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im is mistakenly thought as a genius writer RAW novel - Chapter 200
199화 – 가족의 의미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혼이 쏙 빠질 만큼 신고식을 치른 나와 보라는 아버지의 커피숍 ‘새벽 출근’에 도착해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저희 왔습니다.”
“어서 오너라.”
문을 여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선 채로 우리를 맞이하셨다.
아마 애타게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이다.
가게는 특별히 오늘을 위해 비워둔 모양이다.
아버지의 섬세한 배려 덕분에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여 오붓하게 재회의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피곤하지? 커피 한잔 금방 내려주마.”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듣고 싶은 말도 많았다.
보고 싶었던 그리움이 산더미고, 나누지 못한 정이 바다만큼 가득했다.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후후. 그 뒤로 세 편 정도 소설을 써냈단다. 그중 두 개는 지금 드라마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고.”
“대단하세요! 어머니 감성은 독보적이니까요. 죄송해요. 한 번은 봤어야 했는데 찾아보지 못했어요.”
“괜찮아. 오히려 기쁘단다. 한국 일에 관한 건 잊을 정도로 미국에서 몰두했다는 거 아니니. 한 가지에 푹 빠지면 깊이 파고 들어가는 건 좋은 거란다. 게다가 너희 둘 모두 보통 워커 홀릭이니? 너희 일을 즐겼다면 이 어머니는 더 바랄 게 없단다.”
어머니는 우리를 너무 잘 알고 잘 이해해주셨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받았지만 정작 우리는 한국에 관심을 소홀했던 것 같아 괜히 미안했다.
“커피 마셔보거라. 너희가 미국에서 열심히 성장하는 동안 이 아버지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고소한 냄새와 함께 커피가 도착했다.
아버지께서 내주신 커피는 정겨우면서도 낯선 향을 풍겼다.
아마 신메뉴를 개발하신 모양이다.
“추가된 커피가 몇 개나 돼요?”
“한 5개 될 거다. 오늘 다 맛볼 테니 서운해하지 말고.”
“이거, 오늘 푹 자긴 글렀군요.”
아버지의 정성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오붓하고 지긋하게 아껴두었던 이야기를 풀었다.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펍에서 레드넥들과 어울리다 보라에게 혼났던 일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느꼈던 충격이라든가 뉴스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박장대소하시며 즐거워하셨다.
그렇게 웃고 떠들다 어느새 시간은 저녁을 넘었고 어둠이 찾아오려 했다.
여독이 쌓인 탓에 보라는 피곤해 보였고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저희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호텔을 잡아뒀는데 당분간 거기서 지내려고요.”
그렇게 말했을 때 어째선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마주 보며 빙그레 웃으셨다.
그 미소의 의미를 우리로서는 알 수 없었다.
“석필아, 보라야. 실은 너희에게 줄 선물이 있단다.”
“선물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대신 따라와 주겠느냐며 우리를 차에 태우셨다.
그렇게 차는 말없이 어딘가를 향해 떠났다.
그리고 조금 변두리로 나왔을 무렵,
“어머!”
“세상에, 언제 이런 근사한 저택이 생겼대요?”
전에는 보지 못했던 정원이 딸린 3층짜리 단독 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담 너머로 우리를 슬쩍 바라보고는 나뭇잎을 떨며 인사했다.
“석필아.”
“예, 아버지.”
“이게 너희에게 줄 선물이란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나 같은 노가다꾼이 우리 아들같이 훌륭한 작가와 우리 며느리같이 훌륭한 배우에게 무슨 선물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단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망치질밖에 없었지. 그래서 생각했지. 집을 지어줄 수 있다면, 가정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행복의 터전을 손수 마련해줄 수 있다면 하고 말이다.”
“설마, 아버지께서 직접 지으신 집이에요?”
