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812
화산천마 812화(811/811)
화산의 산길을 오르는 천휘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가볍고 쾌속했다.
그렇게 얼마쯤 나아갔을까.
“음?”
천휘는 화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막고 선 거대한 존재감을 느꼈다.
다음 순간.
사락―
보랏빛의 고아한 장포가 허공에 나풀거리면서, 귀천독제가 나타났다.
천휘가 그런 그를 보며 말을 꺼냈다.
“의외인걸. 화산을 보호하라고 했지만, 설마 이곳에서 머물고 있었을 줄이야.”
‘어쩐지 백금장에서 안 보이더라니.’라고 작게 중얼거린 천휘는 비천행보를 거두며 그 앞에 섰다.
‘그때의 실수를 만회할 셈이겠지.’
과거 천기자를 도왔던 일을 만회하고자 근처에 머문 것이라고 추측하던 순간이었다.
“이제야 온 건가.”
흙바닥까지 닿는 긴 소맷자락을 늘어트린 귀천독제가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를 흘렸다.
“늦었군.”
“늦었다고?”
천휘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묻자 귀천독제가 곧장 입을 열었다.
“네가 떠나 있는 동안, 하마터면 화산파가 멸문할 뻔했다.”
“멸문? 뭔 개소리지?”
천휘의 표정이 더없이 싸늘해졌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귀천독제가 멸문을 언급한 것이었으니.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일 터였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귀천독제의 말에 그 생각이 옳았음을 알 수 있었다.
“구천회주가 화산에 방문했다.”
불현듯.
화아아아악!
새까만 장포 자락이 크게 부풀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은 천휘의 기세가 폭사하면서, 주변 풍광을 짓뭉갠다.
“구천회주……?”
천휘의 음성이 낮게 깔렸다.
어느새 그가 흘리는 기세에서 매서운 살기가 진득하게 섞여 나왔다.
곧이어서 천휘가 왼발을 들었고.
훅!
귀천독제의 면전에 도착했다.
움직였다는 과정 따위는 생략한.
이형환위를 아득히 뛰어넘은 극상의 비천행보를 발현한 천휘가 고개를 든 귀천독제를 직시하며 말했다.
“자세히 얘기해 봐.”
* * *
화산, 자하각(紫霞閣).
장문인 대리를 맡은 현진은 탁자 위에 쌓인 수십의 종이를 넘기면서,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는 모습에, 정면에 있던 현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하던 말을 이어 갔다.
“일단 장문 사제와 현도 사제가 돌아오고 있단 서신을 받았다. 늦어도 수일 내에는 도착하겠지.”
화산파의 정보 조직, 천각(天閣)의 각주 현일이 이어서 중요한 정보를 읊었다.
“또한 이번에 현해 사제가 원로원을 찾아가 긴 논의를 나눈 끝에 긍정적인 대답을 얻었다.”
“그 말씀은…….”
“곧 방문하실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군요.”
현진은 읽고 있던 종이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이마를 짚었다.
하루가 멀다고, 온갖 정보가 쏟아지면서 강호의 정세가 빠르게 바뀌어 댔다.
패군과 무당검선의 충돌이란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거늘, 지금은 그에 대한 얘기들은 쏙 들어간 상황이었다.
연달아 터진 사건들 때문이었다.
사흑련주의 불사천교 축출.
신창양가와 일월문의 충돌.
특히나 가장 최근 일어난 두 대문파의 전쟁에서 파생된 수많은 정보가 지금 온 강호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었다.
사라졌던 암제의 재림과 일월문의 멸문, 신창양가의 무림맹 입문.
그리고 고협휘성 검천화의 현현.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각각의 정보가 맞물리는 모습에 세상의 관심이 몰린 것이었다.
‘개인적인 일이라더니…….’
현진은 화산을 떠나기 전, 천휘가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고갤 저었다.
그 일이란 게 이거였던가?
현진의 표정이 순간 오묘해졌다.
처음 정보를 들었을 때부터 며칠 동안 의구심을 느끼는 사안이었다.
천휘가 어떤 애인가?
귀찮은 것을 질색하는 애였다.
그런데 신창양가를 돕기 위해 저 먼 감숙의 기련산까지 갔다?
좀처럼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 신창양가와 동행해서 이곳으로 오는 것을 보면, 이 사건에 참전한 것은 옳은 정보란 뜻이었다.
‘신창양가와 연은 없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혹 단목세가의 대공자가 연관되어서인가? 하나 그렇다기에는 초기에 관여할 시간이 충분했을 터인데, 왜 기련산맥에서 참전을…….’
