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22)
마법소녀 아저씨 122화(122/671)
122. 쥐와 쥐.(1)
찌를 듯이 강한 사람들의 시선에 혹여 함정에 빠졌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리 노인의 취향 그대로였다.
사이비 중국풍.
여전히 취향이 괴팍하군.
붉은 장식물도, 노란빛을 띤 물건도, 모두 묘하게 뒤틀려 있어 익숙한 중국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방 안의 사람들이 우릴 노려보고 있긴 하지만, 시선에서 느껴지는 것은 적의보다는 호기심이나 경계심.
심지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이들도 있는 것을 보아하니, 낯선 사람을 본 평범한 집단의 심리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주변을 파악한 나는, 대충 의자에 몸을 던졌다.
등에서 둔탁한 감촉에 느껴지는 딱딱한 의자였지만, 오랜 시간을 달려온 만큼 허리를 붙일 장소가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으어어 스승님. 못 일어나겠어요.”
“시현아 나 붙잡지 말고 좀….”
제자 둘은 이 와중에도 땅바닥을 구르며 바보짓을 하고 있다.
바닥에서 퍼덕거리며 뒹구는 꼴이 꼭 튀김가루를 온몸에 바르고 있는 생선이랑 비슷하군.
묻히고 있는 게 튀김가루가 아니라 먼지긴 하지만.
“일어나라.”
도와주고자 뻗은 손을 잡은 둘을.
“아 고맙습…으아아?.”
“감사합…. 흐끼약.”
그대로 잡아당겨 소파 위에 내팽개쳤다.
일으켜 세웠다가는 또 넘어지거나 바보짓을 할 것이 눈에 선했기에.
적진은 아니고 사실상의 중립지대라곤 하지만, 괴상한 짓을 계속하는 것을 스승으로서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특히 백시현은 일이 꼬인다면 이 집단과 얼굴을 자주 마주하는 사이가 될 가능성도 있으니 바보짓은 그만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첫인상이 망가졌으니, 적어도 이제부턴 멀쩡한 모습이라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좀 얌전히 있어라.”
“스승님이 하셨으면서….”
“좀 부드럽게 해주시지….”
소파에 처박힌 백시현과 한아빈은 자세를 가다듬을 힘은 남았는지 자세를 고치며 토를 달았다.
“그럼 애초에 쓰러지질 말아라.”
억울하면 단련하시던지.
이게 30년의 차이다 애송이들아.
제자들은 피곤한 탓인지 반박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고, 그 대신 이리저리 몸을 비틀다 결국 편한 자세를 찾아 늘어지기 시작했다.
“으어어 편하긴 한데….”
“시현아, 비켜봐…아?”
갑자기 제자들의 말이 끊겼다.
말이 끊긴 둘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방에 있는 덩치 큰 남자들.
그리곤 둘은 짜고 친 것처럼 똑같은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무릎을 붙이고, 무릎 위에 손.
쫙 편 허리.
‘저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어필이라도 하는 것 같은 자세.
“선배님…? 여기 뭐예요…?”
“깡… 조직폭력배? 마피아…?”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둘 다 아니긴 하다만… 굳이 따져보면 비슷하긴 하지.”
소규모 군벌이나 지역 호족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만, 까고 말해서 요즘 그런 게 어디 있나? 그냥 깡패라고 말하는 것이 이해하기 편하지.
“지금 저흴 노려보시는데요?”
그게 뭐 어쨌다는 걸까.
“너희가 때려잡은 A급 괴수나 괴인이 쟤들 다 합친 것보다 셀걸.”
비슷할 수도 있고.
느껴지는 힘이 B급 상위는 되는 존재들도 있으니까.
“그… 그래도 깡패잖아요? 수틀리면 주먹도 휘두르고….”
한아빈이 하는 말도 그렇고, 백시현이 하는 말도 그렇고. 이해가 잘 안 되는군.
“그래서, 괴수 괴인보다 쟤들이 더 무섭다고?”
“…그렇게 말하면 저희도 할 말이 없긴 한데…. 뭔가…. 뭔가….”
대체 무슨 소린지 원.
제자 둘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자 입과 손을 조물거리고 있지만, 명확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친숙함의 문제인가.
아무래도, 아직 민간인일 시절 물이 덜 빠진 것 같다.
단순한 기세와 위압에 쫀다니.
“너희가 더 세니까 좀 당당히 있어라. 영웅에 이름 석 자 올려놓고 그게 뭐 하는 꼴이냐.”
그 말에 제자들은 조금 긴장이 풀린 듯 자세를 풀었으나, 약한 긴장감까지는 어찌하지 못했다.
놔두면 익숙해지겠지.
윽박질러봐야 바뀌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대로 소파에 몸을 뉘었다.
* * *
“차가 괜찮군.”
“감사합니다. 안쪽에서 기른 찻잎이라 외부 분들 입에 맞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군요.”
내부에서 기른 찻잎이라. 이제 식물 종류도 안쪽에서 해결하는 건가.