“황반장과 정원이도 함께 했지. 옛 동료들이 많이 도와줬다.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평생을 남의 집만 지으며 살아왔다. 이제는 우리 아들을 위한 집을 지어줄 수 있어서 행복하구나. 내가 노가다꾼이라는 걸 원망한 적은 많았다. 석필이 네가 날 따라 연장을 쥐었던 때가 특히 가장 심했지. 하지만 너희에게 이 집을 지어주면서 난생 처음으로 내가 노가다꾼이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어서 고맙구나.”
차에서 내려 가까이서 올려다본 저택은 세상 그 어느 집보다 훌륭하고 아름다웠다.
그건 아마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집이어서 그럴 테다.
“아들아.”
“네, 아버지.”
“행복하게 살거라. 그게 이 아버지의 행복이다.”
나는 저택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렸다간 펑펑 울고 있는 내 얼굴이 보일 테니까.
***
며칠간은 줄곧 이삿짐을 나르느라 바빴다.
때로는 제대로 정렬되지도 않은 가구를 밀쳐두고 웅크려 자기도 했는데 그런 순간도 보라와 함께 하느라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띵동-
가구 배치를 고민하며 보라와 상의하던 때, 예고도 없이 누군가 방문했다.
카메라로 확인해보니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야, 인마! 너는 내가 직접 여기 찾아오게 만들어야 해?”
“하하. 미안해요, 미안해. 너무 바빠서 그만.”
현관으로 들어온 황반장은 거의 난동을 부리다시피 징징댔다.
그 꼴을 옆에서 지켜보던 백정원이 혀를 끌끌 찼다.
“점잖게 찾아오면 얼마나 멋져요.”
“하, 이 새끼가. 얌마. 너는 분하지도 않냐? 이렇게 멋진 집을 지어줬는데 한 번을 안 찾아와?!”
“경황이 없었겠죠. 귀국하자마자 전 국민적 주목을 받는 부부잖아요.”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는 나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그게 뭘까 생각하다가 머리가 번쩍했다.
“정원 씨? 이제 말을 아예 안 더듬네요?”
“하하. 그렇죠?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말투도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요. 대체 어떻게 그렇게 된 거예요?”
“작가로서 성공하고 자존감도 회복하니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거 같아요. 깊게 파고들자면 이게 모두 제가 웹소설을 가르쳐주신 석필 씨 덕분이죠.”
놀랍고 또 놀라웠다.
내 눈앞에 있는 백정원은 3년 전 말을 더듬으며 시선을 회피하던 그 부끄럼쟁이가 아니었다.
눈빛에는 총기가 비쳤고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쳐나는 호인의 인상이었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니.”
“그러게 말이야. 네가 호랑이 새끼를 키운 거야!”
“저도 이렇게 변했는데 아재는 변한 게 없네요.”
“젠장!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안 돼?”
황반장은 자기를 찰지게 꾸짖는 백정원이 싫은지 옛 모습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백정원이 훨씬 마음에 든다.
그의 눈에는 내일이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이 넘쳤으니까.
“하하.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충격이네요.”
그래.
세상은 변한다.
모두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삶을 살아간다.
주변에 이렇게 자기 길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어쩌면 행복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마시고 죽자고!”
훈훈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 황반장이 가방에서 막걸리를 꺼낸다.
백정원과 나는 슬그머니 한 발 물러섰다.
멍청한 황반장만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저 문 너머로 팔짱을 낀 채 지켜보는 보라의 매서운 눈빛을 말이다.
***
황반장과 백정원은 간단히 차만 한잔하고 돌아갔다.
보라의 눈치를 본 백정원이 황반장을 기어이 끌고 나갔기에 망정이지 까딱했다간 새집에 막걸리 냄새를 풍길 뻔했다.
“그러고 보니 수완이는 어떻게 지낼까?”
한국에 돌아와서 정신없다는 핑계로 소중한 인연들을 잊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공항 배웅을 해줬던 수완이를 잊으면 안 될 일인데.
