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98
#97화
“어머, 어서 오세용.”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콧소리와 함께 나를 맞이했다.
집에서 가까운 부동산이라 그런가? 가끔 집에 올 때 얼핏 스쳐 갔던 얼굴 같기도 하다.
“젊은 분이 오셨네. 뭐 마실래요? 커피? 율무차? 콜라?”
“커피로 주세요.”
“블랙, 프림, 아니면…….”
“블랙이요.”
“총각이 커피 마실 줄 아네.”
쉴 새 없이 다다다 쏘아 대는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수다스러운 부동산 아줌마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부동산 내부에 흐르고 있는 익숙한 기운.
바로 마나(Mana)다.
‘도청 마법인가?’
사장이 설치해 놓은 보안 마법일 확률은 거의 없다. 집도 아니고 부동산에 비싼 마법 제품을 둘 리는 없으니까.
나를 감시하는 놈들이 미리 손을 쓴 게 분명했다.
‘뭐,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
패밀리어까지 쓰는 놈들이니 도청 마법 정도야 애교다.
문제는 도대체 놈들이 몇 명이며 어디 있냐는 건데…….
“자아, 커피 나왔습니다.”
나는 예의 바른 웃음을 지으며 커피잔을 받았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진심이다.
지금부터 놈들의 근거지를 알려 줄 사람이니까.
* * *
– 그래서, 우리 잘생긴 사장님은 어떻게 오셨을까?
– 집 좀 알아보려고요.
도청 마법이 전달해 주는 음성은 또렷했다. 잠시 패밀리어 마법을 해제한 김준수와 또 다른 팀원, 보안팀장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를 바라봤다.
“저놈 얼마 전에도 부동산 가지 않았냐?”
“네, 고양시 쪽으로 갔었죠. 그때는 저희가 투입되기 전이라 1팀장님이 홍우진한테 정보 받아서 넘겨주셨고.”
“준수 말이 맞습니다. 나중에 저희가 부동산 찾아가서 캐 보니까 계약금까지 걸고 왔더라고요.”
“쟤 계좌에 지금 얼마 들어 있지?”
진태경의 계좌 현황은 이미 훤히 알고 있는 보안팀이다.
보안팀장의 말에 팀원이 재빨리 태블릿을 꺼내 보고서를 띄웠다.
“약 37억 정도 됩니다. 이 중에 30억 원은 새로운 집 매입 비용으로 나갈 거고요.”
“그거, 구입하는 거 확실해?”
“조만간 집주인이랑 날 잡아서 계약한다는 말까지 들었으니까 구입할 생각인 건 확실합니다. 조사해 보니 표적이 어릴 때 살던 동네라서 좀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더군요.”
“그렇단 말이지…….”
보안팀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곧 새로운 집에 전 재산의 대부분을 쏟아부을 놈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동네에 무슨 집을 또 알아본단 말인가?
‘심지어 길드도 부천에 있고.’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찝찝한 기분이다.
“야, 소리 좀만 더 키워 봐.”
“옙.”
세 사람의 귀에 이어지는 대화가 흘러 들어온다.
– 원하는 조건이 어떻게 되시는데?
– 월세 아니면 전세요.
– 몇 개 있긴 한데…… 알다시피 이 동네가 안전 구역에 걸쳐져 있어서 좀 비싸.
– 괜찮아요. 저 헌터거든요.
– 어머, 헌터였어? 어쩐지 몸 좋더라니. 등급이 어떻게 돼? 아, 이런 거 물어보면 좀 주책인가?
– 뭐 그럭저럭? 별로 안 높아요. C급.
– 어머, 어머. 돈 잘 벌겠네. 팔뚝 한 번 만져 봐도 돼? 오호호!
– 하하, 매물 좋은 거 보여 주시면 생각해 볼게요. 아니, 아예 싹 다 보여 주세요. 전세고 매매고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사 버려야지.
듣고 있던 세 사람은 기가 찼다.
“이 새끼 아주 신났네. 신났어.”
“오죽하겠습니까. F급으로 살다가 재각성 후 목돈 턱턱 들어오니까 가오가 확 살겠죠.”
“음, 그렇지. 한창 그럴 때지.”
다들 경험해 봐서 안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저 기분.
비싸서 쳐다보지도 못하던 명품이 우습게 느껴지고 사람들의 보는 눈이 달라진다.
“저 자식이 딱 그 상태네, 지금.”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사긴 개뿔이. 계약한 집 잔금 치르면 네 잔고로는 전세가 고작이다, 이놈아.”
