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90
#89화
“아들,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헌터 관두고 먹방 스트리머 해도 되겠네.”
엄마의 걱정과 하연이의 감탄 속에서 식사를 끝마쳤다.
고봉밥만 다섯 그릇에 한 냄비 가득 끓인 청국장과 수십 장의 김치전이 사라진 후였다.
“휴, 이제 좀 배가 차네.”
“……미쳤나 봐. 평소에는 얼마나 먹는 거야?”
“맛있으면 끝도 없이 들어가지.”
예전에도 많이 먹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진대사며 내부 장기가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향상되어서 그런지 어지간한 푸드파이터 저리 가라다.
“진짜 먹방 스트리머나 해 볼까.”
“아냐, 그 사람들도 먹고살아야지. 인간들끼리 경쟁하게 놔둬.”
“난 인간이 아니란 소리냐?”
“응, 내 눈에는 돼지 그 이상인데.”
혀를 내두른 하연이가 수저를 내려놨다. 밥그릇을 슬쩍 들여다보니 절반이 그대로다.
“밥 남기면 벌 받는다.”
“어르신처럼 말하네.”
“한국인은 곧 죽어도 밥심인 거 몰라? 먹어야 감기도 빨리 낫는 거야.”
“입맛이 없어. 머리도 아프고.”
“병원은?”
“다녀왔어. 처방받은 약도 먹었고.”
나는 가만히 하연이를 응시했다.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얼굴,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기껏 조퇴해서 공부한답시고 버티더니 아까보다 더 열이 오른 모양이다.
‘처방받은 약이 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솔직히 병이 낫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따로 있다.
전문 힐러에게 치료받거나, 혹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포션을 마시는 것. 하지만 비싼 비용 때문에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꺼리는 일이다.
‘미련하긴.’
내가 쉬지 않고 일했던 이유는 가족들이 안전하게,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기 때문인데.
그 돈을 쉽게 쓰지 못하는 이유를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깟 포션 한 병에 얼마나 한다고.
‘하다못해 운기조식 한 번이면 훨씬 괜찮아질…… 어라?’
문득 스치는 생각에 멈칫했다.
잠깐만, 혹시 이게 되려나?
“잠깐 손 줘 봐.”
“응?”
“쓰읍. 손 좀 줘 보라고.”
하연이가 희귀 생물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징그럽게 왜 이래?”
“하여간 내 말이라면 죽어도 안 듣지.”
덥석.
“우리 남매야, 알지?”
“헛소리 그만하고.”
나는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공력을 끌어 올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공력 한 줄기를 손을 따라 하연이의 몸을 향해 흘려보낸 그때.
“아!”
하연이의 탄성. 녀석도 공력이 주는 이질감을 알아챈 것이 분명했다.
순간 공력이 흩어질까 염려했지만 이미 경지에 오른 진가심법은 타인의 몸에서도 순순히 통제를 따랐다.
‘이 정도면 충분해.’
간단한 시범 테스트가 끝났으니 다음은 정규 테스트다. 이번엔 공력을 하연이의 단전으로 흘려보냈다.
평소였다면 숨 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겠지만 하연이의 신체는 달랐다. 혈도는 좁았고, 내부에는 노폐물들이 가득 끼어 있었다.
‘이건 좀 힘들겠는데.’
현대와 무림. 두 곳을 따로따로 분리하고 생각해 봐도 나는 일반인을 훨씬 뛰어넘는 신체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하연이는 평범한 고등학생. 지난 19년간 축적된 노폐물들의 존재는 어쩌면 당연했다.
‘그래도 되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진가심법의 안정성과 내 통제력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하연이에게 미리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금 아파도 참아라, 알겠지?”
“뭐야, 뭔데?”
“음. 안정성이 굉장히 뛰어난 한의학 치료법이라고 해야 하나.”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한의학? 아들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그냥 좀 배웠어요.”
“잘됐네. 한번 해 봐.”
반면 하연이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웬 한의학? 난 그런 거 좀 별론데.”
“그럼 나 믿고 조금만 참아 봐.”
“엄마, 그동안 키워 줘서 고마웠어. 못난 딸은 효도도 못 해 보고 가네.”
“…….”
아니, 이 새끼가?
하마터면 공력이 흐트러질 뻔했다. 한 시간을 뛰어다녀도 땀 한 방울 안 나는데 지금은 좀 덥다.
