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61)
마법소녀 아저씨 161화(161/671)
161. 기계와 함께 춤을(1)
“라이브러리안! 현실 고정기 빌려줘!”
눈앞을 가로막은 문을 열고, 소리를 내질렀다.
빠직.
너무 흥분한 탓일까. 경첩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문 따위가 어찌 되었건, 활기찬 마음을 가지고 방에 들어섰건만.
“….”
돌아오는 것은 연구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친구의 싸늘한 눈초리와 방을 지배하는 적막뿐.
그런 고요 속에서, 서로를 쳐다본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에 출입 금지라고 적어 놨던 것 같은데 말이죠.”
라이브러리안이 마침내 입을 열었고.
“관계자니까 상관없지 않나?”
나는 그에 답했다.
“관계자뿐 아니라 누가 되었건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였지…. 하아.”
한숨을 내뱉는 라이브러리안.
그의 마지막 한숨에는 거친 금속음이 섞여 있었다.
“뭐냐? 폐도 기계로 바뀐 거야?”
마지막으로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잠식당했나.
그리 생각하며, 연구실 주변에 널려있는 기계 상자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라이브러리안의 말이 부정적이긴 했지만, 날 쫓아내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당장 나가란 뜻은 아닐 터.
의자치고 등받이가 없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따뜻한 기운이 엉덩이를 타고 올라오는 것은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거기 앉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데 말이죠.”
“왜? 이게 뭔데.”
보기에는 그냥 네모난 금속 박스인데 무슨 문제 있나?
“콜로서스의 코어 조각입니다. 연구할 게 있….”
미쳤나.
라이브러리안의 답변에 놀라 빠르게 엉덩이를 뗐지만, 싸할 만큼의 서늘한 기분이 내 몸을 지배했다.
“아니…. 콜로서스? 허가는 받았고?”
나처럼 몰래 훔쳐 와서 이 짓 하는 건 아니겠지?
만에 하나, 콜로서스가 부활해서 관리국이 멈춘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터.
“당연히 허가를 받았습니다. 제가 누구처럼 무식하게 막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럼 됐고.”
관리국도 예방 조치를 해놨겠지. 위험한 실험이 한둘이던가, 인제 와서 이런 쩨쩨한 것에 신경 써 봐야 제 명에 못 산다.
그런데, 무식하게 막 나가는 건 누구지? 실험이랍시고 O급 괴수 살점 배양하는 옥시모론인가?
그리 생각하며, 새로이 앉을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콜로서스는 왜? 뭐 연구하려고?”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내가 들어봐야 이해도 못 할 말이 나오겠지만.
대화란 게 본래 주고받는 캐치볼 아니던가.
친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행동이다.
“아….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칼라베라가 정립한 혼이란 개념이 있잖습니까? 그런 게 명확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저희 쪽에서도 인정합니다만, 기계에 깃든다는 것은 조금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이기에, 비교군으로서 그런 개념이 담긴 괴물….”
이 의자가 좋으려나?
라이브러리안이 뭐라 떠들고 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파이프 의자에 엉덩이를 내렸다.
“…실제 그 혼이 제련이 가능한지, 또 어떤 물리적인 영향을….”
딱딱하군. 저 의자가 좋으려나.
다음으로 노리는 것은 이 엉망진창인 실험실에서, 혼자 묘하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자.
반짝반짝 빛나는 뼈대에, 검은 메시로 이루어진 그것은 척 봐도 비싸 보였다.
앞에 탁자가 놓인 것으로 보아, 라이브러리안의 의자인 것 같지만. 별 상관없겠지.
그리 생각하며 몸을 누이자, 생각보다 탄력이 뛰어난 메시가 내 몸을 감싸 안는 것이 느껴졌다.
바람도 솔솔 들어와 답답하지도 않은 데다가.
생각보다 부드럽진 않았지만 약간의 반발력이 몸 안을 붙잡는 느낌.
푹 빠져서 안락함을 느끼기에는 별로지만, 긴 시간 집중력을 가지고 작업하는 용도라면 나쁘지 않으리라.
이런 건 얼마나 하려나….
“…그 이론을 통해 인공지능 기반의 병사들을 양산…. 듣고 있나요?”
“어? 아. 듣고 있어. 그러니까 그거 연구해서 양산형 병사 만든다고?”
