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203)
마법소녀 아저씨 203화(203/671)
203. 생존에 대하여(3)
“으으으음! 쿠키 나와랏!”
운호가 눈을 감고 그리 외치자.
허공에서 단내가 나는 갈색빛의 덩어리 두 개가 떨어졌다.
“오, 처음 보는 건데 뭐냐 이거.”
척 보기에는 울퉁불퉁한 게 커피숍 일회용 시럽 용기 같이 생겼는데.
츄러스 자른 것 같기도 하고.
“아! 저 그거 알아요. 카늘레라고 유럽 쪽 디저트예요.”
흠.
그 말에 하나를 운호에게 던지고 하나를 입안에 던지자.
알싸한 바닐라양과 함께 살짝 저항이 느껴지는 씹는 맛이 올라왔다.
나에게 있어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아마 꽤 바삭한 과자가 아닐까.
“웅! 바삭하고 맛있어요!”
운호라 한들 과자를 한입에 삼킬 순 없는지, 운호는 신이 난 채 바삭한 겉면부터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 달지도 않고, 바닐라 향도 진하니.
“커피랑 같이 먹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은근슬쩍 커피를 타 달라는 소망이 담긴 소리를 흘리며, 방에 남은 마지막 한 명에게 고개를 돌렸으나.
마지막 한 명인 알’셸은 탁자에 앉아, 텅 빈 A4용지를 바라보며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이것도 아니야. 권한. 권한… 그래… 권한…. 좋아. 권한만 있으면. 그에 특정 종족을 우대한다? 있어서는 안 될 소리.”
그리고 귀를 기울이면 들려오는, 몇 시간 전부터 있었던 배경음.
저건 대체 언제 끝나려나.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건만, 알’셸의 머리는 나름대로 복잡한 듯싶다.
항상 그렇듯. 내 알 바 아니지만.
“음, 커피도 없으니 다음 걸 뽑아볼까?”
“잠시만요! 이거 다 먹고!”
그리 말하는 운호는, 다람쥐처럼 빠르게 카늘레를 갉기 시작했다.
꽤 재미있는 광경이었기에 그것을 바라보기를 5초가량.
“끄억. 맛있었어요. 다음엔 뭐가 나올까요?”
운호는 다 차지도 않은 날씬한 배를 두드리며 만족감을 표현했다.
물론, 그 무한한 식탐이 어딜 가진 않았는지 또 과자를 뽑아내려 하고 있었지만.
“화폐는 충분하고?”
“아직 꽤 많아요! 계산하기 귀찮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요!”
그러냐.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단순히 예의상 나온 말이었기에. 뜨뜻미지근하게 운호를 바라보았다.
“과자. 과자. 달콤한 과자….”
또다시 눈을 감고, 양손으로 미간을 누르며 입을 여는 운호.
퍽 이상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알’셸이 저 상태가 된 후, 운호와 둘이서 이런저런 시험을 해 본 결과.
내가 광어와 고급 쌀 소주를 뽑아낸 것이 굉장히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금속 광석이나, 통나무, 정체불명의 고기 같은 1차 생산물은 정확히 집중하지 않아도 구매할 수 있었던 반면.
그것을 가공해 생산하는 물건은 정말 정확하게 상상하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았다.
운호가 검을 상상해봐야 검 비스름한 몽둥이가 떨어질 뿐이었고.
더더욱 높은 수준의 가공이 필요한 정밀 기기는 애초에 논외.
이상하게 내가 검을 상상하면 과하게 치장된 전설의 무기 같은 게 튀어나오긴 했지만. 그 겉모습과 달리 무릎 차기 한 방에 꺾여 나가는 평범한 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식량을 거래한다길래 어떻게 하나 싶었건만.
“음… 꽝이네요.”
툭.
운호 앞에 떨어진 것은 초코파이 한 개였다.
평범하디평범한 초코파이.
운호는 꽝이라고 말하면서도, 절반으로 갈라 반을 나에게 밀어 넣고, 나머지 반을 제 입안에 욱여넣는 식탐을 보여줬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고, 식량에 대해 말해 보자면.
즉. 이런 것이다.
내가 이상한 거고, 운호와 같은 평범한 지성체가 모호하게 상상하면, 대략 그 범주에 들어가는 뭔가가 떨어진다.
“초코파이에 어울리는 우유 한 잔.”
툭.
꽤 많은 양의 화폐가 소모되며, 유리병에 담긴 우유 하나가 떨어졌다.
