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02)
마법소녀 아저씨 102화(102/671)
102. 죽을 놈도 안 죽어.(3)
작은 창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 그 빛은 허공에 떠도는 먼지를 옅게 비추었으나, 방을 밝히기엔 모자랐다.
그것은 두꺼운 창문과 몇 겹으로 겹쳐진 커튼 때문이다. 과거 사건으로 생겨난, 이 지역의 습관.
조그만 재라도 들어오지 않도록.
당시에는 조그만 먼지 하나가 그토록 공포의 대상이었으니.
아마,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도 그때의 공포 때문에 비슷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어떤 괴수보다도, 어떤 괴인보다도, 어떤 괴물보다도, 무서웠던 역병의 악몽이 남긴 유산이, 조그만 방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사색이 너무 길었군.
벨트로 구속된 몸을 끊어내고, 날 감싸 안은 옥시모론을 흔들었다.
“일어나라. 아침이다.”
“네 시간만요….”
….
네 시간이면 점심시간이지 아마?
잠시 시간이 어떻게 되나 하고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있는 거라고는 전지가 다 한 뻐꾸기시계뿐.
방 안은 청소해두면서 시계 건전지는 안 바꿨다라….
건전지가 의외로 귀한 물품인가.
하긴, 전기도 안 들어오니 그럴 가능성이 크군.
주변에 있는 관리국 직원들은 이계 발전기를 쓸 테니, 건전지 같은 게 보급 물품에 들어갈 리는 없지.
사실 시간이 어찌 되었건, 옥시모론을 깨우는 것은 변함없었기에 더 강하게 흔들었다.
“일하러 가야지. 일어나라.”
“세 시간….”
“헛소리 그만하고.”
“예….”
생각보다 평범하게 일어나준 옥시모론은 멍하니 햇빛을 바라보며 방독면을 벗어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이어서 왼손에 착용한 가죽 장갑을 벗더니, 천천히 품 안에서 작은 유리병과 천을 꺼내 옆의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마치 아침에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당연히 이어지는 행동.
나 또한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알기에,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른손으로 천을 든 그녀는 방독면에 천을 던져넣었고, 이어 빈 오른손에 은빛으로 빛나는 무언가를 생성해냈다.
메스.
초능력으로 생성된 것이기에 상상 이상의 절삭력 가진 그것.
물론 그 크기까지 어떻게 할 순 없어 전투 중에는 톱 같은 거대한 무기를 쓰지만, 지금은 그런 거대한 물건은 필요 없기에.
매일 하는 일이지만, 여전히 긴장되는 것일까. 긴장한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자 하는 듯 고개를 흔들었고.
먼지를 비추던 빛이 그녀에게 쏟아져 은빛 섬광을 반사한 한순간.
메스가 휘둘러졌다.
목표는 그녀의 왼쪽 손목.
뼈에 닿을 정도로 깊게 손목이 갈라지자, 안에 든 살과 혈관이 열렸다. 이어서 그녀는 잘린 살 안쪽에서 빠르게 혈관을 뽑아내 병 입구에 집어넣었고.
“후우.”
마침내 일련의 작업이 끝나자, 그녀는 손목을 회복시켜 혈관만 밖으로 나오도록 치료를 마무리 지었다.
“끝났냐.”
“예. 이제 다 뽑히는 것만 기다리면 돼요.”
“그래.”
혈관을 직접 뽑아냈음에도, 유리병 안쪽에 천천히 쌓이는 피.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겠지만, 아침 숨을 돌리기에는 충분한 여유.
내가 그렇게 병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피를 유심히 보는 사이, 옥시모론은 방독면 안쪽에 쏟아진 피를 천으로 닦아내었다.
주변을 더럽히지 않고자, 자신의 가면을 받침대로 쓰는 행동.
몇 년이나 저리 해왔으니 저 안쪽은 피비린내로 가득하지 않을까.
어디선가 식염수 같은 것을 꺼내며 안쪽을 닦아내긴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는 저 피 냄새가 가실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본인은 그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으니 나도 뭐라고 안 하겠지만.
똑. 똑.
조용한 방 안에서, 병 안에 피가 떨어지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방독면을 모두 닦은 옥시모론은 조용히 벨트를 하나씩 풀어나가며 자신의 몸을 젖은 천으로 닦았다.
새소리 하나 없는 조용한 아침이 그렇게 흘러갔다.
* * *
아침 정비가 끝나고, 우리 둘은 함께 방에서 나왔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어젯밤과 달리, 아침 햇빛이 스며든 가게 안쪽은 세세한 부분이 잘 보여왔다.
약간의 먼지가 흩날릴 뿐인, 잘 정리된 공간.
나무로 된 복도마저도 왁스로 코팅이 되어있어 이 호텔의 주인인 노인이 이 가게에 얼마나 애정을 가지는지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생각보다 괜찮은 숙소였지?”
