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 Practice Disciple RAW novel - Chapter 88
88화 : [제29장] 황금공자 1
[제29장] 황금공자“차 소저. 온다던 애인이 아직 왜 오지 않는 것이오? 갑자기 가짜 애인을 만들어 나의 구애를 막으려 하다가 잘못된 것이 아니오?”
황보세가 대공자 황보관(皇甫寬)의 말에 차미려가 아미를 찡그렸다.
‘이 인간이 어딜 갔지? 특실까지 잡아 놓고 돈까지 다 냈기에 약속을 지킬 줄 알았는데, 도망을 쳐? 조금 있으면 친구들이 올 텐데 무슨 망신이야.’
황보관이 말했다.
“우리는 이미 양가에서도 허락한 사이가 아니오? 이제 차 소저만 허락하면 되오. 가짜 애인이 있다고 하면 내가 겁을 먹고 오늘 이곳에 안 올 줄 알았던 것이오?”
“그분은 꼭 오실 거예요. 뭔가 중요한 일이 생겨 늦는 것 같은데, 좀 더 기다려보지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특실도 그분이 잡아 놓은 겁니다. 무엇보다 저는 황보 공자께 관심이 없답니다. 무엇보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무림 상황이 심상치 않아요. 오늘 제가 제거한 낙양사흉의 배후에 흑천방이 있다고 하고, 이미 낙양 흑도 대부분이 흑천방에 넘어갔다고 하니 어찌 사적인 일에 신경 쓰겠어요?”
“무릇 가정이 서야 큰일도 할 수 있는 것이오. 무엇보다 우리는 같은 와룡대원으로서 무림의 평화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할 사이가 아니오? 혼인하면 무림정의 수호에 소홀해진다는 뜻 같은데 그건 동의하기 어렵소.”
“아, 진짜 말씀 이상하게 하시네. 제가 싫다고 하잖아요? 그분은 꼭 올 거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그러니 이제 제발 좀 귀찮게 하지 마세요.”
차미려가 말을 한 바로 그때였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낙양객잔 특실 방문이 열리며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바로 차미려가 초대한 사람들로 남궁지약, 제갈송, 제갈수련 이렇게 세 명이었다.
황보관이 흠칫했으나 그들 세 사람 모두 와룡대원들이고 아는 사람들이라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시오.”
“하하하. 오랜만이오. 황보 공자.”
“오랜만이에요.”
“소소는 부대주 일로 바빠서 못 왔어. 오늘 무슨 자리야? 설마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혼인을 발표하는 거야?”
남궁지약의 말에 차미려가 발끈했다.
“지악! 미쳤니? 내가 사귀는 사람은 따로 있어. 오늘 그분을 소개해 주려고 다들 초대한 거야. 황보 공자께서는 이번에야말로 제게 관심을 꺼주시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차 소저. 나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소이다. 말씀하신 애인이 설사 나타난다고 해도 나보다 무공이 높지 않으면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오.”
“그분은 무공이 약해요. 아니 배운 적이 거의 없을 거예요. 대신 돈이 많지요. 저는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해서.”
“하하하. 혹시 그 사람이 상계의 인물이오? 처음에는 가짜 애인으로 생각했는데, 계속 말씀하시는 게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무릇 무림인이라면 무공 실력이 가장 중요한 법. 아무리 돈이 많아도 좋은 신랑감은 될 수 없을 것이오.”
“흥! 그러니까 제 애인과 싸워서 패배해야 더는 귀찮게 안 하겠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소. 본가에는 그런 전통이 있소. 내가 지면 두말할 것 없이 앞으로 절대 차 소저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오. 반대로 내가 이기면 바로 혼인 날짜를 잡읍시다.”
“무슨 이런 억지가 다 있어? 제갈 오라버니! 말씀 좀 해주세요. 제가 분명 사귀는 남자가 있다고 말했는데도 황보 공자가 절 계속 귀찮게 해요. 그 때문에 무공 연마에도 큰 방해를 받고 있다고요.”
“으음, 듣고 보니 난처한 상황인 것 같군. 한데 오늘 이 자리에 사귀는 사람이 오는 것은 확실한 건가?”
“네. 사정이 있어 조금 늦는 것 같아요. 곧 올 거예요. 그러니 그때까지 우리 이야기나 해요.”
