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619
화산천마 619화(619/620)
침상에 누운 천휘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삼운과의 대화가 조금 길었던 걸까.
이제 천하는 완연한 어둠이 드리워져 상공에 별들이 반짝였다.
“대략적인 정보는 얻었나.”
중얼거린 그가 고개를 돌렸다.
무척이나 깨끗한 지붕을 쳐다본 천휘의 눈이 심유하게 가라앉았다.
북경에 도착하고 난 뒤 하루.
아니, 채 하룻밤도 지나지 않았거늘.
상당히 많은 정보를 습득했다.
‘구천회를 만든 것이 마뇌고, 천기자란 본래 구천회주의 직위를 뜻한다. 그러나 이번 대의 회주는 구천회에서 쫓겨나 천하를 유랑하는 중이다, 이건데.’
그는 머릿속으로 삼운과의 대화를 간략히 정리했다.
이어서 ‘흠’하고, 영 탐탁지 않다는 듯 콧소리를 흘린 천휘가 침상에 깊숙이 파묻고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잣말을 내뱉은 천휘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귀찮음과 짜증이 섞인. 현재 그의 가슴을 지배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손짓이었다.
삼운과의 대화를 통해서 정보를 얻은 것도 있지만, 되려 새로 생겨난 의문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를 안다는 거야.”
음성이 낮게 깔렸다.
혼자 있음에도 몹시 날카로운 어조였다.
환생자라는 글귀와 자신이 직접 작성했었던 영생불멸군림대법을 일부러 복잡한 형식으로 작성한 묵화.
그것들은 분명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의심 정도라고 해야 하나. 지금의 내가 그놈이 기다리던 ‘전생의 나’라는 것을 안다고 확신할 수는 없으니.”
천기자란 놈이 천휘가 ‘절대천마’이자 ‘독고구연’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얼추 보기에는 그임을 확신하고서 가리킨 것 같지만, 세세하게 따져 보면 두루뭉술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걸 먼저 본다고 해도 별일은 없을 테니.”
서신 속 ‘환생자’란 글귀와 ‘묵화’에 숨겨진 대법을 둘 다 알아챌 자는 오직 그밖에 없었다.
‘나였기에 알아챈 것이지.’
만약 다른 놈들이 봤으면 ‘뭔 이상한 것들을 내게 주는 거지?’ 하면서 그냥 넘겼을 터였다.
특별히 문제가 될 게 없는 것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전생의 그가 서신과 묵화를 봤다면, ‘환생자? 뭔 개소리를 지껄이네’라고 하면서 넘겼을 것이다.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여기면서.
오직 지금, 직접 환생해 본 당사자이기에 이러한 정보에 반응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것들은 지금 내 정체를 떠보기 위한 장치 중 하나겠지.”
생각을 마무리하며 중얼거린 천휘가 뒤통수 긁던 것을 멈췄다.
생각해 보면 운하관으로 ‘절대천마’인 자신을 부르려는 떡밥이 많았다.
먼저 이곳, 운하관을 계속 유지한 것.
거기에 천상탈혼령에 있는 술법을 파훼하자, 허공에 떠오른 마뇌란 글자. 운신이 자유로울 때 봤다면 바로 이유를 찾아서 북경으로 왔을 것이었다.
결국 하나하나가 안배였던 것이다.
“뭐, 그래도 그 덕분에 한 가지는 확실해졌나.”
생각하던 천휘의 새까만 동공이 창밖의 밤하늘처럼 깊어졌다.
“마뇌, 그놈은 내가 환생할 거란 걸 확신하고 있었어.”
정황이 알려 주고 있었다.
환생한 지금의 그만이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을 남겨 두었으니.
“흐음. 영생불멸군림대법이 환생하는 대법임을 알아챈 건가.”
자신조차 몰랐던 대법의 진실이다.
그러나 마뇌라면 그것을 알아채는 것도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놈의 머리라면.’
그만큼 마뇌의 두뇌를 높게 평가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 아무런 기반도 없었던 자신이 교주직에 오르고, 다시 없을 영향력을 가지게 된 데에는 마뇌의 처세술과 두뇌가 한몫을 단단히 했었기 때문이다.
천휘가 턱을 매만졌다.
“혹시 마뇌, 그놈이 구천회를 세운 이유가 내 환생과 관련이 있나?”
가정이지만,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마뇌, 그놈이라면 아무 의도도 없이 이런 짓을 벌일 리가 없었기에.
‘그럼 마뇌 녀석이 벌여 놓은 일들 전부 이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거기까지 생각한 천휘가 삼백 년이란 긴 세월 동안 마뇌가 연관된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구천회를 세운 것.
