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96
#95화
‘후후후. 성공이다.’
홍우진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그는 표적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모든 정보를 읽어 내는 베테랑이다.
진태경의 여동생이 동물, 그중에서도 특히 고양이에 환장한다는 정보는 특히 유용했다.
“야옹아, 대답해 봐. 집 들어오니까 좋지?”
침투는 자연스러웠고, 성공적이었다. 새끼 고양이의 몸 안에 들어간 홍우진이 기쁨의 포효를 내질렀다.
미야오옹.
“꺄, 귀여워! 오빠, 방금 들었어? 들었어?”
“응. 들었다.”
“이런 귀여운 생물체를 두고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어? 사람이야?”
“그럼 내가 짐승이냐?”
문제는 진태경, 저놈이다.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고 해도 귀여운 동물, 특히 조그마한 새끼 앞에서는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기 마련인데…….
“옆으로 좀 비켜 봐. TV 화면 가리고 있잖아.”
이놈은 그딴 거 없다. 사하라 사막보다 건조한 감수성에 여동생, 진하연이 구시렁거렸다.
“어휴, 사람이 삭막해도 정도가 있지. 안 그래, 여름아?”
“여름이?”
“응. 여름에 태어났으니까 한여름. 이름 예쁘지?”
“한여름은 무슨. 덩치 보니까 3개월은 되어 보이는데 늦봄에 태어났으니까 늦봄이라고 하든가.”
“……그게 말이야, 방구야? 아무튼 얘 이름은 오늘부터 여름이야. 그치, 여름아?”
야오옹.
홍우진 입장에서는 진하연이 일등 공신이다. 덕분에 일이 술술 풀리고 있었다.
“꺄악! 대답했어! 여름이 방금 언니한테 대답한 거 맞죠? 그렇죠?”
미야옹.
“으헉, 내 심장!”
후후, 다루기 쉬운 녀석 같으니라고. 몇 번 울어 주기만 해도 아주 자지러진다.
‘이래서 여고생들이란…… 아니지, 내 패밀리어 선택이 탁월했던 거지.’
홍우진이 흐뭇하게 웃고 있던 그때.
멀뚱히 TV만 보고 있던 진태경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걔 수컷 아냐?”
“응? 그거야…….”
“아직 모르지?”
“그러고 보니 확인을 안 했어.”
“까 봐. 확인해 보자.”
어라?
일이 요상하게 돌아간다. 비록 몸은 고양이지만 홍우진은 혈기왕성한 청년. 진태경의 커다란 손이 다가오자 문득 수치심이 몰려왔다.
‘더러운 사내놈이 내 거기를 본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홍우진의 몸은 아니다. 종(種)이 다른 만큼 신체 구조도 다르다.
그러나 패밀리어 마법은 시전자와 패밀리어가 모든 것을 공유한다. 그렇다 보니 기분이 더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절대 안 돼!’
홍우진은 황급히 진하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야오오옹.
“어머, 얘가 싫어하는 거 같은데?”
“원래 세상이 그래. 하고 싶은 거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여름이는 고양이잖아.”
“고양이도 마찬가지야. 뜨신 사료에 간식으로 통조림 하나라도 얻어먹으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저런 미친놈. 고양이 성별 한번 확인해 보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네. 홍우진은 이를 갈며 유일한 희망인 진하연에게 매달렸다.
그녀의 팔에 온몸을 비비며 애처로운 눈빛을 발사하자 진하연의 눈동자가 스르륵 풀린다.
“어떡해. 귀여워서 미칠 것 같아.”
“그래, 귀여우니까 한번 까 보자.”
“다음에 해. 애가 무서워하잖아.”
“기분 탓이야.”
“여름이가 오빠 싫어하는 것 같다니까.”
타이밍에 맞춰 신음 한번 흘려 주는 게 포인트다.
끼양. 끼으응.
“봐 봐. 맞지?”
“……그럼 어쩔 수 없지.”
“괜히 애 억지로 만지고 그랬단 봐라. 새끼 고양이들은 예민해서 신경 써 줘야 한단 말이야.”
됐다. 당장 위기는 넘겼다. 진태경 이 녀석, 세상 혼자 사는 또라이 같아도 가족에게는 약한 놈이었다.
이미 상동 길드 측에서 건네준 사전 정보를 모두 숙지한 홍우진은 자신이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래서 정보가 중요하지. 넌 나한테 이미 걸려들었어.’
그러나 홍우진이 차마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동생아.”
“응?”
“용돈 더 안 필요하니?”