“예. 음식도 괜찮았고, 청소도 말끔하게 잘해두셔서 놀랐죠.”
“그럼 아침도 여기서 먹고 갈까?”
“괜찮은 생각이네요.”
어쩌다 들린 숙소가 이렇게 만족스러울 줄이야. 노인이 그만큼 대단한 것이겠지. 그리 생각하며 식당에 들어선 순간.
“늦게도 일어났군. 벌써 9시다. 요즘 영웅이란 것들은. 나만 해도 6시부터 일어나서….”
“하람 님. 여기 샐러드 맛있어요. 어서 와서 아침 드세요. 포요!”
노인과 운호가 우릴 맞아주었다.
운호?
…그러고 보니 같이 왔었지.
어제 숙소를 찾은 순간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아침 식사 됩니까?”
옆자리에서 운호가 시끄럽게 풀을 뜯고 있지만, 무슨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괴롭힐 생각이 들지 않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빨리 나가라고 했더니 굳이 아침까지 먹고 나갈 셈이냐?”
“주인아저씨 음식 맛이 좋아서 말입니다. 하나 주시죠.”
치켜세우는 말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흥. 그런 말은 하도 많이 들었다. 그런 말을 듣고 좋아할 것 같으냐?”
그리 말하며 조리실로 사라진 노인.
흠. 역시 잘 먹히네.
나이 드신 분 상대하는 방법이야 훤히 알고 있다. 주변에만 해도 성격이 괴팍한 노인네가 둘. 멀쩡하신 노인이 하나 있지 않았던가.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옥시모론 또한 의자를 끌고 가 운호의 옆에 앉았다.
왜 운호 옆에 앉은 거지?
의문을 느껴 입을 열려는 순간.
철퍽.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는, 운호가 머리를 박고 있던 샐러드 접시.
운호가 샐러드 그릇 소스에 그대로 담가진 채, 옥시모론의 손에 붙들려 채소와 함께 버무려지고 있었다.
뭐지.
환각이라도 보는듯한 기묘한 광경에 내가 입을 못 여는 사이.
“으아아아 맛있는 샐러드가 되어버려요. 포요오옼.”
옥시모론의 손에 샐러드로 변한 운호는 샐러드 그릇과 함께 카운터 저 멀리 사라졌다.
“읏샤.”
그리고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 소리를 내며 내 옆자리로 옮겨 앉는 옥시모론.
방금 뭐였지.
운호가 옥시모론에게 당한 것은 아무 상관없다. 평소에도 운호가 자주 당하던 짓 아닌가.
이상한 것은 그것을 행한 주체가 옥시모론이라는 점.
운호에게 크게 악감정도 없는 그녀가, 악의가 담긴듯한 행동을 취했다는 사실.
“어… 저기 운호한테 왜…?”
“그냥요.”
아. 그래 그냥이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옥시모론의 목소리에 깃든 무언가가 내가 입을 여는 것을 막았다.
정말로 궁금하다면 이겨내고 입을 열 수 있겠지만, 내가 당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운호가 당한 건데 무슨 상관일까.
어째 요즘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내가 기세에 밀려서 입을 못 열게 되는 상황.
최근에는 뇌신이 있었고.
약하게는 제자들도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데다가.
이제 옥시모론도 이러네.
뭔가 저주라도 받은 건가.
저주는 의외로 있을법한 문제였기에, 언제 한번 시간을 내서 칼라베라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잡생각을 이어가길 5분.
“아침이나 빨리 먹고 나가라 망할 영웅 녀석들.”
여전히 말은 험악하지만, 친절하신 노인이 접시 두 개를 카운터로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옥시모론은 이제 노인의 말에 익숙해졌는지 웃으며 감사를 표했고.
접시가 탁자에 닿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음식이 놓였다.
내 앞에 놓인 것은 둥근 빵의 가운데를 썰어서 만든 두꺼운 샌드위치와 보드카.
옥시모론의 앞에 놓인 것은 꿀이 들어간 팬케이크와 커피.
“아침부터 뭔 술입니까?”
“어제 술 달라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더냐. 그래서 하나 구해왔다.”
처음부터 아침까지 줄 생각이셨구만, 마음씨도 고우셔라.
아침이 간단한 샌드위치인 것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술이 있으니 아무렴 어떨까.
내가 보드카의 뚜껑을 따는 동안 옆에 앉은 옥시모론은 나름 즐거운 분위기로 팬케이크를 씹었다.
“이거 맛있네요.”
“괜찮으냐? 감자로 된 거라 입맛 좀 탈 텐데.”
“감자요? 제가 아는 감자는….”
“그건 못하는 놈들이 해서 그런거고. 잘하는 사람이 하면 상관없지.”
오늘도 조용히 이야기꽃을 피우는 옥시모론과 가게 주인.
나는 그 광경을 훈훈하게 바라보며, 입안 가득 보드카를 머금었다.
