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94
#93화
‘이런 아마추어 자식들.’
홍우진은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지난번처럼 고양이의 몸에 들어갔다면 털을 바짝 세우고 하악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손톱보다도 작은 쌀벌레. 냉장고 밑 틈새에 숨어 꿈틀거리는 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분노 표출이었다.
왜애애앵.
‘저 새끼 저거, 또 들어오네.’
분노의 대상은 끊임없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파리였다.
어느 놈인지는 몰라도 나름 조심한다고 한 마리씩만 슬금슬금 들어오긴 하는데, 오히려 진태경의 경계심만 돋우는 꼴이다.
“아오, 이놈의 파리.”
후웅. 찍!
뻔한 최후. 홍우진은 혹시라도 진태경이 알아챌까 봐 몸이 달았다.
‘꼭 저런 놈들이 상도덕도 없는 주제에 머리까지 나빠요.’
어지간한 헌터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겠지만 그는 바로 알아봤다.
저 파리는 마법사가 조종하는 패밀리어(Familiar)라는 사실을. 같은 마법사만이 느낄 수 있는 매우 미약한 마나가 그 증거다.
‘누구한테 고용된 놈이지? 역시 상동 길드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 의뢰는 당장 때려치워야 한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는 프로니까.
신성한 업무 공간에 훼방꾼이 끼어드는 일은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도…….’
아무리 일을 잘 처리하더라도 결국 성질 급한 의뢰인이 풀어 놓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릴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요즘 파리들은 다 저러냐?”
“그,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10만 원 줘.”
“줘야지. 주긴 주는데…… 저 파리 좀 이상하지 않아?”
젠장, 이렇게 될 줄 알았지.
홍우진은 욕을 삼키며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꿈틀꿈틀,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더 깊은 곳으로 기어가던 그때였다.
찌릿.
‘……어?’
그는 몸이 붕 뜨는 듯한 낯선 감각에 사로잡혔다. 패밀리어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뭐지? 이번 패밀리어가 너무 작아서 그런가?’
찰나에 불과했지만 홍우진은 찝찝함을 감출 수 없었다. 순간 탐지 마법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법은 절대 아니야.’
진태경이 비(非)마법 헌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차피 돈만 있으면 마법 장비를 구할 수 있는 세상 아닌가?
하지만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는 법. B급 마법사인 그가 탐지 마법을 구분하지 못할 리 없다.
‘순간적으로 연결이 약해진 거겠지. 맞아. 분명히 그럴 거야.’
단순한 착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진태경의 반응이었다.
“날개를 다쳐서 그런가, 파리가 어째 비실비실하네.”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다시 거실로 나온 진태경이 소파에 드러누웠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거리기를 잠시, 웃음소리 대신 요란한 코골이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드르렁. 드르렁.
그제야 홍우진의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그럼 그렇지. C급 헌터, 그것도 얼마 전까지 F급이었던 놈이 뭘 알겠어. 이틀 전에 있었던 일도 전부 우연이 분명해.’
이틀 전, 고양이를 패밀리어 삼아 진태경을 관찰하다 놀랐던 일이 아직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 후로도 자꾸만 신경 쓰였는데 이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런 허접한 패밀리어도 못 알아챌 정도면, 뭐. 말 다 한 거지.’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저 게으른 놈이 도무지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건데…….
‘이제는 조금 더 과감하게 감시해야겠어.’
홍우진이 하고 많은 생명체 중 쌀벌레를 패밀리어로 골랐던 건 진태경에 대한 일말의 경계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작고 느려 터진 벌레의 몸에서 빠져나가도 될 듯싶었다.
‘내일은 다른 모습으로 만나자고, 진태경.’
팟.
홍우진은 링크를 해제했다. 냉장고 틈새에 숨어 있던 그것은 더 이상 패밀리어가 아니다. 그저 작고 연약한 쌀벌레에 불과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드르렁…….
진태경의 코골이가 서서히 잦아들더니 이내 뚝 끊겼다.
* * *
미약한 기운 하나가 사라진다. 감각을 총동원하고 있기에 느낄 수 있었던 변화였다.
‘갔나?’
기지개를 켜는 척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길이 향한 곳은 냉장고 바닥 틈새였다.
[Lv.1 쌀벌레]불과 10분 전만 하더라도 ‘패밀리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던 레벨창이다. 링크가 끊긴 지금은 아니지만.