앞에 뭐라 뭐라 한 것 같지만, 중요한 건 뒷부분이겠지.
“…제 마지막 말을 따라 한 느낌이지만…. 뭐 요지는 그렇습니다.”
적당히 넘어가서 다행이군.
연구 계열 전문가 녀석들은 자기 관련 일만 나오면 입이 싸진다니까.
아마 잘못된 답을 택했다면, 온종일 무슨 소린지도 모를 이야기를 들어야 하겠지.
그나저나 이 의자 생각보다 편하네.
멍하니 의자의 등받이를 젖히고, 빛이 내리쬐는 전구를 바라보았다.
“음. 제 이야기는 넘기고…. 들어오실 때 저한테 뭐라고 하시지 않으셨던가요?”
아. 맞다 그래서 온 거지.
몽환으로 이끄는 이과 기술 강의를 듣다 보니, 잠시 정신을 다른 장소로 보내버렸다.
“현실 고정기 하나 빌려줄 수 있냐? 내가 꼭 필요해서 그런데.”
등받이를 본래대로 되돌리고, 약간 비굴한 감정을 담아 그리 부탁을 내밀었다.
처음 들어올 때는 당당하게 들어왔지만, 역시 현실 고정기란 게 그리 싼 물건은 아니지 않던가.
“음. 현실 고정기라면 이 연구실에 여기저기 널려있는데 말이죠…. 필요한 성능이나 사용처에 따라 다르니 아무거나 들고 가게 할 순….”
당연히 그에 대해서는 문어에게 미리 이야기를 듣고 왔다.
물론, 그 외계어는 기억하지 못했기에, 다른데 적어왔을 뿐.
“잠깐 기다려.”
핸드폰에 적어왔으니까.
빠르게 말을 내뱉어 라이브러리안이 내뱉는 이과계 몽환의 노래를 끊고, 핸드폰에서 메모를 열었다.
어디 보자. 이걸 뭐라고 읽더라.
“음… 출력 1.5mNol 효과 범위 0.3Tac 최대지속시간 93… 이건 뭐라고 읽는 거야? 지렁이?”
ζ… 뭔 글자야 이건?
문어 놈에게 맡겨놨더니 읽지도 못하는 글자를 입력해 놨다.
아니 그보다 핸드폰으로 이걸 어떻게 입력한 거지?
“지렁이라…. 제타겠군요. 흠. 그 정도 스펙이라면….”
핸드폰을 보여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과적 변태들 사이에 통하는 것이 있는지, 내 괴상한 설명에도 라이브러리안은 이해한 것 같다.
다만, 뭔가 생각할 것이 있는지, 라이브러리안은 몸 어딘가에 달린 쿨러를 신나게 윙윙거리며 고민을 시작했다.
“왜? 빌려주기 어려워?”
내가 그런 질문을 던졌지만.
“….”
라이브러리안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계속해서 쿨러 소리와 톱니바퀴 소리를 높여갔다.
어쩔 수 없군. 기다려야겠어.
저런 생각에 빠진 이상, 내가 뭐라고 한들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기다린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라이브러리안이 입을 열었다.
“마음대로.”
“일단 질문드리기 전에, 우리 막무가내 씨께서는 지금 말씀하신 스펙의 현실 고정기가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알고 계시는지요?”
“당연히 모르지.”
애초에 Tac 인지 제탄지 그게 뭔데?
“그렇군요. 그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만한 위력의 현실 고정기는 관리국 지부에 박힌 현실 고정기. 그것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위력입니다.”
…응? 뭐라고?
지부에 박아놓은 것의 절반?
“…입을 딱 벌린 걸 보니, 역시 모르고 빌려달라고 하신 거군요.”
라이브러리안이 그리 지적해 왔지만,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말이기도 한데다가, 너무나도 당황스러웠기에.
문어 놈은 나한테 그런 걸 빌려오라고 했다고?
뭔 수로 그딴 걸 가져와?
애초에 관리국에 처박아 놓은 것만 해도 컨테이너만 하지 않았나?
그걸 들고 다닐 순 있고?
“음. 그럼 질문입니다만.”
“어. 응. 해.”
지금 머리가 제대로 안 돌아가니까 답변이 멀쩡할진 모르겠지만.
“어디에 쓰실 생각으로 그걸 빌리시는 거지요?”
“아? 잠깐 이계 좀 다녀오려고.”
