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24)
마법소녀 아저씨 124화(124/671)
124. 쥐와 쥐.(3)
“이야기는 끝나셨습니까?”
리 노인과 이야기를 끝내고 방 밖으로 나온 우리를 마주한 것은, 우리를 안내했던 남자였다.
본래 입고 있던 것은 밖을 돌아다니기 위한 위장이었는지, 검은 양복을 쫙 빼입고 안경을 쓴 깔끔한 모습.
꽤나 고위급인가.
옷차림을 보아하니 난지도에 사는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당장 서울의 번화가로 나가 직장인처럼 행동해도 될법한 번듯한 외모.
아마 외부로 나다니기라도 하는 것이리라. 어쩌면 관리국과의 연락책일지도 모르고.
그걸 고려하더라도 저 뻔뻔함은 보고 넘겨줄 수 없지만.
“다 보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하지 마라.”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뻔뻔하긴.
“벽 뒤…는 아니고, 마루 아래군. 거기 숨어서 보고 있었지 아마?”
나무로 된 바닥도, 어설픈 벽도 모두 돌입하기 위한 장치.
그 방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함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뭔가 착각하신 것은 아니신가요? 전 계속 여기에 있었습니다.”
남자는 내 말에 계속 뻔뻔한 얼굴로 그리 주장하였다.
왜 저리 고집을 부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니 여기서 끝내야지.
“아, 그래. 다음부터는 숨을 때 호흡도 신경 써라. 방에 연기나 먼지 같은 게 있으면 공기가 어디로 흐르는지 잘 보이니까.”
그리 말하며 이 주제를 끝내자는 의도로 손을 흔들었다.
안 그래도 리 노인이랑 말싸움하느라 지쳤는데, 엄한 녀석과 입씨름 할 힘도 없다.
“…충고 감사드립니다.”
“됐고, 넌 없었다면서, 네가 아니라 다른 놈이었는 갑지.”
내 말을 이해했는지,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래서, 돌아갈 때도 네가 안내하는 거냐?”
“아, 그것 말입니다만….”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내 질문에 답하려는 순간.
“쉬고 가요! 쉬고! 힘들어요!”
“…평소라면 뭐라고 하겠지만 지금은 시현이 의견에 찬성이에요.”
제자 둘은 뭔갈 느꼈는지 그가 말하기도 전에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애들도 아니고 저게 무슨 짓인지.
“충분히 쉬었잖냐.”
“몇 시간 동안 달린 다음에 잠깐 앉는 걸 쉰다고 하지 않아요….”
“넌 업혀 왔잖아.”
“전 달려왔으니 쉬어도 되죠?”
“아직 팔팔하구만. 좀 더 달려.”
A급 판정받은 놈이 대체 무슨 엄살인지 원.
나 때는 말이다. 시베리아 벌판도 나무뿌리 씹으면서 달렸어.
그렇게 호통치고 싶지만, 내가 생각해도 꼰대 분위기가 풍겨 입을 다물었다.
“1시간만요!”
“그랬다가 언제 돌아가려고.”
“그럼 30분!”
“30분이 1시간이 되겠군.”
“10분!”
…쉬는 의미가 있나?
바보짓은 정도껏 하라고 말하며 붙잡아서 끌고 가려던 순간.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어느새 뒷전이 된 남자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뭔데?”
“쉬는 거죠? 아저씨도 힘들죠!”
“시현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저씨는 좀….”
아저씨란 말을 들었기 때문일까, 남자의 얼굴 근육이 조금 뒤틀렸다.
그렇다고 해도 프로 정보원은 프로 정보원인지 얼굴의 미소가 사라지진 않았지만.
“아저씨 아니고, 오빠…는 제가 생각해도 좀 오버군요. 삼촌으로 불러주시길.”
…바본가 진짜.
어찌 된 게 주변에 멀쩡한 놈이 단 한 놈도 없지.
“아저씨고 삼촌이고 할아버지고 찍찍이고 나발이고 진도 좀 나가자? 어?”
대체 이 빌어먹을 바보짓은 언제까지 할 생각이야.
“아. 죄송합니다. 잠깐 아저씨란 말에 충격을 받는 바람에 그만.”
전역했으면 다 아저씨지 뭔.
…아 난지도 사람이지. 입대를 안 했을 가능성도 있군.
“흠. 흠. 그건 그렇다 치고, 돌아가는 길 말입니다만….”
남자는 자기도 어색했는지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쁜 소식부터 말씀드리자면…. 지금 당장 출발할 예정입니다.”
“그래야지.”
