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83)
마법소녀 아저씨 183화(183/671)
183. 가족 서비스(1)
알’셸의 소란을 겪은 덕분일까.
저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렇다곤 해도, 내 의문과 감정, 생각을 마음 한구석 어딘가로 몰아넣고 잊어버리길 기원할 뿐이지만.
그런 게 한둘이던가.
이미 그런 것을 모아두는 마음속의 창고는 가득 차버렸을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문을 박살 내며 뿜어져 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닌 모양이다.
치킨을 한 손에, 맥주를 반대 손에 들고 활기차게 집으로 돌아갈 정도는 되었으니 말이다.
아쉬운 점은, 지금이 밤도 아니고, 태양이 도시를 발랄하게 비추는 낮이라는 점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닭은 사다 놓으면 누군가 어떻게든 먹기 마련이다.
상상하긴 힘들지만, 제자 녀석들이 싫다고 하더라도 나와 운호가 다 먹으면 되는 이야기.
특히 운호는 놔두면 새하얀 털이 소스 범벅이 될 정도로 닭 위에서 나뒹구니 식은 닭 처리로는 제격이고.
겸사겸사 그리 닭 상자에 처박힌 운호째 쓰레기장에 내놓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있고 말이지.
요즘 운호 그놈 너무 잘 먹고 잘살고 있어. 제자들에게 아양 떨며, 애완동물 취급받으면서 말이지.
옛날처럼 쓰레기장 특급 배송이라도 한 번 보내버려야지.
물론, 이 계획은 운호가 평소처럼 튀김 가루와 치킨 소스 범벅이 된 채 굴러다니고 있을 때 한정이지만, 성공률이 20% 정도는 되지 않을까.
* * *
‘운호 어디 갔어요?’
‘글쎄다, 과자 찾아다니다 어디 구멍에 낀 거 아닐까.’
‘죽는 줄 알았네에에에 포요오옼!’
* * *
음.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졌다.
덕분에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고, 금세 집 앞까지 올 수 있었다.
스위트 홈. 스위트 홈.
얼마 만에 다시 보는 집이냐.
물론, 라이브러리안과 함께한 이번 원정은 일주일도 되지 않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하도 그 기지 안이 지루했기 때문일까, 긴 시간 동안 겪은 것처럼 느껴진다.
집에 돌아가면 소파랑 침대에서 뒹굴거려야지.
그러잖아도 요즘 너무 삶을 진하게 산 느낌인데, 조금 풀어줘야지.
그렇게 미래 계획을 짜며, 오토록을 향해 손을 뻗는 내 귀에.
‘하하하. 정말이에요?’
‘그럼. 정말이지.’
문 너머에서부터 여성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손님이라도 왔나.
별 상관없겠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오토록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삑. 삑. 삑. 삐비빅.
그런데 쟤들이 아는 여성이 얼마나 있더라….
버튼을 누르기 시작함과 동시에, 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 인사라도 하려는 것이겠지.
띠로롱. 철컹.
옥시모론…. 말고는 없지 않나…?
프로히비션이 이런 데를 올 위인도 아니고.
무인 애들이나 크리스가 한국에 방문했을 리도 없고.
시현이나 아빈이 친구라도 되려나.
그럼 닭이라도 건네주고 맥주만 가진 채 그냥 방에 틀어박혀야지.
대충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짓고, 문을 열며 입을 열었다.
“나 왔다! 누구 손님이라도….”
양손을 치켜들며 입을 열었으나.
나를 반겨 준 것은.
“어딜 갔다가 이제 온 거야!”
노란 번개 빛과 격한 통증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명치 부근에.
“쿠헉.”
통증 때문일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스승님! 어서 오세요!”
“으아아…. 선배님!”
덧붙여서, 언제나 태평하신 제자의 인사와, 유일하게 걱정해주는 아빈이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그렇게 늘어진 듯한 시간은 그리 길게 유지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튕겨 나간 몸이 바닥을 나뒹굴며 종료되었으니까.
“아, 튀긴 닭이랑 맥주네.”
그 강렬한 충격을 받은 탓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 손에서 벗어나 허공을 날아다니던 비닐봉지 두 개는, 어느새 뇌신의 손에 들려 내용물을 검사당하고 있었다.
그래… 닭은 무사하구나….
그럼 이제 남은 건.
“뇌신… 네가 여기 왜 있냐….”
결사랑 같이 다녀야 할 뇌신이 왜 우리 집 안쪽에서 튀어나온 건지에 대한 의문.
