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216)
마법소녀 아저씨 216화(216/671)
216. 종언의 방주(1)
눈을 뜨자, 정신이 몽롱했다.
마치, 자다 억지로 깬 것처럼.
이런 감각은 또 오랜만이네….
머엉.
아마, 그 기나긴 행군이 영향을 미쳤거나, 꿈속일 것이다.
몽롱한 정신을 붙들고 고개를 돌려 보자, 비쩍 마른 건어물 문어가 시야에 들어왔다.
얼굴이 망가진 모양을 보아하니, 아마 알’셸이리라.
그렇지만, 헤어진 알’셸이 갑작스레 말린 꼴뚜기가 되어 내 옆에 나타날 리는 없으니. 이는 꿈이란 이야기.
내 무의식도 비참하네. 얼마나 그 방에서 시달렸으면 알’셸을 찾지.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지만, 자각몽을 꾸는 도중 다시 자면 꿈의 배경이 바뀐다고 했던가?
그러니 다음엔 좀 멀쩡한 꿈을 꾸길 바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미친 생각은 이제 그만하고 눈이나 떠 보는 게 어떤가?’
이제 환청까지 들리네.
“역시 꿈이야. 다시 자자.”
‘한 번만 더 꿈이라고 하면 다시 그 풀밭을 걷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당장 눈 떠라?’
아니, 저 협박은 꿈이라고 해도 너무 심한데.
얼마나 놀랐냐 하면, 몽롱하던 정신이 한 방에 각성할 정도로 놀랐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눈을 뜸과 동시에 허리를 일으킨 후, 주변을 둘러보자, 사방이 회색빛으로 가득 찬 장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석실…인가?
그에 손으로 바닥을 쓸어 보았지만, 손을 타고 느껴지는 것은 돌과는 전혀 다른, 마치 유리를 만지듯 부드럽고 매끈한 감촉이었다. 그 감촉만 해도 충분히 이상하건만, 석제 천장과 벽 표면은 수없이 많은 수식과 선이 얽히고설켜, 마치 그림 같은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긴 뭐야.”
‘너희가 찾던 장소지.’
옆에서 들려 온 목소리. 그 주인을 시야에 담고자 고개를 돌리자.
“…세상에 이젠 날아다니네.”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알’셸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반투명해지기까지 해, 끔찍함이 심해진 것은 덤.
“알’셸. 결국, 죽어서 유령이 되어 버렸구나. 결사에 네 최후는 정말 영웅다웠다고 보고해 주마.”
운호와 날 지키기 위해 무게를 잡다가, 우리도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린 화살에 맞고 즉사했다고 알려주자.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것이 용감한 자 알’셸의 최후로 기록되리라.
‘난 셸이 아니다. 정신 나간 자여.’
음? 그런가?
그 말에 아직도 몽롱한 정신을 조금 더 되돌리고, 천천히 눈앞의 공중 부양 투명 문어를 살펴보았다.
어디 보자. 선도 조금 가늘고, 특수하게 긴 촉수도 없군.
알’시린이 저런 형태였던 것 같은데, 그녀와 비교하자면 키가 조금 더 작고, 마른 편인가. 흠.
일단 알’셸이 성전환을 해 버렸다는 세계급 대파국을 제외하고, 소거법을 통해 생각해 보면. 알’시린도 아니고, 알’셸도 아니니, 남은 것은….
“댁이 우리가 찾던 마열차의 관리자인가? 이렇게 만날 줄 몰랐는데.”
유령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다니, 누가 그런 걸 생각하겠는가.
‘…진작 그리 말하지 않았더냐.’
그리 말하는 유령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
‘부화장의 막내를 데리고 온 선택받은 자가 미치광이라니. 내 기다림은 대체 뭐였을까 싶군.’
거, 말이 너무 심하시네.
그렇지만, 폭언에는 나름대로 내성이 있기에,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고자, 눈앞의 존재와 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막내라면 이 건어물 말인가?”
옆에 누워 죽은 듯 자는 알’셸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상대에게 질문을 던졌다.
건어물이 된 탓인지 알’셸의 피부는 평소처럼 끈적거리는 감촉이 없었고, 찌른 피부가 반발하는 것이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 계속 찌르는 찰나.
‘그래. 우리 부화장의 마지막 알에서 깨어난 존재지.’
그 말에 내 굳어 버린 머리가 조금 가동해, 곧 답을 내었다.
“아…. 그러니까 제쓰가 말한 알’소피아가 당신인가?”
데미우르고스 제작 총 책임자이자, 시스템 최고 권한 보유자, 알가(家)의 부화장지기였다고 들었는데.
‘제쓰가 아직도 남아있었나. 그래. 내가 소피아다.’
