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28)
마법소녀 아저씨 128화(128/671)
128. 혼돈의 우물.(1)
“짐은 다 챙겼냐?”
“그 말 몇 번째인지 아시나요?”
글쎄다. 별 관심이 없어서.
그런데 아빈아, 그거 아니? 내가 몇 번이나 반복한다는 뜻은 그만큼 급하다는 뜻이란다.
생각은 그리하였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냈다가는 무슨 소리를 들을지 뻔했기에 군말 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 택한 행동은, 땅에 내려놓은 망치 자루에 앉아 일주일가량을 지낸 은신처를 둘러보는 것.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군, 그래.
처음 왔을 때의 오물투성이 돌바닥과 낡은 천, 부서져 가던 가구는 다 사라지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바닥, 두께가 있는 이불, 그럭저럭 봐줄 만한 금속 탁자로 바뀌었다.
일주일 좀 넘게 생활했을 뿐인데, 거지 소굴에서 사람이 사는 동굴 정도로 바뀐 은신처.
그 깔끔함도 지금 아이들과 제자의 행동으로 모두 사라져버렸지만.
정말 많이도 숨겼군.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돌바닥을 들자 나오는 작은 반지.
천장에 걸려있던 커튼 봉을 뒤틀자 튀어나오는 보석 조각.
앉은 방석을 뜯자 나오는 사금.
거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주였다. 작고 환금성이 좋은 물건을 집안 여기저기에 숨겨놓는 거야 흔히 볼 수 있는 행동이니.
그렇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물건은 좀 예상 밖이었다.
소금 병 아래의 숨겨진 공간에서 나오는 희게 굳은 무언가.
젓가락을 좌우로 뒤틀자 나오는 금속 막대.
저건 좀 뭐라고 해야겠군.
“그것도 들고 갈 생각이냐?”
망치에서 일어나, 두 물건을 챙기는 담에게 말을 걸었다.
“아…. 저기…. 그게.”
그러자, 담은 당황한 듯 손에 든 물건을 등 뒤로 숨겼다.
잘못된 행동임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 그런 거 가지고 있다고 뭐라 하려는 건 아니고.”
마약이니 뭐니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고 혼내려는 것은 아니다. 애당초 여긴 난지도 아닌가.
마약에 취해서 나동그라져 있거나 타인에게 파는 거래책이면 모를까, 환금성 좋고 뇌물로도 좋은 물건에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거, 밖으로 나가면 아무 쓸모없다. 지금 네 왼손에 들린 건 가지고 있기만 해도 잡혀갈 거고, 오른쪽은 그냥 금속 조각이니까.”
그런 것이다.
마약은 밖에서 연줄이 없으면 거래할 수 없는 물건이고.
긴 금속은 난지도에서나 돈이지, 밖에선 단순한 합금 작대기.
금 같은 희귀 금속이 포함되어있으니 녹여서 팔면 돈이 될지 모르지만, 그 수고비가 더 나올 것이다.
“예? 그렇지만… 그….”
“이해 안 될 거다. 그런데 진짜로 그런 걸 어쩌겠냐, 네 손에 들린 건 밖에선 거추장스러운 쓰레기다.”
내 지적을 들은 담은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손에 든 물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이해할 수 없겠지.
평생 가치가 있다고 믿어온 물건이 쓰레기라고 듣는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다. 들고 갈 거면 들고 가는 거고, 아니면 말고.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났다.
혼란스러워하던 담은 고개를 몇 번 흔들더니, 뭔가를 내밀었다.
“그럼. 이것도 그럽니까…?”
이를 악문 담이 나에게 내보인 것은 두꺼운 금반지.
“아니, 그건 챙겨라.”
금은 어딜 가던 가치가 있지.
“그렇…군요.”
이를 악문 담은 정제된 마약과 금속 조각을 내던졌다.
“그게 끝이냐?”
“…몇 개 더 있는데 보여드리죠.”
담은 나를 믿은 김에 완전히 믿기로 한 건지, 빠르게 뛰어가 양손 가득 잡동사니를 집어왔다.
“많이도 모았구만.”
어디 보자, 이건 은이고.
이건 단순한 유리 조각.
이건 잡동사니.
이건 보석류.
그렇게 분류했더니, 생각보다 많은 물건을 돌려줄 수 있었다.
분류가 끝났다는 뜻으로 고개를 까딱이자 담은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짐을 싸는 인원들에게 돌아가 마지막 뒷정리를 시작했다.
이제 출발할 수 있겠군.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짐 싸기가 모두 끝나간다.
