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03)
마법소녀 아저씨 103화(103/671)
103. 수술실(1)
사람이 모두 떠나 조용한 도시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기운이 없어 보였던 옥시모론도 적극적으로 다리를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고, 나 또한 그 속도에 맞춰 조용히 발을 굴렀다.
서로 간에 말 한마디 없었지만, 어색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저, 있던 일을 곱씹기 위한 가치 있는 침묵.
“후우.”
옥시모론이 숨을 들이마심으로써 길었던 침묵이 끝났다.
“기분은 좀 나아졌냐?”
나는 조용히 생각해두었던 질문을 던졌다.
“예. 덕분에 가슴에 쌓인 응어리가 아주 가벼워졌어요.”
그래.
“와서 다행이지?”
“예.”
“하루쯤 돌아갈 가치가 있었지?”
“그러네요.”
어디까지나 모두 우연히 일어난 일이다. 내가 여기에 오게 된 것도, 우리가 저 숙소에 들른 것도.
그렇지만, 거기서 옥시모론은 하나의 짐을 덜었다. 수십 년의 시간을 지나. 그녀에게 구원받은 당사자의 칭찬으로 인하여.
“자, 그럼 열심히 일해야겠지? 그 할아버지도 그리 말하셨으니.”
어떤 식으로든 옥시모론이 의욕이 생겼다면 나야 좋지.
보고서 질이 오르면, 수당도 오르지 않겠는가.
“그건 그거고, 일은 일이죠. 전 어디까지나 보조고, 아저씨에게 온 의뢰니까요.”
세상은 역시 쉽게는 돌아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동료 기분이 나아졌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옛 체코슬로바키아.
희게 칠해진 대지에 발을 디뎠다.
* * *
옥시모론의 S급 기술인 수술실로 인해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장소.
한때 회색 재로 덮여있던 건물도, 길도, 대지도, 모두 흰색으로 변한 정신 상태가 이상해질 것 같은 괴이하기 그지없는 땅.
하늘마저도 보호막처럼 생긴 반투명한 흰색 구체에 가려 매우 연한 청색으로 보여 더욱 괴이하게 느껴지는 장소지만….
오랜만에 다시 온 수술실은 옛날만큼 엉망은 아니었다.
파견되는 인원들의 정신건강을 우려한 것인지, 수술실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생명체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식물이나 야생동물들, 곤충들을 뿌려 흰색 도화지에 색을 더하였다.
벽을 타고 오르는 녹색 덩굴, 길가를 따라 심어진 푸른 잔디. 눈앞을 날아다니는 노란 나비, 내 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
대충 어떤 상황인가는 여길 종종 찾아오는 옥시모론에게 들은 적이 있지만, 상상 이상의 화려함이었다.
“환자들 여기저기 널려있는데 이래도 문제는 없나? 고양이는 벼룩 같은 거 안 옮길 것 같은데.”
내부에서 잠자는 사람들이 안 죽고 안 늙는다지만, 일단은 살아있는 생명체로 취급하니 병 같은 것은 걸릴 텐데.
“아. 간호사들에게 그런 건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려놨어요. 저보다 더 똑똑해서 잘할걸요?”
간호사라.
그 말을 듣기 무섭게, 눈앞에 온통 하얀 생명체가 지나쳤다.
집과 집 사이. 몸집이 작은 나라도 힘든 틈새를 아무런 불편함 없이 몸을 뭉개며 지나가는 그것.
간호사.
수술실 내부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옥시모론의 소환물.
말은 못 하지만 명령에 따라 행동하고, 몸집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흰색의 부정형 무언가.
그것이 마침 우리 둘을 보았는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허리를 굽히는 자연스러운 인사. 그리고, 그 안에 느껴지는 감정도.
찾아주셔서 감사하는 기쁨과 맹목적인 충성.
“가서 일해.”
옥시모론의 명령.
그 명령을 들은 간호사는 크게 고개를 흔들었고, 표면의 액체가 꿀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간호사는 다시 집 틈새로 몸을 욱여넣으며 사라졌다.
흠. 뭔가 이상한데.
본래 쟤들이 저렇게 감정표현이 충실했던가?
“저것들 본래 움직임이 저렇게 자연스러웠나?”
“쟨 나은 편이에요. 수간호사 같은 애들은 글도 쓴답니다.”
뭐야 그거 무서워.
“오래 살면 지능이 생기는 건가…? 생명체 같네.”
“생명체 맞을걸요? 예전에 칼라베라 오빠가 왔을 때 저것들 왜 영혼이 있냐며 기겁하셨거든요.”
