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29)
마법소녀 아저씨 129화(129/671)
129. 혼돈의 우물.(2)
“방해된다. 꺼져.”
갑자기 튀어나와 길을 막은 누군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상대방은 내 행동을 예상치 못했는지, 아무런 방어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복부에 주먹이 꽂혔고.
쾅.
그대로 벽에 처박히며 기절했다.
흰자위를 드러낸 채 입에서 침을 흘리는 꼴을 보자니, 뭔가 더 할 필요가 없어 보였기에 고개를 돌리고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갔다.
방금 그놈 뭐였지?
다채로운 원색 옷을 입은 것을 보니, 영웅이나 빌런 같은데 뭘 하려고 내 앞에 끼어든 것일까.
난지도에 멀쩡한 놈이 있을 리 없으니 바로 날려버리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 쓰였다.
…설마 난지도에 진입한 관리국의 영웅 선발대는 아니겠지.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공식 작전을 수행 중인 영웅이 홀로 다닐 리 없지 않은가.
기껏해야 뭘 잘못해서 난지도에 굴러들어온 빌런 부스러기일 것이리라. 자신만만하게 강도질이라도 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겠지.
골목에서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은 누군가의 옷을 붙잡아, 뒤로 내던지며 생각을 끝마쳤다.
“아?”
이번 녀석은 아무리 봐도 그냥 민간인으로 보이니, 적당히 내던졌다.
재수가 없으면 지면에 부딪힐 때 손목이라도 삘지 모르지만, 어차피 난지도 거주민. 민원이 들어올 일은 없을 것이다.
“야! 너! 뭐 하는 놈이야!”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작게나마 들리는 것을 보니, 멀쩡히 착지한 모양이다.
그렇다 한들, 사과할 생각도 전혀 없기에 그저 내달렸다.
그나저나, 달린 지도 꽤 됐는데 눈에 익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
실수였나.
아래층은 벽이 두껍고 사람이 많은 데다가, 죄다 비슷비슷하게 생겼기에 위층에서 길을 찾으려 했건만, 5분 가까이 내달렸는데 아직도 길을 찾지 못했다.
이럴 바에는 시장으로 가서 공간 이동을 사용하는 편이 더 빨랐을지도 모르겠군.
그리 생각하며 내달리는 내 눈에, 라면 봉지가 보였다.
지금은 회사가 사라져버려 찾을 수 없는, 노란색의 라면 봉지.
잿빛으로 바래, 벽을 이룬 쓰레기더미 한복판에 박혀있는 라면 봉지.
저건 본 기억이 있다.
그것을 인지하자,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머릿속에 지도가 빠르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저쪽이군.”
쿵.
가야 할 방향이 전혀 달랐기에, 다리를 바닥에 크게 내려찍으며 온몸에 회전을 가했다.
기기기긱.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을 주변 바닥이 모두 받아낸 탓일까.
뭔가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주변 벽이 멀쩡한 것을 보아하니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기껏해야 주변 집의 찬장이 무너지거나, 물건이 쏟아진 정도겠지. 어차피 이제부터 다 망가질 텐데, 무슨 소용일까.
쾅.
회전한 몸을 가야 할 방향으로 잡고, 다시 땅을 박찼다.
쿵.
성난 발길질 소리와 함께, 잠시 멈추었던 주변 풍경이 다시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쿵. 쿵.
뒤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자, 거주구 벽이 무너져내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
기긱거리는 소리는 내부에 금이 가는 소리였나. 쓰레기가 뭉쳐서 만들어진 벽이니 받은 충격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던 거군.
이번에도 무시하고 내달렸다.
약간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저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내가 할 일 아니겠는가.
약간의 문제는 넘어가자고.
그리 생각하며, 속도를 높였다.
제자들과 함께 몇 시간을 내달린 장소를, 5분 내로 주파하기 위해서.
* * *
평범한 벽에 붙어있는 녹색 철문.
너무도 평범하기에, 이 괴상한 장소에서 더더욱 눈에 띄는 무언가.
찾았다.
카가가각.
가속한 몸의 에너지를 떠넘길 만한 상대가 없었기에 다리를 바닥에 박아넣으며 멈췄건만, 콘크리트 바닥이 그걸 버티지 못해 꽤 긴 거리를 갈아엎고 말았다.
“….”
어차피 다 망가질 건데 뭐.
몇 번이고 떠올렸던 생각을 다시 떠올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씨를 심고 농사를 지어도 될 만큼 깊게 팬 콘크리트 바닥과 뒤쪽으로 길고 규칙적으로 늘어진 부츠 자국.
흠.
모르겠다. 어차피 민원이 안 들어올 거라 너무 과하게 달렸나.
내 집도 아닌데 뭐 어때.
계속되는 문제를 그리 넘기며, 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야. 이놈들아. 문 열어.”
지금 손님 오셨는데 문도 안 열고 뭐 하냐.
쿵. 쿵. 쾅. 쾅.
콰득.
몇 번 두드려도 문이 안 열리자 점차 가하는 힘이 늘어났고.
“문 열라고. 급하니까.”
쾅. 콰득.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기기기긱.