그것을 내뱉으며, 아직도 저릿한 통증이 이는 명치를 붙잡았다.
그렇지만 뇌신은 그런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답을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려 비닐봉지를 제자 둘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닭은 너희들끼리 먹고, 맥주는 냉장고에라도 넣어놔.”
그거…내가 사 온 건데….
그리 반박하려 했으나, 뇌신의 기세에 밀려 입을 열지 못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 제자 둘이 각각의 비닐봉지를 받아들자, 뇌신은 몸을 틀며 나를 향해 다가왔고.
“자. 그럼 너희 스승님은 내가 실례할게.”
제자들에게 그리 말하고는 발랄하게 손을 흔들며, 내 뒷덜미를 잡아끌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발이 질질 끌리며, 조금씩 집이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저기. 뇌신 님?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주시지 않으시려는가요?”
“가보면 알아.”
그런가요.
제자들아! 도와줘!
그런 의미를 담아 양손을 흔들었건만.
“잘 다녀오세요. 스승님!”
“…다녀오세요.”
제자 둘은 그에 손을 흔들어주며 그리 답해줄 뿐이었다.
백시현은 한없이 밝게.
한아빈은 내 시선을 피하며.
오냐. 너희들은 지옥 훈련 풀코스 확정이다.
그런 내 다짐도 무색하게.
나는 뇌신의 손에 붙들려, 제자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을 뿐이지만.
으어어. 내 집이 멀어진다.
내 휴식이.
내 닭이.
내 맥주가.
그렇게 나는 집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닭과 맥주, 그리고 안식처를 빼앗겼다.
* * *
결국, 포기하고 내 발로 걷기 시작한 지 2분 정도 지났을까.
뇌신에게 어디 가는 거냐고 몇 번이고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뇌신은 가보면 안다는 말을 되돌릴 뿐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장소에 데려다주려고 하며 궁금해했건만.
우리가 도착한 장소는.
“그냥 뒷골목이잖아.”
그것도 어디 슬럼가 뒷골목이나 그런 것도 아니고,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큰길가와 인접한 좁은 골목.
특별한 장소도 아니고, 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쏟아낸 불평이건만.
“음. 아무도 없지?”
뇌신은 나를 무시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이 있는가를 살필 뿐이었다.
아무도 없기는.
당장 저 큰길가에 사람 지나가고, 저기 전봇대에도 CCTV 달려있네.
“저기 CCTV 있는데.”
“아 그래?”
그리고, 말을 꺼낸 걸 후회했다.
“얍.”
뇌신이 손가락을 뻗어, 전기를 방출해 CCTV를 박살 내버렸으니.
…음. 못 본 거로 하자.
저 정도 위력이면 데이터도 손상되었을 테니 걸릴 일도 없겠지.
“이제 정말 없지?”
“…아마도.”
사람이 오질 않기만을 바래야겠다.
그랬다가는 뇌신이 ‘사람 쫓아내기.’라면서 무고한 피해자의 신경에 전기를 박아넣을 것 같으니까.
“네가 보기엔 어때?”
“엉? 말했잖냐. 없는 것 같다고.”
“너한테 말한 거 아냐.”
그럼 누구한테….
그리 말하려는 순간.
질퍽.
뭔가 끈적이는 소리가 들리고.
쑤욱.
뇌신의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검디검게, 나보다 살짝 큰 형태로.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 검은 거품은 조금씩 커지더니.
팡.
작은 소리를 내며 폭발했고.
“아!빠!”
그 안에서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린슈아?!”
린슈아는 바로 나에게 달려들어 날 껴안았고, 나 또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린슈아를 껴안았다.
아무리 나라 한들, 딸을 뿌리칠 정도로 매정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그 대신.
린슈아의 어깨너머로 뇌신을 째려보았다.
‘얘가 여긴 왜 있어?’
그런 의미를 담아.
“왜긴, 애 아빠께서 놀아주겠다고 해놓고선 연락도 없으셨다면서.”
그에 뇌신은 내 필사적인 비언어적 표현법에 대해, 직접적인 언어폭력으로 되돌려주셨다.
아니, 내가 그 약속을 기억하긴 하는데…. 요즘 바빠서 어쩔 수 없….
그런 핑계가 솟아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변명은 너무나도 연약한 데다가. 이 상황 또한 내 잘못임이 명백했기에.
“괜찮아 아빠! 지금 가면 되니까!”
린슈아는 그런 말을 듣고도 나에게 불만이 없는 듯.
포옹을 멈추고 미소를 띤 채 그리 말해와 더더욱 내 죄악감을 깊어지게 만드는 데에 한몫했고.