…진짜 무서운데?
스스로 생겨나서 진화한다고?
그렇다면 옥시모론은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뜻 아닌가.
비록 수술실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거짓된 존재라도. 영혼이 있고, 지능이 있고, 감정이 있다면.
영혼이라.
옛날엔 믿지 않았지만, 여러 사건을 겪으면 그런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그게 진짜 영혼이건, 사람의 정보 일부를 담은 잔여물이건, 명백하게 생명체의 자아를 구성하는 뭔가가 존재한다고.
여지껏 내가 알던 이들 중 그걸 가능케 한 것은 딱 한 명뿐이었다.
린슈아. 내 딸.
하지만, 오늘 한 명이 더 늘어났다.
옥시모론.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과거 라이브러리안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 * *
“각성자 중 가장 재능이 뛰어난 이가 누구일 것 같습니까?”
“그냥 너라고 하자.”
어차피 이상한 소리 하면서 지라고 할 텐데.
“안타깝지만, 저는 아닙니다.”
“그럼 누군데? 무한성주?”
“개인적으로는, 옥시모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옥시모론? 그 녀석이?
“전투 능력도 한참 모자라고, 능력도 별거 없는 걔가?”
“전투만이 재능은 아니잖습니까.”
라이브러리안은 내 말을 대충 반박하고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생각해보죠. 옥시모론이라는 존재는 사실 굉장히 이질적입니다.”
“이질적이라면 나도 더럽게 많이 들었는데.”
어떻게 아무 능력도 없는 녀석이 여기까지 올라오냐며.
“그렇긴 합니다만, 여러 가지 요소가 있었잖습니까. 노력이라든지, 기연이라든지,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집어삼킨 구멍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지하도 있죠.”
“지하는 엿이나 먹으라 그래. 아, 제길 밥 먹는데 그딴 소리를 해야 하겠냐? 꼭?”
식욕이 뚝 떨어지네 진짜.
“사과드리죠. 요즘 먹는 음식량이 줄어들다 보니 그쪽으로 신경이 덜 갔네요. 어디까지 했더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과가 지나고.
“음. 그럼 계속해 보죠. 그녀는 그런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수련도, 아무런 인연도, 아무런 지식도 없이 그 드높은 경지에 올랐죠. 심지어 S급 기술인 수술실까지.”
그렇게 따진다면야 맞는 말이긴 하다만….
“대신 그만큼 이야기가 쓰레기였잖아. 아. 넌 아시아 쪽 아니라서 보고서 본 적 없나?”
“물론 봤습니다. 그걸 보고 확신한 생각입니다. 너무나도 이질적이죠. 마치, 처음부터 불가능한 난제를 던져주는 것처럼 말이죠.”
“….”
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모든 이야기는 어떻게든 끝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영웅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죠. 전뇌황제 콜로서스의 예시에서 보듯, 설령 5명 중 4명을 죽여서라도.”
오늘따라 얘가 왜 이러지.
콜로서스라. 덕분에 눈앞의 철판도 살아나서 춤을 출 것 같네. 그냥 저녁 식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주먹이나 날릴까.
“그렇지만, 옥시모론의 이야기만은 예외였습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이야기. 처음부터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야기.”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이상한 망상이면 그냥 나 가도 되냐?”
어차피 이제 밥도 안 넘어가는데.
“여전히 급하시군요.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그녀를 죽이려던 것은 아닐까요? 그 재능을 죽이기 위해서.”
매일 연구실에만 있다 보니 드디어 맛이 가버린 모양이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입을 열었다.
“게임 좀 그만하고, 연구도 적당히 하고, 바람 좀 쐬라. 난 간다.”
“잠깐만요? 예?”
* * *
당시에는 웃어넘겼지만, 의외로 그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야기의 끝의 존재. 내 눈으로 직접 보았던 ‘수정자’라는 존재. 이야기를 다스리는 존재에 대한 확신이, 기억 안쪽, 깊숙한 장소에 매몰되어있던 농담을 떠올렸다.
“무슨 생각 하세요?”
“….”
나 또한 아직 망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보가 모자라다.
옥시모론과 이 이야기를 상담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정보의 출처.
결사와 얽힌 정보가 아닌가.
물론, 블랙 머라우더로서 행동하는 것도 입을 다물어주는 옥시모론이니 그걸 말해도 입을 다물어 줄 가능성은 크지만….
뇌신사이에서 있던 사고처럼 내가 모르는 역린을 건드려 적대하게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돌리자.
“잠깐, 간호사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간호사 디자인이 어때서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그녀의 밋밋한 반응.
