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70)
마법소녀 아저씨 170화(170/671)
170. 망가져 가는 기어(2)
“자식?”
적의 없이, 순수한 의문을 담아. 내 뒤에 있는 라이브러리안에게 질문을 건넸다.
라이브러리안이 배신했다고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인류 중 배신자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지만, 적어도 이런 식의 배신을 아닐 것이라는 생각과.
저 방송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같이 싸운 전우들이 적어도 전투 중엔 배신하리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까고 말해서, 저 방송이 사실이라 한들 무슨 문제가 있으랴.
기껏해야 순수 지구인에 기계 좀 섞인 줄 알았던 라이브러리안이. 실제론 이계인의 피가 좀 섞인 기계라는 차이가 생길 뿐이지.
결사도 믿는 판에, 라이브러리안을 신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 생각을 끝내고, 라이브러리안의 답을 듣고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엔 내가 예상치 못한 표정을 띤 라이브러리안이 있었다.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껏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그.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흘러나오는 방송에 대한 명백한 혐오.
“야. 괜찮냐? 얼굴 망가진다.”
시야가 계속 스피커로 향하는 것을 보아하니, 내 질문도 못 들은 것 같아 재차 질문을 내던졌고.
“아,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셨죠?”
그제야 라이브러리안은 표정을 풀고, 고개를 내리며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역시나.
내 질문도 못 들을 만큼 저 방송이 싫었던 걸까.
“쟤가 자식이라고 한 게 무슨 의미냐고 물었지.”
“아, 그것 말인가요? 뭐 심오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손을 펼치고, 어깨를 으쓱하는 그.
그런 과도한 보디랭귀지를 보여준 라이브러리안은, 곧 입을 열었다.
“그냥 자기가 개조한 인간은 다 자기 자식이라는 뜻이죠.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부모님은 따로 있는데 말이죠.”
혐오를 가득 담은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연약한 육체를 걷어내고, 불굴의 육체를 벼려냈습니다. 그렇다면 자식이라 표현하여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 주장을 반박하듯, 스피커는 또다시 괴상망측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전, 단 하나도 당신에게 받은 게 없습니다.”
분노한 라이브러리안의 답변에 이어.
-그리 생각한다면, 왜 이 섬에 왔습니까? 우리의 낙원에. 그대로 우리를 놔두어, 녹슬어 망가지게 두었으면 되었을 것입니다.
또다시 스피커가 그러한 문장을 내뱉은 순간.
-드드드들 지지지지직 기기기긱.
스피커의 목소리는 순수한 노이즈로 바뀌고.
파직. 파지지직.
스파크 소리와 함께.
펑.
스피커는 폭발해 버렸다.
“시끄럽습니다.”
“네가 그리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야.”
엿 같은 상대에게도 무감정으로 대응하던 녀석이 이리 화내다니.
역시 자신의 삶을 망가트린 자에 대한 분노를 간직하고 있던 것일까.
“저라도 정말 싫어하는 상대는 있기 마련이죠. 그중 최고가 저 목소리의 주인입니다.”
흠. 그런가.
“그런데 지금부터 만나러 갈 텐데, 괜찮겠냐?”
“괜찮겠냐니. 무슨 소리죠?”
음? 못 알아차리고 있었나.
“너, 지금 갑옷 사이로 증기 삑삑거리고 있는데, 그거 괜찮겠냐고.”
현실조작 쓸 때처럼 말이지.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저 녀석과 대화한 것만으로도 그 정도의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다.
그것이 저 정체 모를 녀석의 능력인 건지, 아니면 라이브러리안이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흥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군요. 제 상상 이상으로 흥분한 모양입니다.”
내 지적을 인정한 라이브러리안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열기가 뿜어져 나오던 몸을 진정시켰다.
“힘들면 돌아가고, 어차피 꼭 지금 봐야 하는 건 아니잖아?”
마침 봐야 할 것 같아서 온 거라고 했으니까.
물론, 그랬다간 내가 현실고정기를 못 받을지도 모르고, 시간 낭비를 거하게 한 셈이지만.
라이브러리안이 패배하거나 망가지는 것으로 인해, 친구를 잃는 것에 비하면, 그런 손해는 사소한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에게 제안했다.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이야기잖아? 내 이야기처럼 갑자기 들이닥친 것도 아니고, 주도권도 너한테 있으니, 한 번 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날을 잡아서 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나답지 않게, 과장된 몸짓으로 보디랭귀지를 하며, 많은 양의 말을 쏟아내었다.
