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254)
마법소녀 아저씨 254화(254/671)
254. 순백의 여왕
공간 이동인가.
저 앞의 여왕을 무시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옥좌의 방.
그리 말하면 적절할까.
왕궁이라기에 판타지에 나오는 거대한 방을 생각했지만.
내 생각과 큰 거리가 있었다.
큰 방이긴 하지만, 장식은 정말 단출한 수준. 현대 부잣집에 미술품을 걸고, 조금 고풍스럽게 꾸민다면 이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오히려, 내가 묵었던 식당의 방이 더 고급스럽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눈에 띄는 것은 분명 존재했으니.
세 개의 계단. 그 계단을 따라 불룩 튀어나온 원형의 높은 바닥.
그리고, 그 바닥 위에 놓인, 은빛 권좌.
권좌라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권좌라기엔 조금, 많이 이상했다.
은빛이라고 생각했지만.
애당초 그것은 빛의 반사 탓에 그리 생각했을 뿐.
실제 그것의 생김새는. 빛의 실로 이루어진 망에 가깝다.
네 개의 실이 땅에 닿은 데다가, 직각으로 꺾여있어. 그것은 분명 의자라 말할 수 있는 생김새지만.
과연, 저것이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물체라고 할 수 있을까?
너무나도 그 두께가 가는 탓에.
시선을 조금만 틀어도 그 존재를 찾을 수 없는.
특정한 각도에서만 보이는, 괴이한 빛의 선으로 이루어진 의자.
그것이 그녀가 앉아있는 옥좌의 정체.
“…난 어서 와. 라고 했는데. 나보다 의자가 더 신경 쓰이나 보지?”
그리고, 그 옥좌 위에 앉은.
온통 하얀.
얼굴을 제외하면 온통 하얀 존재가 입을 열었다.
“….”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까진, 내 적이다.
요구가 있어 참고 있을 뿐.
“아니, 입 닫지 말고. 중요한 거라 그렇지. 넌 이 의자가 보여?”
“…각도에 따라서. 약간.”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필요는 없기에. 이번엔 답을 돌렸다.
“흐음. 힘만 있는 건 아니고, 이미 선을 넘었구나. 그래. 그러면 이야기가 좀 더 재미있어지지. 축하해. 네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조금 더 늘었어.”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대체 무슨 소린지 원.
상대가 앉아있기에, 나도 앉을 물건이 없나 하고 방을 둘러보았지만.
옥좌의 방이라 그런지, 주변에 있는 앉을 만한 물체라고는 수호대로 추정되는 네 명의 존재뿐이었다.
린의 언니인 리나.
가장 오래된 수호대. 호랑이 브시.
웨이터… 이름이 뭐더라.
그리고, 처음 보는, 토끼 인형 모습으로 창을 든 존재가 하나.
…저것도 수호대인가.
양옆에 두 명씩 나눠 정렬해있으니 수호대인 것 같긴 하지만, 그 생김새가 어지간히 독특해야지.
하는 수 없지.
지금의 내가 수호대를 두들겨 패 인간 의자로 만들 수도 없고.
불만스럽게 팔짱을 끼고, 손가락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날 살려 둔 이유가 뭐지?”
“말하는 것 좀 봐. 살려 둔 게 아니라, 살려 준 거지. 놔두면 넌 이미 소멸했어.”
그건 인정한다.
내 몸 상태는 아무리 봐도 재생이 될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아마, 중요한 뭔가를 불태우며 그 경지에 올랐으니.
덕분에 하나를 더 알았지만.
내 리미터는 세계를 나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로부터 나를 지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어느 순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안전장치조차 없는 완전 해방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그것이 증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
그리고, 그 반작용 또한 사실상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도.
그것을 치유한 것은, 수호대나 여왕이겠지.
그렇지만.
“그건 별로 안 고마운데. 애당초 너네가 이상한 짓을 안 했으면, 그 꼴이 나지도 않았어.”
난 피해자라고. 이봐.
그리고 나한테 한 번 죽은 저 웨이터는 면목 없다는 듯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데다가.
반신이 날아갔다고 필사적으로 어필 하기 위해서인지, 얼굴이랑 손에 붕대를 칭칭 감은 호랑이도 있구만.
척 보니 근육 움찔거리는 게 회복된 지 한참 전 일이네.
양심도 없는 놈들.
결국, 내가 가한 피해는 없고.
내 쪽만 피해를 보았으니 저울의 균형을 맞춰야 하지 않겠냐?
“흐음. 몸도 그래서 다 돌려줬고. 아, 혹시 감정 제한 걸어둔 거 이야기인가. 그거면 갈 때 풀어 줄 테니 걱정 마. 내 세계니까 손을 쓴 거지, 밖에서 그러면 규칙에 어긋나거든.”
그게 아니란 건, 여왕 네가 가장 잘 알지 않을까?
“능청 떨지 마. 그딴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텐데?”
그렇기에, 억눌린 화를 어떻게든 내보이며 소리를 내질렀다.
한 걸음. 앞으로.
위협이 되는 행위였으나.
