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235)
마법소녀 아저씨 235화(235/671)
235. 정치란 거래야
“운호 준장. 오랜만에 보는군. 아마…. 30년 만이었나?”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방 안에 울리며 내 귓가에 파고들지만,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다.
“아, 예? 포요. 그런 셈이죠. 간만이에요 루시아 대장님.”
운호 또한 이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겠는지, 나처럼 목소리의 근원지를 따라 시선을 옮기고 있다.
“로니아일세. 자네는 여전하군.”
중후하고 위엄 넘치며 멋진, 악의 대마왕 혹은 산전수전 다 겪은 대기업의 사장님 같은 목소리가 저 앞의 노키아 대장에게서 흘러나오지만, 몇 번이고 생각하듯, 목소리와 외모의 불일치 탓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무슨 배짱으로 나에게 찾아온 거지? 우리는 이제부터 서로 싸워야 할 상대 아니던가?”
그리 말하며 털이 풍성한 순백의 날개를 가지런히 접고 탁자에 내려앉은 그는 금속 담뱃갑에서 시가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꺼내더니, 그것을 입에 물고 마법진을 생성하여 시가 끝에 불을 붙였다.
솔직히 말해, 우리와 예절이 비슷하다면 실례되는 행동임이 분명하다.
손님이 앞에 있는데 담배를 꺼내 피우다니.
그렇지만, 행동거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뭐라 말할 분위기가 아니다.
여전히 집중은 안 되지만.
“아…. 저 그게, 지금 일어난 사태는 모두 오해에서 시작된….”
그런 곤란 속에서도 운호는 어찌어찌 말을 쥐어짜 냈지만.
“오해라. 평화롭게 전쟁이 마무리될 타이밍에, 모두를 도발하는 행동을 요즘은 오해라 부르나 보군.”
그 말을 기점으로, 그를 둘러싼 분위기가 바뀌었다.
합법적인 사장과 같은 분위기에서. 마치 마피아 보스와 같은 분위기로.
아마, 손에 들린 시가도 분위기 조성에 한몫하겠지만, 그의 집무실.
담배 연기가 깊게 밴, 나무로 이루어진 가구들이 놓인 집무실.
묘한 거무스름이 이곳저곳에 묻어, 어둠 속에 있는 그의 집무실이. 그 분위기를 더욱 두텁게 만들었다.
“…에, 그게. 사실 저흰 그런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추방되는 걸 막고자… 포요….”
그 분위기에 압도된 것일까. 조금 전만 해도 그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운호는 로이 대장에게 기가 죽었는지 말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운호의 말에 흥미가 생긴 것일까.
루시아 대장은 피우던 시가의 끝을 잘라내 도자기 그릇 위에 올린 후, 입을 열었다.
“추방이라. 흥미로운 내용이군. 어디 계속해 보게.”
“아, 그러니까 제 계약자…. 이분이 여왕님에게 초대받아 뵈러 왔는데, 아프 대장님이 선거 기간이라며 쫓아내시는 바람에….”
분위기가 조금 옅어진 탓인지 운호는 기운을 되찾아 소리를 높였고.
탁자에 앉은 로나프 대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그리곤, 운호의 말이 끝난 후. 상대가 조용히 눈을 감은 지 30초가량 지났을까.
“과연, 그녀답군. 융통성이 없어. 그리고, 그 운호 준장이 출마한 이유도 이걸로 설명되는군.”
그리 말한 그는 한쪽 눈을 치켜뜨며, 처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쪽 분이 운호가 말한 계약자로군. 어떤가. 운호의 말이 맞나?”
“글쎄.”
나는 답하지 않았다.
저자의 내면이, 풍겨 오는 기운이, 너무나도 어떤 이들과 유사했기에.
그런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르부아 대장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는 정치를 아는군. 운호 준장과 달라.”
“웅? 무슨 소리시죠?”
“….”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는 다시 시가에 불을 붙였다.
“운호 준장. 정치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어…. 밀고 당기며 합의점을 찾는 것인가요?”
그 말도 어느 정도는 옳다.
모든 명제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였으니까.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겠지.
“아닐세. 정치란 손에 쥔 카드 패 같은 것이라네. 주어진 것을 이용하여 더 높은 위치로 이동하고자 하는 행동이지. 그런 의미에서, 운호 준장 자네는 정치를 전혀 모르는 게지.”
