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620
화산천마 620화(620/620)
살수는 정보를 몹시 중히 여기기 마련이다.
그들의 세계에서 암살의 실패란 쌓아 온 업적의 붕괴인 동시에, 죽음까지 치달을 수 있는 사태기 때문이다.
해서, 살수들은 행동에 나서기 전 모든 걸 따졌다.
목표물의 무위는 물론이고 대상을 둘러싼 작금의 상황, 인간관계, 버릇, 암살할 만한 가치 유무 등.
그를 통해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천하에서 가장 큰 살수 집단이었던 살막의 정보력은 막강했다.
정보 문파인 개방과 하오문, 그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혜란은 눈앞의 중년인을 고찰했다.
‘가공할 출수와 기파.’
포식자의 기도와 절대자의 존재감.
실로 기질부터가 압도적이었다.
그녀가 머릿속 정보를 끄집어냈다.
한때였지만, 암제라고 자칭하며 살막주로서 북경의 밤을 군림해 왔다.
일 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세월.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살막의 정보를 거의 담아 두고 있었다.
‘이 정도의 무위를 지닌 자는 천하에 몇 없어.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현 북경은 복마전이었다.
구주삼패세란 거대 세력, 그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이들이 모여들고 있었으니.
한 명, 한 명이 일성(一城)의 패자를 넘어서 천하를 위시하는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이들이 모인다고 해도, 실력의 고하는 나뉘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자는 그중 최상위에 군림할 법한 무인이었다.
바로 무신이라고 칭송받는 절대자들. 그들과 비슷한 것이다.
그녀가 알기로 현재 북경에 있는 절대자는 무당검선과 패군, 그리고 사황.
‘하지만 그 셋은 아니야.’
그녀의 머릿속에는 팔무신에 대한 정보가 정리돼 있었다.
용모파기부터 평소의 행색까지.
암제로서, 살막주의 자리를 차지한 이후 그들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나타난 이 중년인의 정체를.
머릿속에 존재하는 팔무신 중 한 명의 행색과 완전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사아아―
암제척살진이 파하며 찾아온 어둠.
용린(龍鱗)과도 같은 광택을 자랑하는 은빛의 전포가 어둠 속 월광을 반사했다.
강호인이라기보다는 관군의 복장이었다.
하지만 혜란은 그를 관군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았다.
고동색의 두 눈동자가 자아내는 무인 특유의 기질 때문이었다.
불현듯.
철퍽―
뒤늦게 머리를 잃은 채 휘청거리던 냉혈살수의 몸통이 쓰러졌다.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나 혜란은 물론, 일수에 목숨을 끊어 버린 중년인 또한 사체에 관심은커녕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직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와 같은 기질이군.”
중년인이 읊조리듯이 중얼거렸다.
단단한 목소리에 딱딱한 발음.
동시에 혜란의 감정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내용.
하지만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앞의 인물에게는 승산을 점하기 어려움을 안 탓이었다.
대신 상대의 의중을 읽으려 했다.
‘왜 갑자기 나타난 거지?’
그녀는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 보며 은밀히 내공을 끌어 올렸다.
상대의 목적은 불분명했다.
즉 자신이 목적일지도 모른단 뜻.
그녀가 혹 모를 공격에 대비하여 출수를 준비할 때.
“하나 아직 미숙하군.”
중년인이 혜란을 훑으며 말을 덧붙였다.
짧고 간결했다.
하지만 그가 말을 뱉을 때마다 삭막하기 짝이 없는 기파가 요동쳤다.
흠칫!
다음 순간, 혜란은 자신의 비어 버린 오른쪽 어깨를 응시하는 날카로운 시선에 좌수를 움찔거렸다.
시선 속 공력이 살갗을 간질였다.
“그의 말대로인가. 우수를 잃은 것은 타격이 크겠군. 하지만 덕분에 그녀와는 다른 길을 걸어갈 수도 있으니, 전화위복이 될지 모르겠어.”
그의 눈길이 혜란의 펄럭이는 소매에 고정되더니, 짙은 안광을 발했다.
무지막지한 존재감과 함께였다.
그 기세를 마주하고 있자니, 용린과도 같은 은빛의 장포 때문에 마치 신룡(神龍)이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것 같았다.
“…….”
혜란은 숨을 죽인 채, 그런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가 보내는 음성에, 시선에 무형의 압박감이 실려 있었다.
과연 소문대로였다.
환영무신(幻影武神).
여덟 명의 고수를 묶어 팔무신이라고 칭하기 전에 이미 무신이라고 일컬어지던 절세지경의 고수.
혜란은 그를 파악하고자 했다.
음성에 실리는 공력은 물론, 눈빛에서 일어나는 기파의 기질까지.
하지만 읽히는 게 없었다.
마치 신기루처럼 모두 지나쳐 가 버렸다.