제자의 탄식이 배경 소리가 되어 울려 퍼졌지만, 나에게는 순수하게 좋은 소식이었다.
이참에 다리 운동 좀 해라. 제자들아. 중요한 순간에 남는 건 다릿심밖에 없더라.
“그럼 좋은 소식입니다만…. 돌아가는 길은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엉?”
“예?”
내 얼빠진 소리와 제자들이 놀라는 소리가 겹쳤다.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말.
달려서 수 시간 걸린 거리를 10분 만에 주파할 수 있다니. 공간이 왜곡된 난지도라고 해도 저 정도로 압축하긴 힘들 것이다.
거기다가 눈앞의 남자도 이동을 위해 공간 왜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상층부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아닌가.
예상되는 거라면….
“일직선으로 구멍이라도 뚫었냐?”
꼭대기에서 지상까지 떨어지면 10분 이내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럼 평범하게 이 영웅님 말고는 다 죽을 거라 봅니다만….”
그야 그렇지.
“일단 믿고 따라와 보시길.”
남자는 그리 말하곤 천천히 들어왔던 문들 열었고, 처음 들어왔던 복도가 나타났다.
“아….”
제자들은 복도를 본 것만으로 탄식을 흘렸지만, 나로서는 저게 거짓말이어도 별 상관이 없었기에 조용히 남자 뒤를 따라갔다.
“으… 정말 힘든데.”
“10분이라잖아… 참아.”
제자들은 불평을 내뱉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듯 우릴 따라왔고.
시체 둘이 문을 빠져나옴과 동시에 문이 닫혔다.
“그럼 따라오시죠.”
남자는 본래의 무감정한 분위기로 돌아가 우리를 안내했다.
여기 올 때처럼 전력 질주가 아닌, 산책하는 듯한 느긋한 걸음걸이.
우리 바보 두 명도 그런 느긋한 걸음걸이라면 상관없는지 불평을 거두고 입을 다물었다.
걸은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다 왔습니다. 이거 받으시죠.”
남자는 막다른 골목에서 멈추고서는 우리에게 뭔가를 내던졌다.
날아오는 물건은 세 개.
각자 하나씩 배분된 것 같았기에, 가장 낮게 날아오는 하나를 공중에서 낚아챘다.
“뭐냐?”
붙잡은 물건의 정체를 알 수 없었기에, 본능적으로 나온 질문.
차라리 괴상한 것이라면 뭔가 이계와 관련된 물품이라고 이해하겠지만, 너무나도 평범한 물건이었다.
동물 꼬리가 달린 열쇠고리.
끝의 털이 회색빛인지라 어떤 생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악세사리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
“난지도에 사는 쥐가 있습니다.”
모두가 얼빠진 얼굴로 그걸 바라보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쥐들은 무시무시하게도 공간 이동을 할 줄 아는 생물이죠.”
쥐가?
조금 놀라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계의 힘을 받았으니 괴수로 변한 쥐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거기에 주목한 장로님께서 연구를 거듭해 만든 물건이죠. 시작품이라 두 장소밖에 잇지 못한다는 문제점과 장로님이 사용자에 맞춰 개별적으로 물건을 교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아. 대충 알겠다. 그만.”
그러니까 이걸 들고 있으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단 뜻이군. 굳이 여기까지 달려온 것은 리 노인이랑 한 번 얼굴 볼 필요가 있던 거고.
“에? 전 잘 모르겠는데요.”
“나중에 아빈이가 설명해 줄 거다.”
멍청한 백시현을 내버려 두고, 대충 허리춤에 열쇠고리를 둘렀다.
“그래서, 이걸 차고 저 골목길로 돌진하면 되는 건가?”
“정확합니다.”
그 말에 살짝 걸음을 옮겨보자, 공간 이동 특유의 멀미가 느껴졌다.
허공으로 뜬 듯한 부유감, 인식이 뒤틀리고, 눈앞이 회색이 되는 감각.
확실하군.
“어디로 이어져 있지?”
“시장에 있는 저희 은신처입니다. 마음껏 사용하셔도 괜찮지만, 종종 공간 이동을 사용하려는 형제들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주시길.”
난지도도 내가 없는 사이 이상한 기술을 발전시켰구만. 옛날에는 그냥 달려 다녔는데 공간 이동이라니.
“시현아, 아빈아. 가자.”
내가 그리 말하며 둘을 돌아보자.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이거 공간 이동이죠? 그럼 멀미가…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어? 이거 공간 이동이에요? 스승님 잠깐만요 심호흡 한 번만.”
이미 눈치를 채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한아빈과 이제야 이해했는지 헛소리를 시작한 백시현.