금속이 내지르는 비명.
“…어.”
난 안 했다?
그를 증명하기 위해 문에서 멀어졌지만, 이미 한계를 넘어선 문의 운명은 결정지어졌고.
깽 하고 마지막 단말마를 내뱉은 문은 경첩이 끊어지고 말았다.
저걸 붙잡아야 하나.
잠깐 그리 고민하느라 행동이 늦어진 사이, 문은 안쪽을 향해 쓰러져버렸다.
쿵.
떨어져 내린 문은 어두운 방을 가득 채울 만큼의 소리를 울렸고, 그로 인해 발생한 충격은 지면에 높이 쌓인 먼지를 공중으로 흩뿌렸다.
“….”
아무것도 없는 방에 놓인 것은 부서진 철문 하나. 떠다니는 것은 먼지뿐이니….
망했군.
잠깐 진짜 문이라고 희망을 품었건만, 처음 생각처럼 저 문은 단순한 공간이동용 더미였다.
“부숴버렸네.”
하하하.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어쩌지 이거.
문이 부서져 버린 이상, 저쪽에서 날 맞이하러 오지도 못할 것이다.
문 내구성이 쓰레기급이라 노크했다고 부서질 줄의 몰랐….
…자기 최면은 그만두자.
내가 부숴버린 것 아닌가.
어째 오늘따라 뭔가 많이 부수는 느낌이다.
지금 뒤에서 돌가루를 흩날리는 콘크리트 밭도 그렇고, 아래층의 거주지 벽도 그렇고.
위화감이 들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의도하긴 했지만, 내가 이렇게 힘 조절을 못 했던가? 철문을 뜯어버릴 정도로 힘 조절을 못 하진 않았을 텐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나 찾기 위해 기억을 뒤지려는 순간.
“…애꿎은 문은 왜 부수셨는지요.”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기억에 있는 목소리.
“네놈들이 늦게 나와서지.”
다행이라 생각하고,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자리한 것은, 우리를 리 노인에게 안내했던 남자.
그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무너진 문을 바라보았다.
“입구 하나를 망가트리셨군요.”
“지가 무너진 거다.”
응. 지가 무너진 거지.
“하…. 뭐 좋습니다.”
한숨을 내쉰 남자는 날 지나쳐 철문을 들어 올렸다.
“뭐 하는 거지?”
꽤 무거운 문인지, 낑낑거리는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바쁘신 것 같지만, 이게 더 빠르니 이것 좀 잡아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부탁하면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이건 확실히 해야겠다.
“내가 부순 거 아니다.”
그리 말하며, 문을 향해 손을 꼼지락거렸다.
“…알겠으니 좀 잡아주시죠.”
확답을 받았으니, 이제 내 잘못이 아니다. 이 문은 자기가 알아서 금속피로로 무너진 것. 그리 결정되었으니, 곧바로 문을 그의 손에서 뺏어 들었다.
“이걸 어쩔까?”
“…참 쉽게도 드시는군요. 거기 본래 있던 입구에 세워주시길.”
그 말을 듣고 본래 있던 입구에 욱여넣으려 했으나.
“이게 고정이 안 되네.”
문은 손을 놓으면 바로 쓰러질 것처럼 불안정하게 앞뒤로 흔들렸다.
어쩔 수 없지. 힘 좀 써볼까.
그대로 문을 붙잡고, 아래쪽으로 밀어 넣었다.
빠득. 빠드득.
콘크리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문의 높이가 미세하게 낮아졌고.
“이거면 됐지?”
콘크리트에 끝이 박힌 문이 올곧은 자세를 유지하게 되었다.
나는 내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에, 웃으며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그냥 걸쳐달란 뜻이었습니다.”
남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와 문을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다시 뽑을까?”
오늘따라 되는 일이 없네. 진짜.
“쓸 순 있을 것 같으니 됐습니다.”
남자는 질문에 답하며, 나를 옆으로 밀어내고 문 앞에 섰다.
“잘될진 모르겠지만….”
그리고는 불길한 말을 내뱉은 후, 저번처럼 손목에서 열쇠를 꺼내 비슷한 동작을 반복했다.
좌로 몇 번, 우로 몇 번.
매번 방법이 다른지, 저번과 다른 횟수로 열쇠를 돌렸고, 마지막으로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여나 했으나.
철컥.
당연히 문이 열릴 리 없었다.
“열리겠냐.”
어쩌지 이거. 이 바보짓으로 5분은 낭비한 것 같은데.
“…이거 밀어주시겠습니까?”
밀어달라고?
“그런 거로 될 것 같진 않다만.”
그래도 해달라니 해줘야겠지.
옆으로 밀려났던 나는 남자를 밀친 후, 그대로 문을 밀었고.
기긱거리며 콘크리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잠시나마 생을 찾았던 문은 다시 존재가치를 잃고 앞쪽으로 쓰러졌다.
당연히 문과 바닥이 충돌해 소리가 들릴 거라고 생각했으나.
풀썩.
훨씬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공했군요.”
“…이게 된다고?”
공간 이동은 성공했다.
다만, 저번과 달리 문짝도 같이.
