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977
#976화
등 뒤에서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한 줄기의 섬뜩한 기운을 인지한 그 순간, 북천마군은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돌아서며 창을 휘둘렀다.
콰아앙!
거대한 충돌.
그러나 창날에 실린 미증유의 기운이 빛의 화살을 집어삼키는 광경 앞에서도, 북천마군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를 향한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까.
슈화아악!
바람이 갈라졌다.
칠흑처럼 어두컴컴하던 허공이, 그 너머에서 들이닥치는 십여 개의 빛줄기를 바라보는 북천마군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궁성(弓星)-!”
분노가 실린 일갈을 터트리며,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음을 깨달은 북천마군은 창을 내뻗었다.
그의 손에 들린 창날이 나아가는 궤적을 따라 공간이 일그러졌다.
콰아아앙!
드드득!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치는 공간 속, 굉음과 함께 터져 나온 막강한 충격파가 반경 십여 장을 휩쓸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비좁은 협곡을 집어삼킨 그 거대한 먼지구름 사이로, 두 줄기의 바람이 불었다.
무더운 한여름 낮의 그것보다 뜨겁고, 머나먼 서쪽 너머에 펼쳐진 열사(熱砂)의 사막보다 숨 막히는 열기를 간직한 바람이.
화악.
순식간에 불어닥친 그 열풍(熱風)을, 북천마군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보았다.
섬광 너머로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같은 뿌리에서 자라나, 각기 다른 색의 화염이 이글거리는 두 개의 주먹을.
고오오옹.
멸염신권(滅炎神拳).
공간을 불사르며 나아가는 끔찍한 열기를 직시하며, 북천마군은 온 힘을 다해 창날을 내뻗었다.
구구구구궁!
그 끝에, 아득한 섬광이 있었다.
* * *
모든 것은 찰나의 순간에 시작되고, 끝났다.
반고(盤古).
한 자루의 도끼로 세상을 갈랐다는 태곳적의 거인이 한껏 숨을 들이쉰 것처럼 온 사방의 공기가 팽팽하게 조여들었고, 이내 모든 것을 터트리고 밀어 냈다.
구구구궁!
이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폭발? 아니면 재앙?
진위경을 비롯한 산서인들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지금껏 겪어 본 적 없는. 아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압도적인 기운에 짓눌린 채 자신들을 휩쓸어 오는 그 거대한 힘의 파도를 바라볼 뿐이었다.
쿠궁, 콰아아아아!
세상이 뒤집혔다.
보이지 않는 파동에 휩쓸려 튕겨 나가려는 신형을 붙잡기 위해, 산서인들은 서로를 지탱하고 각자의 날붙이를 지면 깊숙이 박아 넣었다.
귀가 먹먹했다.
본능적으로 일어난 경외와 공포가 그들의 전신을 옥죄었다.
정확히는 이 거대한 충격파를 불러온 원인이자 이유라 할 수 있는, 몇 사람을 제외한 모두를.
스악.
창날이 공간을 갈랐다.
눈과 귀로 파악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에서, 진태경과 적천강은 창날을 따라 쏘아진 강기를 피하며 주먹을 뻗었다.
퍼어엉!
끔찍한 열기와 함께 터져 나가는 공기.
그러나 뒤늦게 울려 퍼진 파공성보다 앞서 쏘아진 화염이 공간을 휘감았을 때, 북천마군의 신형은 이미 그들의 머리 위를 덮쳐 가고 있었다.
슈확!
비스듬히 내리그어진 창날.
진태경이 신형을 비튼 그때, 창날에 실린 강기가 더욱 크기를 부풀리며 그의 어깻죽지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서걱.
‘베었다.’
순간 북천마군의 뇌리에 떠오른 확신이었고, 틀림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지금 막 그가 베어 낸 것이, 살과 뼈가 아니라 불그스름한 빛이 도는 갑옷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푸슉!
강기에 의해 갈라진 화룡갑(火龍鉀)의 틈새로 솟구치는 선혈.
불과 한 줌도 되지 않는 그 미량의 핏물만이 북천마군이 취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었고, 두 스승과 제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콰득.
