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239)
마법소녀 아저씨 239화(239/671)
239. 준비 기간과 일상과 동화책
“또 보네~.”
나답지 않게 싱글벙글 웃으며, 요즘 거의 우리의 아지트가 된 수준의 장소에 발을 들였다.
아마 지금쯤 나에게 이 장소를 소개하고 백지수표를 적은 이는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워낙 부자라서 이 정도는 신경도 쓰이지 않을 수준일까.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덕에 계획에도 없던 호화 생활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뿐.
“예, 또 뵙는군요. 이하람 님. 오늘은 좋은 가재가 들어와 전체적으로 해산물 위주의 식단입니다만, 어떠십니까?”
“해산물이요? 전 좋아용! 담백한 맛! 요즘 기름이랑 소금이 잔뜩이라 조금 거북했거든요.”
“음. 두족류 계열은 제외해 주시길. 물론 저와 같은 종족인 건 당연히 아니긴 합니다만, 조금 거부감이 들어서. 아, 여기서 두족류란….”
“여기 가재도 껍질 단단한가? 껍질도 같이 나오는 요리로 부탁해.”
웨이터의 환영 인사에, 외출했다 돌아온 우리는 한 명씩 그에 반응했다.
고급 식당을 제집처럼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한다면, 아무리 훈련받은 고급 식당의 웨이터라 한들 당황할 법도 하건만, 그런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첫날 정도뿐, 이후로는 완벽한 미소를 유지하며 우리를 반겨주고 있다.
“흠, 오늘은 도서관에 다녀오신 것 같군요. 책은 그 방으로 옮겨드리면 되겠습니까?”
질문의 형태이긴 하지만, 웨이터 요정은 우리가 답을 하기 전에 이미 손을 튕겨 투명한 형태의 판을 만들어냈다.
“부탁드리죠.”
그에 알’셸은 웃으며 가방에 든 다량의 책을 투명한 발판 위에 하나씩 옮겨 담았고.
“흐음, ‘고대 마법부터, 현대 마법으로의 발달.’ 이쪽은 ‘현대 마법으로 재구성해 보는 고대 마법.’ 고대 마법은 알’셸 님의 취향이 아니실 텐데요? 제가 그쪽으로 전공해 봐서 아는데, 그쪽은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구조가 난잡하고 모호해서….”
발판에 담긴 책의 이름을 본 웨이터가 그리 코멘트를 달았다.
…대학 나오신 분이셨수?
어째 웨이터치고는 이상하게 마법을 잘 쓰더니만.
“그 모호함에 흥미가 있어서 말입니다. 저희 쪽의 마법 또한 이 세계의 마법에 비하면 비효율적인 편입니다만, 운호 님이 쓰시던 기원의 노래라든가 하는 것은 아예 저희가 알던 체계를 벗어난 것 같아서 말이죠. 거기에 뭔가 제가 찾던 해답이 있을까 싶어….”
그리고, 그 대학 나오신 웨이터와 쿵짝이 잘 맞는 마법 마니아 알’셸께서는 기나긴 문장을 쏟아냈다.
“아, 마법식의 구조상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을 내는 우연성 말이시군요. 분명 그것은 현대 마법에서 구현할 수 없는 요소긴 합니다만….”
…또 한참 떠들겠군.
몇 번이고 겪은 일이었기에, 그냥 알’셸을 내버려 두고 사실상 우리 전용이 된 방을 향해 발을 옮기고자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먼저 가 있으마. 아, 요리는 대충 추천하는 것 몇 개 내주시길.”
“…그 마법이라면…. 예! 알겠습니다! …아, 힘을 그대로 안 쓰시는군요. 필터라….”
웨이터가 주문도 받았으니, 곧바로 운호와 함께 방으로 향하려던 찰나.
아, 맞다. 하나 볼 게 있었지.
잊어버렸던 것을 떠올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책 속을 조금 헤집었다.
그 덕에 규칙적으로 쌓여있던 책이 조금 흐트러지긴 했지만, 책더미가 쓰러지기 전에 내가 찾던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꺼운 양장본이나, 표지가 매끄러운 비닐로 된 둔기 비슷한 학술 서적이 대부분인 책 사이에서, 약간 색이 바랜 데다가, 얇기까지 한 책 한 권을 발견할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을 빼 들었다.
아기자기한 표지 삽화가 그려진 오래된 동화책.
여전히 책에 적힌 글자를 읽을 수 없긴 하지만. 뭐라 쓰여있는지는 도서관에서 봤기에 알고 있다.
세계의 첫걸음.
묘한 흥미가 느껴져, 집어 든 물건.
“가자, 운호야.”
그것을 품에 안고, 운호와 함께 방으로 향했다.
* * *
처음 우리가 삼자회담을 했던 방.
그 장소는 처음 우리가 봤던 때와 비교하자면 크게 달라져 있었으니.
