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43)
마법소녀 아저씨 143화(143/671)
143. 공권력. 강하도다.
협상을 끝내고 남은 잡무를 결사에 떠넘긴 후, 하수도로 돌아왔다.
꿀렁.
그런 나를 맞이한 것은, 천천히 흘러가는 연한 검은색의 오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지만, 몇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우선, 유속을 가지고 천천히 흐르고 있다는 점.
사실 평범한 하수도 물이라면 저게 당연한 일이건만, 난지도의 하수도에서는 처음 보는 장면이다.
거기에 더해, 콧구멍에 밀려오는 악취 또한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견딜 만한 수준이 되어있다.
“이제 좀 견딜 만하구만.”
사람이 살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물론, 지금도 애들이 살기에는 불결한 환경인 건 똑같긴 하지만….
곧 더 괜찮은 장소로 갈 테니까.
결사가 만드는 고아원.
결사가 운영하는 학교.
단체로 미친 데다가,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된 게 없는 애들이긴 하지만, 선의로 가득 찬 또라이들인 만큼 애들은 잘 보살펴줄 것이다.
담, 연에 대한 내 보답의 손길은 이것으로 끝.
앞으로는 그들 하기 나름.
그리 생각하며, 몇 주간 지냈던 숙소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뚜벅. 뚜벅.
부츠 소리가 가볍게 울리는 하수도 안.
그런 규칙적인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긴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빈 언니! 살짝 약하게 다시 보내주세요! 이번엔 좀 아팠어요.”
“그래, 읍! …이번엔 어때?”
“이번엔 조금 더 크게요!”
그런, 밝은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회색 천 너머에서 들려오는 제자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모든 감정이 끈적거리는 하수도의 공기에 삼켜지던 과거와 다르게, 악취를 뚫고 전해지는 밝은 힘.
그런 목소리를 듣자, 어떤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냐고.
난지도에 와서 더러운 꼴을 보고, 몸을 옮긴 만큼의 수확도 없었지만.
이런 밝은 분위기를 아이들이 느낄 수 있게 된 거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이런 감각도 오랜만이군.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되찾는.
퍽 웃긴 이야기 아닌가.
쓰레기장이었기에 만들어 낼 수 있었던 한 편의 이야기라니.
완전한 승리도, 완전한 패배도 아닌.
쓰레기를 존립시키며, 생존권을 만들어주는 약간의 승리.
그러고 보면, 옛날에는 그런 걸 위해 싸웠었지.
인간의 생존권. 인류의 미래.
이계의 군대에 맞서 인류가 살 수 있는 한 뼘의 땅을 얻어내기 위해.
아이러니한 일이야.
난지도라는 쓰레기장에 와서야 그 감각을 다시 느끼다니.
그런 감정들을 물에 흘려보낸 후, 천을 걷어 젖혔다.
“나 왔다.”
‘18 + 36은?’
“스승님 오셨어요!”
두 반응이 나에게 내달렸다.
텔레파시를 오송신한 한아빈.
내 귀환을 반기며 달려오는 백시현.
붕.
멧돼지와 내 손이 맞닿았다.
쿵.
손을 흔들자, 날 향해 돌진하던 멧돼지가 방구석에 처박혔다.
“넌 저리 가고, 54다.”
이어서, 한아빈의 질문에 답했다.
“…잘못 보낸 거예요.”
그 행동이 부끄러운지, 한아빈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그리 말했지만, 나쁘지 않은 징조다.
“훈련은 잘되고 있나 보군.”
“예…. 처음엔 좀 어려웠는데, 연이랑 맞추다 보니 잘되더라고요.”
“나. 잘 받아들여서. 좋다고. 아빈 언니가 말해줬어.”
연 또한 서투른 말투로 그리 말해왔다.
“그래. 둘 다 잘했다.”
나는 그에 반응해, 칭찬하고자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아. 안 되지.
그대로 손을 되돌렸다.
아무리 동물계 수인이라고 한들, 상대는 날 싫어하는 상황.
굳이 쓰다듬을 필요는 없을….
“왜? 칭찬 아냐? 해도 돼.”
오히려 그녀가 내 손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푹신한 감촉이 손을 내달린다.
결 따라 흐르는 인간의 머리털이 아닌, 뻣뻣하지만 가는, 부드러운 짐승의 털이 만드는 감촉.
그런 감각이 손에 닿자, 나는 그 보답으로 손을 흔들었다.
“…너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물론, 이 괴상한 상황에 대한 의문이 있어, 질문은 던졌지만.
“음….”
