파 출신에 어느 정도의 연줄이 있는 이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두 갈래로 나뉘기 마련이었다.
하오문(下汚門).
그리고 개방(丐幇).
천하 곳곳에 뿌리내린 이들. 하나둘 모여 자신들만의 거대한 숲을 일군 이 땅의 잡초들.
구파일방 중 하나인 개방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하오문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세력이다.
점소이와 기녀, 마부와 소매치기. 뒷골목의 도박꾼에 크고 작은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까지.
개방의 거지들처럼, 세상 어디에나 그들이 있다.
그렇게 방대한 정보망을 바탕으로 천하를 그물질하며 숱한 정보를 건져 올리니, 설령 무림에서 손꼽는 명문대파(名門大波)의 장문인이라 해도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물론, 어느 경우에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집합.”
“예?”
“집합. 반나절 준다. 사천당가로.”
적어도 오늘만큼은 적천강이 대마도사였다.
정확히 반나절 만에 하오문과 개방, 거기에 더해 청성파와 아미파까지 한 자리에 불러 앉혔으니까.
“아니, 갑자기 무슨 이유로 부르신 건지…….”
“조용히 구석에 처박혀 앉아 있어라. 네놈도 들어야 하니까.”
물론 사천당가의 가주인 당사독도 함께였다.
하지만 적천강을 제외한 모두를 놀라게 했던 것은, 청성과 아미에서 장문인이 직접 행차했다는 사실이었다.
“무림말학 벽운자(碧雲子)가 노 선배께 인사 올립니다.”
청성파 장문인이고 나발이고, 적천강 앞에서는 무림말학이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려온 기색이 역력한 벽운자. 아니 무림에는 청풍고검(靑風高劍)이라는 별호로 잘 알려진 그의 포권지례에 적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스승은 요즘도 잘 지내고?”
“……이미 이십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만.”
잠시 침묵하던 적천강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벌초 상태를 물어본 게다. 아무리 바빠도 자주자주 찾아가서 잡초도 뽑고 해.”
“……예. 명심하겠습니다.”
누가 봐도 까먹은 게 틀림없었지만, 청풍고검은 도인다운 인내심을 발휘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니, 이건 그냥 상대가 화왕 적천강이라 넘어갔다고 봐야 한다.
무림에서 따지는 배분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고, 연배며 무공까지 압도적이니까.
그러나 사천혈사 이후 공석이 된 아미파의 장문직을 맡게 된 멸절신니(滅絶神尼)는, 그 연배로 인해 적천강으로서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왔소. 할망구.”
“…….”
“…….”
정정한다. 그냥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존나 함부로 대하네, 진짜.’
나는 이마를 짚었고 다른 이들은 입을 딱 벌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장에서 미친 듯이 날뛰기로 유명한 멸절신니가 평소에는 지극히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이었다.
“적 시주는 언제 만나도 참 여전하구려. 여러 의미로.”
“할망구는 못 본 사이 더 늙었군. 넉 달이 아니라 사십 년 만에 다시 만난 기분이오. 있는 그대로의 의미로.”
“아미타불. 그 나이면 진즉 어른이 되고도 남았을 텐데, 그대는 언제쯤 철이 들 거요?”
“얼추 백 년쯤 어려졌으니 앞으로 백 년은 더 이렇게 살 예정이오. 물론 그때는 신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만.”
“……아미타불. 말이 너무 심하구려.”
“억울하면 당신도 반로환동하든지.”
“아미타부우우울!”
좆 됐음을 감지한 나는 황급히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고 그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한 마디만 더 섞었어도 멸절신니의 목탁이 적천강의 뚝배기로 내리꽂혔을 테니까.
물론 곧이곧대로 맞아 줄 적천강은 아니지만, 중요한 건 내 등장으로 멸절신니의 분노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는 점이었다.
“오, 진 시주.”
“잘 지내셨습니까. 신니. 아니, 장문인.”
“너무 불편해할 필요 없으니 편히 부르시게. 그나저나 못 본 사이 더욱 헌앙해지셨군. 머리털도 풍성하고.”
적천강을 바라보며 뒷말을 덧붙인 멸절신니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사천혈사 당시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 동분서주한 나를 매우 좋게 봐서인지, 청풍고검이나 그녀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우선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참으로 고생 많았네. 남만에서 암천의 마두들을 상대로 크게 활약하고, 남만야수궁을 입맹(入盟) 시켰다지?”
“진 도우의 협기(俠氣)가 실로 대단하네. 빈도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어.”
두 다리 없이도 능히 천 리를 가는 것이 바로 말이다.
어느 정도 정보력을 갖춘 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음알음 이야기가 돌고 있었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구파일방에 속한 장문인 둘. 그리고 천하제일을 다투는 정보 단체의 수뇌부들까지 와 있으니까.
“늦었지만 감축드립니다, 진태경 대협. 본문의 섬서지부장께서도 그 소식을 듣고 참으로 기뻐하셨습니다.”
“궁기방 그 녀석, 아니 후개(後丐)가 자네의 절반이라도 따라갔으면 좋겠군. 여하튼 대단해.”
하오문의 사천지부장은 섬서에 있을 월화를 언급하며 공손히 축하 인사를 건넸고, 개방의 장로는 껄껄 웃으며 내 옆구리를 찌르다가 적천강의 한마디에 웃음을 뚝 멈췄다.
