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 Practice Disciple RAW novel - Chapter 3
3화 : [제1장] 매화검보 3
끼이익.
상자 뚜껑이 열리며 오래된 먼지가 흩날렸다.
백리사초는 손을 저어 먼지를 걷어낸 후 상자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쳐다봤다.
장검 한 자루, 비수 한 자루, 그리고 반지 하나 이렇게 모두 세 개였다.
“아!”
백리사초가 탄성과 함께 장검부터 집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였으나 매화검선이 남긴 검이기에 절대 평범할 수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장검을 손에 쥐니 기이한 기운이 몸속에 전달되는 것 같았다.
‘매화검선께서 남긴 매화검법은 상승검술이니 이 검으로 펼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안 그래도 검이 부러져 새 검이 필요했는데 잘되었다.’
백리사초가 기뻐하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연습제자들은 대부분 기초 무공 중 하나인 삼재검법(三才劍法)을 연마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운기토납법을 익히지 못해 더는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검이 부러졌음에도 굳이 새 검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검 같은 경우 연습제자는 개인적으로 마련해야 하므로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다른 연습제자와 달리 본가에서 더 이상의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는 백리사초의 경우 수중에 돈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이제 검이 생겼으니 더는 지난 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지.’
백리사초가 허리에 검을 찬 후 다음으로 비수를 집어 들었다.
비수는 장검과 달리 근접전에 유용하며 특히 암기술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비수도 절대 평범한 것이 아니다.’
백리사초가 비수를 들고 시범적으로 밀실 벽 한 부분을 찔러 보았다.
그러자 쑥 하고 마치 두부처럼 쉽게 석벽을 뚫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말로만 듣던 금석을 무처럼 자를 수 있는 절세병기 같았다.
백리사초가 내친김에 조금 전 허리에 찼던 장검을 벽에 찔러 보니 비수와 마찬가지로 쉽게 벽을 꿰뚫었다.
석벽의 강도를 생각했을 때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흥분하지 말자. 아무리 보검이 있어도 무공을 배우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니까. 무공 구결 한 줄도 이해 못 하는 내게 보검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백리사초가 자신의 현 상황을 다시 한번 자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지난 삼 년간 그가 받은 수모는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연습교관들은 아예 그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연습제자들의 무시와 비웃음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를 비웃지 않는 사람은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는 초웅 한 사람 정도였다.
하기야 초웅 역시 힘만 좋지 무공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져 백리사초가 없으면 꼴찌 일 순위였다.
그 때문일까.
두 사람은 서로 의지를 하며 겨우겨우 연습제자 생활을 버텨내고 있었다.
비수까지 챙긴 백리사초가 마지막으로 집어 든 것은 바로 반지였다.
금색 반지는 묘하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중에 파는 반지 중에 비슷한 게 많아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장검과 비수, 반지 모두 겉으로 보기엔 대체로 평범한 것이었다.
하지만 백리사초는 기대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이는 당연한 것으로 평범한 물건이라면 매화검선이 이렇게 비밀스럽게 숨겨두지 않았을 것이었다.
‘촉감이 좋구나.’
백리사초가 반지를 매만지며 눈을 빛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지를 만지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양은 극히 미약했으나 몸 전체에 활력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머리가 더할 나위 없이 맑아졌다.
백리사초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머리가 맑아진 점이었다.
어릴 때부터 느꼈지만 머릿속 한 부분이 항상 막혀있는 느낌이 있었다.
특히 무공 구결을 이해하려 할 때 항상 그 막힌 부분 때문에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반지를 만졌을 뿐인데 그런 장애가 사라지는 것 같지 않은가.
그것은 마치 장님이 눈을 뜬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지금까지 배운 무공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연습제자들이 연마하는 운기토납법과 삼재검법 등 여러 기초 무공들의 구결들이 하나둘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미 그 구결들은 모두 암기가 된 상태였고 다만 이해를 못 해 배우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백리사초는 이 모든 게 반지의 효능 덕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반지를 통해 느껴졌던 서늘한 기운이 벌써 단전에 모여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설마 내공인가.’
백리사초가 밀실 바닥에 급히 가부좌하고 앉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반지를 왼손 약지에 꼈는데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했다.
반지를 통해 본격적으로 서늘한 기운이 몸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양은 단순히 손에 들고 있을 때보다 수백 배나 많았다.
“아!”
백리사초가 탄성과 함께 급히 운기토납법을 운공했다.
너무나 막대한 기운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단전이 폭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운기토납법으로는 무리였다.
비록 기적처럼 머리가 맑아져 운기토납법의 구결 이해와 운용이 가능해졌지만, 이는 운기토납법 자체의 한계 문제였다.
‘큰일 났다. 감당하기 힘든 기운이 계속 몸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운기토납법으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백리사초는 안색을 굳히며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려 했다.
하지만 이미 백리사초와 한 몸이 된 듯 빠지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손가락을 자르지 않는 한 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서늘한 기운은 더욱 늘어나 급기야 백리사초의 몸 전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단전에 있는 기해혈에서 그 기운들을 받아주어야 하는데 그 수용 한계를 벗어난 결과였다.
‘이대로면 일각 안에 전신 혈관이 터져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손가락을 자를 수는 없지 않은가.’
백리사초는 마음을 다잡으며 차분히 해결방안을 생각했다.
머리가 맑아져 있는 상황이라 적절한 방안을 생각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의 머릿속에 한가지 내공 심법이 떠올랐다.
