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
2화
사흘이 지났다.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이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그 전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이런 꼴로 계속 지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는데.’
현재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당시에 들어왔던 기운으로 혈맥을 넓혔지만 그건 임시방편일 뿐, 지금의 몸을 완벽히 치료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 빌어먹을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은커녕 눈을 뜨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해결하려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야.’
그도 그럴 것이 처한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나 봤자, 얻는 것이 있겠는가.
‘거기다 화산파라는 말을 들은 이상 함부로 나서는 것도 좀 그렇지.’
다행히 의식은 또렷했고,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는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모두 날 천휘라고 불렀었지.’
처음 들었을 때는 어이없었다.
자신이 누군가.
절대천마 독고구연.
천마신교와 천산은 물론이고, 구주팔황(九州八荒)의 구석구석까지 위명을 떨치던 절대자가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천휘라니?’
그렇게 부른 것이 한두 번이었다면 웃어넘겼을 터였다.
하지만 웃어넘길 수 없었다.
그들은 매일같이 나를 천휘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왜 자신을 천휘라 부르는지.
그리고 왜 나는 이런 상태인지.
그렇게 그에 대해 고민하면 할수록 하나의 대답만이 도출되었다.
지금 내가 천휘라는 것을.
그 외에 답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그냥 인정해야지.’
그렇게 인정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아마도 추측이 맞다면, 대법에 의해 내 혼이 천휘라는 아해의 혼이 떠난 빈껍데기를 차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영생불멸군림대법이 실패……?’
짜증이 확 치솟았다.
무려 십 년이란 시간과 모든 지식을 쏟아부은 대법이었다.
그런데 실패라니.
‘아니, 실패일 리 없어.’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영생불멸군림대법은 발동했고 인세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오색찬란한 색채가 나를 감쌌다.
대법은 적힌 대로 완벽했는데?
왜 이리된 거지?
‘설마!’
머리에 벼락이 내리쳤다.
영생불멸한다는 것이 혼을 옮겨 다른 사람의 몸을 차지하는…….
‘망할 놈!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는 좀 제대로 적어 놓을 것이지.’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일까.
나는 과거에 미련은 없었다.
명성도, 지위도.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과거에 미련이 있었다면 교주 자리를 내려놓고, 훌쩍 천마신교를 떠났겠는가.
그렇다고 영생불멸도 관심 없었다.
생(生)이 있으면 사(死)도 있으니.
순리에 따를 생각이었다.
천하의 모든 무공을 견식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런데!
지금 처해 있는 이런 개 같은 꼴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산파? 화사안파?
예전부터 지긋지긋하게 나한테 지랄하던 구파일방의 화산파라고?
거기다 내가 그곳에 제자라고?
지랄도 염병이었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이미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천휘란 놈에 대해서 알아야겠어.’
그날 이후 나는 숨을 죽이고,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도 방문객은 천휘와 관련이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라 정보가 넘쳐났다.
그렇게 그들의 대화를 귀담아들으며 정보를 차곡차곡 모았고, 덕분에 천휘라는 아이에 대해서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
지학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
지금은 죽은 현자 배의 막내, 현강(賢强)의 제자.
화산파의 모두에게 사랑받는 순수하고 착한 아이.
모두 천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를 표현하는.
피식―
어느 누가 ‘너무 어이없으면 웃는다’고들 했던가.
내 심정이 딱 그러했다.
순수하고, 착하고 사랑받아?
평생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만약 천마신교에서 누군가 내게 이 말을 한다면 의심부터 할 말이었다.
물론 그리 말할 자는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천휘는 내가 아니니까.’
모든 생각을 마칠 즈음.
“…….”
때마침 이따금씩 들려오던 목소리가 아예 들려오지 않았다.
뒤이어서 조금씩 번져 가는 정적이 이윽고 의약당을 완전히 삼키는 것을 느꼈다.