알콜 특유의 열기가 입과 목구멍을 간지럽혀온다.
꿀꺽.
목젖이 크게 울릴 만큼 만족스럽게 술을 집어넣고.
눈앞에 있는 원형 샌드위치를 손에 쥐었다.
알콜로 달궈진 입안으로 들어가는 샌드위치.
이미 술에 만족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와득.
그러자 빵에서는 절대 날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매우 단단한 무언가를 씹는 감각.
뭐지?
내 이빨이야 무식하게 단단했기에 그냥 씹었지만, 평범한 사람이 이걸 먹었다면 어땠을까.
분명 만든 이에게 욕을 했겠지.
“어떠냐?”
노인이 질문을 던져왔지만, 가죽처럼 질겅거리는 치즈를 씹는 통에, 입을 열지는 못하였다.
내 입으로도 씹기 버거운 음식을 처리하고자 입을 놀리길 몇 번.
마침내 나는 그것을 처리하여 목구멍으로 넘기고 입을 열었다.
“맛은 나쁘지 않은데. 뭐죠 이거?”
어떻게 생각해도 평범한 음식은 아니고.
“네 녀석 식감을 거의 못 느끼지?”
“…그러긴 하죠.”
단단한 게 껍데기나 돼야 겨우 씹는 맛이 느껴지니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준비했다. 치즈랑 고기도 좀 질긴 거로 가져오고, 빵도 빨리 꺼내놔서 좀 묵히고.”
그 말을 듣자, 잠깐 옛날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사실 그리 질긴 것도 아니었다. 옛날에는 음식을 삼키고자 몇 번 씹어야 하지 않았던가. 허나 그런 감각을 느낀 지가 너무나도 오래되어 질기고 단단하다고 느꼈을 뿐.
그리 생각하며 다시 샌드위치를 베어 물어보자, 과거 음식을 즐길 때 느꼈던 감각을 조금이나마 떠올릴 수 있었다.
“…괜찮네요.”
“아까처럼 아부라도 해보지 그러냐.”
사실 그러고 싶지만,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을 만난 게 얼마 만인가. 어제도 놀랐지만, 오늘은 더더욱 놀라움의 연속.
영웅을 챙겨주고, 세세하게 보아주는 이가 얼마 만인가. 낮춰보지도, 우러러보지도 않고, 명확하게 우리를 바라본 이가.
내가 그렇게 감동에 빠져 음식을 씹는 동안.
“여쭤볼 게 있어요.”
옥시모론이 입을 열었다.
“뭐냐?”
“왜. 영웅에게 이렇게 잘해주시는 거죠? 나이를 보시면 각성자 시절은 물론, 역병 사건도 겪으셨….”
어젯밤 그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비탄에 잠긴, 그녀의 목소리.
용기 내어 피해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던 목소리.
“아. 그거 말이냐?”
그러나 그런 목소리를 받은 당사자는 태평할 뿐이었다.
“회색 역병에 대해 좀 아냐?”
“….”
“아마 평범한 영웅보다는 더.”
그 질문에, 시무룩해진 옥시모론을 대신해 내가 입을 열었다.
애초에 여기 있는 건 그 사건을 처리했던 세 영웅 중 둘. 아마 그 누구보다 더 잘 알지 않을까.
“그럼 이제 전염이 멈춘 것도 알겠구만. 보여줘도 되겠어.”
그리 말하며, 노인은 풍성한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회색.
회색이 보인다.
머리카락에 감춰졌던, 회색으로 변한 머리 피부가.
종말병 감염의 상흔.
“감염된 적이 있어서 말이다.”
노인은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을 잃은 우리 둘을 대신하여.
“당시 식료품을 구하고자 거기 있었었지, 그러다 감염되었지 뭐냐.”
그 현장에 있었다고? 그런데 어떻게 옥시모론의 수술실 대상이….
“사람들이 죽어가고, 나 또한 죽음을 실감했을 때 말이다….”
이야기가 이어진다.
뻔한 이야기.
“…한 여자 각성자. 아니 이젠 영웅이지. 영웅이 우리를 구해줬었지. 뭐 그런 이야기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를 끝마친 노인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고.
“뭐. 이쯤 말했으면 알겠지?”
아마, 그는 그 난장판에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날. 모든 이들이 잠든 최악의 결말을. 악의에 삼켜진 군중을.
그런데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늘을 향해 울부짖은 여자아이가 알려준 치료법을 믿었다.
그렇게 남은 소수의 생존자.
“커피 한잔 더 주시겠어요…?”
“그러지. 잠깐 기다려라.”
노인은 옥시모론이 내민 커피잔을 들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울지 마라.”
“안 울어요.”
“그래.”
그녀가 방독면 안쪽에서 조용히 흘리는 눈물이 느껴지지만,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 귀는 조용히 내뱉은 그녀의 말을 들었다.
누구도 듣지 못할 말을.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