“분명 옛날에는 그냥 민둥민둥한 인간형이었는데 말이지.”
머리카락도 없고, 마네킹처럼 생긴 데다가, 그 모습도 유지하기 힘든지 평소엔 점액의 형태를 가진 무언가.
“그랬죠.”
“그런데 왜 죄다 여성형으로 디자인이 바뀐 거냐?”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 이것과 관련된 기억도 떠올랐다.
옷을 살 때 있었던 일. 옥시모론은 나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
아까 지나갔던 간호사도, 내 것과 비슷한 코트를 입고 있었다.
나와 머리 스타일도 다르고, 코트 또한 세세한 부분이 다르지만. 분명 전체적인 디자인은 비슷한 무언가.
“음. 저게 더 보기 좋아서요?”
거짓말이구만.
“아니 어떻게 봐도 나랑 똑….”
“아저씨랑 똑같이요?”
실수했다.
순식간에 머리에 열이 오르는 바람에 능숙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지 못했다.
이래서야 자폭이나 마찬가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 모습도 제가 명령한 거 아니에요. 쟤들이 스스로 취한 거지.”
흠?
“그러니까, 저 모습이 된 건 쟤들 스스로 선택한 거예요. 제가 그런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우연… 일리는 없고, 옥시모론의 무의식 같은 게 적용되기라도 한 건가.
“아저씨랑… 닮았다라. 흠….”
그런데 옥시모론은 내 말에 뭔가 집히는 게 있는지 고민하듯이 혼잣말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
“확인해 봐야지…? 집합!”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녀는 갑자기 큰 목소리를 내질렀고, 크게 내지른 그녀의 목소리가 조용하던 흰 공간을 뒤흔들었다.
꿀렁. 꿀렁. 꿀렁.
여기저기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구조물이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펑.
거품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십여 채의 간호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집 벽에서 기어 나오며.
지면에서 솟구치며.
가로등 끝에서 거꾸로 떨어지며.
우리 옆에 옹기종기 모이는 흰색의 인간형 무언가들.
본래라면 수없이 많은 개체가 모여야 하지만, 십여 개체만 모인 것을 보니 아마 주변에 있는 녀석들만 모인 모양이다.
그렇게 나타난 간호사들은 자기를 왜 불렀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구관 인형처럼 단조로운 겉모습을 가진 인간형 물체가 음영만으로 이루어진 얼굴을 단체로 까딱이는 모습은 조금 공포스러웠으나, 그 움직임이 너무나도 인간다워서 그 공포심이 희석되었다.
“저기 아저씨 옆에 일렬로 서봐. 겉모습 좀 비교하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간호사들은 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럴 시간에 그냥 가지?”
“아저씨가 꺼낸 말이잖아요.”
방긋 웃으며, 그리 말하는 그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뭐라 반항할 의욕이 사라졌다.
그래, 다 내가 잘못했지.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그 말을 꺼냈을까.
그리 의욕을 잃고 후회하는 내 주변을 간호사들이 둘러쌌다.
의료행위를 위해서일까. 나보다 머리 한두 개 정도 더 큰 그녀들.
얼핏 보기엔 비슷비슷해 보였지만, 자세히 바라보니 의료도구를 꽂아 넣은 위치라거나, 흰색 액세서리를 착용한 위치, 머리 모양이 세세하게 달랐다.
그리고 이리 모여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음… 확실히 이렇게 모아보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녀.
“옷이라거나, 기본 외형 디자인 모티브가 아저씨인 것 같네요. 왜 그럴까요.”
그리고 옥시모론의 고개에 맞춰서, 날 둘러싼 간호사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난들 알겠냐. 옥시모론 네가 모르면 내가 어떻게 알까.
내 생각이라면 아까도 생각한 무의식의 영향이고, 그거에 간호사들이 받았다는 가설이지만.
괜히 그걸 꺼냈다가는, 일이 더 커질 것 같기에. 입을 다물었다.
“어? 저 녀석은 옷 모습이 조금 다르네요.”
누구? 죄다 코트던….
찰랑거리는 고딕 드레스를 입은 간호사.
프릴 같이 세밀한 문양은 유동체로 생성할 수 없어 팔찌나 리본으로 대처한 듯, 두루뭉술한 디자인.
설마 저거 블랙 머라우더 옷인가.
“…빨리 지부로 가자.”
“그게 좋겠네요.”
내 목소리에 담긴 절망과 자살 소망을 감지한 것일까.
옥시모론도 미소를 지우고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정말. 힘든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