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185)
마법소녀 아저씨 185화(185/671)
185. 가족 서비스(3)
내 예상대로 영화는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휴먼 드라마나 신파물도 아니었고.
코미디는 더더욱 아니었다.
즉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영화는 아니었다는 이야긴데….
아, 코미디는 좋아한다. 다만, 그러한 장르가 아니었을 뿐.
그런데도.
‘해피니스 드롭! 어째서!’
‘이걸로는… 안 되기 때문이야.’
죽고 싶어졌다. 망할.
극장 여기저기에 배치된 스피커에서 저런 음성이 흘러나오자,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쪽팔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이딴 영화를 고른 거지?
린슈아는 그렇다고 치자, 뇌신은 말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가자, 헤리스!’
‘그래!’
특히 프릴을 대량으로 달고, 움직일 때마다 별을 뿜어대는 저 마법소녀는 설마 모티브가 나인가?
왜?
현실 기반 전쟁 영화에서 별을 뿜어내는 마법소녀가 나오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영화 제작팀에 한 명도 없었나?
한 명도 없었냐고.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O급 전투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비공개 처리되어 있기에, 대략적인 개요나 어마어마하게 검열된 참전 리스트만 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대략적인 정보와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아 재구성한 것이리라.
마법소녀라는 단편적인 정보에서 저런 디자인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닌 일.
그렇다고 해도.
저건 아니지 저건.
‘헤리스, 괜찮아?’
‘괜찮아. 너도 알잖아, 마스코트는 잘 죽지 않는다는 거.’
그러잖아도 불편한 참인데, 스크린에서는 거대화한 흰 늑대가 해피니스 드롭의 검붉은 창을 막아내고 있다.
그리곤, 상처 난 ‘헤리스’와 교감하는 마법소녀.
토할 것 같아.
아까 죽어라 퍼먹은 팝콘이 콜라와 섞여 올라올 것 같다.
그러니 저 역겨운 화면에서 시선을 돌리고자, 좌우에 앉은 뇌신과 린슈아를 살폈다.
우선, 좌측에 앉은 린슈아.
그녀는 애답게 양손을 가슴에 모아쥐고는 눈을 빛내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 와. 하는 감탄사는 덤으로.
아직 애는 애구나.
그런 귀여운 모습을 보아서일까.
내 입가에 피식 이란 소리가 날 만한 잔웃음이 서렸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몸을 지배하던 구토감이 사라졌다.
자, 그럼 뇌신은 어쩌려나.
그렇게 고개를 돌린 순간.
뇌신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뇌신과.
그녀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더니, 잠시 후 스크린에 고개를 돌리곤, 몇 초 후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눈도 제대로 안 보이는 주제에, 매우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리곤 갑작스럽게 웃기 시작했다.
영화관 매너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목소리가 새어 나오진 않았지만.
분명 저대로 입을 열었다면 이 영화관을 가득 채울 만큼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으리라.
그리곤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겠지.
‘저게. 너라고?’
‘저게?’
매우 격한 웃음소리는 덤으로.
대충 상상이 가, 다시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나랑 비스름한 마법소녀가 나오는 장면은 다 넘어갔는지, 다른 영웅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검을 잡은 무인.
애들이 좋아할 법한 삼원색의 로봇.
고깔모자를 쓰고 마법 지팡이를 든, 전형적인 판타지 마법사.
그렇게, 영화 속 전투는 너무나도 평온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너무도, 평온하게.
* * *
“아빠! 영화 어땠어?”
영화가 끝나고, 흔한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밥을 때우고자 자리에 앉은 순간. 린슈아가 꺼낸 질문.
그에 대답하기가 곤혹스러워, 잠깐 앞에 놓인 물컵을 휘둘렀다.
‘영화 어땠어.’라.
사실 제대로 보지 않아 어찌 평가하기도 그렇지만, 머릿속에 파편처럼 떠돌아다니는 생각들은 있다.
구조는 괜찮더라.
현실과 차이가 너무 커서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왜 마지막은 해피니스 드롭이 참회하며 죽고, 우리는 희생이 적은 해피엔딩일까.
그렇다고 한들, 지금도 눈을 빛내는 아이에게 그런 것을 말할 필요는 없었고.
“나쁘진 않더라.”
적당히 괜찮은 답을 골랐다.
반쯤은 진심을 담아.
그래, 영화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저것이 현실에 기반한 것이 아닌. 단순한 영화였다면.
너무나도 정석적인 영웅 영화였지.
아군의 배신.
혼란스러워지는 영웅 집단.
그러나 어떤 사건으로 모두의 결의가 모이고.
배신자는 토벌되었다.
그러나 배신자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고.
그렇게 생각할 거리를 남기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싫어할 이는 얼마 없을 것이다.