“그거랑 알’셸 아저씨한테 들었어! 이계 간다면서! 그럼 지금 같이 놀아야지!”
그 조그만 입으로,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알’셸이 날 배신하고 딸내미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았다는 내용을.
문어 대가리 이 새끼가.
오냐, 너 이계 갈 때 보자. 내가 어떻게 해서든 현실 고정기 밖으로 문어 놈을 던져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알’셸에 대한 내 악의적인 계획은 지금 상황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고.
“…그러자꾸나.”
나 또한 린슈아에게 웃음을 되돌려주었다.
“좋아! 내가 다 계획해놨어! 우선 미술관도 가고, 영화도 보러 가고!”
린슈아는 그런 내 행동이 기쁜지, 빠르게 떠들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 말에 귀 기울여줘야 마땅하겠으나, 미술관이나 영화관, 쇼핑이 반복되는 것을 보아하니,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았기에.
“야. 뇌신.”
벽에 기댄 채 린슈아를 미소 띠며 바라보는 이에게 말을 건넸다.
“왜.”
“린슈아는 그렇다고 치고, 넌 왜 여기 있냐.”
“결사 수장님 보호자 겸, 에스코트지. 사실상 요즘은 항상 같이 다녀. 그림자에 누구 있는 게 조금 꺼림칙하긴 했는데 요즘은 익숙하더라.”
‘와, 출세했구나 너.’
그런 농담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조용히 목 안으로 감추었다.
대신, 내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다른 이야기.
“내가 이계에 가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앞으로 즐거움을 표현해야 하기에. 꺼내기 힘든 내용에 대하여.
“살아 돌아올 자신은 있어?”
“글쎄다. 너도 알다시피 거긴 워낙 개판이라.”
기필코 살아 돌아오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보장은 할 수 없다.
당장 대서양 앵무조개만큼 미친놈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장소니까.
“계획은 있고?”
“별로. 알’셸 하나 믿고 가는 거지.”
그 알’셸도 하루아침에 날 배신하는 바람에 신뢰도가 폭락했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옥토문두스?”
“어.”
그러고 보니 괴인명으로는 그런 이름이었던가.
“별로 믿음직스럽진 않네. 막상 만나보니 어마어마하게 얼빠진 녀석이더라고.”
“그거 다 연기야. 그 녀석 본성은 따로 있어.”
흥미를 제외하면 무감정하게 득실을 계산하는 주판을 가진 마법사.
그것이 그 녀석의 본성.
“그래? 난 그 얼빠진 모습이 더 본성 같던데. 네가 말하는 옥토문두스의 모습이 가면 아닐까.”
글쎄다.
내가 알’셸이랑 천년 지기 친구도 아니고, 뭐라고 말은 못 하겠지.
그보다 중요한 건.
“그래서.”
“응?”
“너도 반대하는 거냐?”
지금까지 대화로는, 뇌신은 내가 이계로 가는 것을 반대하리라. 아무런 보장도 없이, 지옥에 몸을 들이겠다는 거니까.
“아니? 맘대로 다녀와. 내가 왜 말려?”
“…조금 전까지 절대 그 말이 나올 수가 없는 분위기였는데.”
“그야 그건 네가 이하람이 아닐 때 이야기고.”
씨익.
뇌신은 그런 소리가 들린다고 느껴질 만큼 밝게 웃으며 벽에서 몸을 떼었다.
“넌 무대포와 생존의 화신. 진홍철추잖아? 다녀와. 난 네가 어떻게든 돌아올 거라 믿으니까.”
뇌신은 그리 말하곤, 린슈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자. 린슈아. 그만 가자. 그렇게 말만 하다간 즐거운 시간이 사라져.”
“아! 그렇구나! 그러자!”
린슈아는 그 말에 납득한 듯. 밝게 소리치며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
“내가 안내할게! 가자 아빠!”
“그러자꾸나.”
나는 그에 진심으로 웃으며 답을 돌리자.
“아, 뇌신 아줌마랑 이계 가는 거 이야기했었지 아빠?”
린슈아는 갑작스레 대화의 물꼬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 들렸니? 이야기를 다 못 들어줘서 미안하구나.”
“그건 괜찮아. 그보다 아빠! 나 걱정하지 말고 이계 다녀와!”
린슈아는 그리 말하고, 잠깐 내 손을 떼며 양손을 활짝 폈다.
“아빠는 반드시 살아 돌아올 테니까! 반드시!”
내 기운을 북돋아 주려는 듯, 활기차게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