“뭐냐?!”
“적인가!”
문짝이 날아왔기 때문인지, 살기등등한 채 우리에게 총을 겨눈 구성원들은 보너스이리라.
여기서 또 한 푸닥거리 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운데.
“아. 저번에 왔던 손님인데, 급한 일 있어서 너희 보스 뵈러 왔다.”
뻔뻔하게 나가자.
저 고철 문짝도 자기가 부서진 거지 내가 한 게 아니지 않은가.
“그 말을 믿을 것 같냐!”
“각성자다! 사람들 모아와!”
어쩔 수 없군. 저 녀석들도 잠깐 꿈나라로 가도록 인도해줘야….
그렇게 만능 주먹을 적을 향해 휘두르려는 찰나.
“…제 동료들 그만 괴롭히시고 어서 가시길 바랍니다. 장로님께서는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그래?
“그렇단다. 있다 보자.”
총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벽에 달린 문을 열고 넘어갔다.
“잠깐, 지금 무슨….”
총을 겨눈 조직원들은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총구를 휘두르며 달려왔지만, 문이 닫히자 그 고함 소리도 말끔히 사라졌다.
방음 성능이 아주 좋군.
아니면, 저 문도 같은 장소에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실제로는 다른 공간에 있는 것이려나.
의외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복도를 걸어 나갔다.
건너편 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뿌연 연기, 그 연기를 비추며 흔들리는 작은 빛.
또 아편이라도 빨고 있나 보군.
이번엔 얼빠진 제자 놈들도 없었기에, 뭐라 불만을 표하지 않고 흰색 안개 사이로 뛰어들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나는 중앙에 있는 어떤 물건을 발견하였다.
붉은 소파.
금빛 테두리가 둘린 휘황찬란한 소파는 빛의 근원이라도 되는 듯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소파 전체를 감싼 붉은 가죽은 먼지 하나 없었다.
안개에 휘말리지 않고, 그 모습이 똑똑히 보이는 소파. 나는 그것을 향해 몸을 내던지며, 부드러운 감각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잠시 만족하길 10여 초.
마음을 가다듬은 나는 정면을 향해 고개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리 영감. 상황은 알고 있지?”
“…….”
뿌연 연기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연기의 흐름과 감각을 통해, 그가 앞에 있음을 확신했다.
“관리국이 온 건 알고 있을 테고, 아마 왜 왔는지는 아직 모르겠지.”
“…계속해봐라.”
저번에 만났던 리 노인과 다른 목소리가 안개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걸걸하지 않고, 가래 끼지 않았으며, 오히려 산뜻하기까지 한 목소리.리 노인의 젊은 시절 목소리가 저러지 않았을까.
“시간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가지. 리 장로. 댁의 영향력이라면 난지도에서 모든 사람을 대피시킬 수 있지?”
“반발하는 이들을 제외한다면.”
“그럼 그걸 부탁하고 싶다. 관리국의 목적은 O급 괴인 둘의 목. 그를 위해 열핵병기를 제외한 모든 병기의 사용이 허가된 상황이지.”
사실 열핵병기도 해금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정도까지 관리국이 막 나가진 않았던 것일까.
그 생각에 살짝 입꼬리를 올리자, 주변의 안개가 요동쳤다.
“…네놈이 한 짓이냐.”
“관계없어. 이번 건에 대해서는.”
내가 한 것은, 그저 그 작전을 보지 않은 척했을 뿐.
그 말을 내뱉자 흰 안개가 나를 휘감았다. 몸을 핥으며 내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것처럼.
“…거짓은 아닌 것 같군. 하지만 네놈 탓인 건 변함없다. 이하람.”
“어째서 그리 생각하쇼 영감?”
“네놈이 있는 장소엔 항상 큰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이지.”
재미있는 발상이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고.
그리 생각하며, 리 노인의 목소리에 실린 감정을 읽었다.
높낮이도 안정되고, 악센트도 없는 걸 보니, 안정된 모양이군. 그럼 이쯤에서 다시 찔러볼까.
“그래서, 내 요청의 답변은?”
“…0점. 네가 모르는 게 있다. 그것을 알고 싶다면, 우선 지하로 가라. 정보는 나중에 보내주마.”
리 노인의 답과 함께.
안개가 휘몰아쳤다.
흥미롭게 바라보며 소파에서 몸을 흔든 지 30초 정도 되었을까.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조금씩 주변이 보이게 될 정도로.
그 변화를 느끼며, 천천히 다리를 흔들었다.
회색빛 방이 보여온다.
돌과 먼지가 가득한 방. 아무것도 없이, 소파만 놓여있는 장소.
아무것도 없다는 건 조금 다른가.
뭔가 있긴 있다.
아까 내가 부순 고철 문짝 하나.
【우린. 난지도와 함께 죽는다.】
방의 풍경을 인지함과 동시에, 한없이 감정에 가까운 문장이 내 머리에 날아들었다.
내쫓아졌군.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해야 할 일이 하나 늘어버렸어.
여태껏 해야 할 일에 추가로, 폭격을 막는 것까지 하나.
시간 제한인가.
뭔가 하나를 포기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방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