“아, 물론 그때도 내가 참관해 줄 테니까. 그 걱정은 하들 말….”
계속해서 내 말이 이어졌지만.
“하하하하하.”
그런 내 제안은, 라이브러리안의 웃음으로 인해 끊기게 되었다.
“뭐냐.”
내 말에서 웃음이 터질 만한 요소가 있었나?
갑자기 왜 처웃고 그러냐.
그런 마음을 담아, 정색하며 질문을 내뱉었지만, 라이브러리안의 웃음은 한참 동안 끝나지 않았다.
“하핫. 아 그게 말이죠. 뭐라고 해야 할까요.”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웃음을 그친 라이브러리안은 입을 열었고.
“어째 저보다 이하람 씨가 더 당황한 것 같아서 말이죠. 덕분에 진정되었습니다.”
당황? 내가?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야, 내가 뭘 당황했다고 그래? 언제 몇 시 몇 분 몇 초에? 어?”
“예, 예, 알겠습니다. 진정되었으니 가시죠.”
그리 말한 라이브러리안은 나를 내버려 두곤,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 말에 답하지도 않은 채.
“야, 내가 언제 널 걱정해서 당황했다고 개소리를 하는 거야. 얌마!”
“빨리 안 오시면 혼자 갑니다.”
아니, 저 망할 놈이.
그래 내가 아니꼬워서 간다. 가.
* * *
끼릭.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가 울린 장소를 힐긋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1시 방향에 뭔지 모를 무기.”
“이미 알고 있습니다.”
파직.
펑.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 사이에서 튀어나온 총 비슷한 무언가는 스파크를 튀기며 장렬히 산화했다.
어떤 공격도 하지 못하고, 라이브러리안의 손짓 한 번으로 무력화된 고정 포대.
기지에 들어오고 꽤 시간이 흘렀건만, 전투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문을 열었더니 대량의 기계 병사가 있었지만, 라이브러리안의 손짓 한 번으로 무력화되고.
복도의 벽이 갑자기 열리며 대량의 화염방사기를 선보였지만, 라이브러리안이 째려보자 다시 벽 안쪽으로 들어가고.
물론, 라이브러리안이 종종 발견하지 못한 무기도 있었지만.
그런 종류는 내 감시망을 뚫지 못하고 파괴되었다.
라이브러리안 말로는.
‘놔두셔도 됩니다.’
라는데, 솔직히 코앞까지 날아오는 걸 멀뚱히 보라는 게 말이 되는가.
눈먼 탄환에 갑자기 죽어버리고, 나 혼자 죄책감에 시달리면 지가 책임질라고?
뭐, 어찌 되었건.
처음에는 그런 다종다양한 기계 병사들과 함정들로 인해 날이 서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꼴이다.
탁. 탁. 탁. 통. 탁.
음? 발걸음 소리가 이상한데.
“거 바닥에 뭐 있는 것 같은디.”
“아 함정이군요. 해제하겠습니다.”
아무런 위기의식 없이 보이는 길 따라 막 걸어가는 두 남정네.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 막 걸어가는 꼴.
이게 다 라이브러리안 해킹 실력이 개판이라서 그런 거다.
“아직도 지도 못 뜯었냐?”
“한 10%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아까 한 2시간 전에는 5%만 더 라고 했던 것 같은데.
왜 더 늘었어.
“아까 5%라고 하지 않았냐?”
“전 그런 기억 없습니다.”
저놈의 편의성 완전기억.
내가 아무리 잘 까먹는다지만, 두 시간 전 기억까지 까먹진 않거든?
…아마도.
그렇지만, 뭐라고 해 봐야 무엇하랴.
내가 뭐라고 한들, 지도를 뜯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내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공간을 확장하고, 공간 축을 고정한 덕에 더럽게 단단한 지하 기지지만, 내 망치로 부순 후 땅에 묻어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최종 보스를 만나고자 길을 찾는 것은 내가 어찌 못 하는 범주.
세상에는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라이브러리안을 탓하지 말도록 하자.
음. 음. 아무렴.
내 바다와도 같이 넓은 마음으로….
“아 거기, 화염방사기가 있….”
화륵.
불길한 말과 함께, 볼 옆이 따뜻해졌다.
구체적으로는, 아까 플라즈마를 맞고 블루 레어가 되어버렸던 볼 쪽이 다시 한번.
아마 지금쯤이면 레어로 익어버리지 않았을까.
“….”
“죄송합니다. 신호 체계가 워낙 단절되어 있어서, 지도에 집중하다 보니 무기 신호를 놓….”