“와! 저도 우유 한 잔!”
툭.
…가죽 자루에 담긴 뭔가가 떨어졌다.
뭐지 저거.
“뭐죠 저거.”
운호 또한 어리둥절하며 가죽 자루 뚜껑을 돌렸고.
뚜껑이 열린 가죽 자루에서는 심한 누린내와 함께, 걸쭉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썩은 거 아닌가.
곧바로 저걸 치워 달라고 의식하려 했건만.
“할짝.”
운호의 식탐은 저런 것에도 적용되는지. 담담하게 누린내가 나는 액체를 핥았다.
“아. 염소젖이네요. 이걸 우유로 봐야 할진 모르겠지만용….”
“…그냥 버려. 내 우유 나눠줄 테니까.”
“그래요!”
운호가 그리 말하며 박수를 침과 동시에.
운호 말로는 염소젖인 무언가는 가죽 주머니째 사라졌다.
참 편하긴 해.
1차 가공 재료와 음식뿐이라지만, 대부분은 앉은 자리에서 처리된다. 음식도 방금 같은 이레귤러 상황 말고는 대부분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이 나오고.
대충 과자만 수십 번 소환하는 동안 못 먹을 만한 게 나온 적은 시큼한 장난용 사탕뿐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전투와 거리가 먼 지성체도 성장시키고자 저리 만든 거겠지.
음식이 나온다지만,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뽑아낼 순 없고, 의자나 무기 같은 것도 마찬가지.
즉, 어떻게든 편의와 성장. 둘을 조정하며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고급스럽게 살고 싶다면, 사회를 유지하라. 그에 필요한 재료는 우리가 대가를 받고 제공할 테니.
그리고, 아마 그것조차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필요 없어지지 않았을까.
몇 시간 전 갔던 보라돌이들의 방.
거기엔 흙도. 태양도 있었다.
실제 태양인진 모르겠지만, 어쨌건 그와 비슷한 것.
그리고,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비도 있었지.
즉, 기후가 있으며 농사도 지을 수 있단 소리.
금속 종류는 문제가 될지라도, 먹고사는 것은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푸하.”
운호는 내가 생각하는 사이, 유리병에 얼굴을 처박고 그러잖아도 새하얀 털을 더욱 새하얗게 물들였다.
그 꼴을 보고, 내 생각이 잠시 끊겼다.
“…내가 마실 건?”
“음? 아직 꽤 남았는걸요?”
운호는 그리 말하며, 내 앞으로 우유병을 내밀었다.
“자요!”
확실히 우유 자체는 꽤 많이 남아 있었다.
한 가지 문제만 제외한다면야.
“우유에 네 털 떠다니는데.”
“…핫! 그걸 생각 못 했네요!”
오늘도 멍청한 운호가 한 건 하셨군요.
평소라면 그대로 우유병에 밀어 넣은 후, 뚜껑을 닫아 우유 페럿 절임을 만들겠지만.
“됐다. 너 그거 다 마셔라.”
난 뚱한 표정을 한 채, 손가락을 허공에 휘저어 또 다른 우유 하나를 뽑아내었다.
양이 적은, 팩 우유 한 개.
서비스라도 되는지 빨대도 꼽혀 나온 그것을 입가에 물며, 초코파이 반 개를 입안에 던져 넣었다.
“음…. 죄송해요! 그러니 다음 쿠키도 제가 뽑을게요!”
운호는 그에 또 다른 쿠키를 뽑아낼 준비를 하였다.
사실, 내가 과자를 뽑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말이지.
교대하면서 뽑는다고 정한 적도 없었으니, 별 상관없지만.
“으음…. 쿠키…. 쿠키…. 희귀한 거로….”
조건이 더 붙었기 때문일까.
운호의 집중은 아까보다 더 길어졌고, 덕분에 나는 아까 끊긴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분명 시스템 자체는 정말 기본적인 의식주. 거기에 약간의 편의 시스템만 제공하는 형태다.
그렇지만, 보라돌이들의 거주지는 어땠지?
식당이나 그런 것이 존재했나?
잠시 기억을 떠올려 보자. 광고판 같은 게 몇 개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부분 뭔가를 팔기 위한 광고가 아니었다.
전투술이나 대화. 기술과 관련된 광고들. 가구 판매나 그런 것은 있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음식점 같은 것은 없었지?”
“예?”
“아니 혼잣말이니까. 계속해.”
여기까지 생각이 닿고 나니, 왜 그들이 그토록 약한 무기를 들고 있는지 알았다.
