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218)
마법소녀 아저씨 218화(218/671)
218. 종언의 방주(3)
그 뒤로도 알’셸의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타인에게 자신의 의도와 방식을 설명하는 검증된 시스템이 문어들에게는 익숙지 않았던 것일까, 잠시 소동이 일었으나, 높은 지능을 가진 별의 종족답게 유용성을 이해했는지 곧 그들의 목소리는 조용해졌고.
수많은 그래프와 글자가 흘러갔다.
물론, 평범한 질의응답 순서도 가졌는데, 알’셸의 표변에 당황하던 유령 문어 또한 저 행동의 의미를 이해했는지 중간중간 질문을 던지면 알’셸은 그에 대답을 돌려주었다.
합리적인 그래프와 자료 외에, 프레젠테이션치고는 상당히 특이한 것이 존재했는데.
“…이처럼, 제가 현재 거주하는 세계에서 조직을 운용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보면, 감정적인 컨트롤의 중요성을 깨우칠 수….”
수치적 자료와 과정, 결과만이 존재하는 정량적인 내용과 정반대되는.
그것을 뒷받침해 줄 자료나 수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개인의 경험과 감성에 따른 예측.
그것을 본 나는 저것이 이득은커녕, 손해가 될 것이라 생각했건만.
‘…저 알’셸이 타인을 배려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경험이라, 오히려 저 수많은 숫자보다도 이상하리만큼 설득되는군.’
…오히려 그것이 저 문어들의 감성에 잘 먹힌 듯 호평이 새어 나왔다.
말하는 것만 들어 보자면, 아마 저 알’셸이 자신의 본능을 억제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안다는 것이 꽤나 충격적인 듯.
“…대체 쟨 평소에 뭘 하고 다녔던가야.”
저 개차반 동족들한테도 선조 회귀라는 말을 들을 정도면, 진짜 어지간히 답이 없었나 본데.
인성이 평균은 간다는 제쓰의 말이 있었지만, 그것은 배신이나 번식지의 멸절, 무차별 학살 등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였을 뿐.
선만 안 넘었을 뿐, 그 성질머리는 어디 안 갔었나 보다.
그리 내가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뻗어나가는 와중.
‘알’셸은 좀 많이 어렸으니까.’
내 옆에, 이젠 익숙해진 바람 소리가 스며들었다.
“소피아. 댁은 저거 안 보나?”
‘난 이미 셸을 인정했으니까. 흥미가 있어서 보긴 했지만, 앞쪽이 괜찮았으니 그 이후도 괜찮을걸.’
흠, 앞쪽이라.
저거 지금 한 4시간째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나야 대충 5분 정도만 보고 지루해져 뒤로 물러나 멍하니 저것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긴 했다만.
아무리 이 안쪽에서 뭘 하건 시간 흐름이 느려 밖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지만, 이건 너무 긴 것 아닐까.
그리 생각하자, 피로가 몰려왔다.
“흐아암.”
하품을 내지르며, 찔끔 나오는 눈물을 느끼는 와중.
‘흠. 지루하더냐?’
“많이.”
‘생김새가 다르듯 우리와 감성이 다른가 보구나, 저 아름다운 수식과 이론을 보고 있자면 절로 흥미가 솟아오르거늘.’
아, 댁도 이과생이셨수?
만난 녀석 중 둘이 이과생이고, 남은 하나인 알’시린은 모르겠으니 이 종족은 이과생투성이겠군.
시간을 불태우고자, 두뇌 풀 가동을 하며 잡생각을 내던지고 있자.
‘심심하다면, 내 말 상대가 되어주지 않겠느냐?’
처음부터 이런 의도로 접근했구만.
내치려면 충분히 내칠 수 있지만, 나 또한 심심한 상황이었기에.
“무슨 이야기 하려고?”
‘우리 사이에 공통된 주제라면 하나밖에 없지. 알’셸에 관한 이야기 아니겠느냐.’
그 이야기라면 제쓰랑 죽도록 해서 다른 이야기가 더 좋은데….
“알’시린을 아는데. 그건 어때?”
‘오? 함께 데미우르고스에 온 게냐?’
내 말에 대해, 알’소피아는 투명한 문어의 얼굴임에도 기쁜 티가 나는 얼굴을 하였지만.
“아니, 그 녀석은 우리가 살던 세계에 그냥 남아있지.”
나는 담담히 진실을 말해 주었다.
‘그런가. 약간 아쉽지만, 시린이 살아있는 것을 안 것으로 족하다.’
“그래, 건강하기 그지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만, 알’셸과 다르게 그 말해서도 안 되고, 생각해서도 안 되는 녀석들 손길이 살짝 닿은 것 같지만, 굳이 그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리고, 침묵이 감돌았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실수했군.
대화를 저리 끝내는 게 아니었다.
알’시린의 기묘한 성격에 대해서라거나, 알가(家)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어야 했는데.
“…그리하여, 유동적으로 수익 분배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조직 간의 경쟁을 이끌어 낼 수….”