‘얻을 만한 정보도 충분히 얻었으니, 그러면 이제 움직여 볼까?’
정신을 집중하며, 몸을 관조했다.
역시나 몸 내부는 엉망이었다.
혈맥이 튼튼해지려면 한참 멀었고, 체내의 기혈이 운행되는 십이경맥은 꽉꽉 막혀 있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사흘 전 안정만 취하면 된다는 천고의 말과 달리 몸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했다.
아무리 그가 의술을 배웠다고 하여도, 자세한 속은 파악할 수 없었다.
그가 당시에 파악했었던 것은 자소단의 기운을 이용해 넓힌 혈맥이니.
그가 아닌 그 누구라도 천휘가 안정되었다고 파악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이 신체에 대해서 알았다면 이상함을 눈치라도 챘겠지만……. 그걸 알았더라면 여태껏 이렇게 놔두었을 리는 없었겠지.’
몸을 살피던 중 발견한 것.
쓰러진 것은 연약해서가 아니었다.
괴상한 절맥증 때문이었다.
‘진짜로 있을 줄은 몰랐지만.’
한때 의학에 심취했을 무렵이었다.
나는 천마서고 구석에서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던 의서를 떠올렸다.
천하제일의서(天下第一醫書).
제목부터 어이가 없는 의서는 예전 괴상한 의술을 펼치던 돌팔이 의원, 생사괴의(生死怪疑)의 저서였다.
천하제일의서라는 제목과 달리 책은 제대로 된 의서가 아니었다.
강시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법.
썩은 팔을 이식하면 강시의 무공인 고루공(骷髏功)을 익힐 수 있을까.
의원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인체 실험에 관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
‘의서라는 것을 배제하면 꽤 재밌는 책이었지.’
그래도 의원은 의원이라고 해야 되나, 의서다운 구석은 있었다.
천하에 있는 가지각색의 절맥과 신체에 대해서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인체 실험을 통해서일까.
듣도 보도 못한 체질도 존재했다.
삼령순음지체(三靈純陰之體)라거나 오마지체(五魔之體), 불괴천강체(不壞天罡體), 천살광음맥(天殺光陰脈) 등.
당시엔 허무맹랑한 내용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믿을 수 있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몸이 바로 그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절맥들 중 하나였으니.
음양태령절맥(陰陽太靈絶脈).
백명의 음기와 백명의 양기를 한꺼번에 타고난 체질이었다.
아마 본래 이 몸의 주인이었던 어린 도사는 그 기운을 참으며 힘겹게 지냈을 것이었다.
그러다 결국에는 버티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을 터.
‘그렇게 혼을 잃은 껍데기를 내 혼이 차지한 것일 테고 말이지.’
어찌 되었는지 예상이 되었다.
‘더 이상 생각해 봤자 복잡해질 뿐. 일단 절맥이나 고치자.’
만약 지금 생사괴의가 있었다면 콧방귀를 뀔 생각이었다.
―음양태령절맥은 그 어떤 절맥보다 저주받은 절맥. 어찌 인간이 홀로 백 명이나 되는 음양의 기운을 감당하며, 처리할 수 있겠는가.
말도 안 되는 별의별 괴상한 인체 실험을 하던 그조차 방법이 없다고 했던 것이 음양태령절맥이었다.
그런데 체질을 고친다니.
생사괴의가 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냐며, 코웃음을 칠 일이었다.
‘그건 네 생각이고.’
하지만 도리어 콧방귀를 뀌었다.
‘물론 네놈 같은 범인들이라면 실패했을 테지만, 나라면 가능하지.’
천천히 몸의 기운을 훑었다.
다행히 기운은 충분했다.
흡수되지 못한 채 혈맥에 잠들어 있는 자소단의 기운이.
그러면…….
두근―
온몸에 피가 빠르게 돌았다.
그와 함께 정신이 고조되더니.
화아악!
거대한 내력이 휘몰아쳤다.