난지도가 점점 외부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잔에 담긴 녹차를 들이켰다.
둔감한 내 혀에서도 느껴지는 연한 떫은맛과 감칠맛의 조화. 차는 잘 모르지만, 이 정도면 술술 넘어갈 것 같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저 둘은 차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한 것이 티가 나지만.
여기에 들어온 지 1시간가량.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근본적인 인식을 바꾸기엔 시간이 모자랐던 것 같다.
그 얼빠진 꼴을 곁들임 삼아 차를 들이켜길 10여 분.
“이하람 님. 장로님께서 준비가 되셨다고 합니다.”
방구석에 서 있는 경호원이 그리 말하자,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둘 다. 가자.”
그리고, 긴장한 탓인지 아직 의자에 앉아있는 둘에게 명령을 던졌다.
“옛!”
“네!”
둘은 내 명령에 따라 뻣뻣하게 기상했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나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장 풀고. 지금부터 만날 사람은 그렇게 무서운 영감은 아니니까.”
“…….”
내가 그리 말했지만, 둘의 행동은 여전히 뻣뻣할 뿐이었다.
심하게 바들거리는 새끼 고양이 둘을 데리고 문에 가까워지자, 문 앞에 서 있던 경호원이 손을 뻗어 문을 열어주었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경험으로 단련된 내 눈은 뭔가를 파악했다.
소매 사이로 삐져나온 회색 털.
…혼혈인가, 잘 위장했군.
동시에, 말해줘야 할 것이 떠올랐다.
“아, 애들아. 이제야 말해서 미안하다만….”
왜 이걸 말할 생각을 못 했을까.
“방 안에 있는 사람을 보고 놀라거나 적대감 표현하지 말도록 해라.”
그 말을 끝으로 우린 방을 넘었다. 그러나, 문을 넘은 장소에 있는 것은 방이 아닌 기다란 복도.
연한 조명이 주변에 일렁이고, 가까스로 사람 하나가 통과할 수 있을 복도 끝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그렇게 거창하게 문을 열어주는 쇼를 해놓고 또 안전장치라.
그 노인네답군.
제자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듯 또 바들거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에 상관치 않고 성큼성큼 복도를 걸어 나가, 문을 열었다.
찰칵.
조용한 복도에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열린 문틈 사이로 뿌연 연기가 퍼져 나왔다.
…방금 그건 안전장치가 아니라 이 연기가 다른 방으로 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복도였나.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고.
“잠깐 거기서 멈춰라.”
내 등 뒤를 종종거리며 쫓아오는 제자들에게 손을 뻗어, 가까이 오지 않게 명령을 내렸다.
내 예상이 맞았다면, 이 연기는 들이마셔서 좋은 것이 아니니까.
수증기와 섞여 자극이 약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코의 점막과 혀끝을 맴도는 특유의 감촉을 없애진 못했다.
혀 위에 감도는 씁쓸한 맛.
코에 감도는 역한 단내.
각성 계열 마약이군.
한 번 물을 거쳐서 연해지긴 했지만, 들이마셔서 좋은 물건은 아니다.
하는 수 없이, 연기 너머에 있는 방 주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나만 온 게 아니니 좀 꺼주길 바란다만.”
“뭐야, 피망치의 제자라고 들었더니만, 아직 담배 냄새도 못 맡아본 핏덩이들이냐?”
연기 저편에서, 가래가 잔뜩 낀 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뒷 세계 관련은 이제 막 알려주는 걸음마 단계라서 말이지.”
“찟찟. 걸음마 단계인데 날 소개해주는가? 너무 과하군. 어찌 되었건, 손님이니 내 양보하지.”
탁.
뭔가 둔탁한 물건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마법이 격발되었다.
약하지만, 방 안에 가득 찬 연기를 몰아내기에 충분한 바람.
그것이 의지를 가지고 휘몰아치자, 방 안에 있던 연기는 바람을 타고 환풍구에 말려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들어오게나 인간의 아이들이여.”
연기가 사라져 모습을 드러낸 그가 그리 말하자, 제자들은 방 안으로 들어와 그를 마주했다.
“…쥐?”
“괴인?”
그를 만나 놀란 제자들의 반응.
“찟찟. 뭐야, 말해주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반응이 즐거운지, 리 노인은 웃으며 담뱃대를 휘둘렀다.
“어.”
이번 뒷 세계 탐방에서 내 교육방침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직접 겪어보라는 거니까.
“그렇군, 담배 연기는 미안하네. 아이들이여, 이 죽어가는 몸에는 진통제가 필요해서 말일세.”
리 노인은 그리 말하며, 소파에 뉘어있던 몸을 바로잡았다.
쪽 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뼈만 남은 앙상한 몸을 한 그.
옛날보다 더 몸이 안 좋아졌군.
“그래서, 무슨 일로 왔는가?”
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리 노인의 반대편에 자리한 의자를 향해 몸을 던졌다.
