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201)
마법소녀 아저씨 201화(201/671)
201. 생존에 대하여(1)
쭈욱. 쭈욱.
저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나.
조금 전까지 싸우고, 기괴한 일을 겪었던 상대건만.
알’셸에게 빨아 먹히는 걸 보고 있자니 안쓰러움이 몰려왔다.
거기에 더해, 빨아 먹히는 대상자가 비참하리만큼 연약해 보이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으리라.
그렇다고 한들. 말릴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애당초 적대적 대상에게 정보를 얻으려면 저것이 가장 빠른 것을 이해했고.
또 하나는.
저 존재가 내 안에서 본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알’셸이 모든 기억과 정보를 빨아들인다면, 자연히 그 또한 알게 될 터.
쭉. 쭉.
역겨운 소리가 오래된 석제 돔을 가득 채우고.
전투로 인한 열기도 식어, 지하의 냉기가 몸에 스며들 때쯤.
퐁.
역겨운 공기 소리와 함께.
“…쯧. 생각보다 복잡해졌군요.”
알’셸이 혀를 차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왜?”
“생각보다 이 시스템에 의존하는 존재가 많습니다.”
“뭔 당연한 소릴. 네 말대로라면 사실상 대다수가 속해있는 거 아니냐?”
일반적인 벌이론 먹고살 돈도 못 번다면서.
“착취나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종족들도 꽤 있지만.”
퉷.
알’셸은 그에 침…. 이 아닌 점액을 땅에 뱉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몇몇 종족. 지금 이 종족도 포함해서. 그리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종족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흐음?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봐.”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일 뿐입니다.”
씨익.
알’셸은 가학적인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매우 민감하게 맞춰진 저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그 위에 존재하는 이들은 저울이 어떤 식으로든 기울어진 순간. 다 같이 파멸할 운명이죠. 빠르거나 늦거나. 아니면,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다시 저울의 균형을 잡거나.”
간단하면서도 괴상한 비유네 거….
“요컨대. 지금 상황이 매우 위태롭다는 이야기냐?”
“다만, 이하람 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위태롭진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 지 긴 시간. 최소 몇천 년은 흘렀을 테니 말이죠.”
“왜 최소 몇천 년인데.”
“저기 쓰러진 자가 여기 정착한 시간이 그렇습니다.”
아. 그렇군.
음? 잠깐 그럼 이상한데.
“저 녀석. 몇천 년 전에 종족 단위로 이주한 거냐 그럼?”
“예.”
“그럼 진작에 저울의 균형이 무너졌어야 했던 거 아니고?”
“그게 이 저울의 오묘한 점이죠. 그 누구도 이것의 균형이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알’셸은 그에 흥분한 듯. 손을 뻗으며 기묘한 수식을 그려냈다.
“너무나도 변수가 많습니다. 그 누구도 모든 정보를 얻지 못하고. 그 누구도 이 화폐의 공식을 모릅니다.”
허공에 나타난 기나긴 그래프는, 어느 순간 난잡하게 위아래로 휘몰아쳤다.
“그것을 알던 관리자는 이미 죽거나 사라졌고. 남은 것은 살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뿐.”
알’셸이 손을 휘두르자 휘몰아치던 그래프는 안정을 찾았다.
“누가 새로이 마열차에 들어온 순간. 저울이 기울어질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죠.”
알’셸의 말이 평탄히 이어지고, 그래프 또한 평탄한 직선을 그려 나갔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합니다. 물론, 다 같은 난민 처지니. 관대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래프의 평행선.
“그리고,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 저울은 기울어집니다.”
그래프가 가파르게 땅을 향해 추락했다.
마치,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듯.
“수입은 요동치고, 거주비와 식비. 재료 비용을 예측할 수 없게 됩니다. 물론, 일부는 살아남겠죠. 하지만, 일부가 사라졌기에 전체적인 수익의 규모가 줄어들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은 다시 굶어 죽기를 반복하는 무간지옥이 시작됩니다.”
절벽을 따라 떨어지는 그래프는 알’셸이 설명하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추락했다.
나락을 향해.
“이것은. 단순한 예상이 아닙니다. 저자도 겪었으며, 마열차에서 몇 번이고 일어났던 일이죠.”
그 말과 동시에. 한없이 바닥을 향해 추락하던 그래프는 마침내 완만한 선을 그렸다.