수호대는 자세조차 유지하지 않으며 호위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호랑이는 지겨워졌는지 붕대를 풀었다 감았다 하며 팔이나 긁고 있으니.
“흐음. 어떤 것 말일까. 아, 혹시 계획에 낭비된 시간? 그거라면 충분히 화낼 만도 하지. 아 그래. 네 세계인 지구에서는 그러던가. 시간은 곧 금이라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어디까지 보았는지.
나는 그것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저 존재는 모든 것이 파탄 나 있다.
스스로의 얼굴이 존재하지 않듯.
그렇기에,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운호를 말하는 거다.”
“아, UN 개체? 1-10이었던가? 그런데 그게 왜 중요하지?”
“…시치미 떼지 마.”
한 발짝. 더 앞으로.
“너는 죽은 수호대를 살렸어.”
“수호대가 특별한 걸 수도 있지.”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렇지만.
“부정은 하지 않는군?”
“긍정도 하지 않았는데.”
말장난은 이제 지겹다.
“질문은 하나야. 살릴 수 있는가. 없는가.”
“ashes to ashes, dust to dust.”
“…몰라 새꺄.”
“무식하구나, 뭐 그게 네 매력이겠지. 있어야 할 것은 있어야 할 장소로 가야 한다는 뜻이지. 1-10은 좋은 데로 갔을 거야.”
화가 폭발했다.
그렇기에, 뛰어들어.
여왕의 멱살을 잡았다.
“씨발 새끼야. 그딴 말장난은 이제 집어치워. 운호를 살릴 수 있으면 있다고 말하라고.”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씨익.
그런 소리가 들렸다.
명확하게 귀에.
그녀가, 웃음을 짓는 소리가.
“그래. 그게 중요한 거야. 누군가의 기원은 명확하게 말로써 만들어져야 하지.”
그녀는 장난스러운 말투를 지우며.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날 바라보았다.
내가 멱살을 잡았음에도, 그것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듯.
“껍질 안에서 아무리 지껄여도 소용없어. 중요한 건, 외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게 중요한 거야.”
기묘한, 압박감이 내려왔다.
수호대, 화신체를 넘는 압박감이.
그 모든 것을 겪어왔음에도.
기세에 눌린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현 상태를 지킬 만큼의 압박감이.
“수호대.”
그런 그녀가, 압박감이 잔뜩 담긴 입을 열었다.
“…뭡니까?”
여왕의 부름에, 호랑이만이 답했다.
그마저도 심드렁한 목소리로.
“모두 방에서 나가거라.”
“저흰 여왕님을 흉포한 존재로부터 수호하고 있습니다만.”
“끝을 마주하겠다면 말리지 않으마.”
“지금 당장 나가도록 하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랑이는 모두의 목덜미를 붙잡고 사라졌다.
그리고, 내 귓가엔 하나의 단어가 맴돌았으니.
끝.
그 의미를 뇌에서 이해한 순간.
검음이 퍼져나갔다.
얼굴에서부터, 옷으로.
옷에서, 피부로.
피부에서. 세계로.
그리고, 세상은 검게 물들었으며.
* * *
그곳엔.
나와.
백흑의 여왕만이.
아니.
뼈대만이 존재하는 은빛 의자.
그리고, 거기에 앉은 백흑의 여왕과 나만이 존재했다.
내가 멱살을 잡았던 일조자 없었던 것처럼.
약간 거리가 멀어진 채.
그런 그녀는 의자에 앉아 깍지 낀 양손 위에 턱을 올렸고.
그것을 본 순간.
종말을 이해했다.
나 자신의 종말을.
그녀와 맞서 싸울 때.
나는 내 한계로 인해 몸이 부스러지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절반 정도만이 정답이었으니.
남은 절반은.
그저, 그녀라는 존재를 인지했기에 생긴 문제임을.
상(相)이 다른 존재라는 것은,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에 있어 막대한 부담임을.
“…옥좌에선 화신…체였나.”
“그렇지, 평소에도 본체로 나서면, 수호대도 못 견뎌.”
“…이게 끝인가.”
모든 일의 원흉.
세상에서 지워야.
아니, 그것이 불가능하더라도, 지구에서 밀어내야 할 존재.
무너져 내릴 때의 몸이 아닌, 온전한 상태에서의 몸으로 끝의 높음을 실감했으나.
“조금 달라. 이건 억제한 상태지. 따로 칭하는 말은 없지만, 단말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화신체와 다르게 끝이라고 말할 순 있지, 나름 규칙상 운용에 제한도 있는 본신이니까. 너와 생각 패턴이 비슷하고, 말이 통하고, 같은 것을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없이 약해진 상태긴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더 높은 하늘에 띄웠다.
“네가 보통 사람에 비해 느끼는 것이 넓고 깊듯이, 나도 너 이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보고, 겪는다는 소리야. 물론, 그런 존재와 너 사이의 차이보다 몇 배나 많은 차이가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하겠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 없다.
그리 말하려 했지만.
“예를 들어.”
그녀의 입은 멈추지 않았고.
