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922
#921화
슈확!
공간을 가로질러 쇄도하는 빛줄기를 마주한 순간, 한 덩어리가 되어 돌격하던 삼천의 반란군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들이 유일한 활로(活路)라고 생각했던 그곳에, 피할 수 없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피하……!”
콰아아아앙!
비명과도 같은 누군가의 외침이 굉음에 파묻힌다. 목이 사라진 시체가, 사지가 뜯겨 나간 인마(人馬)가 폭발과 함께 솟아오른 먼지구름 사이에서 피 분수를 뿜어냈다.
“크아아악!”
“사, 산개(散開)! 즉시 산개하여 돌격하라!”
“멈추지 마라! 멈추면 죽음뿐이다!”
무수한 비명들 사이로 들려오는 다급한 명령.
극심한 혼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반란군들은, 아직 건재한 수뇌부의 지휘에 덜덜 떨리는 두 다리에 억지로 힘을 불어넣었다.
맞다.
이곳에서 멈추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미쳐 날뛰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이상, 그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으아아아아!”
“돌격! 돌겨어어억!”
핏발 선 눈동자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물든 얼굴로, 살아남은 반란군은 발악하듯 함성을 내지르며 나아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날아들 것 같은 강기(罡氣)의 화살이 자신만은 피해 가길 간절히 바라며.
운 나쁘게 선두에 선 이들의 몸뚱어리를 방패막이 삼아.
‘제발, 제발!’
그리고 악문 잇새 사이로 끊임없이 맴도는 간절한 부탁과 함께 재차 돌격을 이어 가는 그들의 앞을, 어느샌가 들이닥친 휘황한 빛줄기가 가로막았다.
아니, 휩쓸었다.
콰앙! 콰드드득!
지축이 뒤흔들린다. 솟아오른 먼지구름이 핏물을 머금어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그 참혹한 광경을 응시하는 누군가의 시선은, 계속해서 활시위를 당기는 그 손길은 무서우리만치 침착했다.
‘사백 보.’
지이이잉.
거대한 활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주인의 공력을 머금어 찬란하게 빛나는 시위와 화살은 그 어떤 궁사(弓師)도 흉내 내지 못할 속도와 위력을 발산했다.
바로 지금처럼.
퉁, 슈확!
다시 한번 휘몰아치는 광풍(光風)과 함께, 이미 예정된 죽음과 비명이 적들을 덮쳤다. 강기로 이루어진 화살이 한 번 쏘아질 때마다 수십의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사그라졌다.
‘삼백 보.’
다시.
‘이백 보.’
또 다시.
콰과과과광!
가까워질수록 시체가 쌓였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뒤바뀐 선두의 반란군들은 이제 광인처럼 울부짖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활로인 동시에, 사지(死地)를 향해.
이 커다란 장기판의 말이 되어 끊임없이 나아가고, 그렇게 생애 마지막이 될 휘황한 빛과 마주했다.
콰드드득!
사백 보의 거리가 절반으로 좁혀지기까지 몇이나 죽은 것일까.
또 남은 이백 보의 거리를 지우기 위해서 몇이나 더 죽어야 하는 것일까.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대한 답은 그 누구도 해 줄 수 없었다.
빠져나가는 생명을 느끼며 쓰러지는 이들도, 그런 동료를 뒤로하고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이들도.
그리고 수하들을 앞세운 채, 쉼 없이 돌격을 부르짖는 수뇌부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황제를 사로잡는 자, 열후에 봉……!”
퍼엉!
강렬한 파공성과 동시에 뚝 끊인 외침.
찰나의 순간, 안장 위에서 쏘아지듯 튕겨 나간 지휘관의 몸뚱어리가 피 웅덩이에 처박혔다.
철퍽.
“으헉!”
“표, 표기장군(驃騎將軍)께서……!”
뒷말은 들려오지 않았으나, 핏물에 잠긴 채 미동조차 없는 표기장군을 보며 죽음을 떠올리지 않는 이들은 없었다.
