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80)
마법소녀 아저씨 180화(180/671)
180. 넌 누구냐?
꿈을 꾸었다.
오랜 과거의 꿈을.
얼굴만 알던 사이에서,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가에 대한 꿈.
그리고, 또 다른 장소를 보았다.
완전히 무감정한 표정이 된 라이브러리안이.
검은 손과 기계 촉수를 휘두르며 나와 맞서는 장면을.
그 적에게 포효하며, 망치를 휘두르는 내 모습을.
“그래, 그렇게 된 거구나.”
그 목소리가 들리자.
어느새 나는, 그 장소에 와있었다.
보랏빛 마력 폭풍에 잠긴.
원형 공간의 안.
그리고, 반대쪽에는 그것이 카우치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앉아있다고 하기엔 조금 오류가 있었다.
카우치에 길게 누워, 물 담배를 빨아당기고 있는 그녀.
여태껏 모든 것이 나와 비슷해 보였던 그와 달리.
해당 마법소녀는, 나보다 조금 퇴폐적으로 보였다.
눈 아래엔 다크서클이 끼어있었으며, 옷의 색 또한 조금 더 칙칙했고, 여기저기 검은 문양과 은빛 장신구가 끼워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은, 나와 비슷한 형태에서 약간만 달랐기에.
마치, 나도 본래 그리 생겼을 거라고 착각할 만큼, 그것의 존재가 자연스러웠기에.
처음 본 순간 나와 그자의 다름을 눈치채지 못했다.
“뭐야, 드디어 각자의 외견적 차이를 눈치챈 거야? 늦은 건지 빠른 건지….”
그리 말하는 그 검은 자는 여전히 내 마음을 읽듯이 말해왔다.
“뭐, 인식의 차이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쾌락자는 그리 말하며, 담뱃대를 입에서 뽑고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기계적인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있는 나에게.
“오늘은 조용하다? 다른 때에는 그리 시끄럽더니만.”
“….”
생각할 게 있어서 말이지.
“이해해, 생각은 곧 양식이며, 지식이고, 이정표니까. 이번에 그걸 톡톡히 느꼈지 않아?”
“…너와 나는 다르군.”
내가 저리 지적인 말을 내뱉을 리 없다.
“다르긴, 모두 같아. 그녀도, 그도, 그것도, 그자도, 그 종족도, 그 미래도, 그 과거도, 그 현재도, 그놈도, 그 사건도.”
그자는 그리 말하고는 깔깔 웃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니, 또다시 틀렸다.
그 ‘것’은 깔깔 웃었다.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은 쓴웃음을 지었을 뿐.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웃고 있는 것은 옷 그 자체.
검은 무늬로 보였던 것은 입이나 눈이었고, 그것들이 뒤룩거리며 나를 바라보거나 웃고 있었을 뿐.
“아, 좀 역겨워 보여? 걱정하지 마. 착한 아이니까. 근본적으로 네 옷과 크게 다르지도 않고.”
…이제 와서 그런 게 무슨 상관일까.
그보다, 알’셸과 대화한 이후부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었으니.
“그보다, 질문이 있다.”
“뭔데? 난 바빠서 대답해 줄 시간이 있어. 나는 말이지.”
…저 괴상한 문장은 그대로구만.
“아냐. 내가 말한 문장은 온전하며 다면적인 진실이면서도, 유일무이한 거짓이지. 틀릴 리 없어. 지금은 통계적으로 틀렸지만.”
뭐라는 건지 원.
그보다, 내 마음은 읽으면서 왜 질문은 못 읽지?
“아 그거? 네가 너와 네가 다름을 자각했잖아. 물론 예전에. 그러니까 네 기준으로. 사실 근본적으로 같기는 한데, 일단 다른 건 다른 거니까. 뭐 그래서, 그만큼의 오차만큼 네 마음을 못 읽는 거야. 표층 심리나, 당장 떠올리는 말, 지식 정도? 그러니 질문은 아직 몰라.”