진태경이 갈고리처럼 그러쥔 양손으로 창대를 붙잡은 순간, 북천마군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잠력단을 통해 극도로 향상된 신체 능력으로도, 끝없이 샘솟는 수 갑자의 공력으로도 눈앞의 핏덩이가 지닌 힘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무슨 이런 괴물이……!’
무릇 높은 곳에 이를수록 멀리 보이는 법.
하지만 광활하기 그지없는 북천마군의 세상 속에서도, 진태경의 존재는 지금껏 본 적 없는 괴물 그 자체였다.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성취.
초인(超人)이라 불리는 이들조차 훌쩍 넘어선 신체 능력에 더하여, 어째서인지 자무카를 쓰러트린 뒤부터 더욱 빠르고 강해진 움직임과 공력까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적수였지만, 지금 이 순간 북천마군의 등골을 더욱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이 젊은 괴물과 함께하는 노괴(老怪)의 존재였다.
후웅.
새벽의 찬 공기가, 그 안에 스며든 습기가 단숨에 증발한다.
무시무시한 열기를 머금은 일장(一掌)을 내뻗으며 들이닥친 적천강의 모습이, 북천마군의 눈동자를 불그스름하게 달구었다.
‘화왕(火王)……!’
더 이상 선택의 여지도, 새로운 선택지를 찾을 시간조차 없다.
북천마군은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했던 애병(愛兵)을 놓으며 땅을 박찼다.
치이익.
영혼까지 스며드는 듯한 작열통(灼熱痛).
다급하게 물러나는 표적을 쫓아 맹렬하게 솟구친 화염은 스친 것만으로도 갑옷을 녹이고 살갗을 태웠다.
그리고 찰나의 고통을 감내하며 다급하게 뒷걸음질 치는 북천마군을 향해, 그를 떠나 새로운 주인을 찾은 창날이 번뜩였다.
쉬쉬쉬쉭!
수십 개로 나뉘어 쏟아지는 창영(槍影)이 공간을 뒤덮는다.
모든 감각을 끌어올린 채 쉴 새 없이 신형을 비틀고 뒤집는 북천마군의 움직임을 쫓아, 끈질기게 달라붙는 창날의 끝에서 청백색의 화염이 솟구쳤다.
화아악, 서걱!
뜨겁다.
베어짐과 동시에 녹아내린 갑옷의 틈새 사이로 핏물이 솟구쳤다.
앞서 진태경이 흘린 것보다도 많고, 어두운색을 지닌 검붉은 핏줄기가 순간 아찔해진 북천마군의 시야를 물들였다.
불현듯 귓가를 파고든,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아직 안 끝났다.”
“……!”
“이 악물어.”
서걱, 서걱, 서걱!
쌓아 올리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으나,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이어 휘둘려진 창날에, 북천마군의 전신을 빈틈없이 둘러싸던 갑옷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철컥. 투두둑!
조각난 철갑 위로 핏물이 흩뿌려진다.
북천마군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 순간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화염에 힘없이 녹아내리고, 부서지는 것은 비단 그가 걸친 갑옷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
모용백으로서 이루었던, 북천마군으로서 이루고자 했던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어째서!’
북천마군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거대한 기운을 주먹에 담아 흩뿌렸다.
콰앙!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공간이 뒤흔들렸다.
그러나 산도 허물어 버릴 것 같은 그 일격은, 그 무엇에도 닿지 못한 채 허공을 찢어발겼을 뿐이었다.
“오래전, 네놈을 마주할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 있었지.”
화왕 적천강.
일백하고도 수십여 년을 살아온 구화산의 노괴가, 북천마군을 향해 걸음을 뗐다.
쉭.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 신형. 동시에 옆구리를 뜨겁게 달구는 거대한 열기.
화아악.
눈부신 광염(光焰)이 어둠을 집어삼킨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든 북천마군의 두 눈동자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그놈 참, 못 믿을 눈깔을 가졌다고.”
그 순간.
북천마군은 보았다.
평온한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광포한 화염을.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눈부신 불의 파도를.
콰아아앙!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 굉음이 뒤늦게 온 사방을 떨쳐 울린다.
강대한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암벽 깊숙이 처박힌 북천마군은 울컥 솟구치는 핏물을 삼켜 냈다.
‘아직, 아직이다.’