단목린을 떠올리면서 생각을 이어 나가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깊이 생각해 봐야 소용없거늘.’
현진이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순간, 현진은 장문 사형이 왜 그간 천휘가 하는 일에 아무런 참견도 안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고민해 봐야 자신의 머리만 아플 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하아. 그래도 어떻게 된 것인지 알려 주는 서신이라도 중간에 보내 줬으면 이런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으련만.’
생각을 끝마친 현진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어 올리자, 조용히 있던 천각주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냈다.
“마저 이야기해도 되겠느냐?”
“죄송합니다, 사형.”
“허허, 아니다. 나 또한 이 정보들을 마주할 때마다 너와 같으니.”
천각주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하다가, 곧 웃음을 지워 냈다.
그러곤 소맷자락에서 하나의 서신을 꺼냈다.
“태산파(泰山派)의 장문인이 보낸 서신이다.”
그 말에 현진은 서신을 얼른 펼쳤다.
―태산의 소한(疎寒)이 대화산파의 장문인에게 염치 불고하고 서신을 보내오이다. 이번에 오악검파(五岳劍波)끼리 회동을 열 참이온데, 결례가 안 된다면 참석해 주실 수…….
읽던 현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결국 오악검파 간 회동을 원한다는 말을 구구절절하게 적은 서신이었다.
“상당히 급했나 보군요.”
현진이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 그냥 간단하게 용건만 적어 둔 서신이었을 건데, 지금은 너무나도 극진하고 예의 바르게 적힌 글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천각주 또한 서신을 읽었는지, 고개를 주억이면서 입을 열었다.
“패군의 손에 형산파가 멸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항산파가 녹림의 손에 멸문해 버렸으니. 다음은 자신들이 멸문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게지.”
‘멍청하게도.’라고 말을 덧붙인 천각주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오악검파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뭉쳤지만.
이전부터 그는 다른 오악검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아 왔다.
‘호시탐탐 화산을 노리던 자들.’
화산이 몰락을 겪으며 도움을 요청할 때, 온갖 핑계를 대며 거절한 것도 모자라 오악지회를 개최할 때에는 은연중 화산을 핍박하기까지 했었다.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그러다 화산의 힘이 부쩍 커지자, 오악검파란 이름을 빌려서 도움을 요청하는 꼴이니 어찌 좋게 보겠나.
그리고 그러한 것은 현진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한 번 눈길 주는 것을 끝으로 서신을 옆으로 치웠다.
“나중에 장문 사형이 오시면 전해 주도록 하지요.”
전서구로 장문인에게 서신을 보내 끝낼 수 있는 일이지만, 현진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보다 이전 화산의 길목에서 일어났던 지진은 파악하셨는지요?”
“그것은 아직 파악이…….”
둘이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갈 무렵.
“사, 사숙조님!”
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반가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제자의 외침에, 무언가를 직감한 현진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입을 뗐다.
“천휘가 돌아온 것이더냐?”
“그렇…… 헙!”
대답하던 제자가 순간 헛숨을 삼켰고, 동시에 자하각의 문이 열렸다.
벌컥―하고 열리는 문 틈새.
희미하게 비추는 햇빛 사이로 현진과 천각주는 익숙한 낯을 볼 수 있었다.
“왔구나.”
“왔느냐.”
천휘를 본 둘의 표정이 밝아졌다.
한데 그런 둘을 보는 천휘의 표정은 왜인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살기가 풀풀 흐를 정도였다.
저벅, 저벅.
냉막한 표정으로 나타난 천휘가 성큼성큼 걸어와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다리를 꼬며 말했다.
“절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면서요?”
원래였다면 인사도 하지 않은 그 모습에 예절을 따졌을 테지만, 천휘의 언행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현진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누군가가 말했구나.”
“…….”
현진은 입을 다문 채 대답을 재촉하듯 노려보는 천휘의 시선에 눈을 한차례 깜빡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현강의 친우가 너를 보고 싶다고 찾아왔었다.”
천휘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현강이라면, 이 몸의 사부였다.
그런데 친우라고? 구천회주가?
일순간 천휘의 흑적색 안광이 어둠에 잠식되었다. 아주 깊이.
어느새 주변을 가득 채운 매화향이 너무나도 짙어져 갈 때, 천휘는 잠시 닫았던 입술을 다시 열었다.
“현…… 사부의 친우가 확실한가요?”
“확실하다. 막내 사제가 속세에 있을 무렵 이름은 본 파에서도 아는 이가 드문데, 그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수상해.’
천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었다.
혈교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설란이 화산파에 입산할 때 하오문에 방문하는 이상한 짓거리를 벌인 것도 바로 이놈, 현강이었다.