주절주절주절.
저 녀석이 저리 말이 많았던가.
“‘나’는 말이 많은 거야.”
아, 그러신가요. 뭐, 어찌 되었건. 질문을 모른다니 입 밖으로 내야지.
“아는 사람에게, 들은 게 있다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질문을 이어가려 했으나.
“그래 계속해.”
상대는 귀신같이 끼어들어 내 말을 잘라먹었다.
그것도, 맞장구라는 괴상한 형태로.
…무시하자.
“끝의 존재는, 자신이 강림할 대상으로서 기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럼 네놈은, 내 몸에 강림하기 위해 이러한 작업을 한 거냐?”
어찌 보면, 괴상하기 짝이 없는 말.
돼지가 사람에게 날 잡아먹을 거냐고 묻던가.
상대가, 그러한 존재라면 지금의 나는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
“기둥? 재미난 단어를 말했네. 그런데, 왜 그런 게 필요하지.”
까드드드득.
귀에 거슬릴 만큼의 강렬한 이 갈이가 울려 퍼지고.
그것은 한순간 내 눈앞에 나타났다.
공간에 떠다니는 이빨로 이루어진 문을 열고, 한순간 내 앞에.
“우리는 모두 네 안에 있는데.”
그리 말하며 파란 공간에서 튀어나온, 그 존재는 보랏빛 손톱이 달린 손가락을 뻗어, 내 가슴팍에 달린, 보랏빛 보석을 건드렸다.
툭.
작지만, 귓속 깊숙이 박히는 소리.
그와 동시에.
부아앙.
나 또한, 그것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허공을 가르는 망치에서 만들어진 바람이 돌풍처럼 몰아칠 만큼 강하게.
그렇지만.
“아, 무서워라. 무서워라. 겁나서 놀려먹겠어?”
그것은 잠깐 사이, 다시 카우치에 누워 물 담배를 빨고 있을 뿐이었다.
“내 안에 있다는 건 무슨 소리지?”
그런 괴상한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그 존재를 향해 질문을 내던졌다.
저 막장 존재 오메가가 다칠 리 없다는 것은 뻔한 것 아닌가.
“아니 나도 평범하게 다치는데. 무슨 괴물처럼 생각하면 상처받아.”
그녀는 나를 놀리는 것이 그리도 즐거운 듯, 뒤틀린 미소를 지으며, 내 생각에 딴죽을 걸어왔다.
심지어, 마지막 문장은 괴상하리만큼 비통한 어조를 담으며.
그렇지만.
“알 반가, 그보다 질문에나 대답해.”
저 존재의 감정은, 인간처럼 도저히 느껴지지 않았기에.
아무리 비통함이 담겼다 한들,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없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해 줄 수 있지만.”
끼릭.
톱니 소리가 울렸다.
“오늘은 서로 장난치느라 너무 시간을 많이 소실했네.”
말과 소리, 두 가지가 겹쳐 울린 순간. 정신이 무저갱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음엔 좀 질문을 정리해서 와. 날뛰지도 말고. 아깝잖아?”
그 유혹에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 * *
먼지 하나 없는 하얀 천장, 얼룩 없는 하얀 시트, 푹신한 침대.
어느 정도 익숙한 방이다.
마지막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마 어딘가의 병실이겠지.
어느 병원인지까지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지만.
또 옥시모론이라도 튀어나오려나.
그리 생각하며, 내 몸을 덮은 부드러운 천에 손을 올리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찰칵.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더럽혀진 의사 가운을 입은 여성이 얌전히 걸어들어왔다.
스트레이트 금발에 청안.
그리 크지 않은 키.
가느다란 몸에, 무표정한 얼굴.
처음 보는 얼굴의 여성.
“정신이 좀 드십니까?”
그 여성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어떤 놀라는 낌새도 없이, 그리 질문을 던져왔다.