오호라.
그 답을 듣자, 오랫동안 묵힌 감정이 내면에 차올라, 그를 내뱉었다.
“그럼, 알’셸과 알’시린을 키운 것도 당신인가?”
‘시린을 알고 있는가? 놀랄 일이군. 그래. 시린도 내가 가르쳤지. 셸은…. 당시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그리 관심을 쏟지 못했다만.’
좌우지간, 그 녀석들의 부모 격 존재란 말이지?
그것을 확인하자, 쌓아 올린 묵힌 감정에 불이 붙었다.
“아니, 그럼 애들 교육 좀 제대로 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시치미를 떼시겠다?
“그 두 놈이 뭘 한지 압니까? 알’시린은 자기 구역을 지킨답시고 멀쩡한 종족을 다른 종족으로 바꿔먹고, 알’셸은 겨우 싸움 하나 이기겠다고 세계를 파괴하려 했는데 대체 인성 교육을 어떻게 한 겁니까?”
이외에도 말할 게 산더미 같지만, 내가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기에 적당히 줄여 입을 열었다.
그에 알’소피아는 머리를 부여잡더니,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후우, 그리도 다른 종족을 존중하라 일렀거늘, 그런 짓을 했단 말이냐?’
아. 약간 변호 좀 해야겠군.
“알’시린은 그래도 좋은 의도로 하긴 했지. 다른 종족을 지키고자 그런 종족 개변의 결계를 편 거니…. 그래도 그럼 좀 정상적인 걸 쓸 것이지.”
‘시린은 애가 착한데 좀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었지.’
음. 정확한 판단이군.
“근데 얘는 아니지. 얜.”
옆에 누운 건어물을 삿대질하며 입을 열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김에, 실컷 뒷담화를 하고자.
“알’셸 이놈은 그냥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잘난 줄 알아. 덕분에 저희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게다가 얜 뻑하면 X같은 인간 새끼들. 머리에 촉수를 박아넣고 세뇌할까. 이딴 소리를 한단 말이지?”
사실 안 했다.
비슷한 소리는 했지만.
그에 알’소피아는 더더욱 골치가 아픈 듯, 버라이어티하게 색상을 변화시키며 뒷골을 잡았다.
그리고 크나큰 한숨과 다채로운 피부…. 가 아니라 유령 몸 색을 보이더니, 곧 입을 열었다.
‘후우우우우우. 일족의 잘못은 부화장 지기의 잘못. 그에 대해서는 내 교육이 모자랐군. 미안하네.’
동시에 소피아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미안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거짓 한 점 없는 순수한 미안함의 감정.
그에, 나는 정말로 놀라고 말았다.
별의 종족이 이상한 게 아니라, 알’시린 알’셸 두 놈이 이상한 거였네.
물론, 제쓰의 말에 따르면 별의 종족 자체가 좀 또라이긴 하지만, 인격자란 게 존재하긴 하는 종족 정도로 내 인식이 살짝 바뀌었다.
아니, 어쩌면 인격자이기에 마열차 같은 걸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흐음, 꽤 심오한 고찰이군.
그리 생각하던 와중.
‘고뇌를 방해해 미안하다만.’
알’소피아는 나에게 정중히 질문을 던져왔다.
‘셸이나 시린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느냐?’
“권한, 말인가?”
‘그렇다. 너희는 그것을 갈망하여 초원을 떠돌지 않았나?’
“그렇긴 하지.”
‘좋다. 시험을 뛰어넘은 자여. 그대는 데미우르고스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자격을 갖추었다. 이에….’
뭔가 이야기가 이상하게 굴러가네.
“저기. 잠시.”
내가 말을 끊자, 알’소피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뭔가?’
“그, 계승 받을 존재는 제가 아니라, 저 건어물인데 말입니다.”
‘그것은 할 수 없다.’
“어째서?”
‘내 동생에게 이리 말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셸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다. 참 아쉽게 되었지. 그대와 거의 같았건만, 마지막 순간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으니 말이야.’
흠. 노력했구나 알’셸. 너라면 곧바로 도주할 거라 생각했는데.
…엉? 통과하지 못했다고?
“그럼 왜 여기 있는 거지?”
‘시험을 받으러 온 자를 죽일 순 없지 않느냐. 물론, 악의가 가득 찬 마음으로 온 자나, 서로 죽이고자 하는 자,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지 못하고 만용을 부리는 자까지는 관여할 수 없으나,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온 이라면 온전하게 돌려보내야 마땅하지. 단. 기억을 지워서.’
…정말 별의 종족 맞나?
알’소피아 한 명 때문에, 내가 가진 별의 종족에 대한 이미지가 뒤집히고 있다.