차미려가 다시 시간을 조금 벌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리사초가 약속을 어길 사람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수작을 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감을 보였지 않은가.
‘내 미모에 정신을 못 차렸던 게 아니었나. 아무도 모르는 얼굴이라 가짜 애인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라 좋아했거늘. 진짜로 안 오면 나중에 가만 안 두겠다. 무공도 모르는 녀석이 감히 나를 바람맞혀?’
차미려가 가까스로 분을 삭였다.
사실 백리사초에게 약간의 관심이 생겼던 탓에 더욱더 배신감이 컸다.
하기야 아무리 가짜 애인이라고 해도 그녀 성격에 아무나 데려오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낙양사흉에게 당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어도 끝까지 태연하던 모습이 그나마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렇게 날 우롱하다니. 잡히기만 하면 다리 몽둥이를······.’
차미려가 오지 않는 백리사초에 대한 원망을 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방문이 다시 열리며 한 사람, 즉 백리사초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공자님!”
차미려가 기쁜 마음에 벌떡 일어섰다.
평소 남자 보기를 돌같이 하던 그녀로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남궁지약, 제갈수련 등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한편 백리사초 역시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보관을 제외하고 남궁지약, 제갈송, 제갈수련 세 사람은 구면이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악양에서 배를 구하는 데 도움을 줬던 제갈송은 이십 대 중반의 늠름한 사내로 변해있었고, 남궁지약과 제갈수련은 그야말로 절세미인이 따로 없었다.
‘오랜만이군.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백리사초가 미소를 지었다.
백화선자를 객잔의 옆 방에 잠시 두고 이곳으로 온 그였다.
백화선자의 치료는 하루 이틀 걸릴 것이 아니라 일단 응급조치를 한 후 깊은 수면에 들게 했다.
이후 적당한 때를 봐서 생사금침대법을 펼칠 생각이었다.
“차 소저. 미안하오. 급한 일이 생겨서 조금 늦었소이다. 다들 반갑습니다. 황금공자(黃金公子)라고 합니다.”
백리사초가 자기소개를 한 후 자연스럽게 차미려 옆에 앉았다.
차미려는 비록 백리사초가 자신이 말한 대로 새 옷을 입고 오지는 않았으나 너무나 태연한 연기에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새 옷이 아니라서 그렇지 오는 도중 백리사초가 내공으로 먼지 같은 것을 깨끗이 제거한 터라 제법 말끔해 보였다.
차미려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백리사초에게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줬다.
“제갈송이오.”
“남궁지약이라고 해요.”
“제갈수련이에요.”
“황보관이오.”
냉랭한 표정의 황보관을 제외하고 다들 반갑게 백리사초를 맞이했다.
백리사초가 비록 역용을 하고 있기는 하나 탈속한 분위기까지는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호호호. 황금공자께선 오 년가량 산속에서 수련하느라 세상 물정을 잘 모르니 여러분께서 잘 보살펴 주세요.”
차미려의 말에 제갈송이 눈을 빛냈다.
“아까는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어? 실제로 지금 보니 황금공자께선 병장기도 없고 무공을 배운 흔적이 전혀 없어 보이는걸?”
“호호. 제 말은 비장의 한 수가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누구든 우리 공자님을 건드려선 안 될 거예요. 무력을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일단 누군가가 건드리면 절대 가만있지 않는 성격이니까. 특히 황보 공자께서는 명심하세요. 황금공자께서는 무력 사용을 싫어하시니 절대 시비를 걸어선 안 될 거예요.”
“하하하. 차 소저. 어찌 하시는 말씀이 앞뒤가 잘 안 맞는 것 같소. 아까는 무공을 모른다고 했다가 지금은 또 비장의 한 수가 있다고 하고. 걱정하지 마시오. 나 역시 오대세가 출신으로 초면에 함부로 무공으로 위협을 가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황금공자라고 하셨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나는 차 소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소. 좋은 말 할 때 이쯤에서 가짜 애인 행세를 그만하는 게 어떻겠소?”
“황보 공자! 이 무슨 무례인가요?”
차미려가 고성을 질렀다.