“농담이야. 설마 하나뿐인 여동생한테 안 좋은 짓이라도 하겠어?”
“그럼 입 다물고 있어. 좀 아파도 최대한 움직임 자제하고.”
“오케이.”
깊게 심호흡했다. 지금부터 하연이의 혈도를 깨끗이 청소할 생각이었다. 청소부는 나, 빗자루는 15년의 공력이다.
“준비됐지?”
“네네, 선생님. 그런데 이거 도대체 언제 시작하나요?”
“지금 바로.”
대답과 동시에 공력을 흘려보냈다.
스아아아.
부드럽고 강한 공력의 파도가 하연이의 전신 세맥을 휩쓸기 시작했다. 하연이의 몸 안 가득 쌓인 노폐물을 씻어 내리며…….
* * *
“후우.”
“푸하.”
손을 뗀 순간 동시에 터져 나온 두 개의 숨은 각각 의미가 달랐다. 나는 안도감, 하연이는 후련함이다.
띠링.
– [운기요상]을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 [공력]이 소량 증가합니다.
시스템의 말대로 운기요상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진가심법은 공력 축적 속도가 느린 대신 안정성이 극히 뛰어난 내공심법. 쌓인 노폐물이 워낙 많이 탓에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큰 위기 없이 끝냈다.
“오빠, 이게 뭐야?”
오빠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보니 하연이도 놀라긴 한 모양이다. 나는 긴장감 때문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 내며 대답했다.
“말했잖아. 안정적인 한의학 치료라고.”
“손만 잡고 있었는데 그게 돼?”
되겠냐? 이게 다 네 오빠의 뛰어남 덕분이지.
나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어땠어?”
“처음에는 아팠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시원해졌어. 몸도 가벼워지고 두통도 사라지고. 뭐랄까.”
미간을 좁힌 하연이가 한마디로 정의를 내렸다.
“다시 태어난 느낌? 내 안에 있던 안 좋은 기운들이 싹 씻겨 내려간다고 해야 하나. 아씨, 모르겠네.”
그 정도면 제법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어쨌건 확연히 나아진 안색을 보니 해 준 보람이 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 그럼 이제 씻고 와.”
“응?”
“응은 무슨 응이야. 너 코 막혔어? 냄새 장난 아니니까 빨리 샤워부터 하라고.”
“아침에 씻었는데 도대체 무슨 냄새가 난다는…… 악!”
자신의 몸에서 진동하는 악취를 깨달은 하연이가 코를 움켜쥐고 난리법석을 피운다.
‘자연스러운 일이지.’
몸 안에 있던 노폐물들이 어디로 가겠나. 다 몸 밖으로 분출되는 거지. 이를테면 땀이라든가, 아니면…….
꾸르륵. 뽕.
뭐, 저렇게도 나오는 거다.
“…….”
그런데 노폐물 양이 많아서 그런가.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이 정도면 똥을 싼 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하는 정도인데?
“아흑.”
몸을 흠뻑 적신 땀에 더해 배에서 오는 이상 신호까지. 거의 기어가다시피 화장실로 직행하는 하연이를 보며 엄마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효과 좋죠?”
“그러게. 엄마도 어릴 때 한의원 몇 번 가 보긴 했는데 신통하다.”
“제가 잘 배워서 그래요. 혹시 한의원 가실 거면 그냥 저한테 오세요. 지금 바로 하셔도 좋고.”
“그럴까? 안 그래도 내가 요즘 소화가 잘…….”
엄마가 방긋 웃으며 손을 내준 그때였다.
부아아앙. 푸드득. 푸드득.
“…….”
“…….”
엄마가 슬그머니 손을 뺐다.
“……하연이 나오면 시작할까?”
“……네.”
우리 집은 화장실이 하나다.
* * *
쏴아아아.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후, 세상 시원한 얼굴의 엄마가 나왔다.
“몸은 어떠세요?”
“10년은 젊어진 기분이야.”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열아홉 살인 하연이도 몸 안의 노폐물을 전부 배출하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중년에 접어든 엄마는 살아온 세월만큼 노폐물의 양도 많았다. 두 시간이 넘는 운기요상으로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몸 상태가 좋아졌을 것이다.