천마신교를 안정시키고, 실종된 것.
영생불멸군림대법을 완성하기 위해 펼쳤던 마종련진(魔終練陣)의 주체인 천마지존검을 습득했으면서 그 장소를 알리지 않은 것.
귀마를 따로 찾아가서 하오문을 개파하도록 만든 것.
대체 무슨 짓인지 의뭉스러운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뭔 개짓거리를 하려고.”
천휘가 ‘쯧’하고 혀를 찼다.
짜증이 솟구쳤다.
여러 정보를 조합해서 생각해 봤지만, 여전히 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눈살이 구겨졌다.
“잠깐, 그러면…….”
불현듯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주 중요한 의문이 그제야 떠오른 것이다.
“……구천회에서도 내가 환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
그것을 시작으로 파생된 궁금증은 한둘이 아니었다.
내가 환생한 것을 구천회가 인지하고 있다면, 나를 어떻게 할 셈이지?
천기자는 왜 내쫓은 거지?
천상탈혼령을 강탈하려는 이유는?
한동안 구천회에 대해서 생각하던 천휘가 돌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쩝,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천천히 죽일걸.”
운하관으로 데려오기까지 하는 건 귀찮아서 그냥 처리해 버렸는데.
지금에 와서는 아쉬운 일이 됐다.
“응? 잠깐만.”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천휘가 살의가 깃든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물어볼 놈이라면 있잖아.”
그가 서둘러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구천회의 세작은 아직 더 있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쫓아간 구천회의 세작들을 떠올린 천휘는 벽에 걸어 둔 방립을 다시 눌러썼다.
“다 죽이지는 않았겠지?”
* * *
새까만 소매가 ‘훅’하고 떨쳐졌다.
가공할 공력이 실린 수법은 단숨에 허공을 가르며 섬광으로 화했다.
콰드득!
곧 혜란의 뒤를 기습하던 이의 얼굴이 함몰되며, 그대로 추락했다.
단 일수의 살초.
본래라면 어두웠어야 할 그녀의 소매는 환한 빛에 잠식된 상태였으나.
그 위력은 여전히 가공스러웠다.
곧이어서 혜란은 떨어지는 인물은 확인도 하지 않고 얼른 몸을 회전했다.
오른팔이 없는 사각지대의 땅.
그곳에서 돌연 기척을 느끼는 순간, 땅이 들썩거리며 검이 치솟았다.
고갤 틀어 능숙하게 피한 직후.
스윽―
발을 든 그녀가 그대로 진각을 밟았다.
둔중한 충격이 땅 밑을 울림과 동시에 발을 중심으로 균열이 일었다.
‘쿵’하는 폭음과 충격파가 터졌다.
주르륵―
곧 균열 사이로 시뻘건 핏물이 올라왔다.
기습을 준비하기 위해 땅속에 숨어 있다가, 방금의 한 수로 절명한 이들의 피였다.
“괴물 같은 년……!”
혼살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핏발 선 그의 눈동자가 암제척살진에 사로잡혀 있는 혜란을 담아냈다.
신공절학, 암야군림결.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어둠이란 암야기는 그와 살수들이 펼쳐 낸 상극의 힘, 열양기에 억눌린 상태였다.
본연의 힘을 펼치기 힘들 터.
그런데 그녀는 그러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이며 살수들의 목숨을 앗아 간 것이다.
그때였다.
“흥분하지 마시오.”
나지막이 말한 귀령살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생각보다 강한 무위군.’
혜란의 실력에 속으로 경탄했으나, 입가에 머문 여유로움은 여전했다.
그녀의 실력은 인정했다.
이전에 그녀가 살막을 홀로 박살 낼 때도, 그 실력에 감복했었으니.
‘하지만 그뿐이지.’
그녀를 위험한 존재라고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천상탈혼령을 찾을 수 없던 상황에 그녀가 와 주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암제를 죽이기 위해 고안한 진법.
암제척살진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시간문제지.’
곧 살의가 깃든 안광이 폭사했다.
언뜻 보기에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실상 크나큰 변화가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
암야군림결은 가공할 신공이었다.
특히나 밤이 되면, 그 위력이 배가되면서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 특징 중 하나가 어둠에 몸을 감춘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몹시 큰 변화이며 그들에게는 이점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가 냉혈살수와 혼살에게 눈짓했다.
그 눈짓에 고개를 끄덕인 둘이 얼굴 위로 굳은 결심을 띄울 무렵.
“해방하라.”
귀령살이 음성에 공력을 실어 명령했다.
다음 순간.