적극적으로, 가까이 다가오며.
“괜찮긴 한데….”
“다행이군요. 과다출혈에 혈관 파열, 심장 박동까지 멈춘 상태여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건만. 어찌 이번에도 살아 돌아오셨군요. 역시 영구적 마법소녀의 몸은 수치상으로 인간과 똑같다 하더라도 같게 취급하면 안 되는 건지….”
중얼중얼중얼.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뭐라 뭐라 지껄이고 있지만, 내용 대부분이 귀에 안 들어온다.
그 내용이 전문적인 데다가 지리멸렬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났단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누구지?
이 여성이 누군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뭔가 엄청나게 친한 척을 하고 있는데, 내 머리에는 이 여성이 누구인지 떠오르는 것이 전혀 없다.
이렇게 친한 척을 한다면 뭔가 일면식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으으으음… 정말 누구지?
계속해서 머릿속을 쥐어 짜보지만 나오는 게 없었다.
내 인간관계는 너무나도 협소하니, 기억상실이나 정신 조작이라도 걸리지 않는 한, 저리 독특한 여성이라면 기억에 남지 않을 리 없는데….
“옥시모론이 절 찢어 죽이려고 들더군요. 네가 있었는데 어떻게 이 꼴로 데려왔냐고. 아 덤으로 말씀드리자면, 정말로 팔 하나가 나갔습니다. 메스가 그렇게 잘 드는 줄 저도 난생처음 알았군요. 아 옥시모론에게는 나중에 감사하다는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수술 후 곯아떨어지셨으니.”
…말은 더럽게 많은 데다가 옥시모론과도 안면이 있는 금발 여성?
진짜로 모르겠는데. 대체 이놈은 누구인 걸까.
내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 사이.
“…그래서, 그 생체 기계를…. 듣고 있습니까? 아니면 설마 감각기관이나 뇌가 망가졌나요?”
적의 멈추지 않는 혀는 대책 없이 앞을 향해 뻗어 나갔고.
입을 놀리던 금발의 여성은, 내가 걱정되는지 살짝 이마를 찌푸리고는, 손을 뻗어 내 이마에 올렸다.
“실례합니다.”
나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이 있긴 했지만, 모르는 사람의 손이기에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멍하니 그 차가운 손이 닿는 것을 허용했다.
상대에게서 묘한 친밀감과 진심이 담긴 감정이 느껴졌기에.
10여 초가량 지났을까. 마침내 그녀는 손을 떼며 입을 열었다.
“수치상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아 죄송합니다. 지금은 측정 방법이 이것뿐인지라.”
측정? 뭘 한 거지.
열을 쟨 것이 아닌가?
아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라도 좋습니다. 궁금하신 게 많으실 텐데요.”
그야 그렇지. 그런데 지금 그런 모든 질문은 단 하나의 질문에 다 잡아먹혀서 뇌에서 사라졌거든.
후우.
잠깐 한숨을 내쉰 후.
흐읍.
너무나도 긴장한 탓에 다시 그 숨을 들어 삼키며,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아시는 분인지…요?”
내 상상 이상으로 비굴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만약 내가 기억을 잃었고, 눈앞의 상대가 나와 친밀한 관계였다면 이 질문을 들은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싶어.
그리고, 아마 그것은 내 예상대로였을 것이다.
“….”
그 질문을 들은 당사자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리 어색한 공기가 방 안을 잠식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 아아아아! 맞다! 참. 그렇지요. 제 실수군요.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여성은 병실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른 뒤.
이제야 이 상황이 이해된다는 듯,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이하람 씨 치고 너무 예의 바르게 나온다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한데 말이죠. 이 몸이 생각보다 너무 익숙한 바람에.”
아니, 그러니까 누구시냐고요.
어째 말투는 낯이 익긴 한데, 설마 눈앞에 여성이 그 녀석일 리는….
“접니다. 라이브러리안.”
이 세상은 망했어.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