“그치? 나도 아까까지만 해도 머리 아프고, 어지럽고 그랬는데 지금은 싹 나았다니까? 화장실 나오자마자 열 재 봤는데 정상 체온이더라고.”
하연이가 신기한 듯이 나를 바라봤다. 녀석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언제 입맛이 없다고 말을 했냐는 듯 밥을 두 공기나 비웠다.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우는 거야? 오빠 힐러였어?”
“힐러는 무슨. 그냥 어쩌다가 배운 거지.”
“어디 한의원에서 배웠는데? 가까우면 나도 한 번 가 보게.”
“……너 거기 가면 큰일 난다.”
“왜?”
“몰라도 돼. 그냥 무서운 아저씨들 많다고만 알아 둬.”
“침을 아프게 놓나?”
“……좀 그런 편이야.”
그 침이 칼침이라는 걸 알면 저 녀석이 무슨 표정을 지을까.
나는 꼬치꼬치 캐묻는 하연이를 밀어 내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인벤토리 오픈.’
익숙한 시스템 알림과 함께 반투명한 인벤토리창이 떴다.
만약 무림이었다면 조필을 쓰러트리고 얻은 전리품과 각종 병장기가 가득 쌓여 있었겠지만 이곳은 현실이다.
‘인벤토리가 통합되어 있으면 좋을 텐데.’
각각 인벤토리가 분리되어 있다는 게 생각할수록 아쉽다.
무림에 상급 포션 몇 개만 들고 가도 여벌의 목숨을 챙긴 거나 다름없을 테니까.
‘뭐, 레벨 업으로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지.’
내심 혀를 차며 주머니에서 손을 뺐을 때, 내 손바닥에는 붉은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작은 병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아이템창
[하급 포션]종류 : 치료제
등급 : 삼류
설명 : 미약한 치료 마법이 깃든 액체.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효과 : 섭취 시 신체를 회복시켜 준다. 효과는 미비하다.
어제 레이드 보급품으로 지급받은 물건이다. 딱히 쓸 일이 없어 고스란히 남았던 것을 인벤토리에 넣어 뒀었다.
‘원래는 반납해야 하지만.’
아무리 하급 포션이라도 개당 20만 원이 넘어가는 고가의 물건.
최 팀장처럼 턱턱 내어 주는 후한 고용주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나씩 드세요.”
“어? 포션이네.”
“뭘 또 포션까지……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데.”
“부작용이 있을까 봐 그래요. 지금 안 마시면 나중에 돈 더 나갈걸요.”
원기 보양 차원에서 권하는 것뿐, 사실 운기요상에 부작용은 없다.
“빨리 드세요. 하연이 너도.”
주저하던 엄마가 먼저 포션을 섭취했고, 눈치를 보던 하연이가 뒤를 이었다.
꿀꺽. 꿀꺽.
“어때?”
시원하게 원샷을 때린 하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힘이 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뭐 포션을 먹어 봤어야 알지.”
“엄마도 잘은 모르겠구나.”
“피곤하거나 아플 때 먹으면 효과가 확실히 느껴질 거예요. 한 박스 사다 놓을 테니까 그럴 때마다 드세요.”
“한 박스? 한 박스면 몇 개야?”
“큰 걸로 사면 50개?”
“하나에 20만 원쯤 하니까 50개면…… 천만 원? 오빠 미쳤어?”
깜짝 놀란 하연이가 내 팔뚝을 찰싹 때렸다.
“이번에 돈 좀 벌었다고 너무 막 쓰는 거 아냐? 그렇게 막 과소비하면 3억 그거 금방 사라져.”
“괜찮아. 요즘 잘 벌어.”
“내가 인터넷 검색해 봤는데 C급 헌터 되면 뭐 장비도 바꿔야 하고 그렇다며. 억 단위는 우습게 나가던데.”
“괜찮다니까. 어제도 40억 벌었어.”
“40억 있으면 이렇게 흥청망청…… 잠깐, 얼마라고?”
“40억.”
“…….”
순간 하연이의 몸이 딱 굳었다. 나를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녀석이 엄마를 향해 말했다.
“엄마, 오빠가 40억 벌었대.”
엄마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하연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진짜야?”
“응.”
“40억?”
“그렇다니까.”
하연이의 눈빛에 결심이 깃들었다.
“오빠. 나 학교 자퇴해도 돼?”
“…….”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하지 않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