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32)
마법소녀 아저씨 132화(132/671)
132. 혼돈의 우물.(4)
“…여긴가.”
나무로 된 문이 보였다.
상층부와 거주 구역 사이, 어째서인지 나무로 만들어진 좁은 구역.
리 노인의 말에 따르면 본래 어떤 조직의 본거지였다고 했으나, 지금은 김태준 일당이 힘으로 빼앗은 장소.
문 주변의 생김새도 그렇고, 위치 또한 리 노인에게 받아낸 정보와 일치하지만, 혹시 몰라 또 다른 정보제공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너네 본거지 여기 맞지?”
“…예….”
그러자, 손안에서 다 죽어가는 사람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정확히는 내 손에 붙잡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긴 거리를 땅바닥에 질질 끌려온 A급 빌런의 목소리가.
빌런의 다리는 콘크리트에 갈려 나가 피부가 벗겨지고, 거기에서 새어 나온 핏줄기가 길게 늘어져 우리가 달려온 길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까 그 녀석들도 그렇고, 지금 이놈도 그렇고.
목숨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녀석 또한 과다 출혈로 죽어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자신의 힘으로 증혈이 일어난 상황.
즉 이런 이야기다.
A급 빌런씩이나 되면, 이 정도로 몸을 조져놔야 전투 능력을 상실한다는 이야기.
기절했다가 일어나서 다시 일을 방해하면 짜증 나지 않겠는가.
그런다고 죽이기에는 이 녀석들 또한 근본적으로 영웅인지라, 자기들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 공적지정이 일어날 거고.
즉, 나중에 관리국에 잡아서 처넣을만한 절충선인 반죽음이다.
어찌 되었건, 이 녀석 또한 하반신을 반쯤 갈아버렸으니 반죽음의 정리에는 충분히 부합했으니 놓아줄 때가 되었군.
그 전에, 마지막 질문을 해 볼까.
“그래서, 다시 묻겠다만.”
“…네….”
어서 빨리 기절이라도 시켜달라는 듯, 다 죽어가면서도 적극적인 감정이 담긴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럼 질문이다.
“왜 너희는 김태준을 따르지?”
여기까지 오면서 몇 번이고 물어왔던 질문.
“…….”
그 질문에 뭐든 말할 것 같던 빌런의 입이 잠기었다.
이 녀석도 허탕인가.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그럼, 지금까지 고마웠고.”
머리를 붙잡은 손을 크게 휘둘렀다.
“감옥에서 보자.”
손을 펼쳐, 빌런을 해방해 주었다.
이 녀석이 속한 집단의 본거지. 그 출입문인 나무 문짝을 향해.
와당탕.
“스트라이크.”
충분한 회전을 받은 빌런은 허공에 피를 흩뿌리며 나무 문짝에 처박혔고, 착실하게 그 문을 박살 내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였다.
머리부터 처박힌 것을 보니, 아마 안심하고 기절했으리라.
천천히 문을 향해 다리를 옮겼다.
저곳은 적의 본거지.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 차라리 적들이 나오도록 시간을 끌었다.
평소와 같은 건들거리는 걸음걸이, 그 덕에 생겨나는 투박한 부츠 소리, 질질 끌리며 기분 나쁜 소리를 내는 망치.
이 모든 것이 내가 여기 있음을 알리기 위함.
조금 전 과하다 싶을 정도의 빌런 수리검도 모두 적들을 본거지 밖으로 끌어내기 위함이었으나.
…뭐지?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내가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어떤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복도.
어떤 인기척도 감각 기관에 잡히지 않는 고요한 상황.
흠. 함정이라도 설치했나?
이 난리를 쳐도 한 명도 밖으로 안 나오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본거지에서 나를 맞이할 셈인가.
어쩔 수 없지.
그럼 나도 장단을 맞춰줄까.
활짝 열린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앞서 돌격해 준 빌런분께서 문을 열어준 덕분에, 내부의 상황은 여기 서서 빤히 볼 수 있었다.
고급 소파와 테이블, 비싸 보이는 양탄자로 이루어진 사무실.
그 사이에 누가 숨은 것 같은 기색은 느낄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안 숨어 있을 린 없지.
빌런의 본거지 아닌가.
기척 차단이라든지, 밖에서 보았을 때 아무것도 없는 환상 정도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 출입문 또한 함정일 가능성이 농후.
들어갔더니 마법진이 펼쳐진다느니, 갑작스럽게 폭발한다든지, 플라즈마 분열기가 날아올지 모른다.
