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91
#90화
“일주일 동안 휴가요?”
– 네. 들으신 그대롭니다.
그날 저녁에 걸려 온 최 팀장의 전화는 뜻밖이었다.
일주일이나 휴가라니. 길드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문득 걸리는 사실이 있었다.
“저, 혹시 상동 길드랑 트러블이 생긴 건 아니죠?”
– 상동 길드요?
“아니 왜, 임창수 문제 때문에…….”
– 아, 그 문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길드 하우스 리모델링이 일주일 뒤에 끝난다고 해서요.
아무 일 없다니 다행이긴 한데. 길드 하우스 리모델링 때문에 레이드를 쉬는 경우도 있나?
‘일주일이나 쉰다니까 좋긴 한데.’
지난 7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 요즘 들어서는 무림과 현실까지 오가며 쉴 틈 없는 나날을 보내왔다.
솔직히 쉬고 싶……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힘내서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의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팀장님. 전 일하고 싶습니다.”
– 아, 휴가지만 급여는 정상적으로 나갈 겁니다.
“그럼 일주일 뒤에 뵙죠.”
– …….
“끊을게요. 저녁 먹으러 가야 해서.”
– ……네.
전화를 끊자 하연이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오라버니.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사옵니다.”
“……그 말투 소름 돋으니까 그만해 줄래?”
“반말 모드로 전환하려면 유료 결제가 필요하옵니다.”
“용돈 달라는 소리를 어렵게도 한다.”
신사임당 두 장을 내밀자 하연이가 씩 웃는다.
“엄마가 저녁 먹으래.”
“오, 메뉴 뭔데.”
“소불고기. 그리고 내가 끓인 콩나물국.”
“소불고기 맛있겠다.”
“콩나물국 맛있대. 엄마한테 칭찬받았어.”
“엄마표 소불고기는 배신하는 법이 없지. 늘 새로워, 최고야, 짜릿해.”
“…….”
잔뜩 열받은 여동생과 한 상 가득 차려진 엄마표 요리.
휴가가 별거냐. 집에서 실컷 먹고 자야겠다.
* * *
탁.
최민우는 전화가 끊긴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앉아 있던 김 집사가 묻는다.
“뭐라고 하던가요?”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더군요. 상동 길드에 대해서.”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청년입니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 같으면서도 상황 파악이 빨라요.”
최민우는 길쭉한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갑자기 등장한 진태경의 존재는 시간이 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수께끼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성실한 F급 헌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그가, 어제는 혼자서 B급 게이트를 쓸어 버렸다.
‘점점 강해지고 있어.’
어제부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진태경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진태경 씨 관련해서는 추가 정보가 없습니까?”
“예, 재확인을 거듭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김 집사는 일 처리가 확실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경우가 다르다. 최민우는 신중하게 입을 뗐다.
“김 집사님.”
“예, 도련님.”
“혹시…… 3차 각성자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네?”
김 집사의 눈썹이 움찔했다.
3차 각성자라니. 일평생 듣도 보도 못한 명칭이다. 만약 그런 헌터가 있었다면 아무도 ‘재각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각성은 그다음이 없기 때문에 재각성인 것이니까.
“도련님, 그건.”
난색을 표하려던 그때, 김 집사의 뇌리에 한 사람의 이름이 스쳤다.
‘진태경. 그 청년이라면 모르겠군.’
김 집사는 대격변을 온몸으로 겪은 산증인이다. 눈부신 전공을 세웠고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에도 진태경은 특별했다.
‘그 움직임들…… 실로 대단했지.’
때로는 강하게, 혹은 유려하게, 효율적인 공수 전환과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타고난 전투 감각.
진태경의 싸움을 보고 있자면 압도적이라는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3차 각성자라.’
시간은 걸리겠지만 충분히 알아볼 가치가 있다.
김 집사가 고개를 숙였다.
“알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 상동 길드 쪽 동향은 어떤가요?”