라이브러리안이 뭐라 변명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보다, 왜 내 뺨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지를 더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환후겠지? 약한 화상일 뿐이고, 익은 고기 냄새가 날 리 없지?
내 볼때기를 뜯어다가 먹는 대참사가 일어나진 않겠지?
…더는 못 참겠다. 망할.
“야. 이 망할 놈아. 네 전문 분야도 못 하면 뭐 어쩌자는 거냐. 뭐? 보안을 못 뚫어? 그래서 함정 위치도 모르고, 지도도 못 찾아? ”
“제 적의 기지니 당연한 겁니다. 이 정도로 보안이 탄탄해야 제 적으로서 가치가….”
아이고, 그러셨어요?
봉인한 지 10년 넘지 않았냐?
10년 동안 놀고먹어서 기술 격차를 못 따라잡은 거겠지.
“아니, 그냥 다 부수고 가자고, 공간 붕괴고 뭐고, 지 기지 부서지기 싫으면 알아서 안정화하겠지.”
일직선으로 다 부수고 지나가면 해결되게 되어있어.
암반이든 적 중요 시설이든.
우연히 벽 옆에 있다가 망치 맞고 적이 뒈져버려서 대참사가 일어나든.
뭐든 다 되게 되어있다 이 말이야.
“안 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여긴 저희처럼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한 공간 왜곡이 아닌….”
네에 네에. 이과식 설명 들어봐야 모릅니다.
망치 꺼냅니다. 철거반 나가십니다.
그런 의미를 담고, 망치를 소환해 크게 자세를 잡았다.
눈앞에 보이는 벽을 일단 날려버리고자.
시야 한쪽 끝에서, 라이브러리안이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이지만, 이미 늦었다.
내 자세는 이미 잡혔고.
쿵.
한 발자국 내디딘 것으로, 망치가 쏘아지기 시작했으니.
쿵.
그리고, 라이브러리안이 도착하기 직전에 망치와 벽이 닿았다.
힘을 견디지 못한 망치 자루가 살짝 휘어졌고.
내 손에도 상상 이상으로 막대한 부담이 가해졌으나.
기기기기기기기긱.
금속이 휘어지는 소리와 함께.
핑. 핑피피핑.
리벳들이 사방으로 튀고.
쾅.
시원스레 철판 벽이 날아갔다.
아. 상쾌하다.
역시 뭔가를 좀 부수는 게 편하지.
“….”
거창한 일을 해내 실컷 무게를 잡는 나를 향해 라이브러리안이 째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무렴 어떠랴.
이미 저지른 뒤인데.
공간이 뒤틀리든 말든, 그건 일어나면 처리하자고.
“그렇게 째려보지 말고, 일단 열렸으니 가 보자.”
“…하아. 그러죠.”
활기찬 내 목소리와 달리, 라이브러리안은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져 버린 저기압성 목소리였으나.
결국, 순순히 내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음? 생각보다 넓은데?”
밖에서 볼 때는 방이 어두워, 우연히 뚫린 빈 공동이거나, 다른 복도인 줄 알았건만, 막상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넓은 장소였다.
바닥도 금속으로 된 것으로 보아, 동굴 같은 자연물 또한 아님이 분명.
그런 특이한 장소에 흥미를 느꼈는지, 라이브러리안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다 입을 열었다.
“저쪽에서 뭔가 빛나는군요.”
“가 보지, 뭐.”
내가 보기에도, 저쪽에서 뭔가 빛나고 있었다.
약하게 깜빡이는 괴이한 광원.
넓은 방이라고 생각했으나 좁은 복도를 계속 다녔기에 우리가 넓다고 생각했을 뿐.
실제로는 기껏해야 훈련장 하나 정도의 크기인 방을 가로질러, 우리는 그 광원 앞에 도달했고.
그것을 발견한 나는 라이브러리안의 등을 치며 입을 열었다.
“내가 뭐라고 했냐! 일단 저지르면 된다고 했지!”
“…설마. 아니 설마 아니겠죠.”
당황하며, 라이브러리안은 반짝이는 광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깜빡거리는 단말기.
정확히 말하면, 구식 CRT 모니터가 달린, 컴퓨터를 향해.
그렇게 라이브러리안이 단말기와 접한 지 20초 정도 지났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라이브러리안은 신음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뭐냐, 뭐 잘못되었어?”
“찾았습니다.”
“뭘?”
“지도. 찾았습니다. 하하하….”
라이브러리안의, 슬픈 웃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