“8천마란5배신1천국3정화6강림4나를9하늘7정립0뱀∞마법소녀2세계.”
이해할 수 없는, 다만 무어라 말하는지 알 수 있는 문장을 내뱉었다.
한순간, 내 심장을 멈추며.
“이렇게 말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아, 막 내뱉은 건 아니야. 명확한 의미가 있는, 본 것의 이야기.”
“굳이…. 보여 줄 필요는 없었….”
성격이…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
“굳이 보여 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게 더 흥미롭잖아. 그렇지 않아?”
처음 만난 끝이 이렇다면.
나는 모든 끝에 대해 편견을 가지겠군….
“아, 그러고 보니 이름도 말하지 않았네. 난 마(魔) 이자 마(麼) 야. 어차피 기억도 못… 아. 이건 말할 필요 없었네. 습관이 돼서.”
뭐라 지껄이는 거야.
“아무튼, 이야기를 진행하자. 넌 지금부터 선택해야 할 거야. 네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그리 말하는 그녀는, 내 죽어감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손깍지를 풀며, 고개를 흔들었다.
“첫째. 본래 널 초대한 이유인. 네가 궁금한 것에 대해 알려 준다.”
그리 말하는 그녀는 왼손을 흔들며, 어둠에 영상을 띄웠다.
기묘한, 얼굴에 얼굴이 겹쳐져, 거품처럼 터지는 존재.
“여기엔 끝이란 무언가에 대한 간단한 정보도.”
끔찍한 모습의 얼굴이 사라지고, 어느 집 안방이 생겨났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30년 전.
“마법소녀에 대한 정보도.”
안방이 지워지고.
빠루를 들고 누군가를 습격하는 내가 나타났다.
저건, 기억한다.
분명, 여자아이와 손을 잡고 걸어가던 변신 히어로였지.
“본질의 변화에 대해서도. 린은 심각한 얼굴로 정보를 전해 왔는데, 린이 심각하게 말한 이유도 알려 줄 수 있지. 자,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번쩍, 번쩍.
다양한 영상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의 기도를 받으며 하늘로 솟구치는 불사조.
울부짖으며 지팡이를 휘두르는 물의 엘프족.
바다 아래에서 잠자는 앵무조개.
“음. 이야기의 이유도 있겠고.”
망치를 들고 유리창 앞에서 웃으며 제 머리를 부수는 자.
금색 머리를 하고, 내 망치를 든 채, 웃으며 뭔가를 파괴하는 자.
푸른 머리를 하고, 내 망치를 든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자.
붉은 머리를 하고, 아무것도 없이, 불길 속에서 슬피 우는 자.
비 내리는 무덤.
그리고,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린….
마지막 화면에, 노이즈가 생겨, 갑자기 꺼지고, 다른 화면이 나타났다.
굴러다니는 담뱃갑.
“음? 저건 뭐였지. 뭐, 아무튼 대충 이래. 다만 종류에 따라 힌트로 끝날 녀석도 있긴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자세히 알려 줄게.”
그 모든 화면을 보고, 내 안에 떠오른 것은 하나뿐이었다.
어째서. 라는 단어.
“…저걸 모두 알려 주고, 네가 얻는 이득은 뭐지?”
“아, 그래 이득. 그거 듣고 생각났네, 하나 더 추가할게. 마법소녀를 어째서 파견하는가. 이거 네가 여기 마법 왕국 왔을 때 궁금해하더라.”
그리고, 린이 잠깐 나타났다.
백시현과 함께 싸우고 있는 듯.
유밀과 싸우는 그녀.
린과 백시현이 합을 맞춰 유밀을 밀어냄에도.
유밀은 포효 한 번으로 그들을 튕겨내며 린을 향해 빠루를 휘두른다.
그리 긴 영상은 아니었다.
“…질문의 답이 되지 않는데.”
“음. 그에 답해 줘야 할 의무는 없지만. 서비스 한다고 치자. 기연이라고 하지? 너네 세계 무협 소설에서 아무 의미 없이 타인에게 이득이 될 것을 남겨 주는 거. 다만, 난 그런 데에서 나오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했던 의미, 제자 키우기 그런 건 관심 없고, 단순히 이게 더 재미있을 것 같을 뿐.”
그녀가 웃었다.
뱀과 같은 사특한 미소로.
그 웃음은, 내가 그녀라는 기연을 받았을 때 어떠한 문제가 생김을 암시하는 것 같았으나.
그녀가 나에게 내민 과실은 너무나도 달콤했기에.
죽어가는 몸과 함께 생각의 바다에 몸을 던지도록 강요했고.
나는 허우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다른 선택은 뭐지?”
첫 번째가, 이리도 달콤하다면.
대체, 두 번째는 뭐란 말인가.
“별거 아냐. 간단한 거지.”
스윽.
그녀가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거기엔 운호가 나타났다.
만두 속에 고개를 처박으며, 만두를 공빵으로 만들어버리는 운호가.
그는 안을 다 파먹고는, 능청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고.
영상이 끊겼다.
“원하지? 부활.”
“….”
미친놈.