“감시원들을 풀었습니다. 아마 며칠 안에 대부분의 정보를 입수할 겁니다.”
임창수가 길드장실로 불려 가 개처럼 맞았다는 정보를 입수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감시원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이다.
“목표는 진태경 씨겠군요.”
“주요 인물로 찍어 뒀을 겁니다. 일단은 길드 전체를 샅샅이 분석하겠지만요.”
“다른 길드원들은 어떻습니까?”
“혹시 미행이 붙을 수도 있으니 언질 정도는 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김 집사가 멈칫하더니 덧붙였다.
“진태경 씨한테도 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전 오히려 상동 길드의 정보력이 우리보다 훨씬 뛰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장 알 수 없는 인물, 그리고 가장 많은 것이 드러나 있는 인물.
맑은 샘물을 보면서도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볼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최민우는 상동 길드의 힘을 빌려서라도 진태경의 정체에 근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보다, 상동 길드장이 화가 단단히 났나 봅니다.”
“그래도 많이 신중해진 것 같더군요. 예전 같았으면 진작 쳐들어와 난동을 피웠을 텐데.”
“아, 혹시?”
최민우의 반응에 김 집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동 길드장과는 안면이 있습니다.”
“악연인가요?”
“글쎄요.”
김 집사의 웃음이 진해졌다.
* * *
“무슨 일로?”
이마가 번쩍번쩍 빛나는 부동산 아저씨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집 좀 보려고요.”
“찾으시는 집이 월세? 전세? 아니면…….”
“매매요.”
“어이쿠, 젊은 사장님이셨네. 미안한데 잠시만 기다려 봐요. 내 이것만 처리하고 후딱 올게. 너무 급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뭘 처리하나 했더니, 손에 화장지를 들고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거면 빨리 처리하셔야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부동산 아저씨가 화장실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소파에서 뭐라도 드시면서 기다리고 계세요. 탁자에 모카빵. 끄으으으읍.”
푸드득. 푸드드득.
“…….”
앞으로 모카빵은 못 먹겠군.
내심 한탄하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미 틀어져 있던 TV 화면에서는 대격변 관련 다큐멘터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꺄아아악!
– 콰과광! 펑!
– 긴급 속보입니다. 현재 전국 곳곳에서 정체불명의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현 시간부로 계엄령을 선포하였으며…….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사람들, 무너지는 건물과 솟구치는 화염, 대격변의 시작을 알리는 뉴스가 차례차례 스쳐 지나가고 미국 대통령의 초췌한 얼굴이 화면을 꽉 채웠다.
– 아직 저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으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적입니다. 미합중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 전 인류의 적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몬스터가 게이트를 통과해 지구를 침략하고 있습니다.
게이트(Gate).
게이트는 말 그대로 문을 뜻한다. 마왕 아스모데우스는 차원 저 너머에서 이 문을 열고 지구에 강림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몬스터 군단과 함께.
‘그 후로는 교과서에 적힌 대로고.’
인류는 속수무책이었다. 도심지, 농촌, 산과 바다, 밀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성되는 게이트와 쏟아지는 괴물들이 살인과 파괴를 일삼았다.
게이트가 열린 후 ‘피의 일주일’이라 불리는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났을 때, 사상자는 수천만에 달했고 재산 피해는 정확한 집계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다.
– 대격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10년의 역사.
자막과 함께 다큐멘터리가 중반에 접어들 때쯤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휴, 이제 좀 살겠네.”
부동산 아저씨가 땀으로 번들거리는 이마를 닦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매매 알아보신다고 했죠?”
“네.”
“혹시 다른 곳 들렀다가 오시는 길인가? 오는 길에 부동산 많았을 텐데.”
“아뇨, 여기가 처음이에요.”
“그으래요?”
눈동자를 굴리는 걸 보아하니 호구 잡을까 말까 고민 중인 모양이다. 나는 모른 척하며 쪽지를 내밀었다.