환영, 그 이름과도 같이.
‘싸움은 필패(必敗)야. 방법은…….’
생각하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당신이 이곳에는 왜 왔지?”
낭랑한 음성으로 물은 직후였다.
훅!
돌연 그의 발밑에서 공력이 일어나더니, 큼지막한 기파가 발산되었다.
갑작스러운 공력의 발현.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혜란은 그에 본능적으로 좌수를 앞으로 뻗어, 반 박자 빠르게 선공을 취했다.
즉각적인 반응.
암야기를 휘감은 좌수가 대기를 가르면서, 환영무신의 얼굴에 박혔다.
준비하고 있던 만큼 완벽하게 펼쳐진 출수였다.
그런데…….
후웅―
손바닥은 얼굴을 뚫고 지나갔다.
‘잔상?’
그녀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우두두둑!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머리 위, 상공에서였다.
놀란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상공에 떠 있는 환영무신의 손에는 혼살이 혀를 길게 내뺀 채로 목이 꺾여 있었다.
“드디어 잔당들은 모두 처리했군.”
고저 없는 음성이 곳곳에 울렸다.
극상의 육합전성.
환영무신은 무감한 얼굴로 혼살의 사체를 던졌다.
힘없이 추락한 사체는 피 웅덩이에 고꾸라지며 그대로 처박혔다.
혜란이 혼살에게서 시선을 떼 환영무신을 올려다봤다.
월광을 등진 그의 고동색의 눈동자가 혜란을 담아내며, 안광을 흘렸다.
속내를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시선.
혜란은 순간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느낌에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뗐다.
“잔당? 당신, 설마 구천회를…….”
그녀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돌연 환영무신의 소매가 흔들리더니, 새까만 방울이 아래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몹시 익숙한 것이었다.
‘천상탈혼령!’
혜란이 황급히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 쥐었다.
다급한 손놀림이었다.
천상탈혼령을 잡아챈 그녀가 고개를 들 때.
스륵―
환영무신이 투명해지더니, 곧 모든 게 환영이었단 듯이 사라져 버렸다.
푸르른 월광만이 남아, 그가 사라지고 텅 빈 허공을 망연하게 비췄다.
그의 등장에 이리저리 휘어지고 깎였던 빛이 원래대로 곧게 세상에 내려왔다.
마치 꿈과 같은 만남.
하지만 코끝을 간질이는 혈향과 주변의 사체들이, 조금 전 환영무신과의 만남이 꿈이 아님을 알려 주었다.
혜란의 표정이 천천히 풀어졌다.
팽팽하게 당겨졌었던 긴장감이 풀리면서, 안도감이 차오른 것이다.
‘나를 노린 것은 아니었나.’
살아남은 것에 안심한 것도 잠시.
‘그렇다면 나타난 이유는…….’
혜란이 깊이 생각에 잠겼다.
마지막에 내뱉은 그의 말과 행적을 조합하면, 이유는 하나로 좁혀졌다.
“살막을 멸문시킨 것도 이 구천회의 잔당을 처리하기 위해서……?”
왜? 무슨 이유로?
의문이 떠오름과 동시에 그녀는 그가 손에 쥔 천상탈혼령을 매만졌다.
‘그리고 이걸 그냥 돌려준 이유는.’
의아한 일이다.
그 정도의 무위라면 이 천상탈혼령에 담긴 영성을 읽었으리라.
그런데 그냥 넘겨주었다.
의문이 더욱 깊어져 가던 그때.
휙―
그녀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강렬한 기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몹시 익숙한 존재였다.
이윽고.
사락―
황색의 장포가 차분히 내려앉았다.
방립을 대충 눌러쓴 인물, 천휘가 주변을 보면서 미간을 와락 좁혔다.
사방에 널브러진 사체와 핏물들.
단 한 명, 혜란을 제외하고는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뭐야? 벌써 다 죽였…….”
탐탁지 않다는 어조로 말하던 천휘가 혜란 쪽으로 걷다가, 순간 멈칫했다.
희미한 기파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주 옅어서,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지만 천휘는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라진 지 꽤 된 것 같은데, 이 정도로 고절한 기운이 남았다면…….’
천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투기가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누가 왔었지? 패군? 아니, 그는 아닌 것 같고. 설마 사황?”
이곳에 팔무신이 있었단 것을 알아챈 천휘에 혜란이 역시나 하는 표정을 내비치면서, 나직이 말을 뱉었다.
“……환영무신이 왔었어.”
“환영무신?”
천휘의 검붉은 안광이 폭사했다.
“어디로 갔어?”
“몰라.”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내놓은 대답에 천휘가 눈썹을 작게 꿈틀거렸다.
“그걸 놓쳤단 말이야?”
미간을 좁힌 천휘가 꾸짖을 때.