그런 내 질문이 무색하게도, 연은 눈을 감고 목울음만 낼 뿐이었다.
과연 저 소리는 대답을 생각하느라 나오는 소리인 걸까, 아니면 동물의 본능에 따라 나오는 소리인 걸까.
“친해지시니, 보기 좋네요.”
“연이 머리는 부드럽죠!”
그런 광경을 바라보는 제자들이 한마디씩 던졌지만. 정말, 이 상황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보면 발톱을 세우던 수인계 괴인이 대놓고 쓰다듬어 달라고 달려든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렇게 몇 번 더 연이의 털을 쓰다듬자.
“아마, 주변 분위기가 훨씬 여유로워져서 그럴걸요.”
담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 소리냐.”
그에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질문을 던졌고.
“음….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억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진 기분…? 홀가분해졌다고 하면 되려나요.”
벽에 기대어, 물을 마시는 담이 그리 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홀가분해졌다.’라.
검은 점액 우물에서 나타났던, 그놈 때문인가.
백시현과 한아빈의 말대로라면, 난지도 거주민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했었지.
사실 난지도는 이계에 삼켜지기 일보 직전이었을지도 모른다.
거주민들은 그걸 자각하지 못한 채, 조금씩 미쳐가고 있었을 테고.
그나마 감각이 뛰어난 수인계 괴인이라면 그를 인지하고 있었겠지.
대충 앞뒤는 맞는군.
그리 생각하며, 제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희는 어디 불편한 데 없냐?”
“없어요!”
“얼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흰 제대로 싸운 적도 없었어요….”
블랙 머라우더, 즉 유밀과 조우한 것뿐이었다고 그랬었지.
그렇지만,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정말 이상한 거 없지? 시야 구석에 벌레가 날아다닌다던가. 방구석에서 얼굴이 나타나 속삭인다던가. 갑자기 검은 목소리가 속삭인다던가. 사탕이 검은색이라던가.”
모두 내가 자주 겪는 환청이자 환상이긴 하지만.
사탕은 빼고.
“없어요!”
언제나 활기차신 백시현이 내 질문에 답했다.
그래, 넌 그냥 구멍에 떨어져도 그럴 것 같거든.
“음…. 환청은 좀 있었는데. 아! 지금은 괜찮아요.”
이어, 한아빈이 조금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했다.
“어떤 환청?”
“아, 별거 아니었어요. 스승님은 마법소녀를 좋아한다던가. 사실 그 외형도 자기 취향이라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죠. 바로 환청인 걸 알겠더라고요.”
…응? 뭐?
“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하구나.”
마른 웃음을 지으며. 웃었다.
하하하하하.
“그렇죠? 스승은 그 모습을 정말 싫어하시는 것 같던데, 누가 그런 소리를 믿겠어요.”
“그렇…지….”
웃었다.
그리고, 또 웃었다.
해피니스 드롭. 리사 달그렌. 이놈을 어떻게든 끌어내 쳐 죽여버려야 되겠다고 다짐하며.
* * *
“그럼, 나중에 또 올게!”
“잘 있어!”
“다음에 올 때는 먹을 것 좀 사 와주시길!”
“누나들! 또 와!”
“언니! 고맙습니다!”
제자와 아이들이 작별 인사를 하고 있지만,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형식적인 작별 인사라면,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기에.
어쩌면, 그들을 다시 못 볼 수도 있을 테니까.
타인의 마음에 남는다는 것은, 그리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친 제자들이 먼저 떠나고, 아이들은 조용히 손을 흔들 때쯤.
나는 제자들과 떨어져, 조용히 담에게 입을 열었다.
“…삐삐는 고마웠다.”
“아뇨. 제가 더 고마웠죠. 설마 다 해결하실 줄 몰랐으니….”
글쎄. 아마, 내가 너에게 받은 게 더 많을 거다.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을 되돌린 것은 네가 보낸 문자 하나였으니.
나와 똑 닮은 그것이 말했었지.
모든 것은 선택에 달려있다고.
내가 백시현이나 한아빈에게 삐삐를 건넸으면, 어땠을가.
그들이 그 혼란한 와중, 겁에 질려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까.
그런 고민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저, 품 안에 손을 넣은 후. 작은 물건을 꺼내, 담에게 건넸을 뿐.
“받아라.”
그리 퉁명스럽게 말하며 손을 뻗자, 담 또한 손을 뻗어 내가 내민 물건을 받아들었으나.
“…이건 뭐죠?”
담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리 되물어왔다.
그런 반응은 이미 예상했다.