“시꺼.”
둘의 팔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이 늘어지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공간을 넘었다.
* * *
“우리 왔다.”
“오셨습… 니…. 까?”
어제 음식을 대량으로 가져다준 덕분일까, 묘하게 공손해진 담이 우리를 마중 나왔다.
그 공손한 가면도 제자들의 꼴을 보고 일그러진 모양이지만.
“토할 것 같아요…. 으엑.”
“시현아… 손 치워… 거기 내 허리야….”
“네 허리가 뭐 어때서…. 물렁물렁 감촉 좋아….”
“만지지 마….”
…난지도에 지능이 떨어지는 결계라도 깔렸나? 여기 와서는 제자들의 바보짓만 줄곧 보는 것 같은데.
“누나들은 왜 저러죠?”
“공간 이동 멀미.”
담의 질문에 답을 해주었건만, 담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벙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공간…. 멀미요?”
하긴, 공간 이동이 흔한 것도 아닌데, 공간 이동 시에 멀미가 생긴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
“아…. 공간 이동을 안 겪어본 사람한텐 설명하기 좀 힘든데…. 대충 널 붙잡고 내가 10분 정도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면 어쩔 것 같냐.”
“죽겠죠?”
죽진 않을걸.
그 답에 내가 어처구니없어하며 얼굴을 비틀자.
“아, 대충 이해했습니다. 누나들이 그런 힘든 일을 겪었단 소리군요.”
눈치 빠른 담은 빠르게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실수를 무마했다.
“그래.”
그렇게 짧은 인사가 끝나고, 제자들이 뭘 하나 뒤를 돌아보았다.
“네가 더 쪘어….”
“아냐, 시현이 네가 더 쪘어….”
거기엔 서로의 배를 만지작거리는 바보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은 건가요?”
말을 고르는 담도 저리 심하게 말하는 걸 보니, 정말 답 없이 멍청해 보이나 보다.
“…괜찮을 거다. 아마.”
저 정도로 망가질 줄은 몰랐지만. 아무래도 안정적인 공간 이동이 아니다 보니 머리에 영향을 끼친 모양이다.
하긴, 짐승들이 사용하는 것을 이용하는 거니 저런 부작용 하나둘쯤은 있을 수 있겠지.
나만 해도 전송 직후에는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했으니까.
그리 믿자. 여기 오고 몇 번이나 되뇐 것 같지만, 그리 믿어야 한다.
“저기… 그런데….”
뭐지?
“누나들은 그렇다 치고…. 저기…. 그 오늘은….”
담이 말을 얼버무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로 나오지 않는 모양.
담에게서 눈을 떼고 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입에서 침을 흘리는 연.
빤히 나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빠는 두 아이.
저들이 나에게 뭘 원하는지는 처음부터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방 중앙의 탁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먹을 것 말이지? 여기 있다.”
쿵.
식품 보따리가 자신의 무게를 증명하며 탁자에 떨어져 내렸다.
어제와 비교해서 양 자체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지만, 저리 무게가 불어난 것은 음료가 포함된 탓. 어제에 아이들이 음식을 억지로 집어삼키느라 목맨 것이 기억에 남았기에.
“먹어도… 되는 거죠?”
“어제도 그리 물어보지 그랬냐.”
어젠 잘만 먹더니만.
막상 저지르고 하루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염치가 없단 걸 떠올린 건가.
“….”
내 생각이 정답이었는지, 아이 넷은 음식 보따리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조용히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바라고 내뱉은 말은 아니었는데.
잠깐 조크로 꺼낸 것뿐이었는데, 아이들에게는 다르게 비친 모양이다.
내가 현석이 개그 센스 가지고 뭐라고 할 때가 아니었군.
혹시 제자들이 분위기를 풀어줄까 하고 바라보았지만, 바보 둘은 땅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하는 수 없지.
“맘껏 먹어라. 뭘 그리 눈치를 보고 그래, 너희 먹으라고 사 온 거다.”
탕.
옆에 앉은 담의 등을 후려쳤다.
당연히 힘은 조절해서.
“아…. 예!”
담이는 잠깐 아프다는 듯 비명을 지르나 했지만, 곧 기쁜 감정이 답을 내뱉었고, 그와 동시에.
어젯밤의 난장판이 재현되었다.
음료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인지, 검고 붉은 방울들이 허공을 떠돈다.
덕분에 오늘의 식탁은 어제보다 더 엉망이었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스승님 저 빵 좀 입에 넣어주세요….”
“선배님…. 죽 없나요….”
저 바보 둘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