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모두 즐겨 주시기를 바라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은 연회 당사자의 인사가 끝을 맺었다.
두웅.
뒤이은 북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자, 연회장에 참석한 이들은 가주를 향해서 아낌없는 박수를 쏟아 냈다.
짝짝짝―
차를 홀짝이던 천휘는 장내를 훑는 가주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수염 위로 드러난 얇은 입술, 그에 반해 눈매는 그의 고집이 담긴 것처럼 단단했다.
뚜렷하기보다는 희미한 이목구비.
만약 다른 곳에서 본다면 그냥 그런 문사 취급하며, 잊어버릴 외모였다.
‘하지만 저런 존재감을 풍기면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겠지.’
천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갈세가의 가주라는 위치,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터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주변을 감싼 은은한 존재감이 사람들에게 그를 똑바로 각인시키고 있었다.
아주 은밀하고, 치밀하게 벌어지는 일.
이 자리의 대부분은 그가 존재감을 퍼트렸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상당히 섬세한 내공 수발이었다.
‘계속 세상을 속여 왔나.’
천휘는 그런 제갈세가주를 보며 개방이 준 정보를 되새김질했다.
그가 받은 정보에 따르면 제갈세가의 가주, 소와룡 제갈신은 팔대세가의 가주들 중에서 그리 뛰어난 실력은 아니라고 적혀 있었다.
잘해 봐야, 무극지경의 끝자락.
한데 직접 보니 아니었다.
‘저 정도면 천무지경에 도달했겠어.’
예측이 아닌 확신이었다.
그만큼 그의 내공 수발은 뛰어났으며 살펴본 결과, 숨기는 내공도 만만치 않았다.
아마 그걸 알아챈 이는 적으리라.
‘몇몇 빼고는 말이지.’
천휘의 시선에 표정이 살짝 굳어 있는 이들 몇 명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연회장에 들어올 때부터 눈길이 가던 자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고수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오랜만인걸.’
천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크나큰 연회여서 그런 것일까.
신창양가를 제외한 팔대세가와 비천회에서 온 것 같은 장년인들의 무위는 얼핏 보아도 범상치가 않았다.
천휘의 눈이 그들을 담을 무렵.
“저 청년이…….”
“생각보다 순하게 생겼군.”
연회장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상석에 앉아 있는 제갈 가주의 옆으로 세 명의 청년이 정갈하게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중 둘은 아주 잘 아는 인물이었다.
제갈승호와 제갈성현.
그리고 하나 남은 한 청년은 초면이었다.
‘가주에게 아들 셋이 있다고 했었지?’
개방에서 얻은 정보를 되새길 즈음.
“저 청년이 천룡이네요.”
마찬가지로 주변의 술렁거림에 따라 시선을 옮긴 단목린이 긴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놈이 그러니까 현 강호에서 가장 뛰어난 후기지수 중 한 명이라는 거지?
단목린의 말에 천휘는 천룡을 훑어봤다.
육 척을 훌쩍 뛰어넘을 듯한 장신의 청년은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제갈가주에게 물건을 건네는 이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보아하니 무극지경인가.’
경지는 예측하기 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진신 실력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 가주와 다르게 그는 실력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흘려 댔다.
자신의 실력을 보란 듯이.
아마 자신감의 방증이리라.
‘저 정도였네.’
천휘는 그를 향한 시선을 거뒀다.
관심이 뚝 끊겼다.
어린 나이에 상당한 경지를 이룩한 것은 맞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연회장에는 제갈가주를 비롯해 그보다 뛰어난 고수가 많이 있는데, 그에게 관심이 가리.
‘차라리 다른 놈들과 손속을 나누며, 무공을 구경하고 싶단 말이지.’
탁.
속으로 생각하던 천휘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형, 어디 가시려고요?”
“장문인이 주신 물건 건네주려고.”
“아! 잊고 있었네요.”
단목린도 젓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황급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천휘의 옆에 서며 속닥였다.
“저도 같이 가요.”
“그러든가.”
천휘는 거침없이 걸어갔다.