이 자리에 앉은 둘을 제외한다면.
실제 그 전투에 참여했던, 영웅 둘.
음식을 가지러 간 뇌신의 생각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에 대해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전투에 참전했던 트라우마가 떠오르기에는 너무나도 영화가 현실과 달랐으니.
등장했던 영웅들의 모티브를 눈치챌 수 없었다면.
적의 이름이 해피니스 드롭이 아니었다면.
나도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으리라.
그런 문답 속에서.
“나도 재미있긴 했는데…. 좀 아쉬웠어….”
밝게 웃던 린슈아는, 웃음을 거두진 않았지만, 약간의 감정이 담긴 말을 내뱉었다.
그럼, 이제 내가 나설 차례.
“아쉬웠다니? 뭐가?”
“응. 그게. 아빠가 나올 것 같아서 골랐거든. 그런데 아빠도 안 나오고, 결사 아저씨들에게 들은 내용과도 이야기가 달라서….”
린슈아는 그런 걸 기대했던 걸까.
하긴, 그런 걸 기대했다면 전혀 다른 물건이 튀어나온 셈이지.
그리 생각해 보면 차라리 잘된 게 아닐까.
방금 보았던 영화는 희망차기라도 하지.
만에 하나 누군가 관리국을 해킹해서 온전한 전투 기록을 탈취한 후, 그걸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보던 도중 린슈아를 잡아들고 당장 영화관을 뛰쳐나왔으리라.
뇌신 또한 PTSD 구토를 일으키며 따라 나오지 않았을까.
물론, 그딴 영화는 관리국의 눈에 띄어 출시도 못 하고 폐기처분 되었겠지만, 만약의 이야기다.
“아빠는 여기 있으니 보면 되잖니.”
“음…. 그렇긴 해! 영화는 아빠의 멋짐을 표현하지 못했을 거야!”
내 말이 적절했던 것일까, 린슈아는 웃으며 그리 날 치켜세웠다.
“그래? 그럼 결사에 가서 대련이라도 해볼까? 그거라면 더 멋질….”
쾅.
머리에 충격이 내려앉았다.
그리 아프진 않았지만, 당황스러워 말이 끊길 정도의 충격이.
“결사 애들 괴롭히지 말고. 대련하다 뭘 부숴 먹을라. 그래.”
충격의 정체는 뇌신이 쟁반으로 내 머리를 후려친 것.
“괴롭히기는, 그 녀석들도 꽤 쎄거든?”
특히 퀼프랑 알’셸은 O급이고.
“그리고 우리 철 안 든 진홍철추보단 약하겠죠.”
뇌신은 그리 비꼬며, 쟁반에 담긴 음식을 배분했다.
린슈아 앞에는 햄버그스테이크.
뇌신 앞에는 치킨 샐러드와 크림 수프. 그리고 빵 몇 조각.
내 앞에는 국밥 한 그릇.
“아, 뇌신 아…. 언니! 감사합니다!”
“힘들면 그냥 뇌신이라고 부르라니까.”
뇌신은 아줌마나 언니라고 불리는 데 이제 익숙해진 듯, 그리 말하며 자기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아까 본 영화 평가.”
“…전체적으론 나쁘지 않았는데…. 우리가 보긴 좀 그랬지?”
“그렇지, 뭐. 린슈아는 내가 안 나와서 아쉬운 모양이더라.”
“뇌신 언니도 안 나왔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랬던가.
누가 모티브인지 모를 초능력자는 나왔는데, 전기 계열은 아니었지.
영화에서 뇌신 모티브인 영웅이 나오면 나도 뇌신을 골려주려 했건만, 끝까지 나오지 않은 바람에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에 안 나온 게 더 좋은 거 아닌가?”
뇌신은 그리 말하고는, 능글맞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누구 씨는 엄청나게 미화돼서 나왔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핑크빛 빔 포를 쏘아대며 흰색 늑대를 타고 다니는 마법소녀가 되신 기분은?”
“그거 한 번만 더 언급하면 내가 결사 놈들 후려칠 거다.”
뇌신이나 린슈아를 때릴 순 없으니, 연대 책임으로 결사 간부 놈들 머리에 한 방씩 먹여야지.
그것도 힘들면 알’셸만 패고.
“그래? 너만 아니면 되는 거지? 그럼 ‘헤리스’는 어때? 멋진 마스코트던데.”
좋아. 운호를 반 죽여놓자.
그놈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이런 굴욕을 당함이 분명하다.
진작 만두소로 써서 팔아버렸어야 했는데.
운호에 대한 처분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화제를 돌리자.
“영화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이 뒤 예정은 어떻게 돼?”
뭐가 되었든 어울려줄 생각이지만, 될 수 있으면 쇼핑은 아니었으면 한다.
