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994
#993화
시스템 창 오픈.
마음속으로 그 짧은 명령어를 뇌까린 그 순간.
띠링. 띠링. 띠리링!
특유의 맑은 종소리와 함께, 마치 둑이 허물어지듯 무수한 홀로그램 창이 허공에서 쏟아져 내렸다.
– 돌발 퀘스트, [격체전공]을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당신의 [공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20의 보너스 스탯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레벨 업!
– [격체전공]은 성공확률이 매우 희박한, 그렇기에 이제는 그 어떤 무림인도 도전하지 않는 대법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두 번이나 성공시킨 당신의 인내와 대담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 희귀한 업적, [이걸 두 번이나 하네. 이걸 두 번이나 하네.]를 달성하셨습니다.
– 업적 달성 보상이 지급됩니다!
–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당신의 [인내]가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퀘스트 완료와 업적 달성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였다.
비록 실질적인 레벨 업은 한 번에 불과했지만, 격체전공의 성공으로 얻은 스탯 상승은 어마어마한 수준.
하지만 나는 빠르게 내용을 훑은 다음 손짓 한 번으로 십여 개의 메시지를 지웠다.
내가 확인해야 할 홀로그램 창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까.
– [천력마(天力魔)]의 공력을 성공적으로 흡수했습니다!
– [벽력도왕(霹靂刀王)]의 공력을 성공적으로 흡수했습니다!
– [열양지기]의 성질이 변화합니다. 당신의 몸속 깊은 곳에서 새롭게 태어난 불길은 더욱 거세고 뜨겁게 타오를 것입니다!
– 대해(大海)을 정복한 자는 천하를 오시할 것이나, 하늘과 가장 가까운 산봉우리에 오른 이는 대해마저 굽어보리라.
– 축하합니다! [중단전]이 완전히 개방되었습니다!
– [등봉조극(登峰造極)]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 돌발 퀘스트,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시작됩니다. 당신은 해당 퀘스트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 돌발 퀘스트, [환골탈태]를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 기의 수발이 매우 자유로워집니다. 그 자체로 완벽해진 근골은 탁기(濁氣)마저 거부합니다!
– 위대한 업적, [전신성형]을 달성했습니다!
– 퀘스트 완료 및 업적 달성 보상이 지급됩니다!
– 모든 능력치가 크게 향상됩니다! 자세한 세부 사항은 [상태창]을 열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30의 보너스 스탯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대량의 경험치와 명성을 획득했습니다!
– 레벨 업!
줄줄이 쏟아지는 홀로그램 창들을 확인하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런 미친.’
물론 막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은 나로서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벽력도왕 팽철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인이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대가로 내게 건네준 힘은, 그만큼 순수하면서도 거대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시스템이 전한 보상 목록은 예상했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두 번의 레벨 업과 추가로 주어진 막대한 보너스 포인트. 거기에 더해 전체적인 능력치 향상까지.
‘능력치 향상 정도는 세부 내용을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걸 다 합친다면…….’
단번에 10레벨 이상을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실제로는 그보다도 훨씬 낫다.
강해지는 만큼 레벨 업 역시 요원해지던 상황.
레벨은 높아질수록 필요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지만, 이번에 보상으로 얻은 엄청난 양의 스탯 포인트는 말 그대로 보너스였으니까.
‘빚을 졌군.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빚을.’
엄청난 보상을 얻었음에도 마음이 복잡하다.
나는 기쁨과 씁쓸함에 휩싸인 채, 당신의 모든 것을 전해 주겠노라 말하며 환하게 웃던 벽력도왕의 모습을 떠올렸다.
온 산의 국화밭이 붉게 물들고 말과 사람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던 그 날, 팔천협(八天峽)에서 쓰러져가던 무수한 희생자들도 함께.
그와 동시에 가슴 깊이 새겼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막대한 보상들은, 죽은 이들의 목숨값이라는 사실을.
‘이 빚은…… 반드시 갚는다.’
그리 유복한 삶을 살아오지 못했던 내게 있어 빚은 늘 지긋지긋한 의미였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이 빚을 전부 청산하는 그 날, 모두가 바라는 평화가 찾아올 테니까.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더라도 인내하고 극복해야만 했다.
슬픔에 주저앉거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포기 따위는 잊은 채로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격체전공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똑똑히 보았던, 짙은 뭉게구름에 가려진 그곳으로.
봉우리 위의 하늘로.
‘그래, 상단전(上丹田).’
물론 결코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중원 최고의 고수들인 삼성(三星)도, 그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적천강도 상단전이 열린 상태인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아니, 설령 이미 그 단계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저마다의 격차는 엄연히 존재하겠지.’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는 법.
나는 비좁은 개울을 넓혀 드넓은 대해로 만들었고, 구름을 찌를 듯이 높게 솟아오른 산봉우리를 올라야 했다.
지금까지는 뜻하지 않게 얻은 시스템과 수많은 기연(奇緣) 덕분에 가공할 만한 속도로 성장했지만, 그런 나조차도 구름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했다.