쪽지에는 미리 적어 온 주소지가 적혀 있었다.
“가급적이면 이쪽 매물로 보고 싶은데요.”
“이 주소지면…… 안전 구역인데?”
“네.”
“매매 맞죠? 아까 똥이 급해서 잘못 들었나?”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의 눈이 슬쩍 위아래로 움직인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 시장에서 인터넷에서 주고 산 2만 원짜리 운동화. 누가 보더라도 결코 있어 보이는 차림은 아니다.
“혹시 직업이 어떻게 되시나?”
“게이트 뜁니다.”
“아, 헌터? 어쩐지. 젊은 분이 성공하셨네.”
아저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헌터는 대표적인 고수입 직종 중 하나다. 젊고 잘나가는 헌터들이 고가의 집과 차를 구매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가 한결 친절해진 말투로 물었다.
“시세는 대충 알아보셨어요?”
“오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어요.”
“운 좋으시네. 안 그래도 매물이 좀 있긴 하거든요. 어디 보자…….”
아저씨가 몸이 달았는지 바쁘게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끊고 다시 걸기를 반복하고 5분쯤 지났을까? 그가 스마트폰을 집어넣으며 내 쪽으로 돌아섰다.
“사장님한테 딱 맞는 매물을 찾았는데. 어떻게, 바쁘지 않으면 지금 가서 한번 보실래요?”
“그러죠, 뭐.”
휴가 중인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저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 * *
부우웅.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스쳐 가는 풍경을 바라봤다. 줄지어 서 있는 단독 주택과 군데군데 자리한 상가, 놀이터와 학교.
“많이 변했네…….”
내 중얼거림에 아저씨가 슬쩍 곁눈질했다.
“여기 사시던 분이에요?”
“어릴 때요.”
중학교 3학년. 열여섯 살 때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11년 전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내게는 고향인 셈이다.
“여기가 10년 전쯤 재개발돼서 많이 바뀌었을 거예요. 원래 낡은 아파트 단지였는데 30분 거리에 협회 지부 세워진다니까 엎어 버린 거지.”
“그렇군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재개발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집값이 폭등했고, 몇억씩이나 오른 전세금을 감당할 수 없었던 우리는 이사를 결심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
이사 전날 밤, 숨죽여 우시는 엄마의 모습을 봤다.
그곳이 부모님의 신혼집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그로부터 몇 년이나 지난 후였다.
“도착했어요.”
아저씨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문을 열고 나오자 마당이 깔린 단독 주택 한 채가 보인다.
“사장님이 말했던 주소가 여기예요. 마침 집주인도 없으니까 후딱 보고 나오자고.”
“아, 잠시만요.”
과거의 향수 때문일까? 낡은 아파트 단지는 이미 허물어지고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다.
‘그래도…… 아주 바뀌진 않아서 다행이네.’
재개발을 거친 후에도 남아 있는 옛 풍경들이 있다. 감회에 젖어 주위를 둘러보는 내 모습에 아저씨가 입맛을 다셨다.
“오랜만에 오셔서 좋으신가 보네. 이참에 그냥 동네 한 바퀴 돌고 오실래요?”
“그래도 됩니까?”
“계약하실 거잖아. 아니에요?”
“아뇨. 맞습니다.”
이 집은 어떻게든 사야 한다.
피식 웃은 아저씨가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럼 편의 봐 드려야지, 동네 한 바퀴 도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여기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다녀와요.”
가볍게 감사를 표한 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 길이 맞나?’
골목을 지나 어린 시절 자주 가던 슈퍼를 발견한 그 순간이었다.
“오빠 어릴 때 여기가 아지트였거든. 중학교 때 담배 막 피울 때 여기 할머니가 나이가 많아서…….”
슈퍼 앞에 주차된 번쩍거리는 외제 차. 대화를 나누던 한 쌍의 남녀가 나를 보고 멈칫했다.
아니, 정확히는 남자 쪽이 그랬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혹시 저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