“응?”
천휘의 고개가 ‘휙’하고 돌아갔다.
수십 명의 기척이 오고 있었다.
정갈하게 정리된 기세에, 규칙적인 몸짓.
무인이 아닌, 관군의 움직임이었다.
“……일단 자리를 옮겨야 해.”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린 혜란이 먼저 천휘를 향해서 넌지시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을 관군이 목도한다면 한바탕 큰 난리가 날 일이었다.
천휘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많은 잔당 중 한 명만 살아 있으면 될 일인데, 몰살을 당했으니.
“쯧.”
혀를 찬 천휘가 방립을 눌러썼다.
직후 그의 신형이 훅 꺼졌다.
곧이어 혜란의 신형마저 모습을 감춘 직후, 관군들이 폐허에 몰려들었다.
“……허어!”
“과, 관에 연락해라!”
* * *
방립을 침상에 내던진 천휘가 의자에 앉으며, 탁자에 다리를 올렸다.
짜증이 묻어 나오는 거친 행동이다.
구천회의 잔당 놈을 잡아서 정보를 모으려 했건만, 한 놈도 남지 않고 몰살당한 탓이다.
천휘가 불만을 섞어서 말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말해.”
바짝 날이 선 음성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마주한 혜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구천회의 잔당이 날 죽이려 했어.”
“그건 대충 보면 알아. 중요한 것은 네가 고작 그놈들을 상대로 그러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과 환영무신이 나타난 이유지.”
천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에 혜란이 고개를 주억이며,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쏟아 냈다.
살막에 있던 구천회의 잔당들이 암제척살진을 펼친 것부터 그들의 목적이 천상탈혼령이었다는 것까지.
상당히 중요한 정보의 향연이었다.
그런데.
“흠, 그래?”
천휘는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암제척살진이니, 뭐니. 어쨌든 상대하는 것이 제법 힘들었나 봐?”
“감각을 무너트리고, 칠 할의 공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억제했어.”
“오호라, 그 정도였다고?”
천휘가 이제야 흥미를 보였다.
“그거 궁금한데. 네가 익힌 공력을 억제할 정도의 열양기라면 이 구주팔황을 뒤져 봐도 몇 없을 텐데.”
암야군림결은 암야기라는 음기(陰氣)를 품은 신공절학이었다.
보통의 열양기공으로는 오히려 잡아먹혀서 움직이지도 못할 일.
“전설 속 태양궁의 무공이 아니라면, 이전에 봤던 천양결 정도쯤은 돼야 할 텐데…….”
천휘가 턱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태양궁은 전설 속의 문파였다.
천마신교가 세워지던 그 날, 초대 천마에 의해서 멸문을 당한 곳이니.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구천회에는 태양궁의 열양기공이 존재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게 있단 건가.’
천휘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새로운 무공에 대한 흥미가 차오름과 동시에 다른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혈교에 이어서 태양궁의 무공까지 있다……? 마뇌, 이놈이 설마 천하에 존재하는 무공 비급을 모두 모았나?’
마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전생에서도 자신이 천하에 있는 무공 비급을 모으고 싶다고 했을 때, 마뇌가 솔선수범해서 돕지 않았던가.
만약 자신이 사라지고 나서도 그것이 이어졌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신교가 아니라, 그것을 가져가서 구천회를 세웠다면…….’
순간 천휘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방대한 무공 비급이 존재하리라.
‘그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는걸. 어쩌면 구천회에서 암제만이 아니라, 다른 팔무신을 상대하기 위한 진법도 창안했을 수 있겠어.’
암제만 노리고, 진법을 창안했다?
여태껏 만났던 구천회란 놈들의 행적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어쩌면 팔무신이 나오는 것을 내버려둔 것도 그걸 완성해서…….’
생각하던 천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것까지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으려나. 어차피 나랑 관계없으니.’
그것보다는…….
“환영무신에 대해서나 말해 봐.”
천휘가 눈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별로 아는 건 없어.”
혜란은 그와 있었던 일을 몹시 상세하게 풀어, 하나씩 설명했다.
환영무신을 만난 순간부터, 끝까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정보에 천휘는 눈을 흘기면서, 툭 말을 내뱉었다.
“네 말은 환영무신이 노린 것은 구천회의 잔당들이었다, 이거야?”
“그 말이 사실이라면.”
혜란이 고개를 주억이자.
“쩝, 쓸 만한 정보는 없네.”
천휘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얼추 예상하는 정보였다.
구천회와 팔무신의 관계가 좋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하나는 건졌으니까, 됐나.’
천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짙은 투기가 넘실거렸다.
그로선 그녀에게 들은 정보 거의가 영양가 없는 것들이었지만, 딱 하나만은 그를 자극하면서 감정을 들끓게 만들었다.
‘아직 환영무신이 북경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