볼 것도 없는 절명(絶命).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강력한 병권을 쥐고 있던 군부의 실력자는 그렇게 죽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비참하게, 동시에 하나의 의문을 남긴 채.
‘어떻게?’
주위에 있던 수뇌부들은 순간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도무지 화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빛줄기는 조금 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누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적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린 그때, 누군가의 나직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노부가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이런 염병할 판을 벌인 놈들을 뭐라 불러야 하느냐?”
또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뭐라 부르긴요. 완전히 개새끼죠.”
“그럼 이 상황에서도 뒤로 빠져 있는 놈들은?”
“음. 씹새끼?”
“두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한다면?”
“사자성어로 개씹새끼라고 합니다.”
“개씹새끼, 개씹새끼들이라. 그거 아주 혀끝에 착 감기는구나.”
앞도, 뒤도, 양옆도 아니다.
석상처럼 굳어 버린 수뇌부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머리 위, 허공을 밟으며 우뚝 서 있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동시에 불길한 직감을 떠올렸다.
어쩌면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이 광경이, 저들의 목소리가 생애 마지막으로 보고 듣는 것이 되리라는 사실을.
“자, 잠깐. 지금이라도 우리를 돕는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쉭.
바람이 불었고, 그뿐이었다.
분명 그뿐이어야 했다.
그런데 왜, 어째서 정신이 흐릿해지는 걸까.
분명 자신들의 머리 위에 서 있던 것은 두 명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런 개…… 같은.”
누군가의 입술 사이로 쥐어 짜낸 음성이 흘러나온 그 순간.
서걱.
몸속 깊숙한 곳에서, 뒤늦게 깨어난 죽음이 기지개를 켰다.
이미 보이지도 않은 속도로 스쳐 지나간 창날의 흔적을, 희미한 붉은 실선으로 드러냈다.
스륵, 푸화아아악!
몽글몽글하게 맺힌 핏물이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주인의 의지를 배반한 목이, 팔과 다리가, 뼈와 살이 분리되고 미끄러진다.
허물어지는 시신들을 등 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창을 든 청년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투두두둑!
어두컴컴한 하늘 속 쏟아져 내리는 붉은 비를 맞고 있던 청년, 아니 진태경은 한참 늦은 대답을 건넸다.
“돕긴 뭘 도와. 너희 같은 놈들은 그냥 뒈지는 게 돕는 거야. 이 개씹새끼들아.”
“……!”
“……!”
이 참혹하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본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모든 것이 끝났음을 깨닫고 절망했다.
하나같이 화려한 복장을 한 그들은 이미 대(代)를 이을 만큼 암천과 동천마군에게 충성을 맹세한 거물들이었고,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이들이었으니까.
‘끝났다. 완전히.’
수백의 호위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담담한 얼굴로 창날을 늘어트린 진태경과 여전히 허공에 우뚝 선 적천강을 보며, 그들은 비로소 불길한 직감이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이 거대한 역모도, 자신들이 오랜 세월 누려 왔던 부귀영화도 이제 끝장이다.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모진 고문으로 끔찍하게 고통받다가 거열형(車裂刑)에 사지가 찢겨 나가는 대신 저 강호의 무뢰배에게 빠른 죽음을 선사받을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아니, 그러리라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 적천강의 한 마디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가장 윗대가리로 보이는 놈들은 살려 둬라. 금광(金光)인지 폐광(廢鑛)인지는 모르겠지만, 캐면 뭐가 나올지 모르니 곡괭이질 정도는 해 봐야지.”
“……!”
“……!”
눈동자에 깃든 경악과 체념이 공포로 물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고, 그 짧은 순간의 끝에는 진태경으로부터 비롯된 열 줄기의 파공성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쉬쉬쉬쉭!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품에 간직하고 있던 독단(毒團)을 꺼낼 시간도, 허리춤의 단도로 목을 그을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투두둑!