나는 생각난 즉시 폰을 들어 수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 왜 이제야 전화한 거냐고 서운해하지나 않을까 모르겠다.
-여보세요? 석필아!
“수완아. 미안하다. 전화가 늦었지? 내가···”
-야, 이따 전화하면 안 되냐? 나 지금 세은 씨랑 데이트 중이거든.
“뭐? 이 새끼··· 기껏 전화했더니.”
-얌마. 지금 분위기 좋단 말이야. 나도 장가는 가야할 거 아니냐. 그럼, 끊는다.
뚝-
그렇게 통화는 허무하게 30초 만에 끝나버렸다.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찐웃음이었다.
변함없이 한결같은 편한 친구인 채로 남아주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보라와 오랜만에 부부 회의를 통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삿짐을 정리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를 챙겨주었던 인연들을 돌아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 석필. 앞으로는 조금 바쁘게 돌아다니자.”
“응, 하지만 저녁은 집에서 같이 먹기로 하고.”
“그래도 괜찮겠어?”
“세상 모든 인연이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보라보다 소중하지는 않으니까.”
우리는 가족이다.
가족이란 식구, 함께 밥을 먹는 관계다.
보라와의 저녁 식사까지 포기할 순 없었다.
바쁠 때일수록 서로를 각별히 챙기자는 말에 동의한 보라와 나는 해가 떠 있는 동안 모든 일정을 소화해냈다.
심지어는 바쁘다며 저녁에 시간을 내달라는 최비서의 부탁을 한사코 무시하고 기어이 정용민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이군. 참 얼굴 보기 힘들어.”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3년만에 뵙는데 얼굴이 더 좋아지신 것 같네요.”
“자네 덕분에 콘텐츠 사업이 잘되어서 아 참, 그렇지. 술 한잔··· 하기에는 이르구먼. 아쉽네. 자네를 위해 비싼 술을 마련해뒀는데 말이지.”
“마음만 받겠습니다. 이제는 유부남이라 제 몸이 제 것이 아니니까요.”
“하하. 그 풋내기 석필이가 벌써 유부남이 된 건가. 장가, 너무 빨리 간 거 아닌가?”
“보라 같은 여자와 사는 거라면 더 일찍 못 한 게 한스러울 정도죠.”
“아주 애처가로구먼.”
진심으로 행복한 내 얼굴을 본 정용민은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세상 모든 부를 거머쥐어도 명예와 사랑은 쉽게 거머쥘 수 없는 법이지. 그런 의미에서 자네는 나를 뛰어넘었어.”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자네는 내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라네.”
“이런, 혹시 몰래 술이라도 드신 겁니까?”
“누굴 노망난 영감 취급하나. 얼굴에 철판을 용접하고 사는 대기업 오너라도 가끔 감정을 드러낼 때가 있네.”
정용민은 드물게 자기감정을 드러냈다.
그 감정에 나에 대한 존경과 찬사가 담겨 있음에 나는 감사함을 느꼈다.
“회장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저를 밀어 올려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됐어.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뿐이니까. 사업가는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했을 뿐이야.”
“에이. 금방 또 쑥스러워하시긴.”
살짝 마음을 풀었다가도 금방 다시 회장의 위엄을 지키는 그였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회장님, 이만 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다음 약속이 있어서요.”
“부흥 그룹 회장인 나보다 더 바쁘구먼. 또 누굴 만나러 가나?”
“감사를 전해야 할 분들이 참 많아서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올리고 돌아서려는 그때,
“아 참!”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이거 받아주시겠습니까?”
나는 그에게 하얀 봉투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뭔가?”
“저희 미래의 그림이 담겨있습니다.”
“호오. 설마?”
“네, 맞습니다.”
수줍게, 그리고 마음을 담아 전한 봉투 안에는 보라와 나의 청첩장이 들어 있었다.
돌아가기노가다 김씨, 천재 작가로 착각 당하다
끝이자 새로운 시작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