저벅― 저벅―
천휘와 단목린이 나아가자, 주변에서 서성이던 이들이 슬쩍 물러났다.
그 모습은 참으로 묘했다.
썰물 빠지듯 천휘와 단목린을 중심으로 반경 일 장이 텅 비었으니.
“알아서 비켜 주니, 편하네.”
천휘는 현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시선이 쏠리고 경계심을 보인다지만, 괜히 귀찮게 말을 걸거나 다가오는 것보다 훨씬 쾌적하니 좋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천휘는 제갈가주가 있는 상석에 빠르게 도착했다.
가주에 가까이 가자 근처 의자에 앉아 있던 제갈승호와 제갈성현이 아는 척 눈짓했다.
천휘는 그런 그들을 지나쳤다.
그리고 상석에서도 가장 중앙에 앉아 있는 제갈가주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이가 선물을 건네주며,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직접 올 줄은 몰랐소.”
“환갑 기념 연회인데 직접 참석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가주, 혹 이번 연회에 태상가주님께서는 참석을 안 하셨습니까?”
장년인의 질문에 가주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내비치며, 대답했다.
“아쉽게도 참석하지 않으실 예정이오.”
“그렇습니까?”
장년인이 안도의 표정을 내비쳤다.
‘이상한데. 왜 여기에 없는 태상가주에 대해서 더 신경 쓰는 거지?’
그를 본 천휘의 눈빛이 깊어졌다.
방금 전 물었던 사람은 제갈가주의 무위를 파악하고 놀란 이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제갈가주보다 태상가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니, 관심 정도가 아니었다.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는 안도의 표정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두려워하는 건가?’
천휘의 눈에 흥미가 깃들 무렵.
“꽤나 기다리게 했군.”
마침 앞 사람들과 대화를 마친 제갈가주가 천휘를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본 가에 온 것을 환영하네. 자네에 대해서는 성현이에게 들었네.”
시원하게 말한 그는 빠르게 천휘를 위아래로 훑으며 말을 덧붙였다.
“매화신협이라고 최근 강호에 명성이 자자하더군.”
“뭐, 그렇게 부르긴 하더라고요.”
천휘의 가벼운 어투에 근처에 있던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들썩거렸으나.
스윽―
제갈 가주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러곤 천휘를 훑어보며 말했다.
“자네, 참으로 재미있군.”
제갈 가주가 천휘를 보며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내비치며, 입을 뗐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보는데.”
“하하하, 그런가?”
제갈 가주가 껄껄 웃었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호탕한 웃음을 지은 그가 이번엔 단목린을 보며 입을 뗐다.
“그런데 거기 같이 온 소저의 도호는 무엇인가?”
“린입니다.”
“린이라…… 아직 도호는 못 받았나 보구먼.”
제갈가주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단목린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 시선에 단목린이 흠칫했다.
마치 자신의 속내까지 샅샅이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매서운 시선이었다.
‘……아버님이 보는 것만 같아.’
그녀가 긴장감에 위축되는 것을 느끼며 몸을 움츠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하나 그것도 잠시 제갈 가주는 그녀를 보던 시선을 돌렸다.
“몇 년 전부터 화산파의 이름이 계속 들려온다 싶더니, 그럴 만했군.”
그때 천휘가 품속에서 작은 목갑을 꺼내더니, 제갈 가주에게 건넸다.
“장문인께서 축하한다면서 보낸 물건이에요.”
“이것 참, 며칠 전 무림맹과 사흑련에서 축하와 함께 선물을 전해 준 것도 놀라웠건만, 화산파에서는 직접 방문해 선물을 전하다니.”
복잡한 표정으로 천휘를 보던 제갈 가주가 손을 뻗어 목갑을 받았다.
“참으로 경사스러운 날이로구먼.”
말과 함께 목갑을 열어 본 제갈가주의 눈에 놀람의 빛이 깃들었다.
“……장문인이 준 것이 맞는가?”
“돌려주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제갈 가주는 목갑 안에 있는 그것, 무공비급을 잠시 보다가 조심스럽게 닫았다.
“장문인께 고맙다고 전해 주게.”
“그러죠.”