그러니 정답은….
정답을 시행하고자, 천천히 옆으로 발길을 옮겼다.
방과 복도 사이에 놓여 있는 두꺼운 벽.
창문도 없이 회색 콘크리트만으로 이루어진 차가운 벽이었으나.
쾅.
대충 휘두른 망치 한 방에 새로운 출입문으로 변했다.
“영웅이 왔습니다. 빌런 여러분.”
벽이 날아감으로 인해 생겨난 자욱한 돌먼지 속에서, 그리 선포하며 본거지에 진입하였다.
최대한 목소리에 조롱을 담아, 적들을 도발하도록.
이 행동이 전술적으로 엉망이란 것은 알고 있지만, 적들이 나에게 덤벼들게 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
시간도 없으니, 빨리 모여서 끝내자고.
“손님이 왔는데 대접도 안 해 주냐? 이래서 요즘 빌런이란 것들은.”
돌먼지도 가라앉을 때쯤, 양팔을 쫙 펼친 내가 방 한가운데까지 도달했으나.
“…누구 없냐?”
적들의 본거지는 여전히 조용한 그대로였다.
인기척이라고는 아까 수리검으로 변해 방 안으로 돌진했던 빌런 하나가 신음을 내뱉으며 기절해 있었을 뿐.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적들 본거지에 신나게 들어왔더니, 적들이 아무도 없다고?
함정이라고 생각하고 난리를 쳤던 게 모두 시간 낭비였던 말인가?
그럴 리 없다. 분명 뭔가가 있을 것이다.
곧바로 본거지 안쪽을 내달렸다.
장지문으로 되어 있는 문을 열 시간도 아까워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거기에 있던 것은 이층 침대로 이루어진 숙소들.
옷가지가 사방에 널려 있는 데다가, 사람의 땀내가 침대에서 배어나는 것이, 분명히 이 장소에 빌런들이 머물렀음은 분명하나….
여기도 아무도 없군.
자신들이 살았었다는 생활감만을 남긴 채, 주인들이 모두 사라졌다.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고자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너무나도 무질서한 방의 상태 때문에 물건을 분류하는 것만 해도 몇 시간이나 걸릴 것 같았다.
다음.
쾅.
벽을 부수고 다음 방으로 넘어가자, 조금 고급스러운 방이 나타났다.
나무로 이루어진 침대와 깔끔하게 정리된 숙소.
네 명이 한방을 쓰는 듯 침대 네 개가 방구석에 놓여 있었고, 깔끔하게 사등분된 방은 거주민들의 개성을 잘 보여주었다.
옷가지가 다르고, 놓여 있는 물건들이 달랐으며, 가구도 다른 방.
기타나 검 같은 것이 놓여 있어, 조그만 흥미를 가지고 방을 뒤져보았으나, 그 방 또한 특별한 무언가를 찾을 순 없었다.
“…마약을 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걸 가지고 추적하는 것은 사이코메트리 능력자가 아닌 한 힘들다.
다음.
쾅.
또다시 벽을 부수고, 방을 넘었다.
여긴 뭔가 좀 다르군.
세 번째 방.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방이었다.
방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는 방 중앙에 놓인 침대 하나.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수없이 많은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었다.
맥주 캔, 고기 뼈, 소주병, 약이 들어 있던 플라스틱병, 바늘이 부러진 주사기, 찢겨 나간 노트.
도저히 통일성을 찾을 수 없는 다양한 쓰레기.
거기에 더해 벽은 또 이상하리만큼 더러웠다.
토하기라도 했는지 방구석엔 토사물이 수없이 남아 있었으며, 벽에는 검은 낙서가 수없이 휘갈겨져 있었다.
어디 보자.
‘블랙 머라우더가 온다.’
‘왜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거지.’
‘그녀가 내 말을 들어주었다.’
‘구덩이가 날 부른다.’
‘그가 힘을 주셨다.’
‘의식의 심연으로.’
‘때가 되었다.’
‘부른다.’
‘블랙 머리우더가. 온다.’
대부분은 알아먹을 수 없는 문자나 헛소리였지만, 일부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 존재했다.
미치광이의 낙서로군.
낙서에서 드러나는 과할 정도의 적대감과 불안감.
그렇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관성으로 인해 이 방의 주인을 알아챌 수 있었다.
“김태준인가.”
아무래도 찾던 녀석의 단서를 발견한 모양이다.
그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문장들을 읽어보았다.