그에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건어물을 바라보고, 유령을 바라보았다.
좋아. 알’소피아가 별의 종족의 돌연변이인 걸로 하자.
알’셸, 알’시린, 그리고 이야기에서 들은 별의 종족은 난장판이었고. 알’소피아가 인격자니, 3 대 1로 별의 종족 망나니 설이 옳을 것이다.
좋아.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런데 난 관리자 권한이 필요 없는데. 쓸 생각도 없고.”
‘어째서지? 데미우르고스의 탑승객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 아닌가? 비록 거짓된 인공 세계지만. 하나의 세계를 자기 뜻대로 조작할 수 있다. 그리하며 얻을 이득은 막대할 터. 너 또한 그것을 노리고 이 장소에 온 것 아닌가?’
어째 하는 말마다 틀리네.
“난 단순히 다른 장소에 가는 길에 얻어 탄 거라 마열차의 관리자 권한엔 큰 관심이 없어. 어차피 곧 내릴 거고.”
‘데미우르고스 외부에 펼쳐진 이계는 모든 것이 사멸하는 저주받은 공간. 무엇이 있기에 그 장소로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지?’
“거기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 해야 할 일이 무엇이지?’
“동족과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렇군. 그대는 방주에 타기 위해 피난을 온 것이 아니군. 실로 아까워. 자격에 더해, 희생정신을 보유한 이. 완벽한 상이거늘.’
평가가 너무 후한데?
제쓰도 저리 말해 줬으면 참 좋으련만.
“완벽한 적합자가 알’셸을 지목했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알’셸도 마지막 순간에 포기했다면서, 그럼 적어도 시험의 95% 정도는 통과했다고 치고, 내 적합자 보너스 점수로 5점 플러스 해 주자고.
‘…그것은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 전에 하나 묻겠다.’
“뭐죠?”
‘왜, 그럼 너는 관계도 없는 데미우르고스의 관리자 권한을 원하는 것이지? 시험을 치르는 동안 보았다만, 너에게서 느껴지는 갈망은 진실된 것이었다. 의무도, 우정도 아닌. 너 자신에게서 나온 순수한 갈망.’
그 기나긴 질문에, 나는 곧바로 답을 낼 수 있었다.
“마열차를 바꾸고 싶어서.”
‘그대가 말하길, 그대는 마열차와 관계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 하지만.
이 문답은, 나 자신과 알’셸과 그릭스. 그리고 제쓰를 통해 몇 번이고 주고받은 문장이다.
제쓰는 마열차를 내 세계에 투영해 본다고 했지만,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
“그냥 마열차의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라, 떠나기 전에 마열차를 바꾸고 싶어서.”
‘그것뿐인가?’
“그 이상 뭔가 더 필요한가?”
그 말에, 알’소피아는 충격을 받은 듯,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
석실 안에 닥쳐온 침묵.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래. 우리 또한 데미우르고스를 만들 때,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시작했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녀는 그리 혼잣말을 내뱉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입을 열었다.
‘좋다. 나는 그대가 셸을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걸 인정하지.’
고맙수.
어째 일이 잘 풀리네.
쓸데없이 돌아다녀야 할 줄 알았는데 제쓰가 문을 열어준 데다가, 유령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알’소피아가 나타나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 주고 있으니.
‘단. 조건이 있다.’
내 인생이 그렇지 뭐. 가끔 잘 풀릴 것 같으면 꼭 문제가 생기더라.
“뭐지?”
‘시련을 통과하지 못한 셸에게 관리자 권한을 준다는 것은 특례나 마찬가지, 그러니 셸에겐 또 다른 시련을 내리겠다. 그리고, 그대…. 지금 물어보는 것도 좀 그렇지만…. 이름이 무언가?’
“이하람입니다만.”
‘그래 이하람. 너 자신도 아직 몇 가지 절차가 끝나지 않았기에, 그 또한 진행되어야 한다.’
하긴, 아까도 뭔가 더 있다는 듯 말했었지.
“그럼 우선 알’셸부터 깨우고….”
그리 말하며 알’셸을 돌아본 순간.
‘그럴 필요 없다.’
알’소피아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석실에 울렸고, 그에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는 곧 깨어날 테니.’
‘이미 조치해 두었다.’
‘총관리자. 그대는 너무 물러.’
‘이하람이란 존재에는 우리 또한 이견이 없지만, 알’셸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할 말이 많다.’
‘그래. 그는 너무 잔혹하고 오만해. 우리의 선조들처럼.’
각자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한, 유령 문어들이 수없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들 중 중앙에 자리한 유령 문어는 나와 소피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 셸을 한 번 둘러보곤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시험을 계속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