“흐아암. 뭐 먹을 거 없나…….”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집 안을 돌아다녔다. 그러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더 이상 패밀리어는 없어.’
[기감]에 걸려드는 건 평범한 날벌레 몇 마리뿐. 그중 패밀리어는 어디에도 없다.쉬지 않고 들려오던 파리 날갯짓 소리도 뚝 끊긴 후였다.
방금 일로 놈들도 아마 뜨끔했을 테니 최소한 오늘 하루만큼은 얼씬도 못 하겠지.
‘젠장, 패밀리어라니.’
패밀리어(Familiar) 마법.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정신계 마법이다. 시전자는 패밀리어로 삼은 생물체와 정신이 연결되며 수준에 따라서는 자신의 뜻대로 조종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경험해 본 건 처음인데.’
근접 헌터라고 모든 무기의 달인이 아니듯 마법사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정신계 마법은 꽤 어려운 축에 들어간다고 들었다.
‘그런 놈들이 왜 나를?’
놈, 이 아니라 놈들인 이유는 패밀리어가 두 마리였기 때문이다. 두 놈이 한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보냈는지는 대강 짐작 가는 구석이 있었다.
‘상동 길드밖에 더 있나.’
현실에서 모종의 원한 관계를 맺은 곳이라고는 상동 길드 한 군데뿐이다. 정확히는 임창수지만.
‘자식을 건드리면 아버지가 뛰어나오는 법이지.’
냉혹하고 성질 더럽다는 A급 헌터, 임춘수.
오늘 벌어진 일이 그의 지시라면 쉽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쪽에서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이틀 전 나를 미행한 것까지는 괜찮다.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일은 참을 수 없다. 이곳은 집이고, 사랑하는 가족이 사는 곳이니까. 놈들은 내 역린을 건드린 거다.
‘이 새끼들을 어떻게 엿 먹여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하연이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혹시 놈들이 나 모르게 패밀리어로 무슨 수작질을 벌였나? 마음이 다급해진다.
“오빠.”
“왜, 무슨 일이야? 방에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
“아니, 그런 거 아냐.”
“그럼 뭔데?”
“10만 원 왜 안 줘?”
“…….”
그래. 내가 너를 너무 과소평가했구나.
* * *
다음 날 아침. 나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집을 나섰다.
지난밤 내내 [기감]으로 패밀리어의 침입을 대비하느라 눈이 뻑뻑했지만 운기조식으로 피로를 풀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일산 라페스타요.”
택시는 뻥 뚫린 도로를 막힘없이 달렸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다.
‘스토어는 몇 년 전에 한 번 와 봤던 거 이후로 처음인가?’
일산 중심가에 위치한 스토어(Store)는 멀리서 봐도 확연히 눈에 띄었다. 일단 근처의 다른 가게에 비해 압도적으로 컸고 화려했다.
거기에 다른 가게들과 다른 점이 또 있다. 입구에서 정장을 입은 경비가 손님들을 걸러 내고 있었다.
“아저씨, 우리 성인이라니까요?”
“안 됩니다.”
“성인인데 왜 출입 금지냐고요.”
“지문 인식기가 성인이 아니라고 하니까요.”
“그거 불량 아니에요?”
“아닙니다.”
“아 씨, 좀 들여보내 달라고요.”
“뭔 씨?”
경비의 말에 척 봐도 앳되어 보이는 10대 대여섯 명이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뭐요.”
“손님한테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손님? 하, 이 어린노무 새끼들이 진짜.”
경비가 피곤한 듯한 얼굴로 눈가를 문질렀다. 그는 평범한 성인 남성이 아니라 고용된 경비 헌터였다. 미성년자 대여섯이 아니라 격투기 선수가 떼거지로 와도 뚫을 수 없다.
“나한테 손님은 헌터 아니면 회원증 발급받은 민간인 성인들이야. 너네 같은 고삐리가 아니라.”
“…….”
“좋게 말할 때 갈래, 아니면 경찰 부를까?”
어딜 가나 저런 놈들이 꼭 있다. 일반인들은 접할 수 없는 온갖 물건들로 가득한 스토어에는 더더욱.
“……야, 야. 가자.”
앞에서 얼쩡거리던 놈들이 물러가고 나서야 나를 발견한 경비가 친절한 말씨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물건을 구입하려고요.”
“회원권 혹은 헌터 자격증을 제시해 주시면 됩니다.”
“여기요.”
“확인 절차 좀 걸치겠습니다.”