처음 있던 선에 비하여. 수십 배나 감소한 수치를 가진 채.
“다만, 이것은 모든 종족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어중간한 힘을 가진 종족. 대기근을 버텨낼 화폐가 없는 종족. 대전쟁을 버텨낼 힘이 없는 종족. 그런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알’셸이 손을 흔들자, 또 다른 선이 처음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가파르게 하락하지만, 처음 나타났던 선에 비하면 한참 위에서 맴도는 선 하나.
“오히려 힘을 가진 자는 큰 불만이 없습니다. 견뎌낼 수 있으니 말이죠. 물론 그들에게도 큰 손해지만. 그들이 절멸할 걱정은 없습니다.”
훅.
알’셸의 팔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모든 그래프와 선.
공식이 사라졌다.
“자. 이하람 님. 그럼 여기서 질문을 드리죠.”
씨익.
이 상황이 재미있는 듯. 알’셸은 기묘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자신의 종족과. 난민으로 이계를 떠도는 종족. 누가 더 중요하십니까?”
* * *
거기에 정답이 있을 리 없잖냐.
그리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내가, 인류와 함께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물론, 상대가 약하다면. 힘으로 해결했으리라.
그렇지만, 조금 전 본 그자.
다 늙어 연약해지긴 했지만. 나를 막는 것은 가능했던 존재.
그런 존재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약자였다.
“알’셸?”
잠시 고민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예?”
알’셸은 뭔가 할 일이 있는지, 고민하는 날 내버려 두고 석제 돔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금세 답을 되돌렸다.
“지금 기절한. 저 노인.”
그래. 죽지 않았다.
호흡은 하고 있으니…. 정신적 충격은 있겠지만.
수천 년이나 이어져 온 생명이니 쉬이 죽진 않는다는 이야기인가.
“저자는 마열차에서 어느 정도로 강하지?”
저런 존재가 바글거린다면, 나조차 위험할 터.
둘. 힘들지만 이길 수 있다.
셋. 아슬아슬할 것이다.
넷. 필살기 없인 확실하게 패배한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게 권한이 없어 모든 데이터를 얻진 못하지만…. 뭐, 강자의 자격 정도는 있습니다. 각 종족에 많아야 둘이겠죠. 없는 종족도 있을 테고 말이죠.”
흠.
그에 고개를 들었다.
역시. 혼자선 어렵다.
저자가 약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약자인 것은.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없었기 때문.
즉. 내가 인류를 이끌고 온다고 해도, 인류 그 자체의 숫자가 적으면 방법이 없었으리라.
더욱이. 우리는 저들보다 기본 육체가 약하니까.
일단. 내가 있으니 이자들보다는 강한 위치에 오르겠지.
그렇지만, 그것에 의미가 있는가?
나 혼자 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살자고 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결국 선택지는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를 살리고.
우리가 아닌 자를 잘라낸다.
우리란 작게는 같은 종족.
우리란 크게는 마열차의 탑승객.
그로 인해 만들어진 저울이다.
그럼, 알’셸은 여기서 무엇을 그리 암담해 하는 것일까.
“알’셸?”
그에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예?”
이번에도, 알’셸은 빠른 답을 되돌렸다.
“이제야 생각나서 하나 물어보는 거다만.”
“뭐든 여쭤보시죠.”
그래. 어째서 처음부터 이것을 물어보지 않았을까.
“넌. 뭐가 불만인 거냐?”
“뭐가 말입니까?”
“마열차의 상황 말이다. 물론, 시험이 개판인 건 나도 화가 나는 일이다만, 이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던 거고. 네 말처럼 마열차가 순수한 악의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래. 나 또한. 같은 상황에서는 이들과 동일한 선택에 도달한다.
그것이. 이 방주가 존재하는 한 생겨나는 어쩔 수 없는 선택.
“흠. 일단. 시험이 그토록 엉망이 된 것이겠군요.”
콰득.
알’셸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닌지, 그는 벽 한구석을 뜯어내며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시험은 단순히 죽이기 위한 시험입니다. 이하람 님이 들으시면 놀라시겠지만. 저희가 만든 시험에선 저번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평균 90% 생존율. 심지어 평균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아무 능력 없이 연약한 지구인이라 한들, 생존율이 70%는 될 겁니다.”
알’셸이 그리 말해왔지만.
사실 그리 높은 건진 모르겠다.