“음. 본래 조금 더 액세서리 가게를 둘러볼 예정이었는데….”
잠시 무서운 말이 뇌신에게서 튀어나왔지만.
“안 가도 될 것 같아! 이 목걸이로 충분해!”
린슈아가 그리 말하며 자기 목에 걸린 목걸이를 치켜들어준 덕분에, 그 말이 끊겼다.
“그렇다네. 다행이네? 그렇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치킨이 꼽힌 나이프를 든 채 내 옆구리를 툭툭 치는 그녀.
“음? 아니. 뭐 아쉽네.”
나 또한 그에 답하고자, 전혀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음, 그럼 영화도 봤고, 쇼핑은 끝났고…. 일단 예정된 건 노래방, 볼링장, 방 탈출 카페. 오락실. 음…. 그리고 이건 아닌 것 같지만 미술….”
“미술?! 나 미술관 갈래!”
“어? 정말 미술관으로 괜찮아?”
“응! 나 미술관 좋아해! 아빠도 자주 데려다줬어!”
아… 그러고 보니 그랬지.
사람도 얼마 없어서 뿔이 돋아나기 전까지는 숨기기도 쉬웠고.
제 부모들 탓인지 미술품은 엄청나게 좋아했었다.
“음. 린슈아가 좋다면 괜찮은데. 넌 어때?”
“어? 린슈아가 좋다는데 나야 좋지.”
나야 쇼핑만 아니면 되니까.
“그럼 미술관으로 결정된 거네. 찾아보니 마침 이 주변에 특별 전시장도 있는 것 같고.”
“무슨 미술이야? 옛날 사람 들 거? 요즘 사람들? 조각? 회화?”
뇌신이 핸드폰으로 미술관을 검색하고 있자, 린슈아는 그것조차 기다리기 힘들다는 듯,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뇌신의 옆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음. 현대 미술이고, 어느 대학 졸업 작품….”
뇌신은 그에 귀엽다는 듯 웃으며 답해주려 했지만.
“린슈아.”
나는 그 모든 말을 가로막으며. 엄하게 입을 열었다.
“밥 먹을 땐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줬었지?”
“아…으…. 그…. 떠들어도 되지만, 더럽히진 않도록….”
내 엄함에 놀란 것일까. 린슈아는 기쁨을 가라앉히며 목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애가 신나서 그럴 수도 있….”
“뇌신. 이건 내 교육방침이야. 그리고.”
뇌신은 내가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뭐라 말해왔지만, 나는 단호하게 손을 뻗으며 뇌신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사이, 린슈아는 살짝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리에 돌아가, 얌전히 자기 몫을 해치우기 시작했고.
나는 뇌신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알잖아. 부적이 있다고 해도, 린슈아가 눈에 띄는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해.”
“아.”
그제야 뇌신은 내 말이 뭔지 알겠다는 듯. 조용히 끄덕였다.
그렇게 서로 간 이해가 끝나자, 나는 린슈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린슈아. 아빠가 이러는 이유 알지?”
“응. 아빠. 죄송해요.”
린슈아는 조금 가라앉긴 했지만, 침울함이 가신 평탄한 목소리로 그리 말해왔다.
자, 그럼 대충 반성한 것 같고.
나는 그리 엄한 아버지가 아니다.
또, 그냥 이유 없이 혼내는 아버지도 아니고.
“린슈아가 그런 이유는 나도 안단다. 나랑 같이 미술관을 가느라 흥분해서 그런 거지?”
“응….”
“그렇지만, 밥은 깨끗하게 먹어야 해. 먹다가 내팽개쳐도 안 되고. 운호가 그러면 기분 나쁘지? 그거랑 같은 거야.”
“음…. 알 것 같아!”
“알아줘서 다행이구나, 그러니. 밥은 잽싸게 해치우고 다시 같이 환호성을 지르자꾸나.”
밥을 먹고 난 다음이면 살짝 시끄러워도 그 나이대 애니까.
“응!”
내 진심을 알아준 듯, 린슈아도 살짝 웃고는 고기를 입에 옮기기 시작했다.
“음. 생각보다 아빠 노릇을 잘하고 있었네?”
“…몇 년 하다 보면 하기 싫어도 익숙해지는 법이야.”
“그러게, 난 네가 무책임하게 대충 내팽개친 줄 알았어.”
“그럴 리가 있냐. 최대한 잘 자라게 하려고 노력했어.”
물론, 그 끝은 파탄에 이르렀지만.
적어도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좋은 아빠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아빠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 고생을 이해한 것일까.
“그래. 그런 것 같네. 좋은 아빠야. 일단은”
뇌신은 살짝 웃으며, 그리 말해왔다.
그 미소는, 꽤 상냥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