용건을 마친 천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제갈가주가 입을 열었다.
“한데 음식은 입에 맞던가?”
“맛은 있더라고요. 뭐, 가장 맛있는 것들은 못 먹어서 모르겠지만.”
“오늘 연회가 끝나면 별채에 따로 준비해 두라 하지.”
“잘 아시네요.”
“귀와 눈이 왜 있겠는가.”
제갈 가주가 제갈승호와 제갈성현을 힐끗 보자, 천휘가 씩 웃었다.
“그럼 부탁할게요.”
말과 함께 천휘가 떠나자, 단목린 또한 제갈 가주에게 읍을 취한 뒤 그를 뒤따라갔다.
이내 그들의 모습이 연회장 내 사람들과 섞일 즈음, 제갈 가주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명아.”
그의 부름에 천룡, 제갈명이 일어났다.
“부르셨습니까?”
“저자를 잘 기억해 두어라.”
제갈명의 눈이 살짝 커졌다.
평소 누군가를 기억하라는 말은 일체 하지 않는 아버지였다.
그런데 이런 말을 내뱉는단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란 의미였다.
‘……대체 누구지?’
제갈명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줄도 모르는 채, 천휘는 걸어가는 와중에 단목린에게 물었다.
“제갈세가의 태상가주에 대해서 알아?”
“사형, 설마 모르세요?”
단목린이 당황하며 물어봤지만.
“모르니까, 물어봤지.”
천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할 뿐이었다.
그에 단목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으나,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과거 머리만 좋다고 알려진 제갈세가의 평가를 바꾼 분이에요. 구주삼패세 이전에 패군(覇君)이라고 불리며 천하제일을 다투었는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그녀의 설명에 천휘는 순간 흥미가 동했다.
천하제일을 다투었다고?
귀를 기울여 단목린이 얘기하는 그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당시에는 현재의 사흑련주, 살막주와 함께 팔무신(八武神)이라 불렸다고…….”
천휘가 걸음을 뚝 멈췄다.
뭐? 팔무신?
백사신과 신필유사에 이어서 벌써 세 번째 듣는 호칭에 입을 열었다.
“제갈세가의 태상가주가 팔무신 중에서 한 명이라고?”
단목린은 갑자기 멈춰 선 천휘에 당황했으나, 곧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그렇게 들었어요.”
순간 천휘의 눈이 깊어졌다.
“팔무신에 대해 잘 아나 보네.”
“제가 아플 때마다, 할아버님께서 자주 찾아와 과거 강호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곤 하셨거든요. 그 얘기마다 팔무신이 꼭 끼어 있어서…….”
그녀가 추억에 잠긴 듯 아련하게 말할 때.
“그렇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인 천휘가 발길을 돌렸다.
“그렇다면 용무도 끝났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별채에서 따로 하자.”
* * *
모두가 잠이 든 한밤중.
별채의 지붕에 올라선 천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미소를 머금었다.
“조용하네.”
연회 동안 시끌벅적했던 제갈세가는 지금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의 입가에 흰 이가 드러났다.
“심처에서 지낸다 했지?”
단목린이 말하길 제갈세가의 태상가주인 패군은 구주삼패세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두문불출 중이었다.
“어디 보자. 아마도 그냥 전각에 머물고 있을 리는 없을 테니…….”
그렇게 주변을 살피길 잠시.
“저기인가.”
무언가를 발견한 천휘가 눈을 빛내더니, 가볍게 땅을 박찼다.
암향표는 아주 은밀하게 그의 움직임을 가리며, 어둠 속에 스며들었다.
스으으―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이쯤일 텐데.”
지붕을 가볍게 박차며 계속 북쪽으로 향하던 천휘가 어느 한 지점에서 발길을 뚝 멈췄다.
“드디어 찾았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온갖 흐름을 역행하는 묘한 기운.
그것은 진법이었다.
“그럼.”
천휘가 진법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몸이 물에 빠진 것처럼 쏙 빨려 들어가며, 풍경이 변했다.
“어디 그렇게나 지껄여 대는 팔무신이란 놈의 낯짝 좀 봐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