여기저기 널려있는 잡동사니.
허공에서 튀어나온 줄에 걸려있는 해먹 침대 둘.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반투명한 텔레비전.
탁자 위에서 굴러다니는 책.
즉, 말끔하게 닦여 중앙에 놓인 탁자를 제외한다면, 어디 하숙집이나 다름없는 몰골로 변해있었다.
우리가 나가 있는 동안 우리의 개인 물건을 제외하곤 모두 청소하는지, 잠깐 나갔다 왔을 뿐인데 다시 깨끗해진 꼴이 신기하긴 하지만.
웨이터가 우리의 이 짓에 당황한 것도 첫날뿐이듯이, 우리 또한 그 프로의식에 당황한 것도 첫날뿐.
이제는 이 괴상한 상황조차 당연하게 생각하며, 의자에 앉아 등받이를 젖히고, 탁자에 발을 올린 채 책을 열었다.
“탁자에 발을 올리는 건 버릇없는 짓이에용!”
그런 내 행동에 운호가 태클을 걸었지만.
…탁자 위에서 굴러다니는 건 잘하는 짓이고?
막상 운호는 피곤하답시고 탁자 위를 굴러다니며 넵킨을 몸에 둘둘 감고 있으니, 버릇없는 건 둘 다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그렇기에 별다른 반박도 하지 않으며, 품에 넣은 책을 살폈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본래 흰색이었음이 분명한 겉표지가 군데군데 누렇게 변한 동화책.
단순하게 그려진 삽화는 얼핏 보면 그것을 동화책이라 느끼게 해주었지만, 뭔가 강하게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수많은 동식물을 대동하고, 중앙에 자리해 웃고 있는 한 명의 여성.
그녀는 땅에 닳을 만큼의 검은 장발을 한 채, 기묘하게 생긴 로브를 입고 양팔을 좌우로 벌리고 있었다.
그녀가 입은, 노출이 많은 듯하면서도 적은 로브.
옆구리나 어깨, 가슴팍 일부, 팔 부분이 크게 트여있건만.
나머지 부분은 마치 구속복처럼 꽁꽁 싸맨, 기묘한 형태의 로브.
사실 이런 옷은 판타지에도 자주 나오니 그리 이상할 것은 없지만.
삽화에 표현된 로브의 색상이 이상하리만큼 신경 쓰인다.
검은색과 흰색이 명확한 경계를 가지고, 서로 잡아먹듯 꼬인 흑백의 무늬. 데포르메 된 삽화이건만, 이상하리만큼 정교하게 새겨진 색.
어째서 이걸 이렇게 새긴 걸까.
그에 더해, 마지막으로 이상한 게 하나 더 있었으니.
왜. 눈 부위가 검게 칠해져 있지.
그런 주제에, 표정은 너무나도 밝게 웃고 있다.
마치, 이모티콘으로도 쓰일 수 있을 법한 과장된 웃음.
동화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웃음 말이다.
좌우지간.
그 이상하리만큼 정교한 옷의 색과 검게 칠해진 눈가로 인해 이 삽화가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봐도 이건 동화책 삽화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그 삽화에서 느껴지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공포 영화에서나 느낄 법한, 어딘가 섬찟함이 느껴지는 뒤틀린 감성.
순수하게 그지없는 그림체로 피와 살점을 그리면 되레 더 기괴해 보이는 것을 노리는 것처럼.
이 동화책의 표지는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혹시 이것이 동화책이 아닌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야. 운호야.”
“왜용?”
운호에게 묻고자 책 표지에서 고개를 떼고 운호에게 눈을 맞춘 순간.
어처구니없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너 왜 그러냐?”
“따뜻하고 좋아요.”
그리 말하는 운호는 온몸에 냅킨을 둘둘 만 채 양다리로 꼿꼿이 서서 리모컨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으니. 그 꼬락서니가 꼭 부푼 칠면조를 떠올리게 했다.
“…아까 나보고 예의가 어쩌고…. 하아…. 아니다. 그보다, 이 표지에 나온 이거, 너희 여왕 맞냐?”
그래, 운호한테 뭘 기대한 거냐.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운호를 향해 책의 표지를 내밀었다.
“음? 으으으음? 뭐예요 그 책은.”
그에 운호는 나처럼 기묘함을 느낀 듯 괴상한 목소리를 내뱉었으나.
그것은 내가 원한 답이 아니었고.
“나도 몰라. 이제부터 읽으려고. 그나저나, 이거 너희 여왕 맞지?”
“예, 여왕님이 맞긴 한데…. 어째… 좀. 뭔가가 다른데…. 뭔가가….”
일단 여왕이 맞긴 맞단 거군.
“그럼 됐어. 하던 거 해.”
“으으으음…. 뭔가가 이상한데.”
대답해 준 운호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듯, 잔뜩 냅킨을 부풀리며 새총 맞은 닭 형태를 보였으나, 이미 그 꼬락서니는 내 관심 밖이었고.