그리 반사적으로 답변함과 동시에.
끼이익.
뭔가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 돌아가던 기계가 멈추는 듯한, 강제로 브레이크를 밟은 듯한 소리.
“…임무는. 아니겠군요.”
그 소리를 낸 당사자는, 입에서 거친 금속음을 내며 그리 입을 열었다.
“임무면 진작 관리국이 지원했겠지. 그보다 너 괜찮냐?”
옷 사이에서 연기 뿜어져 나오는데?
“괜찮습니다. 그보다….”
철컹. 위잉
조금 전까지 방 안에 울리던 마찰음이 끊기고, 뭔가가 들어맞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다시 쿨러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까 한 말을 번복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두 번째 질문하죠. 어째서 이계에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그… 끔….”
라이브러리안의 마지막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아마, 트라우마를 떠올린 것이리라.
원정대로서 이계에 들어갔던 경험을.
그렇기에, 나는 곧바로 답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
내 오랜 친구가, 이성을 되찾을 시간을 주기 위해.
그렇게, 내 친우의 숨이 되찾아지기 시작할 때쯤.
“정보.”
나는 조용히 한 단어를 입에 담았다.
“정보 말입니까?”
“그래. 정보. 우리가 항상 모자란, 이 뒤틀린 세계를 역산할 정보.”
“그게, 그 안에 다시 들어갈 만한 이유가 됩니까?”
알고 있다.
그 안이 끔찍한 건.
고통스러운 장소는 아니다.
뭔가가 혐오스러운 장소는 아니다.
단지. 단 하나의 문제일 뿐.
내가 나 자신임을 확신하지 못하는 경험.
감각이 변하고.
시간이 변하고.
기억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며.
주변이 변한다.
그렇다면, 누가 나임을 증명해 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가치가 있지. 너라면 알지 않나?”
“잘 모르겠군요.”
아쉽군.
“단 하나의 답을 얻기 위해, 모든 지식을 추구한다. 과학자란 족속은 그런 인간들 아니던가?”
물론 나는 그와 다르다.
그들은 정보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나에게 있어 정보는 수단일 뿐이다. 끝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
그렇지만, 양측 모두가 필요로 함은 동일할 터.
“…일리는 있군요. 더욱이 그것이, 저희 인류를 위한 정보라면 더더욱. 하람 씨는 그런 사람이었죠.”
내 말에 수긍한 것일까, 라이브러리안의 말에서 기계음과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온화한 인간의 음색이 흘러나왔다.
뭐, 이것도 좋게 끝난 것 같군.
문제가 있다면야.
“그건 제치고, 결국 근데 그 현실 고정기는 못 구한다는 소리 아니냐? 아무리 작게 만들어도 그런 게 가능할….”
“가능합니다.”
엉?
“아니, 관리국에 박힌 건….”
“그건 과거 기술로 만든 겁니다. 거기에 안전 장치나 폭주 방지용 장치가 덕지덕지 붙어있어서 그런 거죠.”
갑작스럽게 유쾌해진 라이브러리안은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계에 간다면, 불필요한 안전장치도 다 빼버리고, 신기술도 적용한 다음에, 에너지원만 어떻게 한다면야….”
뭔가 라이브러리안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지만,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다른 생각이었다.
그래서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아까 이과 토크를 어떻게 벗어났더니, 두 번째 공격에 걸려버렸네.
“음. 그러니 요지는 다른 것은 어떻게든 다 해결이 가능합니다. 안전성에 조금 문제가 생기겠지만, 하람 씨라면 어떻게든 할 테고. 문제는 에너지원입니다만.”
그렇게 모든 이과 서사시를 끝낸 라이브러리안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흠. 이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적당한 타이밍인 것 같고….”
대체 무슨 소린지 원.
이야기가 끝났나 싶더니만, 이젠 혼잣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람 씨. 제 요구를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거기에 성공하면 제가 현실 고정기를 만들어드리죠.”
그 혼잣말의 끝은, 나에게 전하는 질문.
“무슨 요군데. 그것부터 알아야지.”
어지간하면 다 들어줄 테지만.
친구 아니던가.
“예, 간단한 요구입니다.”
라이브러리안은 그렇게 나에게 뜸을 들였고.
“제 이야기의 마지막에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만일의 사태가 일어난다면. 저를 부숴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