끝나지 않았다. 쓰러질 수 없다.
북천마군은 흐릿해진 시야를 느끼며, 요람처럼 전신을 감싼 암벽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니, 일으켜 세우려 했다.
충돌의 여파로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리는 무수한 암석의 파편과 희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너머, 한 줄기 섬광이 번뜩이기 전까지는.
푹, 콰드득!
청백색의 불꽃이, 그 끔찍한 열기로 뒤덮인 창날이 어깻죽지를 관통한다. 뼈와 살을 부수고 암벽 깊숙이 틀어박혔다.
“……!”
형용할 수 없는 격통에 파르르 떨리는 전신.
그러나 북천마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눈앞을 새하얗게 물들이는 고통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크아아아아악!”
퍼걱, 푸화악!
마침내 뽑혀 나온 창날. 아니, 몸뚱어리.
어깨를 관통하고 암벽 깊숙이 틀어박힌 창을 뽑는 대신, 이를 악물어 어깨를 뽑아낸 북천마군은 지면을 박차고 솟구쳤다.
휘몰아치는 먼지구름을 뚫고, 암벽과 허공을 밟으며 쏘아졌다.
자신을 죽음 끝까지 몰아세운 두 괴물을 피해서.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인 유일한 생로(生路)를 향해서.
쐐애액!
극심한 고통와 부상으로 진작 쓰러지고도 남았을 몸뚱어리도, 고작 한 줌밖에 남지 않았을 공력도 잠력단의 효능으로 잊혀진 지금.
북천마군은 혼신의 힘을 다해 나아가고 있었다.
사방에 내려앉은 짙은 먼지구름 너머에서, 이 믿을 수 없는 광경 앞에 굳어 있을 사냥감들을 생각하며.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을 떠올리며.
‘진위경.’
태원진가의 소가주이자, 오늘날의 전투를 이끈 산서성의 맹주.
그와 더불어, 누군가의 소중한 혈육.
‘놈을 사로잡는다면, 생로가 열린다.’
천하 오대 세가의 일원인 모용세가의 후계자로, 가주로 일평생을 살았다.
비록 속살은 검었으나, 거죽은 희었다.
그렇게 맹수의 이빨을 감춘 채 정파(正波)라는 울타리에서 함께 어울려 지낸 세월이 몇 년이던가.
북천마군은 소위 정파라 불리는 이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생리, 습성, 사고방식을 비롯한 그 모든 것들을.
그리고 화왕 적천강과 함께 자신의 궁지로 몰아세운 태원진가의 젊은 핏덩이가, 다른 그 누구보다 정(正)이라는 단어에 얽매인 인물이라는 것 역시도.
‘그래서다. 너희가 나를, 우리를 꺾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의 전력을 다한 전투에서 패배했고, 반드시 성공하리라 확신했던 대계(大計)는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기회는 온다.
그리고 북천마군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가 느낀 패배의 쓰라림과 적들의 환호가 가라앉기도 전에 다시 한번 모용세가의 깃발을 휘날리며 천하를 종횡할 터였다.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 숨겨 두었던 이빨을 마음껏 드러낸 채.
‘다시 돌아올 것이다. 내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북천마군은 오늘 자신이 겪은 패배감과 수모를 떠올리며 새로운 각오를 되새겼다.
지금 이 순간, 고통과 희망으로 마비되어 버린 이성이 헛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어찌하여 이런 상황에서도 적천강과 진태경이 자신을 뒤쫓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조차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 채.
그리고 마침내 흩어지는 먼지구름 너머로, 북천마군은 그토록 바라왔던 진위경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선두에서 모든 이들을 이끌었던 그의 앞에 우뚝 선 한 사람의 존재도 함께.
“궁……성.”
철벅.
북천마군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침음성.
끝없이 계속해서 나아갈 것 같던 발걸음이 피 웅덩이를 밟으며 멈춰선 그 순간, 공허한 눈빛으로 궁성을 바라보던 북천마군의 귓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뽀삐. 어디 갔니, 뽀삐.”
먼지구름을 비집고 울려 퍼지는 애타는 목소리.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안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진태경이, 북천마군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세상에, 뽀삐! 여기서 뭐 해!”
“……!”
북천마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