저 구름 위에서, 하계(下界)를 굽어보던 절대자들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만약, 그때 기세를 몰아 계속해서 몰아붙였더라면 어땠을까.’
문득 머릿속을 스친 아쉬움.
그러나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패했겠지. 그것도 아주 높은 확률로.’
그 당시의 상황에서 상단전을 뚫으려 했다면 그건 도전이 아니라 도박이다.
중단전을 완전히 개방하고 극도의 고양감을 느끼고 있던 나조차도, 본능적으로 용기와 만용(蠻勇)의 차이를 깨닫고 물러나지 않았었나.
돌이켜볼수록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쉽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아주 좋은 판단…….
‘잠깐.’
도대체 무엇일까. 이 기분은.
나는 불현듯 미간을 좁힌 채 떠올렸다.
엄청난 격통을 수반했던 격체전공의 과정과 내 것이 아닌 기억으로 비롯된 이상한 꿈을.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 순간 전신을 엄습해 오는 알 수 없는 기시감은, 그 사이 어딘가에 맞물려 깎여 나간 기억의 흔적을 알려 주고 있었다.
“판단. 좋은 판단…… 분명 어디에서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저절로 달싹이는 입술.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남의 것처럼 낯설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텅 빈 허공을 바라보며 같은 말을 뇌까리던 나는, 이내 머릿속에서 잊혀졌던 기억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다.
‘분명 누군가가 비슷한 말을 했었어. 현실이 아니라, 내 의식 속에서.’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눈동자가 따끔거린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른 탓인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니, 어느새 보이지 않은 작은 송곳이 머릿속을 천천히 파고들고 있었다.
서서히 번져 오는 두통.
하지만 나는 고통으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계속해서 뇌리를 헤집었다. 다른 커다란 기억들에 가려진 자그마한 조각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기억해 냈다.
아직은 때가 아님을 깨닫고, 구름 너머의 상단전을 뒤로 한 채 돌아서던 그때의 나를.
이내 무아(無我)의 세계로 빠져들던 내 귓가로 아스라이 울려 퍼지던 누군가의 한 마디를.
‘좋은 판단이다. 그때처럼.’
“……!”
그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이 부릅떠졌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아서?
틀렸다.
불현듯 엄습해 온, 어마어마한 격통 때문이었다.
흡.
생각지도 못한 통증을 느낀 나는 본능적으로 숨을 삼켰다. 이를 악무는 것으로도 모자라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보이지 않는 송곳처럼 조금씩 머리를 파고들던 두통은, 어느덧 약왕당주가 애병처럼 들고 다니는 대침만큼이나 거대해진 채로 머릿속을 들쑤시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새하얗게 물든 시야 속, 나는 익사 직전의 위기에 처한 사람처럼 사지를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단 한 가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뇌리의 의문만큼은 내려놓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환청처럼 울려 퍼진 그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이길래, 현실이 아닌 심상의 공간에서 내게 말을 걸 수 있었는가.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한 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그 순간 들었던 목소리는, 적천강의 것도 아니었고 벽력도왕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그 두 명의 노강호를 제외한다면, 그때의 내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머릿속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와중에도 알고 싶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이며, 어찌 우리 모두의 이목을 속이며 다가와 내게 속삭일 수 있었는지.
동시에 묻고 싶었다.
당신은 어찌 나를 알고 있었느냐고.
‘그때처럼……이라고 했다. 분명히.’
틀림없다.
나는 그를 모르지만, 그는 나를 알고 있다.
대관절 언제, 어디에서 마주쳤는지는 몰라도 우리의 만남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왜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거지? 왜?’
말에 담긴 내용만 기억날 뿐. 목소리의 높낮이와 굵기는 물론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여인인지, 사내인지. 만약 사내라면 청년과 노인 어디 즈음에 머무르고 있는지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그저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끔찍한 두통을 인내하며 대가로 얻어낸 그 순간의 감각뿐이었다.
‘왠지 모를 익숙함.’
난생처음 듣는 것처럼 생소한 동시에, 묘한 낯익음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얻어낼 수 있는 전부였다.
화악!
섬광이 폭발한다. 새하얗게 물들어 있던 시야가 서서히 걷히더니, 흐릿하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
참았던 숨을 토해 낸 나는,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고통의 시간이 마침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고통과 함께, 내게 허락된 기억 또한 한계를 맞이했다는 사실도.
‘빌어먹을.’
나는 고통의 잔재로 파르르 떨리는 손끝을 말없이 바라보다, 이내 힘주어 그러쥐었다.
으득.
환골탈태까지 거치며 이제는 철피(鐵皮)나 다름없어진 손바닥의 피부와 날카로운 손톱이 팽팽하게 맞물린다.
이상하리만치 요동치는 감정에 힘입은 탓일까.
몸 안에 잠들어 있던 거대한 기운이 들끓어 오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띠링.
– 새로운 퀘스트,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생성되었습니다.
– 당신은 해당 퀘스트의 승낙 여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 퀘스트가 강제 진행됩니다.
– 새롭게 갱신된 퀘스트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알 수 없는 목소리.
홀로그램 창에 적힌 퀘스트의 제목을 바라보던 나는,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을 열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