60억 명 중에 42억 명만 산단 소리 아냐 저거. 의도는 알겠다만…. 역시나 문어 놈들은 문어로군.
“그렇게 많이 받는다면, 진작에 균형이 무너지지 않나?”
“놀랍게도 처음 저희 계산상으로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뿌득 뿌득.
알’셸은 벽에 달린 거대한 금속 선을 뽑고자 하는 듯, 괴상하게 힘을 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애당초 마열차는 공간상 지구를 수천 개는 넣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내핵과 같은 쓸모없는 땅이 없으니 거주 구역은 훨씬 넓죠.”
알’셸은, 금속 선을 뽑아내며 생긴 구멍 안쪽으로 몸을 집어넣으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덕분에 소리가 울려 괴상하게 들리긴 했지만, 적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범주.
“그리고, 이래 보여도 각종 생산이 가능합니다. 쓸모없이 버려진 세계에서 다양한 무기물, 유기물들을 흡수하니 말이죠. 설계대로라면 생산도 멀쩡하게 돌아가고, 재료 또한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했을 겁니다.”
구멍 안쪽으로 기어들어 갔는지, 모기만 한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이상하리만큼 귀에 박혀 들었다.
알’셸의 말이 거의 결론으로 도달한 것 같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다음 말을 담고자 귀를 세우고 있었건만.
“그리고… 아…. 잠시만요.”
구멍 안쪽에서 소리를 내던 알’셸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는지 말을 멈추곤 구멍 안쪽에서 부시럭거렸다.
삐빅. 번쩍. 번쩍. 콰지직. 파직.
뭔가, 구멍 안쪽에서 들려선 안 될 괴상한 소리가 몇 번 들리고.
겸사겸사 빛도 뿜어져 나오길 20초가량 지났을까.
“쿨럭. 쿨럭. 제길. 역시 좁은 장소에서 마법은 관둘 걸 그랬습니다.”
새까만 색으로 변한 알’셸이 구멍 안쪽에서 기어 나왔다.
“…뭐 하냐?”
“아, 뭔가 전기적인 데이터 보존 장치가 있을 거라 예상해서 털어먹고 오는 길입니다. 뭐, 약간 문제가 있어서 폭발이 있었습니다만. 데이터는 다 털어먹었죠.”
…그러냐.
“그럼, 아까 하던 말이나 계속해.”
“음? 흥미가 있으십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 네가 어떻게 이 마열차를 바꾸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니까.”
애초에 이걸 들었어야 했다.
알’셸의 공손함에 사로잡혀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그가 이 마열차를 더 나쁘게 만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음… 그게.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었죠. 아 그렇군요.”
뭔가 괴상한 행동을 취하던 알’셸은 곧 떠올렸는지 입을 열었고.
“즉, 애당초 화폐는 쌓아놓는 자산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훈련에 나서는 전투직이 먹고살고. 사회가 유지되도록 생산하는 생산자에 대한 보상이었죠.”
툭. 툭.
그리 설명하는 알’셸은 검댕을 털어내며 설명을 계속했다.
비록, 검댕이 떨어져 나가도 그의 피부는 검은색인 그대로였지만.
“즉, 하루 먹고 하루 살라는 의미였습니다. 조금 더 고급스럽게 살거나, 약간의 예비책은 됩니다만. 그렇지만 그 구조가 무너졌죠. 처음 이 구조를 만든 이들이 모두 죽거나 떠나고, 시스템의 오점을 알아차린 자가 생겨나면서.”
떠난 자. 라는 말에서 알’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그리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화폐가 집중되고, 관리자가 사라진 시스템은 그 허점을 잡아내지 못해 전체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살기 힘들어지자 가장 먼저. 생산이 무너졌으며, 생산자가 사라졌기에. 힘만이 남은 사회는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화폐를 독점한 종족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본인들도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겠죠.”
‘아마, 장사를 하려고 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리 쓴웃음을 지은 알’셸은 처음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요컨대. 저는 이 마열차의 사회를 다시 돌리고 싶습니다. 시험은 물론이거니와. 각자가 자신의 세계와 문화를 유지하는 장소로 말이죠.”
“…방주의 역이냐.”
“뭐, 겸사겸사 지들끼리 싸우면서 실력도 늘리면 좋겠지만요. 뭘 그리 위태로운 냉전 속에서 평화롭게 사는지.”
뒷말은 못 들은 거로 하마 망할 사디스틱 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