초반에 확실히 기선을 제압해야겠다는 생각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리에는 무공이 고강한 제갈송도 있었기에 황보관이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무례가 아니라 황금공자로부터 확실한 대답을 듣고자 하는 것이오. 얼마를 주고 가짜 애인할 사람을 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칫 나중에 큰 화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말해주는 게 뭐가 그렇게 잘못되었소? 황금공자. 어서 말씀해보시오. 끝까지 가짜 애인 역할을 할 생각이오?”
“가짜가 바로 진짜요. 진짜가 바로 가짜이지요. 누가 감히 진실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으리오. 차 소저는 저의 목숨을 구해준 은공으로, 어찌 흠모하지 않을 수 있겠소? 게다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절세미인이니 어느 사내가 목숨 바쳐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소? 황보 공자 역시 차 소저를 흠모하시는 것 같은데 모든 결정은 차 소저에게 맡기도록 합시다. 차 소저가 지금이라도 황보 공자를 선택하면 나는 깨끗이 물러나겠소.”
“제가 황보 공자를 선택하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거예요. 혼자 살면 살았지.”
차미려가 못을 박자, 황보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하지만 애써 침착을 유지했다.
“좋소. 아무래도 돈을 많이 받은 것 같구려. 부자라는 이야기도 거짓 같은 게 고작 그런 옷을 입고 부자라는 말을 하는 것이오?”
“무슨 말씀인가요? 황금공자는 지금 수중에 지니고 있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해요. 그런 분을 내가 매수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자자,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다들 술이나 한잔합시다. 시국이 어수선하여 이런 술자리도 이제 자주 가지기 힘들 것 같소. 자, 술잔을 채우시오.”
제갈송이 화제를 돌렸다.
황보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술병을 들고 백리사초를 향해 말했다.
“조금 전에는 내가 미안했소. 정식으로 사과하겠소. 사람을 옷으로 평가하는 게 아닌데, 내가 너무 과했소.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술값도 모두 황금공자께서 부담한다고 했소?”
“그렇소.”
“하하. 다른 것은 몰라도 부자인 것은 맞는 것 같구려. 자, 어서 내 술 한잔 받으시오.”
“그럽시다.”
백리사초가 술잔을 내밀었다.
황보관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술에 내공을 실었으니 그 무게를 절대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의 의도를 간파한 것인가.
차미려가 급히 말했다.
“호호호. 황금공자. 제가 따라드릴게요.”
“아니오. 황보 공자가 저렇게 사과까지 하는데 어찌 사내로서 술을 사양하겠소?”
“하하하. 지당하신 말씀이오.”
황보관이 내공을 실은 술을 백리사초가 내민 술잔에 따랐다.
그의 속셈은 차미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지만, 이를 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백리사초의 무공에 관심이 컸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지난 오 년간 산속에서 수련했단 말에 다들 어느 정도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병장기도 없고 내공도 전혀 느껴지지 않아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 무공을 익힌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혹시나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어이쿠!”
백리사초가 술잔을 떨어뜨렸다.
술이 탁자에 흐르며 지저분해졌다.
“무슨 술이기에 이렇게 무거운 것이오?”
백리사초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차미려의 아미가 찡그려진 것은 물론이었다.
비록 자신이 백리사초를 구해주긴 했으나 그 직전까지 워낙 침착해 혹시나 하는 생각을 그녀 또한 아주 조금은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술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그런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하기야 백리사초가 그녀에게 오 년간 속세와 떨어져 생활했다고 했지 수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하하! 황금공자! 이거 미안하게 되었소. 술에 내공을 싣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내가 그만 실수를 했소이다. 한데 알고 보니 무공을 전혀 배우지 않은 것 같구려.”
“무공을 배우지 않은 것은 맞소. 하지만 그렇다고 무공을 펼칠 수 없는 것은 아니오. 내 술 한잔 받으시겠소?”
“물론이오.”
황보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백리사초가 술병을 들어 황보관의 술잔에 술을 부었다.
술이 가득 차자 황보관이 단숨에 마셨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술잔에 내공이 실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이 든 것도 아니었다.
이번에도 혹시나 하던 차미려가 다시 아미를 찡그렸다.
‘뭐야. 이 사람. 아이고. 머리야. 내가 사람을 잘못 데려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