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82)
마법소녀 아저씨 182화(182/671)
182. 돌아오지 않는 답
은색의 구체를 품에 담고 조용히 관리국을 나왔다.
온 김에 옥시모론이나 현석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지만, 도저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 곧바로 관리국을 나섰다.
그리고, 멍하니 거리를 걸었다.
목적지 없이 그저 발 닿는 대로.
왜 이러는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
아무도 죽지 않았고, 모든 일은 잘 풀렸다.
라이브러리안도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은 괜찮다고.
그럼 내 마음을 짓누르는 이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라이브러리안이 자신을 희생해서?
아니. 그런 것은 아니다.
희생이란 당연한 것.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물론 화가 솟구치고, 눈물을 흘리겠지만. 이렇게 뭔지 모를 상태는 되지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라이브러리안이 인간이 아니게 되어서?
그 또한 아니다.
그런 사태는, 이미 황왕이나 뇌신. 나 자신이 겪으며 마음의 정리를 끝냈으니까.
그럼, 그것 때문일까?
라이브러리안의 몸 한복판에 박혀 있던 둥그런 폭탄.
그 때문에 과거가 떠오른 탓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순히 트라우마 때문은 아니다.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말았기에.
떠올려서는 안 될 생각을.
라이브러리안의 가슴팍의 폭탄.
각성자의 발이나 목에 달린 발신기.
인류를 위한 거짓 훈련.
인류를 위한 착취.
끝없는 전장.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것 아닐까.
그러한 의문이 마음속에서 떠올라버렸다는 것. 그리 생각이 나아가자, 이제야 내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소련이 바뀌었다.
각성자가 대우받는다.
영웅의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뀌기 시작했다.
정말로 조금.
모든 것이 조금 바뀌었을 뿐.
사회란 그런 것이다.
나 하나가 가진 힘으로는, 수없이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조금 바꿀 수 있으니까.
예외가 있긴 하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과거 있었던 사건들을 떠올렸다.
관리국의 설립 배경. 숙청 작업.
천마검신.
그런 충격 한 번이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럴 힘이 있다.
내 망치.
순수한 힘만이라면, 지구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막대한 힘.
그것을 휘두른다면, 사회를 갈아버릴 수 있을 터.
그래. 그리도 간단….
그리고, 발걸음을 멈췄다.
“….”
길 사이에 난 골목길.
그 누구도 보지 않을 장소.
거기에 몸을 밀어 넣고, 주변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장소까지 몸을 휘청이며 걸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빌딩의 높이로 도시의 소란스러움이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쯤.
“미쳤냐 이하람.”
그리 말을 내뱉으며.
쾅.
크게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주먹을 쥐고, 머리와 주먹, 둘 모두가 손상될 만큼.
거무죽죽하고 끈적한 피가, 눈 위로 흘러내린다.
충격을 입힌 손의 피부가 벗겨져, 방울방울 피가 솟아오른다.
그렇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왜.”
쾅.
“그런.”
쾅.
“생각을.”
쾅.
“한 거냐.”
쾅.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자책하기 위해.
눈앞이 흐려지고, 손에 감정이 멀어져가지만, 자해는 멈추지 않았다.
블랙 머라우더로 활동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유밀을 창조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그런 수단을 멀리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쾅. 쾅. 쾅.
골목길 벽에 피가 튀고, 뭔지 모를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지만.
내 이성은 멀쩡했다.
마치, 내 몸과 생각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
눈앞이 녹슨 색으로 변하고.
손뼈가 어긋나고.
머리가 박살 나도.
생각에는 지장이 없다는 듯.
그렇게 얼마나 자책했을까.
“커흑. 컥.”
마침내 나는 주먹질을 멈추고, 품속에서 금속 막대를 꺼냈다.
이빨 자국이 남아 있는, 차가운 막대.
그것을 입에 물고, 붉게 물든 몸을 빌딩 벽에 기댔다.
눅눅하군….
벽에 기댄 내가 한 첫 생각.
이끼 때문일까. 아니면, 이 장소에 가득 찬 습기 탓일까.
그조차도 아니면, 내 피 때문일까.
굳이 확인할 마음은 들지 않았기에, 조용히 눈을 감고, 혀로 철 막대를 핥았다.
연약한 혀를 통해 전해지는. 차갑고, 섬뜩한 감촉.
그것을 받아들이자,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불태우던 분노는 더 이상 태울 것을 찾지 못해 사그라들었고.
감은 눈 너머 어둠에 빛이 비치며, 조금씩 아픔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마, 내 몸이 복원되고 있는 것이리라.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그래. 아무 일도 없었어.
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내 몸을 두드린 적도 없어.
그리 생각하도록 하자.
그렇게 자신을 타이른 후.
딸깍.
천천히 금속 막대를 입에서 빼낸 후, 품에 넣었다.
그와 동시에.
팅.
두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조용히 골목길 안쪽에 울려 퍼졌다.