약하긴 하지만, 정신 마법을 가졌던 영웅. 정신 방벽이 탄탄할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영웅이 미쳐서 이런 글을 썼다고?
불안감에 떨며 사람들을 세뇌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길 만한 일은….
“…타락인가.”
아무래도 뇌신처럼 이계의 꼬드김에 넘어간 모양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한스러워 혼잣말하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하아….”
어떻게 멀쩡한 놈이 협박 하나 당했다고 이계의 꼬임에 홀라당 넘어가서는.
그리고, 그 사실로 인해, 여기까지 오는 도중 생겨났던 의문이 풀렸다.
어째 빌런들이 이상하리만큼 김태준에게 충성하는 것 같더니만.
빌런들이 타락한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으니… 정신지배라도 당한 건가.
김태준의 본래 능력이 감정 조작이었던 만큼, 그 부분이 강화된 모양이다.
이상한 점이라면, 관리국 상층부가 멀쩡했던 것일까.
조건부 강화로 악당들에게 잘 먹히거나 하는 능력이 된 모양이다.
물론 성공했다 한들, 윗대가리들 몇몇이 정신 지배당했다고 무너질 만큼 관리국이 쉬운 조직은 아니지만, 약간의 혼란은 있었으리라.
칫.
타락해서도 쓸모없는 놈 같으니.
이왕 타락했으면 관리국을 좀 흔들어서 파고들 틈이라도 만들어주지. 기껏 타락해서 한다는 것이 난지도에 틀어박혀 망상으로 가득 찬 낙서나 끄적이는 거라니.
타락한 영웅 김태준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으며, 방을 둘러보았다.
어찌 되었건, 김태준은 겁먹고 도망친 모양이다. 그 녀석을 쫓으려면 단서가 필요한데….
김태준이 반쯤 타락했다고 확정된 상황이니, 그 녀석을 확보해야 할 중요성이 더욱 올랐다.
약간의 시간 낭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침대 다리를 뜯어 쓰레기더미를 뒤져보았다.
더럽군.
보는 것조차 짜증이 나는 쓰레기더미를 해치는 동안 나오는 것이라고는 구토물이나 피가 섞인 옷가지나 썩어가는 음식물 잔반들.
“이건 또 뭐야….”
그나마 좀 특이한 게 나오나 했더니, 이빨 자국이 남아 있는 소형 괴수의 시체.
설마 생으로 씹어 먹은 건가.
상상 이상으로 김태준의 정신건강이 엉망이라고 생각하며, 시체를 들춰보았다.
깔그락.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특이한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입구가 끈으로 묶여 있는 파란 방수포대.
묵직한 감촉이 느껴지는 방수포대를 들어 올려 흔들어 보자, 또다시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안에서 난 소리인가.
생긴 게 시체포대처럼 생겨서 이빨 자국이 남은 괴인 시체라도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포대를 열어보자.
…향수?
이상하리만큼 많은 향수병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다 쓴 녀석도 있었지만, 반쯤 차 있는 녀석도 있었고, 아직 포장도 벗겨지지 않은 녀석이 있었다.
그렇게 제각각인 녀석이었지만.
단 하나만은 같았다.
용연향 향수라…. 꽤 비싼 물건일 텐데.
김태준 놈 영웅 시절부터 비싼 물건으로 떡칠하고 다니더니, 타락한 이후에도 똑같구만.
그리 생각하며, 사용한 흔적이 있는 향수병을 포대에서 꺼냈다.
처음으로 발견한 단서.
이리 양이 많은 것을 보면, 자신의 구토 냄새를 감추려고 본인의 몸에 뿌린 것이리라.
냄새라는 점은 다행이군.
개처럼 냄새를 맡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감각을 극도로 증폭시키고, 향수의 뚜껑을 열었다.
미칠 것 같은 향기가 흘러들어온다.
진득한 쓴 향기. 일반인은 맡는 것조차 불가능한 압도적인 무게감.
고급 향수의 베이스라는 것을 자랑하듯 어떤 냄새에도 지지 않는 웅장한 향이 코를 타고 흘러들었고.
“카흑. 기억했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구토감을 억누르며, 향수의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미약한 향기가 느꼈다.
쓰레기 냄새로 가득한 난지도의 악취에도 굴복하지 않고, 허공을 떠도는 향유고래의 향기가 느껴져 왔다.
조금 전처럼 본능을 자극하는 냄새는 아니지만, 사냥의 희열을 느끼게 하기 충분한 냄새.
사냥감을 붙잡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다시 땅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