자격증 확인과 지문 인식을 거친 후에야 출입증이 주어졌다.
“C급 헌터님이시니 3층까지 이용 가능하십니다.”
스토어는 층마다 구비되어 있는 물품이 다르다. F급 헌터 시절에 딱 한 번 와 봤었는데, 당시 내 등급으로는 2층이 한계라 그 위로는 구경도 못 해 봤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네, 고생하세요.”
문을 통과하자 끝도 없이 늘어선 유리 진열대가 보인다.
일반적인 가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은 공간. 그러나 보이는 손님은 몇 되지 않는다.
‘하긴, 붐비는 게 이상하지.’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0.1%에 불과한 헌터들, 그리고 회원권을 발급받을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일반인들.
그들이 스토어의 주 고객이다.
“해당 상품은 국내 S사에서 제작하였으며 경보 마법이 내장되어 있어 보안에 유용…….”
“해외 M사에서 제작한 브로치입니다. 아름답고 감각적인 디자인과 실드 마법이 내장되어 있어 사모님 호신용으로…….”
열심히 고객들에게 제품을 설명 중인 직원들.
맞다. 스토어는 민간에서 구하기 힘든 고가의 마법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일종의 명품 백화점이다.
“그럼 그거랑 이거랑. 저것도 줘 봐요.”
“더 성능 좋은 거 없나? 가격은 신경 쓰지 말고 가져와 봐.”
고객 숫자는 적을지 몰라도 구매력 하나는 최강이다.
기본 수백만 원 대의 물건을 사들이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여직원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의 안내를 도와드릴 일산 스토어 김선희 대리입니다.”
“아, 예.”
지난번에 왔을 때도 정중하게 대해 줬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C급 정도 되니까 손님 접대가 제법 극진하다.
“혹시 찾으시는 제품이 있으십니까?”
“레이드 장비를 좀 사려고요.”
직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스토어에는 수많은 마법 물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고가에 속하는 것이 헌터 장비다.
더군다나 나는 C급 헌터. 중급 헌터 정도면 장비 하나만 골라도 억 소리가 나온다.
그러니 판매 직원 입장에서는 실적 쌓을 생각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3층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몸을 튼 그녀에게 말했다.
“아뇨, 2층으로 가 주세요.”
“네? 하지만 C급 헌터 장비를 구매하시려면 3층으로…….”
“괜찮아요. 제가 사려는 건 하급 헌터용 무기니까.”
살짝 어두워지는 직원의 얼굴을 모른 척하고 먼저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쥐새끼 잡을 때 쓸 만한 게 있으려나.’
인벤토리를 채워야 할 때가 왔다.
* * *
“괜찮아요. 제가 사려는 건 하급 헌터용 무기니까.”
고객의 말에 김선희 대리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판매 실적에 유난히 신경 쓰고 있는 그녀로서는 영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이번 달에 좋은 실적을 올려야 승진할 텐데.’
서울 지점에 있는 입사 동기는 벌써 팀장을 달았다. 운이 좋은 건지, 수완이 좋은 건지 걸리는 손님마다 큰손이란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이거 괜찮네요.”
“아, 네. 해당 제품은 F급 마정석으로 제작된…….”
김선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설명을 시작했다. 고객이 집어 든 것은 날이 검게 칠해진 단검이었다.
다른 무기들에 비하면 특별한 것도, 그렇다고 마법이 내장된 것도 아닌 평범한 소모품.
“가격은요?”
“현재 여름 특가 할인 중이라 52만 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음. 비싼데.”
“…….”
C급 헌터 연봉이 어떻게 되더라? 기본 수당만 몇억 아니었나? 김선희는 어이가 없었지만 묵묵히 고객의 선택을 기다렸다.
“에이, 어쩔 수 없지. 살게요. 하나 주세요.”
“……네.”
돈 아까워 죽겠다는 얼굴이 밉상 그 자체다. 김선희가 내심 욕을 삼키며 단검을 집어 든 그때였다.
“아뇨. 그거 말고요.”
“네?”
“옆에 있는 거요.”
그녀의 시선이 옆을 향했다. 보관 박스에 가지런히 정렬된 100개의 단검이 보인다.
“같은 제품입니다, 고객님.”
“알아요. 저걸로 하나 주세요.”
“……설마 저 보관 박스를 말씀하신 건가요?”
“네. 저거 한 박스 주세요. 그리고 저것도 한 박스 주시고, 저것도…….”
김선희 대리의 실적 걱정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