곧 자기들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질 거라고 말했음에도, 제자들은 예상 밖의 행동을 취했다.
아이들도 데리고 가자며, 조금 늦더라도 짐을 챙겨주기 시작한 것.
사실 그 행동 자체는 뭐라고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들 목숨을 구하는 것 자체야 당연한 행동이니. 그렇지만, 짐까지 챙겨주는 것은 과한 행동이 아닐까. 목숨 살려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우리는 할 일을 했다.
라고, 조금 전까지 생각했지.
쓴웃음을 지으며, 손안에 남은 반지를 올려다보았다. 나머지 잡동사니는 이미 내던졌지만, 이건 예외다.
분명 잡동사니인 것은 맞다.
그렇지만,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너트를 갈아서 만든 투박한 금속 반지, 그리고 거기에 새겨진 짧은 라틴어 문장.
‘Homo sum’
내가 유일하게 아는 라틴어 문장.
꽤 운명적인 만남 아닌가.
어쩌다 이 물건이 저 아이들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저 아이들의 부모가 남겨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누군지 모를 저 아이의 스승이 준 걸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단순히 훔친 장물일지도 모른다.
별 상관없지만.
어찌 되었건, 이걸 가진 순간부터, 저 아이들은 나와 관련이 생겼다. 그렇기에 나는 반지를 주머니에 넣고, 편한 마음으로 벽에 기대었다.
만약의 사태엔, 직접 폭격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며.
* * *
달그락.
하수구의 뚜껑을 열고 올라온 복도는 조용했다.
최대한 출구에서 가까운 위치에서 나오자고 했기에, 시장이 아닌 장소에서 나온 탓이리라.
혹시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어 내가 먼저 맨홀 밖으로 나왔고, 이어 두 제자. 마지막으로 봇짐을 짊어진 아이들이 올라왔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잠시 주변으로 감각을 뻗어보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데.
관리국의 특수 부대가 돌입해서 유탄이라도 뻥뻥 쏘고 있어야 할 타이밍 아닌가?
아니면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진입 숫자가 적었나?
잠시 생각을 해보았지만, 어떻게 돌아가건 내 계획과 관련 없는 일이기에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날 바라보는 아이들.
“아 거기. 담아?”
“왜 그러죠?”
퉁명스럽긴.
“여기서 밖으로 나가는 길 안내할 수 있다고 했지?”
“예. 앞장설까요?”
나는 아직 됐다는 의미로 손을 흔든 후, 지금부터 할 말을 가다듬고자 숨을 들이쉬었다.
이제 헤어져야 할 때군.
“여기서 헤어지자.”
“예?”
“스승님! 무슨 소리세요?”
내 말에 제자들이 격한 반응을 보여왔다. 아이들은 나와 그리 친해지지 않은 탓인지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지만.
“지금부터 따로 행동하자고.”
“그렇지만….”
한아빈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그치만이고 자시고, 너희가 누구한테 지겠냐. 담이도 길 안다고 하고, 빨리 쟤들 데리고 난지도에서 나가. 폭격 떨어지기 전에.”
그보다 내가 말하는 것이 빨랐다.
본래 이렇게 빨리 헤어질 계획은 아니었다. 내가 벽을 부수면서라도 빨리 애들을 밖에 내려두고 돌아오려 했으나, 담이 밖으로 통하는 길을 안다고 하였기에 계획을 바꾸었다.
그러니까 이제 너희는 가라.
내가 손까지 내저으며 빨리 가라고 재촉했지만.
“선배님은 어쩌시구요?”
당연히 내 말을 더럽게 안 듣는 제자가 되물었다.
“아? 뭘 당연한 걸 묻고 있냐.”
그야 뻔하지.
“난지도 사람들 대피시켜야지, 우리만 빠져나가면 여기 사람들 그냥 몰살이다. 몰살.”
관리국이야 이놈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할 테니까. 현석이 생각은 좀 다르겠지만, 그 녀석 혼자의 의견으론 국제연합의 결정을 뒤집지도 못할 거고.
“스승님! 그럼 저도 같이….”
내 발언에 흥분한 것일까, 백시현은 어느새 소환한 망치를 붕붕 휘두르며 그리 외쳤지만.
“아빈이 혼자 보내려고 시현아?”
내가 그리 말을 내뱉자, 붕붕 휘둘러지던 망치가 멈추었다.
아마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한 번에 이해한 것일 것이다. 한아빈 혼자 있으면, 애들을 다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숨겨진 의의.
한아빈 또한 내 말을 이해한 듯,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 하다만, 가다가 관리국 사람들 만나면 내 이름 팔아도 상관없다. 나가서 해도 상관없고.”