내가 건넨 것은, 한 번 그에게서 가져갔던 쇳빛 반지니까.
본래라면 저걸 결사에 가져가서 의뢰하려 했건만, 상황이 달라졌다.
“그걸 가지고, 네 학교 담당자에게 물어봐라. 아마 너희 부모님에 대해 알려줄 거다.”
“…예? 부모님? 잠깐만요. 학교라뇨? 저흰 그런 거….”
내 말에 담은 허둥지둥거리며 그리 되물어왔지만.
“곧 알게 될 거다.”
나는 조용히 몸을 돌리며, 그리 대답했다.
“아…. 저기 그…. 잘 모르겠지만….”
떠나가는 등 뒤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난지도를 떠났다.
* * *
“으아아 집이다아. 마침내 집….”
“시현아, 진정해…. 그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두 제자 놈은 집이 시선에 들어오자, 그리 말하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양새가 유난히 괴상한 것이, 멀쩡한 상태로는 보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굽어진 허리, 삐쭉 튀어나온 거북목, 푸석푸석한 머리, 땅으로 축 처진 양팔.
영웅으로서 취해야 할 자세와는 거리가 먼, 다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
그렇게 된 이유라면 정확히 알고 있다. 나도 같이 겪었으니 말이다.
난지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관리국에 납치되어, 냄새가 빠질 때까지 강제 세척.
그러나 찌든 냄새는 한 번으로 빠지지 않아, 2시간 간격으로 계속 세탁을 받아야 했다.
사실 이것만이라면 별문제가 아니겠지만, 정말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관리국의 심문절차.
세척이 끝나고 다음 세척까지 남은 시간 동안 난지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심문을 받고 조서를 작성해야 했다는 것.
나야 남는 게 체력이고, 이런 일도 몇 번이고 겪어봤으니 얼렁뚱땅 넘어갔지만, 이런 경험이 처음인 제자들에게는 힘든 경험이었으리라.
그렇지만, 그 기나긴 심문과 조서 덕에, 이번 사태에 대한 관리국의 의견도 알아낼 수 있었으니 그리 나쁜 하루는 아니었다.
뭐라더라, 갑자기 발생한 막대한 이계의 힘 때문에 핵을 투하했고.
난지도 옥상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괴물을 관측했지만, 마치 환상처럼 핵과 함께 어떤 이계의 힘도 남기지 않고 소멸했으니. 그냥 기밀처리를 하고 넘긴다나 뭐라나.
그러니 난지도에 대한 치외법권은 어찌어찌 유지되려는 모양이다.
주요 목표였던 움브라 랫과 옥토문두스 격퇴 실패는 조용히 넘길 생각인 것 같고.
사실 어찌 보면 다행 아니었을까.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공적인 움브라 랫과 옥토문두스는 핵으로 퇴치되어 구멍이 안 열린다 쳐도, 수많은 이계의 존재가 죽으며 막대한 힘이 유출되었을 것이다.
난지도가 오염구역도 아닌지라 어지간해서는 별문제가 없었겠지만, 하필 거기에 관리국이 파악하지 못한 구멍이 있었지.
언론에 대해서는 평소처럼 정보통제를 한 모양이지만, 핵 구름은 어떻게 숨기게.
핵 구름과 함께, 구멍이 열리며 서울 전역에 이계침식이 발령된다.
완벽한 시나리오구만.
경★축 관리국 몰락.
서울 포기선언.
잡생각은 이걸로 충분하겠지.
“보기 흉하다. 허리 펴라.”
그만한 정보가 모일 정도로 기나긴 조사였다고 한들, 저 기괴한 자세가 허용되는 것과는 다른 문제지만.
“슨배님은 어떻게 그렇게 쌩쌩하세요….”
“스승님이라서 그래에….”
바보들.
다 죽어 좀비처럼 땅을 기는 멍청이들과 보폭을 맞추는 것을 포기하고, 홀로 집을 향했다.
이 꼬락서니라면, 문도 제대로 못 열 것 같으니.
그리하여 도착한 집의 문.
오토록의 뚜껑을 열고.
삑. 삑. 삑. 삑.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리링.
문이 열리고.
툭.
뭔가가 눈앞으로 떨어졌다.
두터운 종이 뭉치.
관리국의 마크가 새겨진 물건.
…안 돼. 벌써 이 시기란 말인가.
그를 부정하고자 다급하게 허리를 굽혀 봉투를 확인했으나, 그렇다고 봉투 겉면에 쓰인 글자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동원훈련 안내.
그렇다.
그 시기가 오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