타앗!
살수들이 산개해 달려들었다.
암야기에 극상성인 열양기와 함께.
오직 암제를, 암야군림결을 상대하기 위해서 멸문한 태양궁(太陽宮)의 내공심법을 총망라해 창안한 진법이 가공할 열양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혜란은 뜨겁게 달려드는 이들을 훑어봤다.
하나같이 짙은 열양기를 품은 그들의 얼굴은 터질 것처럼 시뻘겠다.
비단 얼굴만이 아니었다.
드러난 다른 신체의 피부 또한 온통 붉어져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피가 끓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감각이 무뎌졌어.’
속으로 생각한 그녀가 왼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마치 깊은 심해에 빠진 채로 움직이는 듯, 반응이 무척 느렸다.
‘……완전히 상극인 기운이야.’
그녀는 암야기를 끌어올리는 순간마다 방해하는 열양기에 눈을 좁히다가, 일순간에 공력을 폭발시켰다.
하지만 그 느낌이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은 곧 증명되었다.
혼살이 달려들어 꼬챙이와 같은 협검(狹劍)을 내지르자.
콰드드득!
그녀의 전신을 감싼 절대의 호신강기, 암야신벽이 불똥을 튀기면서 작게 흔들린 것이다.
‘반탄강기가 약해졌어.’
그녀의 동공이 좁쌀만 해졌다.
본래라면 암야신벽의 반탄력에 협검은 부서져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혼살도 아는지.
“역시 너는 암제가 아니…….”
협검을 내지른 그가 암야신벽이 흔들림에 신이 난 듯 소리치던 찰나.
“하찮아.”
스산한 목소리가 그를 두드렸다.
동시에.
스윽―
까만 소매가 펄럭이며 그 사이로 새하얀 손바닥이 나타나, 그의 복부에 닿았다.
‘언제……?’
혼살이 뒤늦게 고개를 숙일 때.
퍼억!
뱃가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등으로 충격파가 터지며 그의 신형이 뒤쪽으로 날아갔다.
압도적인 출수.
하지만 그것을 펼쳐 낸 혜란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의 양옆에서 귀령살과 냉혈살수가 각자의 병기를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각으로 휘어진 날카로운 겸(鎌).
기묘한 환도(環刀).
육감을 꿰뚫고 들어오는 두 공격에 혜란이 몸을 젖히며, 피하려 했으나.
“……!”
그녀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돌연 밤하늘이 가려졌다.
산개했던 살수들이 일제히 달려든 탓에 밤하늘이 가려져 버린 것이다.
쇠를 달군 것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열양기를 실은 그들이 방어 따위는 없다는 기세로 달려들었다.
동귀어진의 수법.
그들은 죽음을 불사르고 있었다.
‘……거슬리는 기운이야.’
그녀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원래라면 그들이 다가오는 그 순간, 곧장 목숨을 앗아 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내려앉은 열양기.
그것이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발견하는 것을 늦춰 버렸다.
‘피하는 건 늦었어. 그렇다면.’
혜란은 암야기를 모조리 끌어올리면서, 그대로 오른발을 내뻗었다.
피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나아갔다.
검은색의 장포가 흔들리며, 그녀의 신형이 순식간에 길게 늘어졌다.
곧이어 그녀의 전신에서 새까만 기운의 파동이 물결처럼 번져 갔다.
삽시간에 주변을 쓸어 내는 기파.
암제척살진에 의해서 억눌린 암야기를 억지로 끌어내려 하자, 열양기가 다시 압박해 오며 그녀를 짓눌러 왔다.
주륵―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속이 진탕 흔들리고 충격이 찾아왔다.
내상을 입은 모양새.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것들은 모두 무시했다.
‘부순다.’
직후 그녀의 손이 활짝 펼쳐졌다.
새하얗게 뻗어진 손가락에서 형용할 수 없는 어둠의 파동이 일렁여, 암제척살진의 빛과 부딪쳤다.
마침내 공간이 젖혀졌다.
암야척천수(暗夜斥天手).
새까만 공력의 어둠이 몰아치며, 달려들던 둘을 휩쓸었다.
구구구구궁―
빛과 어둠이 중간에서 섞여 들었다.
이윽고.
번쩍!
뒤섞이는 듯했던 빛과 어둠이 폭발했다.
곧 끔찍한 광경이 드러났다.
혜란에게 달려들었던 수십 명의 살수는 사체가 되어 곳곳에 나뒹굴었다.
그 모습이 몹시나 참담했다.
팔과 다리, 수급 등 신체가 사라진 것은 당연하고 마치 바위가 짓눌러 버린 것처럼 뭉개진 사체도 있었다.