“……지금 나를 돈으로 매수해서 우리 여름이를 막, 농락하겠다 이거야?”
“어. 10만 원.”
“콜. 그 대신 너무 싫어하지 않게 살살 해야 돼?”
“내 방 책상에 지갑 있으니까 가져가.”
“꺅!”
미야옹?
총알처럼 사라지는 진하연의 뒷모습에 홍우진은 어이없는 마음을 담아 울음을 토해 냈다.
귀여워서 미칠 것 같다며? 우리 여름이라며?
‘저런 되바라진 것을 봤나.’
언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것처럼 굴더니 고작 10만 원에 우리 여름이를 버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에 한탄하고 있을 틈 따위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자, 이제 나랑 놀자.”
덥석.
번개 같은 속도로 사지를 결박한 진태경의 징글맞은 웃음.
홍우진은 절박한 심정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놔! 놔, 이 새끼야!’
하악! 하아아악!
털을 바짝 세운 하악질 소리에 진태경의 지갑을 뒤지던 유일한 희망이 반응했다.
“오빠!”
“어, 10만 원 더 빼 가라.”
“고마워!”
야, 야!
유일한 희망이 자본주의의 노예로 타락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진태경의 뜨거운 숨결이 훅 밀려왔다.
“우리 여름이, 고추 좀 볼까?”
절체절명의 순간.
‘링크(Link) 해제!’
미야오오옹!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새끼 고양이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어딘가에서 눈을 뜬 홍우진이 숨을 토해 냈다.
“푸하악!”
헌터 일을 시작하고 크고 작은 백여 건의 의뢰를 처리했지만 지금처럼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은 처음이다.
소름이 오소소 돋은 팔뚝을 내려다본 그가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우욱.”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갑작스러운 링크 해제의 부작용이다. 미리 준비해 놓은 포션을 냉수처럼 들이켜고 나서야 홍우진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진태경, 이 개새끼 진짜…….”
처음으로 의뢰를 받은 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 * *
[Lv.2 고양이]“갔네, 갔어.”
나는 혀를 쯧쯧 차며 새끼 고양이를 놔주었다. 3개월이나 됐을까.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보다 작은 녀석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미야옹.
내 방을 나오던 하연이가 그 광경을 발견했다.
“우리 여름이한테 못된 짓 한 거 아니지?”
“그 여름이를 20만 원에 팔아넘긴 게 너고?”
“……흠. 흠.”
“됐다. 어휴, 주워 와도 꼭 저런 걸 주워 와서.”
“뭐래, 얘가 얼마나 귀여운데.”
“그게 아니라…… 아니다. 말을 말자.”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길고 복잡한 얘기다. 설명해 줄 생각도 없고.
어떤 음흉한 놈이 고양이 몸 안에 들어가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고 말해 봐라. 얼마나 불안해할지 안 봐도 뻔한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가족들이 알아서는 안 된다.
‘어차피 나도 허락한 일이고.’
패밀리어를 집에 들인 이유는 하연이가 부탁해서, 엄마가 허락해서가 아니다.
‘내가 원해서지.’
누구의 의뢰인지는 몰라도 놈들은 당장 쫓아낸다 해도 계속해서 시도할 것이다.
패밀리어의 형태가 지난번처럼 벌레든, 오늘처럼 고양이든 그건 상관없다.
내가 패밀리어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으며, 언제든지 쳐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분명 이 근방이야.’
집으로부터 최대 500m. 그 안에 패밀리어를 조종하는 마법사가 있다. 그놈을 털면 분명히 연결 고리가 나올 거다.
‘일단 아구창에 주먹 한 대 꽂고 물어봐야지.’
어차피 불법으로 민간인 사찰을 한 놈이니 때려도 신고 못 할 게 뻔하다. 제대로 손봐 줄 생각에 벌써 주먹이 근질거렸다.
‘감히 누구 집에서 깔짝대?’
오랜만의 휴가까지 방해받고 심지어 이 자식들 덕분에 쓴 돈도 3억이 훌쩍 넘어간다. 여러모로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잔뜩 구겨진 얼굴로 TV를 보고 있는데, 하연이가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오빠, 화났어?”
“아니. 화날 게 뭐가 있어.”
“내가 미안해.”
“……왜 이러냐? 무서워지려고 하네.”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패밀리어를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더 놀랐다. 얘가 이런 말도 할 줄 알았나?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어디 아파?”
“아니 뭐, 그냥.”
“그럼 배고파?”
“그게 아니고…….”
뭔가 말하려던 하연이가 멈칫한 순간, 어디선가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니고. 엄마는 잠깐 볼일 보러 나가셨고.