발전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꼬여 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방주가 아니라, 하나의 피난소가 되어 버렸을 뿐이다.
그것이 시스템 탓인지, 조직 탓인지, 아니면, 다른 뭔가 때문인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머리가 복잡해….
하루 만에 계속해서 지식과 정보가 뒤집힌다.
처음에는 단순히 일부 집단의 통제로 인한 문제인 줄 알았건만, 카드 한 장을 뒤집을 때마다 새로운 측면이 계속해서 드러난다.
살아남기 위해 생존자들이 구성한, 위태롭지만 안전한 통제.
그렇지만, 그 통제는 수많은 이의 목숨을 담보로 한다.
시스템은 의식주를 보장해 준다.
그렇지만, 시스템의 친절은 역으로 사람들의 목을 조이고, 본래의 목적에 둔감해진다.
마열차의 용도는 전투 병력을 양성하기 위함.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생활이 편리해진다면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머리가 복잡해.
내가 근래 이렇게 많이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덕분에 운호한테도 화를 못 낼 수준이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그런 내가 이 꼴인데.
신경 과민성 피부 트러블 문어인 알’셸은 어찌하겠는가.
저 몰골이 되는 것도 당연지사.
대체 어떻게 해야. 여기를 좀 고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닫힌 사회인 마열차에서도 하루 만에 이렇게 복잡해졌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거기서 내가 바라는 영웅다움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지?
어떻게? 뭘 해야?
그렇게 끝없는 질문의 수렁에 빠지려는 도중.
“에이이이잇. 다 지긋지긋합니다. 어차피 예상도 못 하는 거!”
갑작스러운 고함에 사상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뭐냐.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티를 드러내지 않고자, 무덤덤한 표정으로 소리를 내지른 알’셸을 바라보았다.
종이를 찢고,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광란의 몸집을 보이는 문어를.
“갑시다! 이하람 님!”
“어디로?”
“어디긴 어딥니까! 그 그릭스인가 구리스인가 하는 양반한테죠!”
글라스 아니었나? 뭐 그 미라 양반 이름이야 어찌 되었건.
“특정 종족에게 편의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냐? 그리고 그 양반 말이 진실이라는 보장도 없다면서.”
온종일 배경음악으로 쫑알거렸으니 귀에 못이 박여 버렸다. 야.
“제 알 바입니까? 애당초 제가 왜 망할 마열차를 신경 써야 하죠? 아. 죄송합니다. 선조 여러분. 비하하려고 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이렇게 제가 빡세게 거주민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단 의미였습니다.”
…갑자기 왜 고해를 하고 그러지.
그보다, 문어 놈이 저렇게 자기 종족에 애착이 있는지 처음 알았네.
“귀신들린 미친 헛소리는 그만하고, 요점이나 말해.”
“아, 그러죠. 이하람 님을 본받고자 합니다.”
“갑자기 난 왜 튀어나와?”
“간단히 요약하면 이겁니다.”
알’셸은 드디어 평정을 되찾았는지, 평소의 아니꼬운 얼굴로 손가락과 촉수를 흔들었다.
“일단 질러 보면 어떻게든 되겠죠. 그러니 일단 질러 봅시다. 제 옛 동료들 따위 알 게 뭡니까. 이미 다 뒈졌는데. 필요하면 무덤이건 머건 뒤집어엎어야죠.”
음. 바로 직전에 문어 놈이 동족에게 고해 성사를 했던 것 같은데.
그건 어찌 되었건. 알’셸의 제안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 나오셔야지. 그럼 바로 갈까?”
“그러죠. 어차피 계속 과자나 먹고 계셨지 않습니까.”
“봤냐?”
“듣기 싫어도 들리고, 보기 싫어도 보였습니다.”
그러면 과자라도 한 조각 나눠 달라고 하지 그랬냐.
그리 마음속으로 생각한 순간.
“아! 나왔어요!”
운호의 목소리가 들렸고.
마카롱 두 개가 내 눈앞에 나타나 그것을 반사적으로 잡아챘다.
이게 뭔가 하고, 운호를 바라보니 운호 앞에도 두 개 떨어져 있었고.
“이게 뭡니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 알’셸을 쳐다보니 그 또한 마카롱 두 개를 손에 든 채였다.
“…음. 이왕 나온 거.”
일단 돌진하고 보자던 분위기는 마카롱 하나로 다 날아가 버렸으니.
“커피나 끓여 와라. 먹고 가자.”
“…그러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