“방주는 어디 가고 장로 나부랭이가 얼쩡거려?”
“……저, 적 대협. 아무리 그래도 하남에 계신 방주를 어떻게 반나절 만에 모셔 옵니까.”
“하남? 그놈이 지금 하남에 있어?”
“예.”
사실 하남에서 사천까지 반나절 만에 오려면 제트기를 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 말이 일리가 있다 여겨졌는지 적천강은 다른 먹잇감을 물색했다.
“마, 하오문.”
“옙.”
“문주는?”
“마음 같아서는 모셔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어디 계신지는 저도 모릅니다.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본문의 사정상 극비 중의 극비라…….”
“그래서, 문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말단이 나왔다?”
수많은 문도를 거느린 하오문에서 지부장급이라면 개방의 장로나 마찬가지다. 사천지부장은 적천강의 압박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원하시는 정보라면 뭐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내어 최대한 빠르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뭐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빠르게?”
“옙.”
“그거 썩 괜찮군. 노부가 똑똑히 기억해 둘 테니 네놈도 이것 하나만 기억해라. 알겠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오문 사천지부장의 눈빛이 흔들린 그때. 깊게 가라앉은 적천강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만약 오늘 이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단 하나라도 외부에 알려졌다가는…….”
화아아악.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적천강을 중심으로 흘러나온 무시무시한 기파(氣波)는 무언의 경고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일어날 불상사를 대비한 경고.
그리고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눈치 없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되리라는 것 역시도.
“오늘 정오 무렵에, 사천성주가 죽었다.”
적천강의 첫 마디를 시작으로 무대의 막이 오른다. 때맞춰 앞으로 나선 신의와 남호를 향해 모든 시선이 쏠렸다.
“죽은 성주의 사인(死因)은 병사입니다. 지난 몇 달간 심신의 기력이 급격히 쇠한 탓에 벌어진 일이지요.”
“인근의 명의들이 이미 성주부에서 시신을 확인했고, 여기 계신 신의께서도 그리 결론 내리셨소.”
내가 나직이 덧붙였다.
“아무런 의심의 여지도 없는 병사. 그렇게 알려질 겁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주위의 공기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진다.
공식적으로는.
누가 들어도 의미심장한 말이다. 저 짧은 한마디에는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존재한다는 뜻이 담겨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조용히 건넨 눈짓에, 고개를 끄덕인 신의가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 조심스럽게 열었다.
“혈혼고(血魂蠱)라 불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봤던 어느 벌레보다 작고, 핏물처럼 붉은 그것을 확인한 사람들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 * *
모두가 떠났을 때쯤에는 이미 어두운 저녁이었다.
나는 단둘이 남게 된 적천강과 함께, 사방에 내려앉은 새카만 어둠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그 누가 알겠느냐. 남은 것은 믿고 기다리는 것뿐이지.”
“기다리면 늦습니다. 움직여야 해요.”
“길을 한번 잘못 들었다간, 돌아오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더군다나 이미 그들의 정보로 어느 정도의 소득을 얻지 않았더냐?”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천강의 말대로, 이미 하오문과 개방을 통해 입수된 정보가 있었다.
‘금의위(錦衣衛).’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그 이름.
오직 한 사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대국(大國)에서 가장 강력하고 비밀스러운 집단 중 하나.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이미 우리가 사천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대국의 수도이자 천자가 머무르는 황도가 위치한 절강성(浙江省)도 아닌 안휘성에서.
‘심지어 평소와 달리 변복(變服)까지 한 상태였다고 했지.’
황제 직속 기관인 금의위가, 그것도 신분까지 바꿔 가며 안휘성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냄새를 맡고 그들의 뒤를 쫓던 정보원들이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실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나는 문득 불길한 가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들이 안휘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북서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면…….’
그곳이 바로 산서성이고, 산서성에는 바로 그가 있다.
‘상산왕(上山王) 주표.’
황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끔찍한 권력 다툼 속에서 지금의 천자가 승리한 후 유일하게 살려 두었던 황실의 직계 혈족.
천하에 단 하나뿐인 번왕(藩王)이자, 현재로서는 후사가 없는 천자의 뒤를 이을 대국의 후계자.
‘그런데 잠잠하던 황제가 금의위를 움직였다. 그것도 이리 은밀하게.’
만약 금의위의 목적지가 산서성이라면…… 나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예견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대국의 황실에까지 암천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것을.
‘호위장은 사천성주는 천자에게 애첩을 빼앗긴 직후부터 광증(狂症)을 보였다고 했지. 그 성주의 몸 속에서 나온 혈혼고는 내가 남만의 독혈지에서도 보지 못했을 만큼 희귀한 고독이고.’
증거는 충분하다. 나는 흐릿한 달빛만이 비추는 밤하늘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어디에도 닿지 않을 물음과 함께.
‘도대체 뭘 노리는 거냐.’
그리고 그 순간.
하늘 어디에선가 들려온 미세한 소음이 내 귓가에 닿았다.
아니, 우리 둘 모두의 귓가에 닿았다.
푸득.
“노야.”
“이건…….”
바람 소리가 아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무언가의 날갯짓 소리다.
‘전서구!’
깨달음과 동시에, 나와 적천강은 하늘 저편을 응시했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쉬이이익!
세차게 바람을 가르며 이곳을 향해 날아드는 새의 그림자는, 무려 십여 마리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