“그래도 부럽네요. 쟤는 뭐 먹고 머리털이 저렇게 풍성하지?”
진태경의 치기 어린 언행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한심하면서도 피식 실소가 새어 나온다.
어느새 세 사람의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귀는 열려 있지만 라디오 방송을 듣는 기분이다.
– 여기 어때요? 전세로 하면 5억 정도? 안전 구역인 거 감안하면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내놓은 거야.
– 괜찮네요. 다른 곳은 없어요?
– 왜 없겠어, 당연히 있지. 방금 보여 준 곳 바로 옆옆 동에 매물 있는데…… 아, 여긴 얼마 전에 나갔었네. 월세였는데 조건이 워낙 좋아서.
– 아, 그래요?
– 응. 총각이 며칠만 더 일찍 왔어도 건지는 건데. 관리가 잘 안 되어 있는 대신에 월세가 쌌거든. 뭐 그거야 돈 있으면 리모델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니까.
– 그거 아쉽네요.
– 나도 아쉬워. 웬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와서 무슨 명령조로 얘기하더라니까? 지가 나한테 집을 맡겨 놨나…… 나도 기왕이면 젊고 잘생긴 총각한테 넘기는 게 기분 좋잖아. 그치?
– 어휴, 완전 꼰대였나 보네요.
– 조폭인가 싶어서 찍소리 못 했지. 몸에서도 홀아비 냄새가 진동을 해서 아주 죽는 줄 알았어. 호호호.
빠드득.
옆에서 들려오는 이 가는 소리. 김준수와 팀원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억눌렀다.
‘팀장이네.’
‘팀장이야.’
조폭 같은 인상에 홀아비 냄새. 여기까지만 들어도 보안팀장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인상이 어찌나 험악한지, 그가 처음 상동 길드에 입사했을 당시 면접관이 무서워서 더 볼 것도 없이 뽑았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다.
“저 아줌마가 미쳤나…….”
이를 바득바득 갈던 팀장이 고개를 홱 돌렸다.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두 사람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참느라 힘들어 보인다?”
“아, 아닙니다.”
“그런 사실 없습니다.”
애써 부정해 보지만 이미 빈정이 상할 대로 상한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40대 중반의 솔로인 그에게 있어 홀아비라는 말은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이었다.
“홀아비 냄새 씻으러 사우나 다녀올 테니까 오는 즉시 볼 수 있도록 녹취록 작성해 놔.”
“예?”
김준수와 다른 팀원은 어이가 없었다.
부동산에서 허세 부리는 C급 헌터와 푼수 아줌마. 두 사람의 별것 없는 대화에 무슨 녹취록까지 작성한단 말인가.
“팀장님. 이거 다 자동으로 저장되고 있는…….”
“각자 소견서도 A4 용지 한 장 꽉 채워서 준비해. 중요한 표적이니까 팀원들 의견도 수렴해 봐야지.”
“…….”
“…….”
도대체 언제부터 팀원들 의견을 물어봤다고? 그리고 그 중요한 표적을 두고 팀장이란 양반이 사우나를 간다는 게 말이 되나.
속 좁은 상관의 화풀이에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 말 못 들었어? 복명복창한다, 실시!”
“……네.”
“……실시.”
“자식들이 빠져 가지고 말이야. 팀장 알기를 아주 개똥으로 알아요.”
부하들을 노려본 보안팀장이 씩씩거리며 방을 빠져나갔다.
쾅! 아파트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남아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참았던 말을 토해 낸다.
“아니, 시바.”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에요?”
“지 인상 더럽고 결혼 못 한 걸 왜 우리한테 화풀이하냐고.”
“인상만 더럽습니까? 아줌마 얘기 들어 보니까 명령조로 얘기했다잖아요. 인성까지 글러 먹은 거지.”
“나 참, 진짜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아, 진짜 스트레스받으면 안 되는데. 머리 더 빠지는데.”
물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린 김준수가 정수리를 더듬었다. 모르긴 몰라도 잠깐 사이에 열 가닥은 빠진 것 같다.
“녹취록이랑 소견서, 어떡해요?”
“어떡하긴, 팀장 지랄하는 거 보기 싫으면 써야지. 병원 가서 진단 소견서 떼어 올래?”
“…….”
“대충 써, 대충. 패밀리어 마법 쓰느라 못 썼다고 옆에서 커버 쳐 줄 테니까.”