“너 배고프지.”
“음, 살짝?”
“그래, 배고파서 헛소리까지 나오는구나. 내 지갑 어디 있는지 알지? 너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진짜?”
“응. 10만 원 한도 내에서.”
“와, 돈 벌더니 통 커졌네. 우리 오빠.”
살다 살다 우리 오빠 소리도 들어 보는구나. 하연이가 중학생일 때 이후로 처음 듣는 말이라 소름이 돋았다.
“너 패밀리어지, 이 새끼야!”
“무슨 헛소리야. 암튼 그럼 10만 원 선에서 막 시킨다?”
“어, 아니네. 그래. 다 시켜.”
“남은 돈은?”
“……너 나한테 돈 맡겨 놨니?”
“다다익선.”
당당한 하연이의 모습에 기가 찼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
지금까지 용돈 달라는 소리 한번 없던 녀석이다. 입고 다니는 옷이나 평소 상태만 봐도 길거리에서 종종 마주치는 또래 애들에 비하면 한참 수수했다.
‘애늙은이 같은 녀석.’
생각해 보면 하연이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쉽게 울지도 않았고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적었다. 지금 같은 성격이 된 것은 오히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다.
가끔은 어리광을 피워도 될 텐데……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훨씬.’
그래서 그런가? 녀석의 행동과 말이 하나도 얄밉지 않다. 오히려 기특하고 기뻤다.
“그래, 다 가져라, 다 가져.”
“진짜?”
“어.”
내 말에 하연이가 방긋 웃었다.
“다행이다. 괜히 미안할 뻔했네.”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아까 오빠 지갑에서 30만 원 빼 갔거든.”
“……어?”
“그런데 오빠가 10만 원 선에서 먹고 남은 거 다 가지라고 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네.”
“잠깐만, 내가 20만 원 가져가라고 하지 않았냐?”
“우발적 사고였어.”
“……우발적 범죄 아니냐?
아까 했던 말 취소.
콧노래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얄밉기 짝이 없다.
* * *
상동 길드 보안팀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고양이 패밀리어?”
“네, 확실합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한 사람은 보안팀 소속이자 길드 유일의 패밀리어 마법사다. 헌터 등급은 C급에 불과하지만 희귀한 정신계 마법사라 보안팀의 핵심 멤버이기도 했다.
“표적의 여동생이 고양이 덕후랍니다. 빈틈을 잘 노렸어요.”
“분위기 파악 안 되냐? 지금 내 앞에서 그 새끼 칭찬이 나와?”
“죄, 죄송합니다.”
“1팀장님이 그러더라. 홍우진이가 전화해서 우리 때문에 바로 들킬 뻔했다고 지랄했대.”
“…….”
“뭐 따지고 보면 그 새끼도 우리 편이긴 하지. 근데 프리랜서한테 밀리면 되겠냐? 길드장님이 각별하게 신경 쓰고 계신 거 몰라?”
이번 일에 투입된 인원은 그를 포함해 총 여섯. 그중 하나는 패밀리어 마법사고 나머지 넷은 추적과 은신에 특화된 근접 헌터들, 마지막으로 팀장 본인은 B급 헌터였다.
“너희가 뭘 착각하나 본데…… 우리 C급 헌터 하나 털어 보자고 온 거 아니다.”
보안팀장은 험악한 얼굴로 팀원들을 응시했다.
이번 건은 길드장이 직접 지시한 일이다. 무조건 지시한 것 그 이상의 성과를 내야만 했다.
“잘하자. 이거 길드장님 직통이야. 너희 여기서 끝날 거야? 보너스도 받고 승진도 해야지.”
팀원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보너스와 승진이 가장 간절한 사람이 바로 보안팀장이다. 은퇴 시기가 슬슬 다가오는 중년 가장의 히스테리는 이제 와선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너.”
보안팀장이 패밀리어 마법사를 지목했다.
“너도 고양이 해.”
“고양이요? 그건 이미 저쪽에서 했는데.”
“그럼? 괜히 컨트롤도 안 되는 초소형 패밀리어로 발연기 하다가 지난번처럼 뒤질래?”
“…….”
“시키는 대로 해. 여자애가 고양이 덕후라며?”
까면 까야지, 별수 있나. 한바탕 성질을 부린 보안팀장이 나간 뒤 패밀리어 마법사는 곧장 스마트폰을 켜서 검색을 시작했다.
틱. 틱. 틱.
[일산 고양이 분양]“……이것도 영수증 처리해 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