느껴진다.
순식간에 공간을 가로지른 지풍(指風)에 뻣뻣해지는 전신이. 정신과 몸을 짓누르는 깊은 절망 속에서 천천히 기울어지는 세상이.
스륵, 쿵!
물 먹은 통나무처럼 쓰러지는 그들의 두 눈동자에, 어느새 사방에서 휘날리는 황금빛 깃발이 틀어박혔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용의 위로, 어두운 하늘을 덧칠하며 쏟아지는 무수한 화살촉도 함께.
솨아아아아아.
일천의 연노병(連弩兵)이 퍼붓는 강철의 소나기가, 남아 있던 반란군들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푸푸푸푸푹!
피로 물들었던 연회의 끝을 알리는 파육음이, 고통에 찬 비명이 쉬지 않고 울려 퍼지는 힘찬 북소리와 뒤섞였다.
핏물처럼 진하고, 끈적하게.
둥. 둥. 두웅.
* * *
일각(一刻).
그것이 물경 삼천에 달하던 반란군이 모두 궤멸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무수한 화살비와 함께 대연회장에 진입한 황실 군대의 기세는 이 길고도 참혹했던 연회의 마침표를 찍기에 충분했다.
“역도들은 들어라!”
“역도들은 들어라!”
“지금 즉시 무장을 해제하고 투항하라!”
“지금 즉시 무장을 해제하고 투항하라!”
강력한 공력을 머금은 외침이 연달아 울려 퍼진다.
마치 한 사람이 외치는 것처럼 똑 닮은 목소리와 어조로 투항을 권유하는 쌍둥이 무장의 모습에, 살아남은 반란군들은 마지막 희망마저 잃어버린 듯했다.
툭, 투둑.
철컹.
피로 얼룩진 갑옷의 이음새를 풀고, 금이 가고 부러진 병장기를 내던지듯 내려놓는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를 투항의 물결은 이내 파도가 되어 대연회장을 휩쓸었다.
“항복, 항복하겠소.”
“제발 목숨만은…….”
혼이 빠져나간 듯한 눈과 표정.
사라진 한쪽 팔을 부여잡고 목숨을 애걸하는 자도, 더 이상 뒷걸음질 칠 수 없는 낭떠러지 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자도 있었다.
푹.
“커……헉!”
억눌린 단말마와 함께 앞으로 기울어지는 몸뚱어리.
이내 힘없이 허물어지는 이름 모를 반란군의 얼굴에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과, 이 지옥에서 탈출하며 얻은 일말의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끝이로군.”
혼잣말 같은 적천강의 희미한 목소리에, 나는 애써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끝났다.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목숨을 집어삼킨 이 거대한 전투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그러나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죽은 자들은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났으나, 죽지도 살지도 않는 괴물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었으니까.
더불어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한 정리 역시 남아 있었으니까.
철벅.
누군가의 발걸음이 피 웅덩이를 밟는다.
가볍고 사뿐한 걸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끈적한 핏물을 보보(步步)마다 아로새기며 다가오는 그녀를, 나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응시했다.
소교(小嬌).
아니, 궁성(弓星).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던 여자.
첫 만남에는 황제의 충복을 연기했고, 두 번째 만남에는 암천의 가면을 뒤집어썼으며, 세 번째 만남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드러낸 여자.
그녀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소교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고양이 같은 발걸음으로, 조금 일찍 자신의 정체를 밝혔더라면 죽지 않았어도 되었을, 지면에 널브러진 무수한 시신을 가로지르며.
스아아아.
칼날과도 같은 기운이 전신에서 솟아오른다. 몇 걸음 앞에서 멈춰선 궁성이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 불현듯 입을 열었다.
“그래, 너였구나.”
무슨 말일까.
그 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내가 머뭇거리던 그때,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 무신(武神)이 말했던, 선택받은 자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