기겁할 일이었다.
천휘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도사.
그런데 이리 거대한 내력이라니.
‘역시 내공이 없어도 발휘되네.’
절대군림공의 효용이었다.
보통의 심법은 하단전에 내공을 쌓아서 발휘하는 것이지만, 절대군림공은 그것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일반적으로 심법은 하단전에 내공을 쌓아서, 다루는 형식이었다.
그렇기에 쌓은 내공량에 따라 무위와 힘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절대군림공은 그 틀을 깨부쉈다.
혼(魂).
혼이 절대군림공의 그릇이었다.
그렇기에 일깨울 수 있었다.
보기에 다른 심법들과는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지만, 그 하나만으로 차별을 두었고 격을 달리했었다.
거기다가 자신의 뛰어난 재능까지 더해지니, 절대군림공은 천하에 알려져 있는 무학들을 모두 아득히 넘어선 절세의 심법으로 탈바꿈했다.
‘하단전에 그릇을 두지 않으니 삼단전을 모두 다룰 수 있지.’
쩌어억―
백회혈이 열렸다.
그 사이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대해처럼 들어오고, 혈맥에 죽은 듯 잠들어 있던 자소단의 기운들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 쿵!
기경팔맥이 벌어졌다.
백 명가량의 음기와 양기는 기경팔맥을 순환하고, 십이경맥을 흘렀다.
독맥(督脈)과 임맥(任脈)을 비롯해서 충맥(衝脈), 대맥(帶脈), 양교맥(陽蹻脈), 음교맥(陰蹻脈), 양유맥(陽維脈), 음유맥(陰維脈)까지.
모든 순환은 자연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십이경맥까지 기운들이 모두 휩쓸기 시작하자, 끝이 났다.
* * *
끔뻑―
천근같이 무거웠던 눈이 떠졌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만 같은 상쾌한 정신으로 목을 움직였다.
뚜둑― 뚜둑―
아직 목은 움직이기에 뻣뻣했지만, 아까 전과 비교하면 선녀였다.
그렇게 침대에서 일어나고.
“…….”
변화를 단번에 느꼈다.
현저하게 낮아진 눈높이.
그리고 아담한 손과 발.
딱 봐도 어려진 것이 느껴졌다.
“열넷이라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네.”
기습적으로 들려온 얇은 목소리에 목을 매만졌다.
그러다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렇게 가만히 서서 무작정 고민을 한다고 해결이 되겠나.
일단은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지.
“일단은 직접 확인해 볼까.”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응시했다.
저 멀리 떠오르고 있는 아침 해가 짙은 어둠을 이때다 싶어 몰아내고 있었다.
저벅― 저벅―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아직 어두운 내부를 쭉 따라 걸어가길 일각, 닫혀 있는 문이 보였다.
지체 없이 문을 연 순간.
화아악!
새하얀 빛이 눈을 침범했다.
“윽!”
강렬한 빛에 손을 들었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빛을 마주하자 눈이 따끔거렸다.
결국 눈을 몇 번 깜빡인 뒤.
스윽―
천천히 손을 치웠다.
새하얗던 빛에 아름다운 색채가 물들기 시작하더니, 절경이 펼쳐졌다.
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매화 꽃잎.
칼로 자른 것 같은 험한 봉우리들.
일순간 넋을 잃었다.
천산산맥에서 봤던 척박한 풍경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압!
순간 밑에서 들려오는 힘찬 기합 소리에 턱을 잡아당겨, 밑을 바라봤다.
그곳엔 거대한 연무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연무장 위에는 매화 문양이 새겨진 도복을 걸친 도사들이 힘차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젠장!”
전혀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도사들을 내려다보다,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진짜로 화산이네.”
마도대종사(魔道大宗師) 절대천마.
구주팔황을 벌벌 떨게 했었던 그가 정파의, 그것도 구파일방 중 한 축인 화산파의 제자로 깨어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