가공할 수법에 당한 결과였다.
스으으―
뒤늦은 바람이 폐허를 휩쓸며 지독한 혈향이 사방에 자욱해졌다.
“커헉!”
“컥, 컥!”
귀령살과 냉혈살수가 부서진 병기를 쥔 채로, 숨을 헐떡거렸다.
둘의 몰골, 역시나 처참했다.
귀령살은 겸을 쥔 손만 멀쩡할 뿐, 옆구리와 오른팔은 뭉개져 있었다.
또한 냉혈살수는 얼굴이 반쯤 무너져 내렸고, 옆구리에 거대한 구멍이 생겨나 있었다.
가공할 수법에 짓이겨진 것이다.
얼굴이 파리해진 채 입술 사이로 핏물을 토하던 둘이 정면을 봤다.
“…….”
혜란이 똑바로 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이전과 달리,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큰 상처는 없어 보였지만, 말끔했던 왼 소매가 찢어발겨져 있었다.
주륵―
그녀의 붉디붉은 입술 사이로 그보다 붉은 핏물이 한 줄기 뚝 흘렀다.
‘내상이 깊어.’
그녀는 최대한 평온을 가장한 상태로 속을 다스렸다.
그들의 공격을 파훼하고 부수긴 했지만, 충격의 여파가 극심했다.
그들이 준비한 게 극상성의 기운인 탓도 컸다.
“……인원을 더 보충했어야 했나.”
“서두른 감이 있었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귀령살과 냉혈살수가 속닥였다.
그들의 눈빛에 아쉬움은 없었다.
“……그래도 목적은 이뤘으니.”
중얼거리던 귀령살이 돌연 손을 움직이더니, 무언가를 뒤로 내던졌다.
그걸 본 혜란의 눈이 커졌다.
‘천상탈혼령? 언제?’
그녀가 당황하며 볼 때였다.
스륵―
새까만 인영이 허공에서 나타나 얼른 천상탈혼령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내달렸다.
숨죽이고 있던 살수였다.
“어딜.”
그 모습에 그녀가 내상을 당한 상태임에도 얼른 땅을 박차려 할 때.
휘리릭!
날카로운 겸이 날아왔다.
“얼른 가지고 가라!”
귀령살이 소리치며 그녀를 막았다.
“흐흐흐, 오늘 같이 죽어 주마.”
이를 악문 혜란이 손을 뻗었다.
움찔―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일어난 공력운용에 몸이 떨렸으나, 그녀는 이를 무시하고 머리를 그대로 부수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나도 있다.”
옆구리에 지독한 상처를 입은 냉혈살수가 곡도를 전력으로 휘둘렀다.
전보다는 확실히 위력이 줄은 도법.
하지만 혜란이 움직이는 것을 막는 데에는 너무나도 효과적이었다.
“너.”
또다시 앞을 가로막힌 혜란이 얼굴을 찌푸릴 때.
콰직!
돌연 허공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핏물이 쏟아졌다.
곧이어서 대치하던 둘 사이로.
쿵.
새까만 무언가가 추락했다.
“……!”
“……!”
둘의 눈이 순간 화등잔만 해졌다.
떨어지는 것은 사람이었다.
그것도 조금 전 천상탈혼령을 탈취해서 도망가던 놈이었다.
그것을 알아챈 찰나였다.
사락―
돌연히 묵직한 전포(戰袍)가 그들의 시야를 장악하면서, 내려앉았다.
살짝 치켜든 턱과 내리깐 눈동자.
마치 천하를 굽어살피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중년인은 눈을 움직여서 혜란과 살혼, 둘을 번갈아 보았다.
혜란은 그런 그를 보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전신에 두른 공력의 파동이 너무나도 선명해, 월광을 잡아먹고 있었다.
포식자의 기도와 절대자의 존재감.
그것들을 마주한 그녀의 뇌리에 몇 명의 인물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와 같은 기질을 가진 존재들.
무신(武神)이라 불리던 이들이다.
“다, 당신은…….”
냉혈살수가 그를 알아본 듯, 당황하며 말을 꺼내던 찰나였다.
스륵―
그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돌연히 냉혈살수의 수급이 위로 솟구쳤다.
과정은 없었다.
오직 결과만이 존재했다.
환영을 본 것만 같은 결과에 혜란이 놀라기도 전. 전포를 두른 중년인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수급이 날아가는 것과 동시였다.
마침내 수급이 아래로 떨어지는 그때. 혜란을 본 그가 말문을 뗐다.
“그대가 암제의 후예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