매화검보에 수록되어 있던 내공 심법인 매화심공(梅花心功)이었다.
운기토납법도 거의 익히지 못했던 터라 감히 연마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실제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머릿속에 막혀있던 부분이 걷힌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기의 폭주로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머릿속도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매화심공을 운공하면 이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백리사초가 조심스럽게 구결 해석을 시도하며 매화심공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반지를 통해 들어오는 기운이 점차 기해혈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미 전신으로 퍼져 있던 기운 역시 기해혈로 모이자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그의 몸 역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반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끝이 없었다.
이는 매화심공의 초보 단계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양이었다.
‘매화검선께서 돌아가시기 전 자신의 내공을 반지에 담아 후대에 전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매화심공을 완전히 연마하기 전에 서둘러 반지를 낀 게 실수였다. 하지만 다른 설명도 없는 것을 보면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신 게 아닐까.’
백리사초는 천천히 매화심공의 운공 수준을 높이기 시작했다.
일성에서 이성, 그리고 삼성으로.
사실 이것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물론 비급에 구결 운행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있긴 했으나,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옆에 사부가 있어 지도를 해주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더구나 백리사초의 경우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운 적도 없었다.
대부분은 매화검보를 토대로 혼자서 헤쳐나가야 했다.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백리사초는 시간의 흐름도 잊고 매화심공으로 반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즉 내공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매화심공이 칠성의 단계에 이르렀다.
반지에서 흘러나오던 기운이 갑자기 중단되었다.
“아!”
백리사초가 탄성과 함께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것은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난 후의 기진맥진함 때문이었다.
긴장이 풀리자 근근이 버텨오던 육신이 휴식을 요구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반지에서 금빛 기운이 연기처럼 흘러나와 백리사초의 코와 입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반지가 방법을 달리해 내공을 백리사초 몸속으로 넣어주는 것 같았다.
스스스.
밀실 안이 금빛 기운으로 가득한 가운데 백리사초의 몸이 석자 정도로 떠올라 서서히 회전했다.
석실 안에 가득한 금빛 역시 하나도 남김없이 백리사초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으으······.”
백리사초가 힘겹게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여전히 밀실 안이었다.
철상자 안에서 얻었던 장검과 비수, 그리고 손가락에 낀 반지 또한 그대로였다.
‘매화심공을 칠성까지 운공한 후 정신을 잃었던 것 같은데, 이후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백리사초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시 가부좌하고 앉았다.
먼저 반지를 보니 더는 내공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예의 서늘한 감촉은 여전했다.
그 감촉만으로 머리가 여전히 맑았다.
그동안 무공 구결 이해 부족으로 고난의 세월을 보냈던 그로서는 무엇보다 고무적인 결과였다.
‘그래, 또 다른 기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감촉만으로 머리가 맑아지니 대만족이다. 네 녀석은 평생 나와 함께 간다.’
백리사초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다음으로 한 것은 매화심공의 정확한 화후를 측정하는 일이었다.
엉겁결에 칠성의 경지에까지 올랐지만 다시금 확인이 필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화검보에 설명된 바에 의하면 매화심공이 칠성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대략 백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하지만 백리사초는 막대한 공력을 얻게 되었고 동시에 구결 이해 능력이 최고조에 달해 그러한 백 년 세월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으음, 역시 칠성 단계로군.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더 높아지지 않았나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대신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동안 반지에 남아 있던 내공이 모두 내 몸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
백리사초가 미소를 지었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기연을 자신이 얻었음을 확실하게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지금 그의 몸속에 있는 내공은 거의 삼갑자에 달했다.
‘매화심공은 팔성부터는 깨달음의 영역이라고 했던가. 그 때문에 칠성에 머물러 있지만 매화검선께서 남긴 공력은 모두 흡수한 것 같다.’
백리사초가 기쁨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서인지 책임감보다는 기쁨이 더 컸다.
무엇보다 단숨에 절대 내공을 얻게 된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면 기뻐하실 것이 확실했다.
‘이제 남은 것은 매화검법을 비롯해 매화검선께서 남긴 실전무공들을 익히는 것이다. 그 모든 무공이 매화심공을 토대로 하는 것이라 구결 해석만 하면 될 것 같구나.’
백리사초가 차분하게 매화심공을 일주천 한 후 매화검보에 수록된 실전무공들을 떠올렸다.
얼마나 이해가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미 모든 무공의 구결에 대한 이해가 끝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깨달음의 영역인 매화심공 팔성 이상까지는 도달하지 못해 그 무공들의 위력을 극대화할 수준은 못 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놀랄 일이었다.
‘비록 지금 당장 실전에 써먹기는 어렵겠지만, 불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이해도가 거의 완벽하구나.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과제는 깨달음의 영역이라 할 수 있겠군.’
백리사초가 깨달음을 기반으로 한 무공 최고의 경지인 무형검(無形劍)에 대해 생각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안색을 굳혔다.
‘그래,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으니 일단 잠룡각으로 돌아가자. 지금 내 성적으로는 하루만 무단이탈해도 쫓겨날 수 있다. 서둘러야 한다.’
백리사초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밀실 벽 너머에서 인기척이 나며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후후후! 여기가 좋겠군. 악소소 이 계집이 비록 나이가 어려도 절대음기를 지니고 있으니, 이를 흡수하면 음양신공(陰陽神功)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