내 금속 막대와 현실 고정기가 부딪히는 금속음.
그 덕에, 이후 할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알’셸 얼굴이나 보러 갈까.”
그 녀석을 향해 불평불만을 쏟아낸다면, 마음속에 남은 잔불도 지워 없앨 수 있으리라.
평소라면 운호에게 해야 할 일이겠지만, 운호는 그 녀석 나름대로 제자들에게 귀염받고 있는 모양이니.
그러니, 알’셸이 제격이다.
애당초 망할 놈의 의뢰 때문에 이런 감정을 겪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알’셸을 패러 간다.
다음 목적지를 결정지으며, 마지막으로 골목길을 돌아보았다.
어둠과 습기 속에 잠긴 채, 피가 흩뿌려져 살인 현장처럼 된 뒷골목을.
그래, 아무런 일도 없던 거야.
내 생각과 행동은, 저 피에 담겨 모두 쓸려나간 거다.
천천히. 그것으로 좋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테니까.
언젠가.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또 천천히.
그렇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 *
호랑이 괴인에게 안내받아, 들어온 알’셸의 방.
오늘은 술이라도 홀짝일 생각이었는지, 얼음과 소금, 올리브가 올려진 접시가 식탁 위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언짢은듯한 표정의 문어가 한 마리.
“어째 요즘 자주 오십니다?”
‘또 뭘 뜯어먹으러 온 거야?’
어쭈, 이제 반말이시다?
그러잖아도 머리가 복잡한데, 너까지 그랬다간 내가 폭발할지도 몰라.
뭐, 그런 식의 협박을 하고 싶었지만.
문어 놈을 혼내는 건, 일단 일이 다 끝난 다음에. 라는 생각에 조용히 분노를 가라앉히고 반대편의 소파에 앉았다.
지금 패버렸다가 삐져서는 안 알려준다고 나오면 곤란하지 않은가.
“얼마 전에 했던 말 기억나냐?”
“이계 자살 투어 가신다는 것 말씀이신가요?”
그놈의 자살 투어.
“그래, 거기서 네놈이 현실 고정기 가져오라고 했었지.”
“예, 뭐 그랬었죠. 뭐, 이제 아시겠군요. 거기 적힌 물건은 무식한 놈이라 아마 이하람 님이라도 구하기 힘드실….”
‘아마 이제 포기했을 것 같은데?’
문어는 능청을 떨며 입을 오물거리고는, 얼음에 소금을 찍어 입안에 던져넣기 시작했다.
술 없는 안주라….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고.
…설마 이놈 내가 포기하게 만들려고 그 무식한 걸 요구했나?
아니면 진짜 그 정도 출력이 아니면 이계에서 못 버티는 건가?
어느 쪽이건 무슨 상관이랴.
내 품 안에 저놈이 요구한 것이 있는데.
“자. 여기 있다. 네가 요구한 현실 고정기.”
그렇기에, 품 안에서 은색 구체를 꺼내 그놈의 안줏거리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어른 주먹만 한, 은색 구체.
여기저기 버튼이나 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긴 하지만, 거의 완벽한 구체라고 보아도 좋으리라.
그 반들반들한 표면에, 시퍼렇게 변한 알’셸의 얼굴이 반사되었다.
“현실…고정기…. 입니까?”
“그래.”
“출력 1.5mNol에 범위 0.3Tac…?”
“아마?”
“지속시간 93ζ…?”
“맞을걸. 나야 모르지만, 준 녀석이 그러더라.”
난 아직도 그 제타 지렁이가 뭔지 모른다고.
“대체! 어떻게! 가져오신 겁니까!”
‘아니, 관리국 심층부 봉인이라도 털고 왔답니까? 저런 게 어디서 튀어나온 거죠?’
알’셸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촉수를 흔들며 더러운 점액을 사방에 뿜어내기 시작했다.
말하는 꼬락서니도 꼬락서니건만, 그 행패가 몇 배나 더러워 그리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게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아니, 기술은 그렇다고 칩시다. 에너지원은 어떻게 한 거죠? 소형 태양로나 블랙홀 엔진이라도 있답니까?”
이놈 보게?
진짜로 못 가져올 거라고 저런 걸 요구했었어.
“어… 무슨 O… 아마 O일 거다. 이계침식을 못 펴긴 했는데…. 공적지정은 되었으니. 어쨌건 그놈 심장을 통째 에너지원으로 썼는데.”
참 그놈의 O급 기준 애매해.
“아니, 이계침식도 못 펴는 놈 심장이 그딴 에너지가 있을 리 없잖습니까. 지금 당장 확인….”
알’셸은 엄청나게 당황한 듯, 빠르게 말을 내뱉으며 허공에서 마법 지팡이를 소환했고.
“분석, 해석, 간파.”
빠르게 단어를 읊조리며,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거기까지 대략 1초.
마법진이 검게 빛나고.