“우웅…?”
운호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지만, 나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순진하다는 의미일세. 그것이 계산되었다면 무서울 정도로 말이지. 운호 준장 자네는 내 앞에 모든 카드 패를 보여 주었지. 이유, 목적, 행동까지. 이제 그럼 나에게 남은 것은 자네를 요리하는 일뿐이군.”
눈앞의 대장이 가진, 검은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외형에 숨겨진, 뒤틀리고. 검으며, 음흉한 내면이.
“자네는 너무 많은 것을 알려 주었어. 아프 대장에, 출마 사유. 그리고, 홀몸으로 여기에 온 것까지. 정치적으로 사용할 재료가 너무나도 많아,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되는 수준으로. 어쩌면, 아프 대장도 실각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 말 한마디에. 운호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프 대장님을 건드는 것은 용납 못 해요. 포요.”
운호의 덩치가 커지고, 털이 날카로워지며, 송곳니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어, 털로 뒤덮인 꼬리가 분홍빛으로 변하기 시작할 때쯤.
“역시, 정치와는 거리가 멀군. 정말 내가 아프 대장을 실각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아프 그녀는 군의 규율과 동등한 존재지. 이런 일은 그녀에게 있어 스캔들조차 되지 못하네. 너무 도발에 쉽게 넘어와 내가 더 당황할 지경이군.”
그 말과 정반대로, 로니아 대장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담뱃재를 털었고, 뭔가 다른 생명체로 변하던 운호는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페럿으로 돌아오며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웅?”
“자네 말을 이해했다는 뜻일세. 왜 출마했는지, 우리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도. 나 개인은 이해했지.”
“와? 정말인가요. 포요? 그럼 이제 그만 가 보겠….”
운호는 로니아 대장의 말에 만족했는지, 탁자에서 뛰어내리며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나는 그런 운호를 붙잡아, 다시 탁자에 올려놓았다.
“포욕? 갑자기 왜 그러세요, 이하람 님?”
운호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태평한 목소리와 표정인 채 그대로였지만.
나는 운호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웃고 있는 로니아 대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역시, 자네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군.”
“….”
그에 슬쩍 운호를 바라보았다.
“포요?”
그렇지만, 운호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흔들 뿐이었고.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싫어하는 타입이라 말도 나누기 싫었지만, 하는 수 없지.
“로니아 대장. 맞지?”
“그렇다네.”
“왜 개인이라는 표현을 쓴 거지?”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아마, 저자는 의도적으로 나를 끌어내기 위해 너무나도 뻔한 도발을 건 것이리라.
운호가 이해하지 못하도록.
“말 그대로의 의미지. 나 개인은 이해했을 뿐.”
…능구렁이 같은 놈.
“내가 알기론, 이 선거는 파벌 싸움인데 말이지.”
5~10%라고 했던가. 운호가 말한 거라 정확할지는 모르겠지만, 의원 두 명만을 뽑는 것은 아닐 터.
아마, 파벌 대표자가 승리하면 파벌에 속한 이들도 다 같이 당선되는 방식으로 굴러가는 게 아닐까.
그것이 법률적으로 정해진 것인지, 군부에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합의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 보게.”
로니아 대장의 입에 물린 시가는 더 이상 타들어 가지도, 연기를 내뿜지도 않았다.
그저 거기 자리하고 있을 뿐.
“…댁이 말하고자 하는 건, 자신은 납득할 수 있지만, 파벌은 제어할 수 없단 뜻 아닌가? 아니, 조금 다르겠군. 제어할 생각이 없는 거겠지.”
애당초, 납득했다고 한들, 적의 편의를 봐줄 이유도 없고.
“나는 한 파벌의 대표하는 자로서, 파벌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니 말이지. 파벌에 적이 생겼다면 더더욱, 그게 어떤 이유건 간에 말일세.”
능구렁이 같으니.
정치인이란 것들은 어느 세계나 왜 다 이 모양인지.
“아니면 어떤가, 우리 파벌에 들어올 텐가? 그렇다면 파르 중장과 다시 싸우겠지만, 그대 둘이 있다면 큰 문제 없이 승리하겠군.”