대기실과 다르게 푹신한 의자에 앉자, 리 노인과 시선이 마주쳤고.
“배신자 찾으러.”
나는 고개를 들며 그리 내뱉었다.
“낏낏. 배신자. 배신자라.”
리 노인은 내 말에 잠시 웃더니.
“어떤 배신자 말인가?”
흥미롭다는 듯 스콜마냥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작년에 말살당한 무인 말인가? 그 녀석이라면 시체가 된 지 오래네.”
짧은 심호흡.
“아니면 저번 달에 도망쳐온 영웅인가? 그 녀석은 시비를 걸었다가 칼 맞고 손을 잃었지.”
짧은 비웃음.
“그도 아니라면, 저번 주에 가공된 사기꾼인가? 밖에서 미래 예지로 주식을 조작하다 걸렸다던데. 이미 뇌가 뽑혔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걸세.”
리 노인의 박장대소에 섞여, 충격적인 말이 쏟아져 내린다.
“저기. 저기 잠시만요?”
그에 놀란 것일까, 한아빈이 갑작스럽게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뭔가, 인간의 아이여?”
쥐 노인은 그에 흥미로운 듯 담뱃대를 입에 물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도망친 영웅이라느니, 그런 건 뉴스에서도 한 번도….”
한아빈이 급하게 질문을 던졌으나.
“피망치 자네, 정말 하나도 설명해 주지 않았군.”
리 노인은 그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말해 줘 봐야 믿을 리 있나?”
“찟. 찟. 그도 그렇군.”
리 노인은 유쾌한 듯 웃으며, 자세를 바꿔 한아빈을 바라보았다.
“이게 현실일세. 깨끗한 영웅이여. 지금, 이 순간에도 일부 영웅들은 배신하여 악당으로 떨어져 내리지.”
딱. 딱.
주의를 환기하려는 듯, 담뱃대가 탁자에 내리쳐졌다.
“밖에 있는 우리 애들을 보았는가? 몇몇은 한때 영웅이었지.”
“…그럼 정말로….”
“의문스러우면 가서 물어보게나,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니 조금 숨기긴 하겠다만, 아마 알려줄걸세.”
낏. 낏. 낏.
찍찍거림과 비슷한 웃음이 방 내부에 퍼진다.
그런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공적지정과 힘 회수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 대상에서 벗어나는 존재들이 있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힘을 회수하는 존재가 저것은 악행이 아니라고 판별하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조건이라도 있는 건지.
그렇기에 극히 소수지만, 일부 영웅은 힘을 가지고 배신한다.
그렇게 탄생하는 빌런.
하지만 그런 존재가 알려졌다간 영웅의 무결성에 흠이 생길 터.
그를 위한 처리반.
그를 위한 암살반.
그를 위한 미행반.
그를 위한 정보반.
관리국의 어둠이란 그런 것이다.
그 사실을 들은 한아빈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항상 발랄하던 백시현조차 생각할 것이 있는지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파괴하는 용도로는 나쁘지 않은 충격요법이었다. 처음부터 이걸 노리기도 했고.
그럼 이쯤에서 끝낼까.
“애들은 그만 놀리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본론? 무슨 본론 말인가.”
리 노인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떼기 시작했다.
능글맞은 영감탱이 같으니.
“김태준. 위치 알고 있지?”
“김태준. 김태준이라. 분명…. 관리국의 대변인 아닌가? 밖의 사람을 왜 안에서 찾는고?”
“헛소리 말고, 위치 넘겨. 그놈은 관리국에서 처리할 대상이니까.”
“찟. 찟. 찟. 피망치 자네….”
내 말을 들은 리 노인은 잠시 유쾌한 듯 웃더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힘을 뿜어내었다.
“힛.”
“아?”
방심했는지 쓰러지는 한아빈.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놀란 백시현.
“나와 그대 사이라 착각하는 모양이다만, 우리는 단순한 협력관계네. 나는 관리국에 충성하는 존재도 아니고, 우리가 관리국 산하의 집단도 아니지.”
리 노인은 계속해서 위압감을 뿜어내며 말을 이어나갔다.
“여긴 난지도고, 난지도엔 난지도의 법칙이 있지. 그놈들이 여기 들어왔으니 그놈들을 어떻게 하던 우리 마음일세.”
그 말을 마치고는, 리 노인은 압박감을 뿜어내는 것을 멈추고 웃기 시작했다.
“찟. 찟. 찟. 혹시 아나? 그놈 머리라도 뜯어서 휘저어보면 관리국과 교섭할 재료라도 나올지.”
리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뭐라 말할 거라 기대하는 모습.
“당연히 맨입으로 정보를 주라는 것은 아니지, 리 노인. 내가 언제 영감을 실망하게 한 적 있나?”
나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머릿속으로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손에 든 패, 해야 할 말. 눈앞의 노인이 흥미를 느낄 것.
대충 정리를 끝낸 내가 입을 열려는 찰나.
“꽤 많지.”
아, 좀 넘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