한숨을 푹 내쉰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팀장을 욕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송신기 너머에서는 대화가 이어졌다.
– 괜찮네요. 남향이라 햇빛도 잘 들어오고. 그 옆 동은 어때요? 설마 여기도 나간 건 아니죠?
– 응? 아냐.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최근에 나간 곳은…… 그런데 총각.
– 예?
– 팔뚝 진짜 단단하다. 세상에, 이 근육이랑 핏줄 도드라진 것 좀 봐.
– …….
* * *
“총각, 또 와. 두 번 와!”
아줌마의 아쉬움 섞인 배웅을 뒤로하고 부동산을 나섰다. 방금 그녀의 손길이 스친 팔뚝에는 닭살이 오소소 돋아 있다.
‘아줌마나 아저씨나, 철없이 나이 먹으면 젊은 애한테 치근덕거리는 건 비슷하다니까.’
끈적끈적한 눈빛에 도망치듯 자리를 떴지만 이미 부동산을 찾은 목적은 달성한 후라 별 미련은 없었다.
‘최근에 거래된 매물 확인.’
오늘은 임창수와의 레이드로부터 정확히 5일째 되는 날이다.
그 말인즉슨, 감시자들이 붙은 것은 아무리 빨라도 5일 안이라는 뜻이 된다.
‘나름 연기랍시고 티 나지 않게 돌려서 묻긴 했는데…….’
도청 마법의 존재를 아는 나로서는 다분히 의도적인 언행이었다. 허세와 사치로 똘똘 뭉친, 별거 없는 C급 헌터로 비치길 바랐으니까.
‘속아 넘어갔을지는 미지수지만.’
부동산 아줌마와의 대화는 중요한 단서였다. 나는 미리 외워 두었던 주소를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5동 901호. 4동 302호. 3동 202호.’
이 세 곳이 최근 5일간 거래된 매물이다.
기준은 우리 집. 패밀리어 마법이 닿는 범위인 최대 500m로 잡았다. 감시자들은 분명 이 안에 있다.
‘문제는 어떻게 찾아내냐는 거지.’
내 목적은 놈들을 쫓아내는 게 아니라, 잡아서 족친 후에 배후를 알아내는 거다. 섣부르게 헛다리 짚었다가는 도주할 가능성이 있다.
‘자동차에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주차장도 한번 살펴보고.’
근방의 집을 뒤지기 시작하면 낌새를 눈치채겠지만 주차장은 자연스럽게 수색할 수 있다.
산책하는 척 [기감]으로 훑어보면 게임 끝이지, 뭐.
[Lv.42 김권동]“어, 또 만났네?”
그래, 이 아저씨처럼.
나는 알은체를 해 오는 김권동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게요. 또 뵙네요.”
“부동산 가신다면서? 벌써 볼일 끝난 거야?”
“그냥 문의만 했어요. 그런데 막상 가서 알아보니까 집값이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바로 도망쳐 나왔죠.”
“이 동네가 다 그렇지, 뭐. 그래도 젊은 친구가 능력이 있네. 난 그 나이에 집에서 밥만 축냈는데.”
“능력이요? 하하.”
진짜 능력이 뭔지 알면 까무러칠걸.
내 속마음도 모른 채 따라 웃던 김권동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난 이만 갑니다. 저쪽 공원까지 돌고 와야 해서.”
“산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응? 그거야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해서 하는 거지. 그쪽도 내 나이 되면 힘들걸?”
보란 듯이 얇은 팔다리를 흔들어 보인다. 겉모습만 보면 마르고 배만 나온 중년 아저씨가 따로 없다.
‘민간인처럼 보이기는 하네.’
다른 사람이면 깜빡 속아 넘어갔을 모습이다.
하지만 42레벨이나 되는 민간인이 있을 리가 있나.
‘아마도 C급 헌터. 체형으로 봐서는 은신, 추격 계열.’
상대가 헌터라는 것만 알면 유추해 낼 수 있는 정보는 많다.
나는 김권동에게 인사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그거야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고. 하하.”
글쎄, 나는 꼭 보고 싶은데.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하하 호호 웃으면서 헤어지진 않을 거다. 지금 당장이라도 때려눕히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꾸벅.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등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맞다. 그 고양이 진짜 똑똑한 놈 같던데? 오는 길에 보니까 아직도 거기 있더라고.”
패밀리어를 잊지 말고 주워 가라는 친절한 안내 방송까지 해 준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고양이는 아까와 같은 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야옹.
그래. 형 왔다,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