검게 변한 마법진이 바스러져 공기 중으로 사라질 때쯤.
“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알’셸은 실성한 듯 웃기 시작했다.
항상 쓰고 있던 유쾌한 가면도 벗겨지고, 본성이 드러난 듯한 얼굴로.
“어…너 괜찮냐?”
그 표변은 내가 문어 따위의 안부를 걱정할 정도로 대단했고.
“예? 괜찮냐고요? 괜찮고 말고요!”
‘이 미친. 왜 이딴 게 여기 있죠?’
알’셸은 유쾌한 분홍빛 피부로 변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시공상전이 엔진? 왜 이딴 게 이 먼지만큼이나 약한 세상에 굴러다니는 겁니까? 예?”
‘아니, 저 위쪽 급수 기술 아닙니까? 이런 건 저희도 못 만드는데?’
그게 뭔데 망할 이과 놈아.
“알기 쉽게.”
“열역학 법칙을 무시합니다.”
“몰라 임마.”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시간만 있다면 무한한 에너지를 뿜을 수 있는 엔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순간 출력량은 한계가 있지만요.”
와 대단하네.
“근데 그런 무한엔진 관리국에도 굴러다니는데.”
우리도 흔한 건 아니고…. 전리품으로 몇 개 얻은 게 다긴 하지만.
“그건, 하나의 세계가 가진 지보(至寶) 수준이 아닙니까. 이건 양산… 아니 넘어가죠. 어떻게 설명하든 이해하기 힘드실 테니….”
어 그래.
이야기가 쉽게 끝나서 다행이네.
알’셸놈은 어지간히 충격적인지 날 쪼는 것도 멈추고, 현실 고정기를 바라보며 뭐라 중얼중얼거리고 있다.
아니, 바라보는 것도 아니구만 이젠.
양손으로 들고선, 촉수로 감싸며, 뭔가 엄청난 보물이라도 되는 양 끌어안고 있다.
“미리 말해두는데 네 것 아니다?”
“압니다. 그 정도는. 제가 도둑질이라도 하는 천한 것으로 보이십니까? 단지 이런 중요한 물건이 제 사무실 따위에 굴러다니는 걸 참을 수 없을 뿐입니다.”
‘그러니, 다시 가져가시기 전까지, 제가 보관을…. 안전을….’
…어째 너무 과하게 좋아하는 것 같은데.
뭐, 상관없나.
“그럼, 언제 출발할까?”
“음, 1~2주 정도만 있다가 가도 되겠습니까? 실례되는 말입니다만, 저도 이하람 님이 이걸 가져오실 수 있을 거라 생각도 하지 못한 바람에, 아무런 계획도 짜지 않아서….”
하하하. 이 빌어먹을 문어 놈 보소.
오냐, 이제 네놈을 문어 숙회로 만들어버릴 시간이다.
그리 생각하며 망치를 소환했건만.
“정말, 죄송합니다. 이하람 님.”
문어는 정말로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딴 입으로 쫑알거리지도 않고, 진심을 담아.
아무리 나라 한들, 그런 녀석에게 어찌 망치를 던질 수 있으랴.
“하아.”
한숨을 내쉬며, 망치를 역소환했다.
“1~2주면 되는 거지?”
“예, 그건 보장하죠.”
그럼 됐고.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된 것 같아, 일어나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본래 목적이었던 문어 괴롭히기를 하지 못해 스트레스가 조금 쌓여있지만, 알’셸 녀석이 발광하는 것을 보는 것도 꽤 스트레스 해소가 되었고.
그리 생각하며 방을 나서는 내 등 뒤에서.
“음? 현실 고정기 안 가져가십니까?”
문어가 그리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잊어버리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냥 네가 가지고 있어라. 어차피 내가 가지고 있어도 쓸 데도 없으니.”
문어 놈이 저걸 좋아하는 것 같으니, 그 정도는 대여해주지 뭐.
“아, 미리 말해두지만, 영구적 대여 그런 건 아니다. 출발하기 전까지만이야.”
그리 말하곤 고개를 돌리자, 오묘한 표정을 지은 문어가 눈에 들어왔다.
파랑, 분홍, 검정.
대체 무슨 감정인지도 모를 그라데이션이 섞인 피부를 한 채.
그런 잉크 쓰레기 문어에게서 뭔가 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건만, 문어 대가리는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었고.
“뭐 할 말 없지? 그럼 간다.”
나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 방문이 닫히려던 순간.
“이하람 님! 집에 가시면 위….”
문 사이로, 문어가 뭔가 말하려던 것 같은 소리가 들렸지만.
질퍽.
뭔가 끈적이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달칵.
그리고, 문이 닫혔다.
음? 뭐지.
잠시 문을 돌아보았지만, 문이 다시 열릴 기색은 없었다.
…별것 아니겠지.
정말 중요한 거라면 문을 박차고라도 알려줬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