나는 품속에서 안경을 꺼냈다.
알이 없는, 무광 검정의 얇은 금속 테 안경.
알’셸이 마법 왕국 언어와 지구 언어의 일대일 대응 번역 마법을 완성했다며 나에게 건네준 물건.
직접 사용해 본 결과, 서순이 종종 틀리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문장의 전체적인 뜻을 파악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고.
나는 그것을 쓴 채 조용히 책을 열었다.
* * *
옛날 옛날 아무것도 없는 곳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곳은 계속해서 아무것도 없었죠.
어제도 내일도 오늘도요. 그랬기에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없었답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마법을 몸에 두르고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 나타났죠.
누군가는 쉴 장소가 필요해 씨앗을 심었답니다.
그녀는 내일을 바라며 잠들었죠.
얼마나 지났을까요.
그녀가 잠들며 내일을 바랐기에, 내일이 왔답니다.
이제 잠들기 전은 어제, 잠에서 깨어난 후는 내일이 되었답니다.
시간이라는 흐름이 생겨나니, 씨앗이 쑥쑥 자라기 시작했지 뭐예요?
씨앗은 흙을 낳았고, 흙은 다시 씨앗이 되었답니다.
더더욱 시간이 지나, 씨앗에서 자란 풀은 세상을 파랗게 만들었죠.
그것을 보고 그녀가 말했답니다.
【이게 아니야. 난 이 색이 싫어.】
그녀는 풀을 없앨 생각은 없었어요.
풀은 세계의 시작이었으니까요.
그녀는 풀을 뽑아 던져 버렸답니다.
파란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말이죠.
세계엔 하늘이 생겨났어요.
하늘이 생기자 별님과 태양님도 새로 만들어진 땅을 보았어요.
별은 말했죠.
【좋아 보여.】
태양은 말했죠.
【나쁘지 않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그녀는 자신이 어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 별과 태양이 가진 흥미는 끝없이 커져 나갔어요.
그래서.
그들은.
쏟아져 내렸답니다.
별똥별이 되어서 말이죠.
쾅. 쾅. 쾅.
땅이 울상을 짓자 그녀가 허리를 굽혀 심던 나무가 사라졌어요.
그녀는 화를 내었습니다.
【너희가 모든 것을 망쳤어.】
그녀의 분노는 별도 태양도 감당할 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쪼개졌어요.
잘게, 잘게.
조각나 흙에 묻혔죠.
시간이 지나. 그녀는 자신이 만든 정원을 둘러보았어요.
그때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마침내 떠올렸죠.
【움직이는 게 없어.】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졌어요.
땅에서 그녀의 소원이 자라났거든요.
우리가 나타나 그녀의 정원에서 부족한 것이 채워졌죠.
그녀는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고.
그녀는 여왕이 되었답니다.
모두의
아름다운 여왕님
이요.
이름 없이, 아름다운 여왕님이요.
* * *
뭔 미친 동화야 이거.
삽화부터 시작해서 멀쩡한 게 하나도 없네.
오죽하면 번역 안경이 고장 났나 싶어, 중간에 운호한테 번역을 의뢰할 정도였다.
그때 운호의 대답이 걸작이었으니.
“어…. 맞긴 맞는 내용인데…. 왜 이래요? 이거?”
낸들 아냐.
너희 나라 동화책이잖아. 왜 나한테 물어보고 그래.
“전체적인 흐름은 맞단 소리지?”
“예, 그런데 세부적인 내용이…. 으으으음. 잘 모르겠어요.”
운호가 말하는 것을 종합해 보면, 그냥 보편적인 창조 신화 같은데…. ‘여왕님이 내려오자 하늘과 땅이 열렸다.’ 수준 정도. 그런데 왜 이건 이렇게 기괴하게 쓰였지.
“누가 장난삼아 호러 풍으로 쓴 물건인가?”
“그럴지도용. 저도 이런 동화책은 절대 안 쓸 것 같아요.”
그래, 나 같아도 안 쓸 것 같다.
오히려, 이게 이 세계의 보편적인 동화책이라면서 운호가 찬성했다면, 이 세계의 어린이들의 정신 건강을 의심했으리라.
“모레면 싸우러 나가야 하는데 찜찜하게.”
아무 생각 없이 빈둥빈둥 노는 것도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단 말이다.
여왕에 대해 알아볼까 해서 집어온 물건이 이런 핵 지뢰일 줄이야.
그나저나, 음식은 언제 나오는 거야?
알’셸 놈은 또 왜 안 오고?
그렇게 그 알’셸까지 포함해 날백수 셋이 모여, 힘을 쓰는 거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아무 생각 없이 배나 긁으며 지내는 휴식은.
로니아 대장께서 내려주신 다디단 지원금으로 인해 평화롭고 풍족하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