대충 제자 녀석들에게 할 말은 이걸로 됐고….
“아 그리고, 거기 담아?”
“왜요?”
내가 같이 안 간다고 말하자마자, 저 꼬맹이의 말투가 퉁명스럽게 변했다. 더는 잘 보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약삭빠른 꼬맹이 같으니.
“이거 받아라.”
미리 사두었던 물건을 담이에게 내던졌다.
본래라면 제자들에게 주려 했으나, 아까 반지로 생각이 바뀐 물건.
“아? 잠깐만요 뭘….”
손을 빠르게 휘둘러 내던졌기 때문일까. 담은 바둥거리면서 그것을 붙잡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내가 건넨 물건을 손에 넣은 담은 멍청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버튼이 달린 검은 플라스틱 기계.
툭툭 두드려보기도 하고, 버튼을 눌러보기도 하면서 살펴보던 담은, 곧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게 뭐죠?”
“삐삐다 삐삐.”
내가 그리 알려주었으나.
담은 ‘그게 뭔데?’ 라는 표정으로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아마 제자 둘이 답해주길 바라면서 한 행동이었겠으나.
제자 둘도 멍청한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다.
뭐지? 세대 차이인가?
귀찮게.
“그냥 통신 도구라고 생각해라. 본래는 수신만 되는 건데, 이쪽 핸드폰에 송신되게 개조했으니, 긴급할 때 1111이라고 쳐서 보내면 된다.”
시장에서 우연히 찾은 물건이다. 개조하면 난지도 내부에서 연락용으로는 쓰기 좋다나 뭐라나.
“1111은 어떻게 치는 거지?”
담이의 혼잣말이 들려왔으나,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럼 갈 테니까, 몸조심해라.”
“…선배님도요.”
“스승님! 애들 보내면 다시 와도 되는 거죠?”
아직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게 물들인 한아빈과 나와 같이 못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백시현. 둘에게 작별 인사를 내뱉었다.
“절대 오지 마라.”
뭐라 더 말했다가는 저 바보들의 페이스에 말려들 것 같아 강하게 말하곤, 그대로 복도를 향해 도약했다.
감각에 제자들이 빠르게 멀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제자들에게 뒷세계 견학으로 데리고 왔으나, 지금은 상황이 너무 복잡하게 얽히고 말았다. 그 덕에 제자들은 슬럼가의 실태와 그들의 삶에 대한 정보밖에 얻지 못했다.
그것도 나름대로 제자들에게 충격적이었던 것 같지만 말이다.
제대로 된 뒷세계 견학은 지금부터인데 말이지.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
그것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자.
그리 생각하며, 제자들 앞에서 보여주었던 가식을 벗어던졌다.
눈앞에 파이프가 보인다.
무시하고 들이받으며 달렸다.
그 덕에 오물이 쏟아졌지만, 이미 그곳을 지난 지 오래.
전기선이 길을 가로막았다.
그 역시 다 끊어내며 달렸다.
주변의 불편이 무어란 말인가.
나는 해야 할 임무를 행할 뿐.
빠르고, 효율적으로.
김태준을 확보한다.
쿵.
위쪽으로 올라가기 위해, 천장을 뚫고 솟구쳤다.
주변에 콘크리트가 흩뿌리지만, 내 알 바 아니다.
주변을 파괴하며, 계속 내달린다.
제자들에게 한 말이 거짓은 아니다.
난지도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리 노인에게 향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에 행할 뿐.
내 목적은 김태준의 모든 것.
그 녀석이 알고 있는 윗대가리.
그 녀석과 연관된 단체.
그 녀석이 행한 일.
고문을 해서라도 뽑아내야 한다.
물론, 이것은 결사와의 협상 조건에서 크게 어긋나있다.
그들은 관리국이 내 임무 실패를 문제 삼지 않도록 자신을 드러내는 패를 던지지 않았던가.
어찌 보면 명백한 배신행위.
그렇지만.
쾅.
또다시, 한층 위로 솟구쳤다.
공간 이동을 통해 시장으로 향하는 길을 모르기에, 모든 것을 파괴하며 최단 경로로.
계속해서 내달렸다.
결사와의 거래. 그래 지켜야지.
일단 그 녀석들이 먼저 계약상 위반을 한 것 같지만, 새로이 계약을 맺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말이다.
관리국에 넘기지만 않으면 계약상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설령 폐인으로 만들어서 모든 정보를 뽑아먹는다고 해도.
계약상. 아무 문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