‘오오.’
‘흠. 흥미롭군.’
어디 선생님마냥 졸린 목소리를 내뱉는 문어 대가리 하나와.
그에, 무슨 종교적 추종자마냥 한마디씩 내뱉는 문어 유령들의 목소리가 나와 알’소피아 사이의 침묵을 잠식할 때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실례임을 알고 있다만….’
알’소피아는 마침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마치 뭔가 말을 고르려는 듯.
‘혹시, 그대는 셸과 친우인 것이냐?’
“…비지니스 관계입니다.”
어째 이거 얼마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그런가? 알’셸은 그대를 꽤 신뢰하는 것으로 보였다만.’
신뢰라.
그 말에 잠시 저 앞에서 몇 시간 내내 한 번도 안 쉬고 떠드는 문어를 바라보며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얼굴을 되돌려 입을 열었다.
“신뢰라기보단 자신의 복수를 이루기 위한 장기말을 아끼는 느낌 같은데….”
당장 알’셸 본인도 이계에 올 때 나에게 그리 말했으니까.
알’셸이 나를 향해 보이는 태도 또한 그쪽인 것처럼 느껴지고.
‘으음…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그 외의 것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내 말에 알’소피아는 시선을 들어 어딘가 머나먼 장소를 바라보는 애틋한 표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
‘셸. 너는 여전하구나. 좀 더 자신을 내보여도 될 텐데.’
“단순히 무감정한 것 같은데. 아니면 극한의 흥분 상태거나.”
‘다들 그리 말하지, 저기 앉아있는 우리 동족들 또한.’
그녀는 그리 말하고, 알’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셸은 너무 힘들게 자랐어. 그가 태어난 시점에서 이미 우리는 멸망의 위기에 놓여있었고, 동족의 숫자가 적어짐에 따라 아직 어린 셸이 마음 놓고 이야기할 상대도 없었지.’
마치, 누군가가 그에 대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본래라면, 그것을 보듬어 주는 것이 같은 가족으로 해야 할 일이지, 더욱이 나는 가장 앞선 부화장지기니.’
머나먼 과거를 추억하듯, 그녀의 입에서 서글픈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 우리 알가(家)는 의지가 이끄는 대로 최전선에 서서, 다른 부화장 사이의 균열을 메꾸며 싸웠으니까.’
‘우리는, 그에 후회하지 않았다. 분명 많은 가족이 죽고, 별의 소망을 남기지 못했지만, 그것이 우리 부화장의 본성이자 뿌리였으니. 그렇지만,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
그녀의 목소리에, 절망이 깃들었다.
‘최후의 전장. 순백의 빛기둥이 치솟고, 기둥을 확보한 화신들이 걸어 나오며, 수만의 적을 해치운 역전의 용사들이 그들의 손길 한 번에 무력화되고, 총기함(總旗艦)인 별을 삼키는 자까지 무력화될 무렵. 모든 동족이 모인 최후의 별. 거기에 모인 이들 중, 아직 성장을 끝마치지 못한 존재는 셸밖에 없었다는 것을.’
순백의 빛기둥. 한 번 본 적 있다.
그 단어와 최후의 전장이라는 단어에 흥미가 있지만, 그를 티 내진 않았다.
아마, 이것은 그녀가 나에게 전하기 위한 혼잣말일 테니까.
‘그나마 나이가 가까웠던 시린이 셸을 돌봐준 것 같지만, 그녀 또한 별의 무녀로서 전장에 나섰으니, 셸은 오래도록 홀로 있었을 터.’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적은 우리 종족에 있어서도, 고독이란 공허한 밤에 홀로 뜬 별과 같은 것. 별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존재가 없으면 빛나지 않지. 다른 이를 깔보고, 부화장을 배신한 이조차도, 전투 속에서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자각하며 그를 달래지.’
아이러니하군.
그 종속성 탓에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이, 그에 그리도 집착한다니.
‘그런 상대가 없던 셸은 멸망 이후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지. 동족은 얼마 남지 않았고. 남은 이들도 데미우르고스를 만드느라 온 힘을 쏟았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다종족의 세계에서도, 셸은 교류할 대상이 없었지. 우리는 너무나도 다른 종족에 비해 이질적이었으니.’
할 말이 많은 듯, 알’소피아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치, 긴 세월 쌓아온 모든 것을 토해내듯.
‘차라리, 약했으면 좋았을 것을. 성장이 끝나고, 함께 어울릴 상대를 찾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지만, 셸은 너무나도 강했지, 저 하늘에 홀로 빛나는 별처럼. 자신의 빛으로 다른 어둑한 별을 찍어누를 만큼, 별이라 불리던 옛 선조들만큼.’
저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린 알’소피아의 잠시 말이 끊겼다.