그냥 총알받이로 쓰겠다고 하지?
그리 말하고 싶지만, 나 또한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말하는 질척한 정치 안이기에.
“그럼, 계속 싸우겠다는 건가?”
“위력 시위는 집단이 단결하기에 좋은 방법이지. 휴전을 원하나? 그럼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생각해 보지. ‘편히 잠들라.’ 어떤가?”
지랄.
“결국 체면을 차리겠다는 건데, 그 체면이 구겨지지 않으면 좋겠네.”
의도적으로 감정이 내비치며, 거의 협박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이에 로니아 대장이 무언가 반응을 보여 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자의 감정은 전혀 바뀌지 않은 채였다.
그저. 불도 붙지 않은 시가를 빨아들이는 척하며, 나를 바라볼 뿐.
30초 정도가 지났을까.
그는 이미 불꽃이 꺼져 제대로 타지도 않은 시가 끝부분을 잘라, 금속 담뱃갑에 넣은 후 입을 열었다.
“제안 하나 들어보는 게 어떤가?”
“뭔데.”
이미 서로 간에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적대감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개소리하지 말라는 의미로써.
“이 방에서 말했던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면. 5일 정도는 우리 파벌이 그쪽을 공격하지 않도록 노력해보지.”
“발설 제한은 양측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인가?”
우리만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말도 안 되는 개소리고.
“물론 나를 포함한 양측 모두지. 어떤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아닌가? 그대가 우리 마법 왕국에 도착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것은 알고 있다네, 좀 쉬고 나서 정비할 시간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강한 금속도 피로가 쌓이면 부러지기 마련이지.”
저자가 내뱉은 제안. 그것을 듣고 곧바로 이해했다.
…이놈,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군.
정확히 어디까지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마법 왕국에 온 시간과 어떻게 온 것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어쩌면, 운호가 말하기 전부터 운호가 출마한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파르 중장 파벌이 아니꼬운가?”
우리를 명분 삼아, 다시 서로 싸울 만큼?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질문을 던지고 로니아 대장의 반응을 살폈지만. 그의 얼굴과 목소리는 떨림조차 없었다.
그래, 인정하자.
저자는 정치인이다.
아프 대장이 효율의 화신이듯.
저자는 정치의 화신이리라.
그렇지만, 로니아 대장은 마무리를 깔끔하게 해내지 못했다.
“아쉽지만, 그 제안은 거부하지. 우리도 방금 새로운 카드가 생….”
그리 말하고 빠르게 자리를 뜨려 했지만.
“그거 아는가?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했네.”
진한 저음을 가진 오탁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오래되어 잊힌 이야기지만, 의원은 공익을 추구하는 자가 출마하는 자리라는 여왕님의 말씀이 있었지.”
마치 아무 의미 없는 혼잣말을 하듯, 허공에 내뱉는 말.
그렇지만, 그 말엔 차가운 비수와 같은 섬뜩함이 담겨있다.
“요즘 시대엔 의미가 없는 말이지만, 바꿔 말하면 공익을 추구할 생각이 없는 자는 시민의 대표자로 출마해선 안 된다는 격언이기도 하다네.”
“….”
“운호 그대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공익을 위할 생각인지 궁금하군.”
망할 놈.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기에. 그자의 머리에 얼굴을 들이밀며 입을 열었다.
“꼭 낙선하길 빌어주지.”
“승낙한 것으로 알겠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습기 찬 목소리가 내 얼굴에 들러붙었다.
그 기분 나쁨을 참으며 고개를 들고, 방을 나섰다.
“운호야. 가자.”
“웅?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운호는 방금 대화를 거의 이해 못 한 것 같지만, 우리 둘 사이에 서린 차가운 기류는 알아차렸는지 약간 걱정을 띈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중에 설명해 줄게.”
그리 말하고 방을 나서려는 순간.
“이제 파르 중장에게 갈 생각인가?”
방을 떠나려는 나에게, 그가 말을 걸어왔다.
“그래.”
“그럼 조언 하나 해주지, 파르 준장은 나처럼 무르지 않다네.”
“퍽이나.”
내가 그리 말을 되돌리자.
자기 몸보다 큰 순백의 날개를 단 분홍빛 돼지는, 그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우릴 향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