‘구천회의 세작이라도 되려나?’
가장 먼저 떠오른 가정이었다.
구천회주와 친우라는 것.
거기에다가 이전에 죽였던 혈신녀는 구천회의 소속이었으니.
그때였다.
“신창양가와 동행했더구나.”
현진이 나직하게 말을 꺼냈다.
“개인적인 일이라는 것이 신창양가를 돕는 것이었더냐?”
“……뭐, 그렇죠.”
천휘는 대충 얼버무렸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승천곡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꺼내 봐야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 대답에 현진은 그대로 넘길 수 없다는 듯 물음을 더했다.
“언제 신창양가와 그런 인연을 쌓았던 게냐?”
“예전에요. 그리고 신창양가뿐만이 아니라, 단목세가와도 연이 있으니 간 거죠.”
천휘는 더 묻지 말라는 듯이 이미 생각한 대답을 단호하게 내뱉었다.
그러고는 바로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신창양가는 이제 화음현에 새로운 터를 잡기로 했어요.”
“화음현에……?”
“허어!”
일순간 현진은 물론 조용히 있던 천각주마저 움찔하면서 반응했다.
화음현의 화산파의 구역이었다.
한데 그곳에 신창양가가 터를 잡는다니, 그들로선 불편한 일이었다.
그런 둘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신창양가와 동맹을 맺기로 했어요. 곧 신창양가의 가모가 화산파에 찾아올 테니, 그때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시죠.”
“동맹……?”
“아쉬울 것 없는 제안일 거예요.”
천휘가 차갑게 입술을 말아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려는 것이냐?”
“그것만 물어보려고 왔거든요.”
간단히 대꾸한 천휘는 몸을 돌리려다 멈칫했다.
“그런데 그 사부의 친우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아나요?”
“백리소천(百里笑天)이라더구나.”
“그 외는요?”
“그 외?”
천휘는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묻는 현진을 보더니, 그대로 몸을 돌렸다.
“아뇨, 됐어요.”
곧바로 자하각을 빠져나온 천휘는 귀천독제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생사결을 했다면, 아마도 내가 패배했을 것이다.
천휘의 눈빛이 살기등등해졌다.
귀천독제가 자신의 패배를 언급했다는 것이 그 실력을 짐작게 했다.
비록 지금 귀천독제가 이전의 무위를 잃은 상태라지만, 여태 쌓아 온 세월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최소 무신지경에 이른 고수.’
거기에 그놈은 구천회주였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전력을 데려온 채로 화산파에 도착했으리라.
‘그런데 쉬이 물러났다고?’
천휘의 눈매가 사납게 올라갔다.
오랜만에 짜증이 올라온다.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언제든 멸문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거겠지.’
“얼마나 얕보였으면.”
짜증 섞인 어조로 투덜거리던 천휘가 눈동자를 굴려 밑을 내려봤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협소한 소로.
그 너머에서 수십의 기척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 탓이다.
“사숙님! 오셨습니까!”
“사제! 기다렸어!”
달려오는 화산파의 제자들을 바라보던 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와락 얼굴을 찌푸리며, ‘쯧’하고 혀를 찼다.
“……저래서야 얕볼 만하네.”
장문인과 현도가 없는 지금, 화산파 전력이 생각보다도 더 형편없었다.
물론 화산파 제자들의 실력은 분명 몇 년 전에 비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생사를 오간 수련 덕분이었다.
대부분이 아마 그 배분에선 상위권이라고 불릴 정도의 실력이리라.
예전에는 비교도 불가하다 여겼었던 무당과 소림에 비견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구천회였다.
암중에서 구주삼패세에 초절정의 고수들을 세작으로 심을 만큼, 그들의 전력은 너무나도 강력했다.
최소 구주삼패세 급의 전력.
그런 구천회의 입장에서 화산파 전력은 무시해도 될 수준일 터였다.
“이래서는 안 되겠어.”
시간만 있었다면 화산파가 천하제일이 되는 데 걱정할 게 없었겠지만, 지금은 당장의 전력이 중요한 난세.
훗날의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지금의 수련도 이미 극한까지 보고 한 건데, 쯧. 어쩔 수 없나. 수련이든, 실전이든 이전에 했던 수련보다 더 세게 할 수밖에.”
천휘가 눈을 반개하며 속닥였다.
그리고 그 속닥임은 지금 천휘의 복귀를 반기며 다가오던 이들이 들었으면 경기를 일으킬 말이었다.
“위험해질 수도 있지만. 뭐, 나랑 신의가 있으면 죽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