천장을 뚫고,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런 셸이었네. 기껏해야 본인이 강자임을 인정한 제쓰, 어릴 때부터 나 대신 자신을 돌봐준 시린. 그런 이들 말고는 타인이 어떤 존재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아이. 결코, 이 방에 있을 지식의 시련을 견뎌내지 못할. 선하지만 삐뚤어진 아이.’
고슴도치도 제 아이는 예쁘다고 하던가.
나머지는 그렇다고 쳐도, 선하다는 건 인정 못 하겠는데.
‘그런 아이가, 타인의 존재를 증명하고, 타인을 신뢰하며,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졌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으로 모든 말이 끝난 듯, 알’소피아는 숨을 들이켜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비지니스 관계라고 했었나? 그대가 그리 생각해도 좋네. 적어도, 셸은 동등한 상대와 함께한 적이 거의 없었을 테니까. 우리를 멸망시킨 존재들처럼 아득히 위에 있거나, 자신보다 아득히 아래에 있을 존재들이었을 테니. 그러니.’
다시, 한번 숨을 들이켜고.
‘고맙네.’
그 한마디와 동시에.
유령 문어와 알’셸들 사이에서도 우레와 같은 갈채가 튀어나왔다.
모든 일이 끝났다는 듯.
…벌써 끝났다고?
아까 소피아는 초반이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저쪽만 시간을 가속시켰지. 이 이상 기다리지 않도록.’
그런 알’소피아는 잠시 알’셸을 바라보고, 말을 내뱉었다.
‘잘 끝났나 보군.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그리곤, 허공에 얌전히 떠 있던 몸을 움직여, 유령 문어들 사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제 계승에 반대하는 이는 있으십니까?”
‘걱정되지만, 이 정도 계획이라면 난 동의하지!’
‘어차피, 우리로선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는가? 충동과 파괴가 아니니 충분하네.’
‘어차피 도박이야, 그럼 차라리 동족이 낫겠지.’
‘저 말처럼 계획대로 되진 않겠지만, 더 좋은 수가 없군.’
다들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고, 부정적인 이도, 차분히 관찰하는 이도 있었지만, 모두 명확한 반대는 나타내지 않았다.
그런 이들을 둘러보며, 알’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나를 돌아보았다.
‘다시 말해 줄게. 정말, 고마워.’
그녀는 창백하고 투명한 얼굴로 그 말을 내뱉은 후.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내가 아무런 말이라도 내뱉으려는 순간.
‘데미우르고스의 창조주. 알’소피아의 이름으로 묻습니다. 이 장소에 존재하는 모든 관리자는, 별의 종족. 알’셸이 관리직을 계승함에 동의합니까?’
우렁찬 목소리가 내가 말을 꺼내는 것을 막았고.
‘동의합니다.’
‘동의.’
‘찬성합니다.’
‘이의 없음.’
수많은 목소리가, 그 뒤 이어져 내렸다.
그 누구도, 이 마지막 표결에 간섭할 수 없다는 듯.
‘만장일치. 그럼 이에, 관리자로서 선언합니다.’
부웅.
바람이 불어왔다.
이 돌로 만들어진 무덤 내부를 가득 채울 만큼 강한 바람이.
‘데미우르고스의 모든 권한을, 알’셸에게 양도할 것을.’
바람은 폭풍이 되어, 모든 것을 휩쓸었고. 돌로 만들어진 무덤은 그에 버티지 못하는 듯, 산산조각 나 저 청동 평원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유령들 또한 견디기 힘든 폭풍인지, 투명한 별의 종족들은 마치 종이가 찢어지듯 산산조각 났고.
나조차도 견디기 힘든 강풍이었기에, 망치를 박고 그들을 관찰했다.
모든 것이 부서지거나 날아가는 폭풍 속.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는, 알’셸과 알’소피아가 존재하는 폭풍의 중앙뿐이었고.
그 안에서, 둘은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알’셸. 이에, 그대에게 묻노라. 그대는 데미우르고스의 관리자가 될 것이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격한 폭풍 소리조차 잠재우는, 기나긴 정적이.
두 문어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고.
“알가(家)의 셸로서. 선조들의 유산을 받들 것을 맹세합니다.”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모든 것이 알’셸의 검은 입에 휘말려 들어갔다.
흩어져 찢겨 날아가는 별의 종족들의 사체도.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도.
그것을 지켜보는 투명한 별의 종족들도.
청동빛 벌판도.
나와 알’셸을 제외한 모든 것이, 촉수 아래 위치한 알’셸의 입안으로 말려들어 가고.
마지막 남은 알’소피아의 좌측 얼굴이. 입을 열었다.
‘잘 컸구나. 셸. 그리고, 미안하다.’
후룩.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쿵.
검은 허공에 문 하나가 나타났다.
이어진 침묵.
그 안에서 나는 멍하니 알’셸을 바라보았고.
검은 피부의 알’셸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3분 정도 지났을까.
“…관리자 권한은 얻었냐?”
“…예.”
“…계획은?”
“…완벽합니다.”
“그럼, 가자.”
“예.”
그리고, 우린 문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